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59)
축산국 고문으로 임명받은 날, 저택도 하나 생겼다.
고문이라는 감투를 쓰긴 했지만, 굳이 아크리스에 집까지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지금이야 유행병, 농가 혁신 같은 것들을 감독하느라 여기 머물고 있지만, 일이 끝나면 크리스 왕국에 며칠이나 온다고. 1년에 길어봐야 일주일 정도?
그러나 크리턴슨 왕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집이 있으면 아크리스 왕국에 하루라도 더 있을 거라며, 로이칸도 편히 쉴 수 있게 정원이 굉장히 넓은 저택을 내게 넘겼다.
간단하게 말해 저택 입구에서 건물까지 거리가 상당하다는 뜻인데…….
[아니, 왜 아침부터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팅거가 아침밥을 먹으며 투덜거렸다.
[웅, 내가 조금 전에 날아가 봤는데, 밖에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 있어.]방금 망고 조각을 삼킨 벨라가 팅거에게 말했다.
[누가 몰라서 그래? 왜 저 사람들이 아침부터 몰려 왔냐 이거지, 밥맛 떨어지게.]파닥파닥! 팅거가 신경질적으로 날개를 두어 번 퍼덕거렸다.
[꾸웨웨웩! 전쟁! 크훼훼훼. 박자. 박자. 전쟁! 전쟁! 전진!] [크르르릉, 이가 근질거리는군. 이번에는 나도 활약을 좀 해 볼까?]호크와 스피카는 밖에서 들려오는 시끌시끌한 소리에 신이 났는지, 거실을 우다다다 뛰어다녔다.
툭, 툭. 나는 녀석들 밥그릇에 큼지막한 뼈가 붙은 고깃덩어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쟁은 무슨. 이거나 먹고 정신 차려!
[꾸웨헤! 고기! 고기!] [우왓, 난 뼈껌!]두 놈이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자, 거실이 조용해졌다.
“후, 이제 좀 살겠네. 공자님, 얘들 아침부터 왜 이렇게 흥분했어요?”
세이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밖에 기자들이 몰려와서 그래.”
“기자요? 왜요? 혹시 공자님, 또 무슨 사고 치셨어요?”
사고라면 사고지. 내 입으로 기자들을 불러 달라고 했으니까.
“사고는 무슨! 오늘부터 축산국에서 정식으로 축산농가 복구 작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왔겠지.”
“아, 그런 거였어요? 어제 공자님이 쟤들에게 한 그 뭐죠?”
“수액 치료?”
“예, 그거를 선보이면 다들 까무러칠 거예요. 어제 제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너무나 큰 바늘로 쟤들을 푹 찌르길래, 얼마나 놀랐는데요. 저는 쟤들이 죽는 게 아닌가, 진짜로 걱정했어요.”
샤렌이 다가오면서 말을 받았다. 걱정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런 거로 죽을 애들이 아닙니다.”
“그래도요. 저걸 보니,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요.”
샤렌이 현관 입구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갈 수액 세트가 들어 있는 상자였다.
“앞으로는 익숙해질 겁니다.”
나중에는 조금만 아파도 수액 맞으러 치료소를 찾는 생활이 일상이 될 테니까.
“샤렌 마법사님, 오늘 잘 부탁합니다.”
샤렌에게 위생담당을 부탁할 거다. 클린 마법. 그거 필드에서 굉장히 유용할 거라 말이지.
“그럼요. 제가 도움이 된다면 가야죠. 거기에 주벨로 마법사님의 마도구가 세상에 소개되는 날인데요.”
샤렌은 손에 들고 있는 수정구를 내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젯밤에 유니스 마탑주님께 연락드렸더니, 수정구로 영상을 담아서 보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걸 합치면 안 됩니까?”
“뭐를요?”
“통신구로 실시간 통화도 되고 수정구로 영상도 저장해 서로 주고받을 수도 있는데, 그거 두 가지 기능을 합쳐서 영상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통신구를 만들 수는 없습니까? 마벨렌 개발했을 때, 토비어스 전하와 연락했던 그 큰 거울 같은 걸 작게 만들면 될 거 같은데…….”
“어머!”
샤렌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거 너무 괜찮은 생각…….”
“이야, 역시 천재는 다르군요.”
이 층에서 내려오던 주벨로가 감탄했다.
“마밸리로 돌아가는 대로 연구를 해 봐야겠습니다.”
조만간 만들어 내겠군.
“주벨로 마법사님이라면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내실 겁니다. 마정석은 원하는 만큼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와하하하하, 내가 이래서 율리시즈 공자를 좋아한다니까. 마정석 걱정 없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 말만 들어도 의욕이 마구 생깁니다.”
“연구에 필요한 건 부족함 없이 지원해 드려야죠. 자 그럼 이제 나가 볼까요?”
“그런데 밖에 저 인파를 어떻게 뚫고 나가죠?”
샤렌이 걱정스레 말했다.
