Vet Druid RAW novel - Chapter (54)
* * *
[아고고, 마력을 너무 썼더니 힘이 하나도 없네.]아침부터 팅거 놈이 앓는 소리를 해 댔다.
[나두. 날개도 아프고 눈도 아파.]덩달아 벨라까지. 벨라는 눈도 못 뜬 채 드러누워 있었다.
하긴 어제 그렇게 애를 썼으니 그럴 만도 하지.
팅거와 벨라, 그리고 케이홀은 로이칸과 호크가 가루를 낸 석회에 열을 가했다. 1000도에 다다르는 고열을 일으키느라, 세 녀석이 탈진까지 할 지경이었다.
벨라는 거기에 열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보호막까지 시전했으니,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아침 먹어.
[먹는 것도 힘들다. 조금 더 쉬고.]아침밥도 마다하는 팅거는 처음이다.
-그래도 아침은 먹고 자야지.
힘없이 드러누워 있는 걸 보니, 차라리 맛있는 걸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모습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도 안 먹나 보자.
고생한 녀석들을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접시에 담아서 가져다줬다.
-뭐, 정 힘들면 나중에 먹든지.
[아, 진짜! 나중에 먹는다니…… 어? 흠흠, 그럼 조금만 먹고 잘까?] [웅, 난 이 체리 하나만 먹고 잘래.]-마정석도 먹어라. 일라일라 보니까, 마정석 먹으니까 벌떡 일어나더라.
[마정석은 맛없다. 안 먹어.]-보약이다, 생각하고 먹어. 남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데, 줘도 난리야.
[흥! 내가 뭘 먹든!]그때였다. 이 저택 집사가 손님이 왔다고 알려 줬다.
손님은 바로 축산국장인 크리턴슨이었다. 표정을 보니, 일이 잘 안 풀린 거 같았다.
“일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아, 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어제 밤늦게 연락 온 클라우 부국장도 중앙 축산국에서 내 의견을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다르지는 않았겠지.
“할 수 없죠.”
이렇게 된 이상,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서 율리시즈 영지 방역에 힘써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항생제가 많이 쓰일 거니, 세피린 생산량도 늘리고.
그리고 개강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검술도 배우고.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데 크리턴슨 국장이 서류철을 내밀었다.
“사양관리 신청한 목장입니다. 물론 방역 포함입니다.”
서류를 보니, 꽤 많은 목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제 내 의견에 동의한 가문들 목장입니다. 우선 그쪽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목장들 위치 말씀이지요?”
크리턴슨 국장이 고개를 돌리자 따라온 직원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거기 붉게 표시해 놓은 것이 의뢰 목장들입니다.”
지도를 보니, 붉은색들이 몰려 있었다.
이거…… 괜찮잖아? 아니 좋은데?
군데군데 떨어져 있으면 효과가 떨어지겠지만, 한 군데에 몰려 있으니, 방역하기에 쉬울 거 같았다.
“아쉽지만, 할 수 없군요. 그러면 여기 목장들부터 시작하죠.”
“내 선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 드릴 테니, 부디 성과를 보여 주십시오.”
크리턴슨 국장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복수를 다짐하는 표정인데, 어제 회의에서 반대파들과 엄청 싸웠나 보군.
“나라 전체를 맡은 분께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합니다.”
이 나라 경제가 낙농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동 제한은 손해가 엄청날 거다. 당연히 반대할 만하지.
“이 목장들 성과를 올리면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도 갑작스럽게 반대하는 대신들의 성화에 결정을 미루고 있지만, 공자의 뛰어난 능력을 곧 인지하실 겁니다.”
그거야 간단하지.
“알겠습니다.”
사양관리를 위한 물품 수급문제로 그날 저녁, 율리시즈 백작과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올리프 상단 거래처들의 반대가 심했다더군.
“올리프 상단이요?”
=그래, 거기에 모건 상단까지 합세한 모양인데…… 앞으로 네가 거기서 일을 완수하려면 이 정도는 알고 있는 게 낫겠다.
율리시즈 백작은 내게 아크리스 왕국의 축산 업계의 이해관계를 설명해 줬다.
“그러니까 축산국장인 크리턴슨 백작 파와 부국장인 콜모트 백작 파로 나뉘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리고 콜모트 백작가는 예전부터 올리프 공작과 거래를 해 왔지.
여기서 왜 또 올리프 공작이 나오는 거야?
그 영감, 엄청 문어발이군. 아니 그전에 이 양반의 정보력은 도대체 어디까지 커버하는 거야?
율리시즈 백작은 아크리스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콜모트 백작과 올리프 공작과의 이해관계로 인해 지금 이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도 무방하겠군요.”
=그렇지 않고서 이미 결정된 일을 번복했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올리프 그 영감이 이번 일을 뒤늦게 안 모양이지.
결국은 말이 이렇게 되는군.
아크리스 왕국이 우리 상단에 연락한 것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차린 올리프 공작이 부랴부랴 자기 수족을 시켜 막았다는 거로군.
흠. 잘됐군. 올리프 영감의 세력이 여기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이참에 뿌리를 뽑아야겠군.
그리고 그 땅을 잘 다져서 우리 율리시즈 상단을 심어서 그 열매를…….
흐흐흐,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군.
생각을 정리한 나는 율리시즈 백작에게 말했다.
“여기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세피린과 생석회, 그리고 전해질 생산에 박차를 가해 주십시오.”
=알았다.
율리시즈 백작과의 통화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호크가 눈이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꾸훼훼. 충성!]-응?
뜬금없이 충성이라니, 얘가 왜 이래?
[돌! 부순다!]-아, 너 바위 부수고 싶구나?
쿵쿵쿵쿵!
