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65)
* * *
“뭣이? 그게 사실이냐?”
보고를 듣던 올리프 공작이 대로하자,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전령이 무릎을 털썩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각하.”
그러나 방금 입 밖으로 내뱉었던 ‘레이그 백작이 전사했음.’ 내용을 번복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방금 들었던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
“대체 기사라는 놈들은 뭣들 하고 있었단 말이냐? 고작 수송단을 따라다니는 병사 몇 놈에게 당했다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하는 것이냐?”
올리프 공작은 전령이 보고한 내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수송단에 병사 서너 명이 포함되는 건 의례적인 일이었다. 드물지만, 산적이 출몰해 수송단을 습격하기도 하니까.
아주 고가의 물건을 수송할 때는 기사가 따라붙지만, 대부분은 실력이 그저 그런 병사가 투입된다.
그런 놈들에게 대군을 이끌고 전장을 누비던 자신의 동생, 레이그 백작이 당했다니.
‘설마, 율리시즈의 그 꼬마 놈이?’
으득.
올리프 공작이 이를 갈며 옆에 세워진 지팡이로 손을 뻗었다. 그리곤 통신구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딱. 딱. 딱.
올리프 공작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
지팡이가 바닥을 울리는 소리였다.
그날, 마커스에게 공격을 받은 이후, 지팡이가 못 쓰게 된 한쪽 다리를 대신하게 된 것.
그때, 통신구가 울렸다.
올리프 공작이 눈짓하자, 옆에서 보좌하던 비서관이 달려가 통신구를 연결했다.
“올리프 공작저…….”
=머레입니다. 이번 작전, 실팹니다. 아니 목적을 달성하기는 했습니다만 이쪽 전력 손실이 큽니다.
“그쪽도? 자세히 말해 보라.”
=그쪽도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북부지역도 당했단 말씀입니까?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소리에 올리프 공작이 비서관에게 물었다.
“사실인가?”
“알아보겠습니다.”
비서관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모건 상단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모건 상단에서는 이번에 극적으로 율리시즈 상단의 수송마차 운행시간표를 입수했다. 그중 마차 편수가 많은 쪽을 노렸다. 그래야 율리시즈 상단의 손실이 커지니까.
10개의 수송단을 선정. 공격하기 좋은 곳에 공격대를 잠복시켜 놨던 것.
그런데 그중 한 군데를 제외한 나머지 작전지에서 모조리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았다. 판테라는 물론이고 코먼호크, 킹퍼스, 그리고 크로쿠타, 트로링거까지 온갖 몬스터들이 덤벼들었다.
그 와중에 크로쿠타에게 공격당한 월트셔의 부상은 심각했다. 팔과 다리를 각각 한쪽씩 뜯겨나갔다. 올리프 공작의 상황은 월트셔에 비하면 운이 좋은 셈이다.
=우리 쪽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율리시즈 상단의 수송단도 피해가 막심하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상단의 생명은 약속.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신뢰는 무너져 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금이 뒤따른다.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금전적 손실 또한 아주 크다.
이런 일이 한두 번 발생하면 웬만한 상단은 망하는 경우가 다반사.
율리시즈 상단이 망하지는 않겠지만, 휘청거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후우, 그나마 율리시즈 상단에 손실을 끼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한숨을 내쉬는 올리프 공작은 의문이 들었다.
‘전국적으로 몬스터가 출몰했다니, 아무래도 수상하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시기는 주로 12월 말에서 1월 말까지. 지금은 2월도 아닌, 3월이 훌쩍 넘어 며칠만 지나면 4월에 접어드는 시기.
올리프 공작의 짐작은 맞았다.
며칠 후, 율리시즈 백작가로부터 마법 통신 서한이 도착했다.
간결한 문구 하나로 올리프 공작가가 뒤집혔다.
* * *
“놈들에게 서한을 보냈으니, 이제는 일간지 기자들에게 알릴 일만 남았군.”
율리시즈 백작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정보를 넘겼습니다. 내일 아크리스 왕국의 코비타 일간지를 필두로 대서특필 될 겁니다.”
나는 아크리스 왕국에서 인연을 맺은 벤도르 기자를 통해 이번 사건을 크게 터뜨릴 생각이다.
이미 기사를 써 놓고 대기하고 있던 벤도르 기자에게 연락했으니, 내일이면 모든 기자가 이 사건을 다루게 될 것이다.
“벌써? 역시 철저하군.”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냥 지켜만 보시면 됩니다.”
나는 레가시에게 수송 일정표를 건넸고 그것을 레가시는 놈들에게 아주 비싼 값을 받고 넘겼다.
