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74)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백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네 말대로라면 일이 터지긴 하겠는데…… 잠시만 기다려라. 프레드릭이라는 자가 누군지, 어디 소속인지, 알아보마.
1시간 뒤, 다시 율리시즈 백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에도 벨라가 보호막을 쳐 줬고, 나는 그 속에서 백작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프레드릭이라는 그자는 롤린스 제국의 토르넨 공작의 가신이다.
“그래요?”
=문제는 왜 그런 자가 카우덴까지 나타났냐는 거다. 지금 북쪽 나라들은 몬스터들 피해가 심해 먹고살기도 팍팍해서 남의 나라까지 쳐들어올 여유가 없을 텐데.
“음, 연합군을 결성한 건 아닐까요?”
=연합군?
“예, 아버지께서 방금 북쪽 나라들은 살기가 팍팍하다면서요? 그러니 롤린스 제국을 중심으로 네 나라가 힘을 합쳐 우리 제국으로 쳐들어올 생각을 한 거죠.”
엘라로투스 제국의 최북단에 있는 카우덴 산맥 너머도 나라가 제법 있다.
그 중에서 엘라루투스와 바로 인접한 나라가 버넌 왕국, 헤렌제 왕국, 셍티스 공국, 그리고 그 나라들 위에 롤린스 제국이 있는 거다.
그러니까 롤린스 제국과 우리 제국 사이에 이들 나라가 있는 거다.
=지금 북쪽 경제 사정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가능한 얘기다. 그런데 지금 롤린스 제국이 전쟁할 여력이 있나 모르겠다. 자국 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플 건데.
“왜요?”
=방금 말한 대로 지난겨울에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 피해도 심각한데다가 황제파와 귀족파의 세력다툼이 대단하거든.
“알력은 어디든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롤린스 제국은 지금 상황이 좀 복잡해. 선대 황제가 서거하고 새 황제가 즉위한 이후로 귀족파들이 득세하고 있거든.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 우리 제국과는 교류가 거의 없는 편이어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고는 있지만, 중앙에서는 촉각을 세우고 있지.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이번 갱도 붕괴가 일어나자마자 제국군이 투입된 거로군요.”
=그렇지. 혼란을 틈타 버넌 왕국에서 쳐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대비한 거지.
후퍼 남작령에서 카우덴 산맥을 넘어가면 버넌 왕국이다.
“그렇다면 롤린스 기사가 버넌 왕국까지 온 건 좀 이상하긴 하네요. 혹시 그 토르넨 공작이 버넌 왕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나요? 아니면 롤린스 제국이 버넌 왕국에 병력을 파견했다든지.
=그런 말은 못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고 말한 거였다.
음, 정보가 정확한 백작이 저렇게 말을 하다니, 확실히 롤린스 제국군이 후퍼 남작령에 나타난 건 좀 오버네. 이유가 있긴 할 텐데.
“아, 아버지. 혹시 롤린스 제국 문장이 뱀 두 마리에요?”
=뱀?
“예, 뱀 두 마리가 서로 꼬아져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있는 거요.”
=흠…… 아무래도 토르넨 가문 문장 같다. 그런데 왜 그러냐?
“사실은 갱도 안에서 훈장 같은 걸 주웠는데, 그 문장이 박혀 있었어요.”
-흠, 확실히 토르넨 가문과 이번 일이 관계가 있겠구나.
그때였다. 로이칸이 먹이를 다 먹고 길게 기지개를 켰다.
“아, 아버지. 이제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 한시라도 빨리 폐하게 말씀드려라. 나도 따로 알아보마.
곧바로 로이칸을 타고 애틀리스로 날아갔다.
알현실로 안내받은 나는 황제 앞에서 율리시즈 백작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읊었다.
“방금 자네가 한 말에 한 치도 거짓이 없으렷다!”
그 순간, 황제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곧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알현실은 이미 살기로 가득 찼다.
황제의 분노가 그대로 뿜어져 나온 것.
“컥!”
“크윽!”
황제의 측근인 비서관과 수호기사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크흑,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드래곤에게 선택받은 자의 포스.
엘라로투스 제국의 지도자는 대대로 드래곤의 수호를 받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그렇고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고 말았다.
그랬는데 고작 황제가 눈만 한번 치켜떴을 뿐인데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버텨야 한다.
두 주먹을 꽉 쥐고 황제의 기운을 견뎌 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설령 오해가 있었다고 한들, 제국의 안보를 위해 확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제는 몸의 모든 기력을 끌어올려 겨우 대답하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눈은 평소대로 녹안으로 돌아왔지만, 기세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흠, 거짓은 아닌 거 같군.”
나는 그제야 황제의 허락을 받아 팅거, 벨라에게 수거한 수정구를 황제의 비서관에게 건넸다.
그걸 세 번을 돌려보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여봐라.”
“하명하십시오.”
비서관이 고개를 조아렸다.
“이걸 확인해 보고 내통자가 있다면 한 놈도 빼놓지 말고 보고하라.”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그러고 마커스 율리시즈는 들어라. 이 일은 함구해야 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이 시간부터 조사가 끝날 때까지 마련해 준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예.”
