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61)
올리프 공작의 동생이자, 올리프 상단의 부상단주인 레이그 백작은 올리프 공작에게 지시받은 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들을 고립시키면 어떻겠습니까?”
“고립이라니요?”
월트셔가 되물었다.
“말 그대롭니다. 요즘 세상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이 과연 있겠습니까? 간단하게 예를 들어 이곳 아크리스 왕국에서 교역품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살기가 팍팍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요. 아크리스 왕국은 당장 환자들이 문제겠군요. 여긴 포션을 생산하는 상단이 극소수이니.”
“바로 그겁니다. 우리 제국도 사실, 아크리스 왕국에서 축산제품을 끊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고깃값이 폭등할 겁니다.”
“그렇겠죠.”
레이그 백작과 월트셔의 대화를 들으며 검은 상단의 아크리스 지부장인 토드는 레이그 백작의 속내를 간파했다.
‘결국은 율리시즈 상단과 거래를 끊으라는 거로군.’
검은 상단의 주력 상품은 무기. 그리고 철로 만드는 생필품들.
대부분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이들 모건 상단과 올리프 상단으로부터 공급을 받고 있다.
검은 상단은 거래처를 두 종류로 나눈다. 자신들의 무기를 사 준 거래처, 앞으로 사 줄 거래처.
간단하게 말해 대륙의 모든 나라가 그들의 주요 거래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율리시즈 상단은 두 종류에 다 포함된다. 거래를 했었고, 앞으로도 거래를 할, 그런 거래처.
토드가 어느 쪽에 서는 게 좋을지, 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을 때 레이그 백작이 입을 열었다.
“우리 쪽은 일단 식자재 공급을 조일 겁니다.”
“식자재라니요?”
“설탕, 소금, 후추 같은 거 있잖습니까? 아, 차도 있군요. 그런 것들 대부분이 우리가 남방에서 들여오는 거니까, 손쉽게 쥐고 흔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쪽은 일단 포목부터 시작해야겠군요. 검은 상단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말편자 같은 것만 공급을 차단해도 바로 효과가 있을 거 같습니다만.”
검은 상단의 생산품 중에 말은 물론이고 마차에 들어가는 부속품이 제법 많은 편이다.
‘지금 우리를 협박하고 있는 거다.’
여기서 검은 상단이 반대 입장에 나선다면, 그들 또한 모건과 올리프 상단이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뜻.
“그럽시다.”
그렇게 그들이 모여 율리시즈 영지의 숨통을 조일 방법을 도모하는 와중에도 마커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 * *
“바이슐도 지역도 진정됐고, 비호나드도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나는 크리턴슨 왕에게 지도를 보며 유행병 상황을 보고했다.
“중부도 거의 잡히고 있군요. 이제는 이곳 남부지방만 남았군요.”
“그렇습니다. 이 추세로 간다면 다음 달 내로 완전히 꺾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보통 유행병이 돌면 일 년은 공치게 되는데.”
“다들 새로이 만든 규칙을 잘 따라 준 덕분입니다. 치료사들의 헌신도 한몫했고요.”
“그렇지요. 제국에서 그들이 와 주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왕국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율리시즈 고문 덕분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크리턴슨 왕은 한동안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파리에토 전투부터 유행병까지. 율리시즈 공자 당신은 우리 왕국의 은인입니다. 여봐라.”
“예.”
“엘라로투스 제국의 율리시즈 상단은 오늘부터 우리 왕국에서 모든 세금을 면제한다.”
헉! 세금을 면제한다고? 율리시즈 백작이 이 소식을 전해 듣는다면 굉장히 좋아하겠는데?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마커스 율리시즈 공자에게는 백작위를 내리겠다. 그대는 우리 왕국의 공신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면세에 이어 귀족위까지. 거기에 백작에게 따라오는 재산.
크리턴슨 왕이 내게 하사한 선물은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러나 나를 더욱 기쁘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이거.
허공에 황금색 글씨가 주르륵 떠올랐다.
[토리누 대륙 최초로 유행병을 잡았습니다] [보상: 수액요법 시료시 회복 속도가 2배 빨리집니다] [위대한 업적을 쌓아 마나가 50 축적되었습니다]이런저런 일로 마나가 조금씩 쌓이더니, 벌써 200이 넘었다.
마나가 이 정도 쌓이면 뭘 배울 수 있을까? 클린 마법을 배울 수 있을까?