“몇 마디 말해 주면 됩니다. 내가 저자들 관심을 끌 테니까, 다들 먼저 출발하십시오. 아, 세이건은 나랑 같이 출발하자. 축산국에서 마차가 오면 어제 말한 대로 자루를 실어 주고.”
“예.”
“자. 다들 먼저 출발하시죠. 우리는 로이칸을 타고 가겠습니다.”
저택 입구로 걸어 나가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율리시즈 고문님, 오늘부터 축산농가 복구 작업에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농가가 거의 폐쇄 상태입니다. 이 시국에 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차라리 복구비용을 농민들에게 나눠 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떠들어 댔지만, 내가 할 말은 이거다.
“오늘부터 축산국은 전국적으로 축산농가 복구 작업에 들어간다. 오늘 첫 방문지는 세보크 목장이다. 우리 축산국은 거기서 새로운 치료법을 선보일 계획이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웅성거렸다.
“그 치료법이라는 것이 뭡니까? 혹시 율리시즈 고문님이 개발한 마커스 솔루션이라는 겁니까?”
“아니다.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치료법이다. 그 치료법은 앞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것이다.”
나는 이 말만 남기고 로이칸 등에 훌쩍 뛰어올랐다. 마차로 가도 되겠지만, 나는 일부러 로이칸을 등장시켰다.
기자들이 이 장면을 일간지에 실을 게 분명하고, 일간지를 본 왕국민들 뇌리에 크게 남을 테니까.
그리핀을, 그것도 캡틴 그리핀을 길들인 위대한 사람으로.
로이칸은 그대로 날아가 세보크 목장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목장주가 나와 있었다.
“율리시즈 고문님, 어서 오십시오.”
“고생이 많군. 연락했던 대로 방역과 병든 소들을 치료하러 나왔다.”
“…….”
목장주는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 없겠지.
목장은 입구에서 봐도 황량함 그 자체였다. 목장주 역시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고.
“상황은?”
“후우, 지금 남아 있는 소는 50마리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멀쩡한 소는 20마리 정돕니다.”
“보고서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300두였다고 나와 있군.”
“……그냥 날이 따뜻해지면, 여기를 갈아엎고 과수원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자식처럼 키우던 소들이 제 눈앞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겠군.”
살리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기분, 나도 잘 알지.
실의에 빠진 목장주를 보니, 대체복무로 공중방역 수의사로 지낼 때가 떠올랐다.
가축 전염병이 언제 발생할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았던 시절. 조류 인플루엔자,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복무 기간 동안 절반이 넘는 기간을 전염병 퇴치에 투입됐다.
인력 부족으로 높은 업무 강도도 힘들었지만,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살처분.
‘살처분 트라우마’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다들 괴로워했지. 오죽하면 정신과 약을 타 먹는 수의사들이 많았을까?
“차라리 잘됐습니다. 이제 훌훌 털고 여기다 사과나무나 심어 볼까 싶습니다.”
내 앞의 목장주 또한 동물의 떼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이럴 때는 직접 희망을 보여 주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나는 세이건에게 말했다.
“세이건, 일단 사람들이 오기 전에 방역 길을 만들자.”
“예.”
-호크! 알지? 길을 파라.
[충성! 땅 판다!]팍팍팍팍.
호크는 신이 나서 코를 박고 뿔로 쓱쓱 흙을 파기 시작했다.
“고, 공자님. 지금 저 몬스터가 우리 목장을 공격하고 있는데요?”
“갈아엎고 나무 심을 거라면서? 도와주려고.”
“아, 안 됩니다. 저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목장으로 들어가면 소들이 놀랍니다. 그러지 않아도 아파서 죽어 가는 소들인데…….”
목장주의 목소리에 소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걱정하지 마라.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방역할 준비를 하는 거다. 그리고 쟤는 내가 데리고 다니는 놈이니 걱정하지 말고.”
“……정말 괜찮습니까?”
“그래,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 물을 좀 길어 와라.”
“예.”
세이건과 나는 호크가 파놓은 길에 생석회를 뿌렸다.
“이제는 물만 뿌리면 되는군.”
마침 멀리서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마차가 달려왔다. 주벨로와 샤렌이 탄 마차였다.
“세이건, 지금이다.”
생석회에 물을 뿌리자, 치이이익! 바닥에서 뜨거운 연기가 올라왔다. 생석회와 물이 만나 열을 뿜어냈다.
“으허헉! 고, 공자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소독이라는 거다. 앞으로는 목장을 드나드는 말, 마차. 사람 할 거 없이 모두가 여기를 지나가야 한다. 이건 명령이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개념이 없는 이곳에서 ‘명령’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리고 이 방법은 바로 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샤렌과 주벨로가 도착하자, 목장주는 입구에 사람을 두고, 우리를 소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여기에 있는 소들이 답니다.”
소들 상태를 보니, 이대로 두면 며칠 내로 죽게 생겼다.