그때부터 놈들은 내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다. 모든 게 대 내 계획 하에서.
“그래, 네 말대로 일이 잘 풀려가고 있군.”
율리시즈 백작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에 언론을 이용한 이유는 놈들이 발뺌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더 큰 목적은 바로 이거.
“그 기사가 발표된다면 앞으로 우리 상단을 건드리는 놈들은 없을 겁니다.”
전 대륙의 모든 상단에게 보내는 경고.
율리시즈 상단을 건드리는 자들은 철저하게 밟아 준다. 그것을 알리기 위험이다.
다음 날, 벤도르 기자의 기사가 발표되자, 소식은 순식간에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계획은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까지 할 기회가 왔다.
대륙 상단 회의소는 대륙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중립국인 스턴 왕국에 있는데, 우리는 이번 사건의 판결을 받기 위해 스턴 왕국으로 넘어갔다.
“이야, 도대체 얼마나 많이 모인 거야? 끝도 보이지 않는군.”
로이칸을 타고 날아간 스턴 왕국. 대륙 상단 회의소 앞 광장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로이칸, 활강할 수 있겠어?
[날 뭘로 보고!]로이칸이 높이 치솟아 날개를 한번 펄럭이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활강했다.
* * *
“저기 왔다!”
누군가가 외치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에 까맣게 점이 톡톡 찍히더니 그 점이 점점 커졌다.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린 점이 그리핀의 형상으로 상공에 나타나자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글나이트다!”
“율리시즈가 등장했다.”
“수정구! 수정구를 작동시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은 재빨리 녹화를 시작했고, 이글나이트와 캡틴 그리핀을 보고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글나이트가 하늘로 치솟았다. 사람들은 더욱 흥분했다.
“와아아아아!”
저 동작은 분명 이글나이트의 상징, 이착륙을 뜻하는 거다.
쒜에에엑!
기사를 태운 열두 구의 그리핀들이 일렬로 창공을 날아올랐다가 바닥으로 하강하더니 다시 하늘로 치솟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불꽃이 일었다.
펑, 펑, 퍼버펑.
파란 하늘이 알록달록 색색깔의 불꽃으로 물들었다. 바로 마커스가 샤렌을 닦달해서 만든 마법 불꽃.
마법 폭탄을 개조한 폭죽이었다.
사람들은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놀랄 새도 없이 처음 보는 불꽃놀이에 넋을 잃었다.
정확하게 12발의 폭죽이 쏘아진 후, 그리핀들이 사뿐히 광장에 착륙했다.
그리핀들이 쓰고 있는 은색의 투구는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났다. 거기에 기사들의 번쩍이는 갑옷 또한 심상치 않아 보였다.
특히 기사들 가슴에 달린 금화 크기만 한 마정석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끝판왕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그리핀 열 마리에서 기사들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치켜들었다.
“충!”
기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자.
훌쩍. 두 구의 그리핀 등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렸다. 아주 여유로운 자세들이었다.
율리시즈 백작과 마커스가 기사들에게 손을 들어준 후, 유유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모든 것도 마커스가 계획한 것. 사람들에게 강력한 율리시즈 가문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오늘 그들의 도착을 목격한 사람들에게는 율리시즈 상단의 엄청난 재력과 군사력을 실감했다.
기사들의 마정석이 달린 갑옷과 그리핀들이 쓴 번쩍이는 투구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금력을 과시했고.
하늘을 수놓은 폭죽은 언제 어디서든 마법 폭탄을 투여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 * *
“기자들이 놀란 표정이더군.”
건물로 들어오면서 율리시즈 백작이 말했다.
“깜짝 놀랐을 겁니다.”
“수고했다.”
“스턴 왕국이 우리 부탁을 들어준 덕이죠.”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했는데, 당연하지.”
백작 말이 맞다. 나는 이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어마무시한 돈을 퍼부었다. 기사들의 갑옷을 새로이 만들었고, 그리핀들의 투구도 공들여 제작했다.
돈은 들었지만, 기사들과 그리핀들의 사기가 올랐으니, 오히려 이익이긴 하지. 게다가 앞으로 굴러 들어올 돈을 생각하면 지금 들인 돈은 푼돈에 불과하다.
그리고 짐작대로.
“올리프 상단, 모건 상단. 검은 상단은 율리시즈 상단에 배상금을 지급하라.”
땅땅땅.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인데, 올리프 상단이 제국에서 장악하고 있던 상권의 30%를 넘겨받은 것.
엘라로투스 제국 황제의 명령이었는데, 이번 일로 제국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게 그 이유였다.
만약 황제의 명령에 반기를 든다면?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세무조사를 착수하겠다고 명령을 내렸다.