호크가 갑자기 퉁퉁 공처럼 뛰었다.
녀석, 흡사 장난감 내놓으라고 난리 치는 강아지 같군.
-내일 저녁이나 모레쯤 올 거니까, 그때 재미있게 놀아.
[클훼훼훼. 좋다! 돌 부순다!] [흐흐, 그 돌들이 또 온다는 말이군.]로이칸까지 관심을 보였다.
얘도 돌가루 내는 게 재미있었나 보군.
하긴 호전적인 녀석들이 매일 뒹굴거리고 있으니, 따분하기도 하겠지.
그렇다면 심심하지 않게 해 줘야지.
* * *
[얏호!] [에헤에헤. 시원하다.]로이칸 머리에 올라앉은 팅거와 벨라는 신이 났는지, 날개를 한껏 펼친 채 바람을 맞았다. 시원하긴, 추워서 얼어 죽겠구먼.
나는 스피카, 호크와 함께 로이칸 등에 탄 채, 겨울 칼바람을 가르며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세이건, 샤렌, 가렛은 생석회를 잔뜩 실은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이고.
[저기야!]살아있는 네비게이션 벨라가 날개로 한 곳을 가리켰다. 우리가 가야 할 첫 목적지인, 크리턴슨 축산국장의 목장이었다.
-로이칸! 착륙하자.
[알았다.]로이칸은 상공에서 몇 번 맴돌더니, 장기인 수직으로 하강했다.
[우와핫하핫핫! 바로 이거야! 내가 이 맛에 로이칸을 탄다고!]팅거 녀석이 까무러칠 정도로 좋아했다.
쿠웅!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로이칸이 멋지게 착륙하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거기에.
“여러분 보셨습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하강하는 모습을요. 이게 바로 캡틴 그리핀의 위용입니다.”
“드디어! 캡틴 그리핀이 착륙했습니다. 율리시즈 공자, 저 높은 캡틴 그리핀의 등에서 과연 어떻게 내려올까요? 누군가가 도움을 줘야하지…… 아, 아닙니다. 훌쩍 뛰어내립니다. 대단, 대단합니다.”
“단숨에 뛰어내린 율리시즈 공자,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동물은 뭐지요? 허억! 저 번쩍이는 건 혹시 뿔? 코먼호크 아닌가요?”
“코먼호크, 대단합니다. 엄청난 박력이군요. 그냥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거 같습니다.”
멀리서 수정구를 마주 보고 떠들어대는 자들은 분명 일간지, 잡지 기자들일 거다.
“내일이면 일간지마다 내 이야기를 하겠군.”
바로 내가 노린 바였다.
축산국에서 마차를 지원해 준다는 말도 했지만, 나는 일부러 로이칸을 타고 이동을 했다.
바로 이거. 사람들에게 내 파워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 기삿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리핀을 타고 다니는 자. 그것도 캡틴 그리핀을 타고 나타난다면 분명 화제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다들 두려워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호크까지.
아마 우리가 다니는 곳마다 기자들이 화제를 몰고 다닐 거다.
우리는 일부러 목장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착륙했는데, 이것도 역시 계획된 거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크리턴슨 국장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율리시즈 공자.”
“국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런 후, 목적지인 목장 입구로 걸어갔다.
목장 입구에 국장과 나, 그리고 몇몇 관계자들. 그리고 호크가 자리했다.
-호크, 땅을 파. 깊게 파지 말고 얕고 넓게, 어제처럼 하면 돼. 알지?
[꾸웨헤헬. 땅, 판다!]호크는 기분이 좋은지, 두툼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꽁꽁 얼어붙은 땅 따위는 호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팟, 파파팟팟.
호크는 어제 연습했던 대로 땅을 파 나갔다.
생석회를 그냥 노면에 뿌려도 되겠지만, 그것보다 길을 파서 뿌려 놓는 게 효과가 좋다.
그리고 이목을 끌기에도 좋고.
오늘 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최대한 끌어모을 생각으로 호크에게 땅을 파게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오오오오!”
“우와아아아!”
“세, 세상에 코먼호크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 봐.”
“율리시즈 가 사람들은 원래 저런가? ‘위대한 바트롱가 율리시즈’전기문에도 나오잖아. 그리핀을 최초로 길들였다고.”
“정말인가 보군. 축복받은 가문이야.”
사람들의 호응, 기대. 그리고 믿음.
내가 로이칸과 호크를 데리고 쇼를 펼치는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생석회가 드디어 도착했다.
“자 다들 삽을 들어 생석회를 바닥에 뿌립시다!”
척, 척, 척.
관계자들이 생색내기 삽을 들어 준비된 생석회를 퍼서 노면에 뿌렸다.
아마 내일 자 일간지에 이게 일면에 등장할 거다.
* * *
다음 날, 일간지 일면을 차지한 것은 바로 로이칸을 뒤로한 채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마커스였다.
사람들은 마커스의 등장에 열광했다. 마커스의 짐작대로 로이칸과 호크를 대동한 게 적효했다.
사람들이 그에 열광했고, 따라서 마커스가 제시한 방역이라는 것이 일반 국민들에게 스며들었다.
이것은 콜모트 백작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빨리, 기자들에게 연락해! 율리시즈 상단의 비리를 밝혀내라.”
“고작 돌 따위로 유행병을 막는다고 주장한 율리시즈를 공격하라.”
그렇게 여론이 양쪽으로 나뉜 가운데, 마커스 일행은 묵묵히 방역을 준비해 나갔다.
축산국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국장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직원이 외쳤다.
“국장님. 크, 큰일났습니다.”
“뭔가?”
“남부 지역 소들이 쓰러지고 있답니다.”
율리시즈 공자가 예언한 대로 올 게 왔구나. 크리턴슨 국장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