나는 샤렌에게 말했다.
“클린 마법을 부탁합니다.”
“네.”
샤렌이 마법을 시전하자 지저분하던 주변이 깨끗해졌다. 거기에 나는 한 가지 더.
“코블렌 마탑은 주변과 달리 봄처럼 따뜻했는데, 그건 유니스 마탑주만 하실 수 있는 거죠?”
“그게 마력이 워낙 많이 드는 마법이어서요…….”
“그러면 마력만 공급되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어차피 기본은 같아요. 마력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음, 30분 정도? 그 정도는 가능할 거 같은데, 그 이상은 아직…….”
온도가 올라가면 소들에게 도움이 되겠는데, 할 수 없지. 그냥 수액만 따뜻하게 하자.
내가 불을 피울 수도 있지만,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 샤렌에게 부탁했다.
“샤렌 마법사님, 여기 물 온도를 좀 올려 주실 수 있나요? 따뜻할 정도면 됩니다.”
“네.”
샤렌이 마법을 쓰는 걸 보자, 팅거가 비웃었다.
[참나. 저거 온도 올리는데 엄청 기를 쓰네, 누가 보면 이 일대 온도를 다 올리는 줄 알겠다.]-넌 저렇게라도 할 수 있냐?
[나를 뭐로 보고!]팅거가 화를 냈다.
흠, 이 녀석 혹시?
-에이, 설마. 유니슨 마법사님처럼은 못 할 거 같은데?
[유니슨? 그자는 뭐 하는 사람인데?]-기억 안 나? 일라알라가 있었던 그 마탑. 밖은 엄청 추웠는데, 온통 꽃들이 만개했던 코블렌 마…….
[흥! 그까짓 걸 나와 비교하다니.]팅거가 콧방귀를 끼더니 날아올랐다.
[벨라, 저 멍청한 녀석에게 우리 힘을 보여 주자.] [웅, 알았어.]벨라까지 날아올랐다.
저 녀석들, 진짜로 뭔가 있나 본데?
그렇게 생각하고 녀석들을 올려다보는데.
“윽!”
엄청난 마나가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도 마나가 몸으로 파고드는 느낌?
몸에 힘이 넘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인지, 체온도 좀 올라간 느낌이랄…… 어? 이 녀석들 정말로 해냈잖아?
내가 체온이 올라간 게 아니라 주변 온도가 올라간 거였다. 갑자기 샤렌과 주벨로, 그리고 목장주까지 외투를 벗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혹시 주벨로 마법사님께서?”
샤렌이 주벨로에게 물었다.
“아니, 난 그런 마법을 모릅니다.”
“그럼…… 율리시즈 공자님?”
“아하하, 제가 아니고 저 녀석들이 해낸 겁니다.”
팅거와 벨라를 가리켰다. 그러자 팅거가 턱을 쳐들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농담도 잘하세요. 저렇게 자그만 한 몸으로 어떻게요?”
“역시 천재는 다르군요. 대단합니다. 보면 볼수록 놀란다니까요.”
“아마 제가 주문 외우는 걸 보시고 따라해 보신 거 같은데…….”
“아닙니다. 정말로 쟤들 작품입니다.”
그러나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내가 온도를 높였다고 단정 짓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헤헤, 공자님. 여긴 완전히 봄인데요?”
“세이건, 가자.”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세이건을 데리고 소들에게 다가갔다.
저 많은 소에게 수액 꽂고 항생제 투입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 * *
마커스가 소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 올보크 목장주는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소리에 입구로 나갔다.
이미 사람들은 목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커스가 알려 준 대로 마차와 말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사람들만 입장했다.
“이야, 여긴 왜 이렇게 따뜻한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봄인데요?”
“이거 혹시 대마법사님들만 쓸 수 있다는 계절 바꾸기 마법 아닐까요?”
“설마.”
사람들은 저마다 한 소리씩 하면서 목장주인 보크를 바라봤다. 설명을 해보라는 뜻이었다.
“율리시즈 공자님께서…….”
보크는 샤렌과 쥬벨로가 나눴던 대화를 대충 털어놨다.
“율리시즈 고문께서 그런 대단한 실력자라고? 설마…….”
“저는 율리시즈 고문께서 캡틴 그리핀을 타고 날아갈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래서 자신 있게 말을 하셨구나. 어쩌면 농가를 살릴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군.”
마커스의 의도대로 캡틴 그리핀을 탄 이유가 사람들에게 들어 먹히기는 했다. 그러나 팅거로 인해 조금 심하게 와전되어 버렸다.
의도치 않게 엄청난 실력자로.
크리턴슨 왕이 보낸 기자들과 관계자들은 마커스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기 시작했고.
“으음, 분명 술수가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흑마법사에게 이상한 술법을 배웠거나 암시장에서 스크롤을 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돈이야 넘쳐나는 율리시즈 가(家) 아닙니까?”
두 파로 나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허헉!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