어쨌든 돈이 넘치는 상황에서 우리는 계획한 일을 추진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항공수송이었다.
긴급 상황에 썼던 그리핀들을 이용한 수송을 우리는 정식 출범했다.
하이블 산에 사는 야생 그리핀들이 주역인데, 과연 길들일 수 있을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야생 그리핀들은 아주 즐거워했다.
“다들 물건을 실었나?”
“예. 끈으로 단단히 묶었습니다.”
“잘했다. 이제 하이블 수송대원들에게 고기를 주도록!”
“예.”
야생 그리핀들은 사람이 등에 타는 것은 용서하지 않았지만, 짐을 싣는 건 상관하지 않았다. 거기에 그들이 좋아하는 고기까지 먹으니,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출발!”
“출발!”
이글나이트 견습팀과 야생 그리핀들로 이뤄진 하이블 수송대원들이 날아올랐다.
“그리핀들이 물건을 수송하고, 땅에서는 말이 아닌 마력으로 마차가 움직인다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율리시즈 백작이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주벨로 마법사는 언제 도착하나?”
“다음 주면 도착할 거예요.”
“노면 마차가 돌아다닐 우리 영지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는군.”
드디어 우리 영지도 현대화가 태동하는구나. 노면 마차 다음에는 뭘 도입하는 게 좋을까? 콘스턴 왕국에서 봐 왔던 최신 마도구들을 떠올리며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연무장에서 내게 검을 가르쳐 줄 하겐 스승이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스승님께 고개를 숙였다.
치료탑은 겨울 방학이 길다.
12월 중순 이후, 몬스터 웨이브가 생기면 강제 방학이 시작됐다가, 3월 말에 개강한다.
이미 개강한 상태였지만, 아크리스 왕국에서 유행병을 종식한 공로를 야외 수업으로 인정받았다.
하여 4월 말까지는 여유가 있는 편.
그동안 지금까지 미뤄왔던 검술을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시작합니다.”
스르릉.
하겐 스승이 검집에서 검을 뽑자마자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하겐 스승은 마법검사. 그에게 검에 마나를 흘려 넣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하겐 스승이 검을 허공이 치켜들었다.
고오오!
검이 진동하며 하겐 스승이 흘려 넣은 마나를 집어삼켰다.
처음에는 저게 굉장히 쉬운 줄 알았단 말이지.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고오…… 콰직.
검이 내 마나를 감당하지 못해 산산이 부서졌다.
“다시.”
고오…… 쩍!
이번에는 두 동강이 났다.
“다시, 마나를 조금만.”
고오…… 디잉.
다행히 검은 무사했지만, 끝이 휘었다.
“다시.”
“다시.”
“다시, 조금만 더.”
“다시, 이번에는 너무 마력이 강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15시간을 검에 마나를 불어넣는 훈련을 했다.
될 듯 말 듯한 미묘한 흐름을 잡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구우웅!
검이 웅장하게 진동하더니 팟, 빛이 밝혀졌다.
“오, 드디어 해냈군요. 그렇게만 힘 조절을 하시면 됩니다.”
하겐 스승은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나는 다음 진도를 기대했지만, 하겐 스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앞으로 그것을 매일 수련하십시오. 그럼 반년 후에 뵙지요.”
내일도 아니고 다음 주도 아닌 반년?
나의 첫 검술 수련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 * *
율리시즈 영지에서 더는 할 일이 없는 나는 치료탑으로 복귀했다.
“꽁꽁 언 겨울에 떠났는데, 곳곳에 파릇파릇 풀이 돋아났다니.”
“그것뿐이겠어요? 저기 보면 꽃이 피어 있기도 해요.”
세이건과 나는 치료탑에 가기 전에 들린 아투벡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여기가 몬스터 습격으로 괴로워하던 곳이 맞나 싶다.
내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는 팅거가 기뻐했다.
[나두. 우유 가득 쿠키가 먹고 싶어.]벨라까지 기뻐하며 쿠키 상점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오랜만에 들린 아투벡에서 로이칸과 스피카, 호크, 케이홀이 좋아하는 고기를 잔뜩 사고, 쿠키까지 사서 치료탑 기숙사로 들어갔다.
“이야, 여기도 나름 생활했다고 고향에 온 거 같아요.”
“그러네.”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느긋하게 앉아서 내일 일정을 살펴보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애들이 온 모양이야. 열어 줘.”
조원들이 내가 온 소식을 듣고 찾아온 모양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세이건에게 말했다.
“공자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손님이라니.”
조원들을 그렇게 말할 리는 없고, 누구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갔더니.
“율리시즈 공자님께 인사드립니다. 황실기사단, 데이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