진료 다닐 때마다 샤렌 마법사와 동행할 수도 없으니 그런 걸 배우면 유용할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껌뻑이고 글씨를 읽고 있는데.
[보너스 보상이 주어집니다] [마나로 아픈 곳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픈 부위가 붉게 보입니다]와! 이건 정말로…… 그냥 다 주네 다 줘.
그렇다고 부담스럽나?
전혀!
이왕 주어진 능력인데, 알뜰살뜰 챙겨 먹어야지.
예전에 댄 치료사와 그리핀 상태를 확인할 때는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것이 업그레이드된 것.
나는 궁밖에 서 있는 기사 한 명에게 물었다.
“혹시 손목을 다쳤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다가 퉁퉁 부어서 덧난다. 의무실로 가서 치료사에게 치료받아. 명령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걸 본 세이건이 물었다.
“와, 공자님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안다.”
무심한 척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뛰어다니고 싶었다.
세상에. 아픈 부위가 붉게 보인다는 게 이런 거였어?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투시 마도구인 마벨렌을 훨씬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어디가 아픈지 아니, 그곳을 집중검사를 하면 되니까.
저택에 돌아와서 나는 곧바로 율리시즈 백작에게 연락했다.
“아버지.”
=그래.
“저 백작됐어요.”
=백작? 그게 무슨 말이냐? 혹시 크리턴슨 왕이 보답한 거냐?
역시 셈이 빠른 백작이었다.
“예, 왕께서…….”
크리턴슨 왕이 했던 말을 백작에게 옮겼다.
=허헛 그 참. 그 양반 네게 엄청 고마웠나보군. 하긴 어떻게 보면, 크리턴슨 왕조를 세우게 된 게 네 덕분이니까. 네가 개국 공신이지.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래도 우리 상단에게 면세정책을 해 준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잘했다.
“다 아버지께서 뒤를 탄탄하게 받쳐 준 덕분이죠.”
=혹시 모건 상단의 움직임에 대해서 뭐 아는 거라도 있냐?
“모건 상단이요? 요즘 잠잠한 거 같던데요?”
=그렇군. 한 가지 물어보자.
“예, 뭔데요?”
=아크리스에는 차나 설탕 같은 거…… 아니다, 너는 모르겠다. 됐다. 언제 올 거냐?
“다음 주면 급한 일을 마무리될 거예요. 그때쯤 돌아갈 생각입니다.”
=알았다. 그때 보자.
통신구를 끊은 후, 거실로 나왔더니, 팅거가 나를 불렀다.
[야, 마커스!]-왜?
[너 할 일 없지?]-없기는. 내가 얼마나 바쁜데.
[웃기시네. 돌덩이는 로이칸과 호크가 부수고 있고, 열 내는 건 벨라가 도맡아 하고 있는데, 네가 할 게 뭐가 있어?]-서류 작업해야지. 서재에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다는 걸 알면서 그래?
[그건 네 부하가 열심히 하고 있거든?]팅거가 오른 날개를 펼쳐 서재를 가리켰다. 문이 빼꼼 열린 서재에서 슈타인이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슈타인은 올보크 목장을 시작으로 나와 계속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금 하는 작업이 바로 거기서 얻은 데이터를 정리하는 거.
바로 수액요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축산국이 아닌, 왜 여기서 하고 있나?
슈타인은 축산국에서 서류가 오염되는 것을 걱정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누군가가 서류에 손을 댄다는 거였다.
슈타인은 누구 편이라기보다 자신이 작성한 서류가 손을 타는 게 싫은 거다.
정확한 데이터. 그것을 위해 함께 필드에 있었던 우리가 필요했을 뿐.
그것뿐이었다.
-슈타인이 물어보면 대답해야 하니까 대기하고 있어야지.
[시끄럽고. 너 나가서 먹을 거라도 좀 사 와라. 쟤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미안하지도 않냐?]미안하다니. 뭐가?
지금 정원에서는.
[후, 이번에는 한 번에 간다. 이얍!]로이칸이 날카롭게 벼린 주둥이를 골프채처럼 휘둘렀다.
퍽!
커다란 돌덩이가 단숨에 우수수, 조각조각이 나서 무너져내렸다.
위이이잉. 소리가 들릴 거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호크가 빠르게 돌덩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가루가 쌓여 있는 곳에서는 벨라가 열을 가하고 있었고.
놀이동산에 놀러 온 거 같이 신난 표정들인데?
-너도 가서 함께 놀지 그래?
[뭐? 저 먼지 구덩이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찌릿, 팅거가 나를 째려봤다.
[과일 사올 때, 과자도 좀 사 와. 요즘 망고로 만든 쿠키가 유행이라더라.]요는 팅거놈이 과자를 먹고 싶다는 거였다.
-알았어.
왕국민들 민심도 확인할 겸, 세이건을 불렀다.
“세이건, 시내를 좀 둘러봐야겠다.”
“예, 아 참 공자님 드스카 시장에 아주 유명한 음식이 있대요. 거기도 들렀다 와요.”
나는 팅거와 세이건을 번갈아 바라봤다. 하여간에.
“그래, 가자.”
“마차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니다, 걸어서 가자.”
세이건과 시장에 걸어가면서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생기가 감돌았다. 희망에 찬 표정들.
세이건도 느꼈는지.
“공자님, 사람들 표정이 밝아졌어요. 우리가 여기 도착했을 때 만해도 다들 인상만 쓰고 다녔는데.”
“다행이지.”
드스카 시장으로 오니 더욱더 실감났다. 상점마다 물건들이 가득했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만두, 갓 쪄낸 만두 사세요.”
“빵이 나왔습니다. 빵을 사세요.”
“족발, 따끈따끈한 족발 스프를 드시고 가세요.”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팅거가 먹고 싶다던 과자를 사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과자점이 있을 텐데.”
“아, 팅거와 벨라 먹을 거 말씀이죠?”
“그래 망고 과잔가 뭔가 있다던데.”
우리를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공자님, 저기 과자점이 모여 있는데요?”
“그렇군.”
과자점이 세 개 쪼르륵 붙어 있었다.
“어디서 사요?”
“세 군데서 다 사자.”
이건 맛이 없다, 하필이면 왜 거기서 사 왔냐며 틱틱거릴 팅거 놈을 생각하니 그냥 다 사가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과자를 사기 위해 들어가는데, 과자점 주인과 손님의 대화가 들렸다.
“값이 많이 올랐네요?”
“예, 손님. 재료비가 다 올라서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후우, 고기도 천정부지로 오르더니, 여기도 그렇군요.”
“예, 우유, 버터값도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거야 축산국에서 봄이 되면 다시 내려준다고 했으니, 몇 달만 버티면 되는데 문제는 설탕입니다.”
“설탕이요?”
“예, 갑자기 설탕값이 두 배나 올랐지 뭡니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지난달에 사둘 걸 그랬습니다.”
설탕값이 올랐다고? 전쟁 후유증인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옆 가게로 옮겼다.
거기서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손님, 재료비가 올라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좀 올렸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식당 주인도 같은 말을 했다. 이번에 나온 말은 후추.
“이상한 일이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율리시즈 백작과의 통화가 떠올랐다.
“혹시 모건 상단이 수작을 부리는 건가?”
일단은 돌아가서 알아보자.
세이건과 나는 저택에서 일 삼매경에 빠져 있는 녀석들을 위해 산처럼 음식을 산 후, 돌아왔다.
“우리 왔다!”
저택으로 돌아오자, 녀석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고기! 고기! 고기 최고!] [에헤에헤, 망고쿠기 너무 맛있어.] [흠, 오늘은 마음에 드는군.]팅거까지 웬일로 흡족한 얼굴로 쿠키를 집어 삼켰다.
“어? 제가 이거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던가요?”
서류 작업하던 슈타인까지 세이건이 고른 만두를 보며 기뻐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주벨로와 샤렌, 가렛까지 합세해 식탁에 앉는 걸 보며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통신구를 열어 레가시에게 연락했다. 아무래도 모건 상단의 움직임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아이고 공자님. 백작 각하가 되셨다고요?
레가시 놈은 대륙 최고의 정보원답게 내가 백작위를 받은 사실을 벌써 알았다. 대단한 놈.
“물어볼 게 있다. 설탕이 왜 그런 거냐?”
=여쭤보실 줄 알았습니다.
레가시는 준비를 해 놨는지, 궁금했던 것을 말해 줬다.
“그러니까 모건 상단뿐 아니라 올리프 영감까지 가세했단 말이군.”
=예, 아마 조만간 검은 상단에서 마차 바퀴나 말편자, 검, 창 같은 것들도 공급을 끊을 겁니다.
“이 미친놈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