졸지에 황궁에 갇힌 신세가 되어 버렸군.
“조사하는데 시간이 꽤 걸릴 거다. 그동안 답답할 것이니, 뭐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
“기사아카데미 지로드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싶습니다.”
“지로드?”
“예, 마법 전투술의 대가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지로드가 마법 전투사로서는 꽤 이름이 있는 편이지. 그런데 지로드는 좀 많이 까다로워. 제자를 아무나 두질 않거든.”
황제가 저렇게 말을 한다는 건 허락한다는 뜻이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좋다. 지로드의 시험을 통과해 봐.”
황제의 강한 기운을 느끼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두 가지는 필수다.
돈과 힘.
돈이야 내가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테니, 그다지 걱정은 없다.
만약을 대비해 여기 은행과 아크리스 왕국, 콘스턴 왕국, 그리고 중립국인 스턴 왕국의 은행에 분산해 놓은 상태. 누구 하나가 내 뒤통수를 치더라도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힘.
권력도 힘이고, 주먹도 힘이다. 이 둘 다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유니센에서 당했던 그런 속임수에는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을 거다!”
일루전 마법에 당했던 걸 생각하니, 의욕이 불타올랐다.
* * *
“바위!”
“하압!”
후우웅…… 깡!
펑!
지로드 교수의 지시로 마나를 검 끝으로 모은 후, 바위를 내려치니 바위가 펑 소리를 내면서 으스러져 버렸다.
“됐다. 거기까지.”
“후…….”
“그 자리에서 돌!”
우우웅!
지로드 교수의 지시대로 이번에는 5m 정도 떨어진 돌을 겨냥했다.
파시식.
역시 돌이 가루가 됐다.
“더 뒤로.”
“더.”
“더.”
지로드 교수는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나며 같은 곳에 공격을 지시했고, 결국은 10m가 넘어가니,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후, 거기까지인가? 그렇다면 이제는 역으로 날아오는 돌을 막아보도록!”
“예? 날아오…….”
그때였다.
멀리서 돌 하나가 슝 하고 날아와 옆구리를 쳤다.
“으악!”
크윽, 이거 언제 날아왔지?
“그렇게 있다가는 몸이 만신창이가 될 거다. 움직여라.”
지로드 교수는 숙소 현관 앞에 서서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슝.
“컥!”
슝. 슝슝슝.
“악, 윽, 쿠어억!”
입에서 별별 소리가 다 났다. 벌써 10번째, 아니 20번은 더 맞았을까?
코먼호크의 특성을 부여받지 않았더라면 온몸에 피칠을 하고 쓰러졌을 거다.
“뭐 하느냐? 그렇게 있다가는 적들의 먹이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지로드 교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빨리 움직여라. 그러고 싶지 않다면 맞서서 공격하라.”
아, 씨 누구는 맞고 싶어서 맞나. 돌이 무더기로 날아오니까 그렇지.
구슬만 한 돌이 지금 앞, 뒤, 옆, 할 거 없이 머리만 제외하고 무차별적으로 날아들고 있다.
“적은 네 수준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 아니, 네가 실력이 낮으면 낮을수록 좋아한다.”
휙휙휙휙휘휘휘휙.
“악, 으, 으아…….”
그래. 어차피 이깟 짱돌 몇 대 맞는다고 죽지 않는다. 그냥 좀 처맞자. 맞으면서 최소한 한 개라도 막자.
너무 맞아서 정신이 나갔는지, 오기가 생겼다. 그래,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저 돌 하나라도 깨부순다.
퍽, 퍼퍼퍽, 툭툭툭.
나는 날아오는 화살 같은 돌들을 온몸으로 막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이 좋은 동체 시력이면 분명히 낚아챌 수 있다. 내가 누군데, 날아오는 화살도 손으로 턱턱 잡는 사람인데.
…그러나 지로드 교수의 짱돌 신공을 견뎌 내기에는 내 실력이 형편없었다.
“크윽!”
무려 30분을 넘게 돌 공격을 받고 쓰러지고 말았다.
“으으…….”
“잠시 쉬도록. 10분 뒤에 재개하지.”
툭, 물통 하나가 옆에 떨어지더니, 건물 앞에 서 있던 교수가 현관 안으로 사라졌다.
“이 물통은 어디서 날아온 거야?”
저 멀리 서 있던 교수가 여기까지 날아와 주고 간 것도 아닐 텐데.
아, 몰라. 일단 좀 쉬자.
물을 마실 정신도 없어서 그냥 널브러져 있었는데, 팅거와 벨라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봤냐, 봤어? 저 녀석 허우적거리는 거.] [웅, 되게 웃겼어.] [참 나, 저놈이 원래 굼뜨고 멍청한 줄을 알았지만, 저렇게 웃길 줄은 몰랐네. 완전 마치잖아 마치.] [우웅, 내 생각에는 마커스가 그냥 우릴 웃겨 주려고 한 거 같은데? 설마 진짜로 마치일까.]두 녀석이 뼈 때리는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내가 미쳤다고 니들 웃기려고 이렇게 처맞았겠냐? 그래, 나 실력 없다. 없어.
반박할 힘도 없어서 놈들의 비웃음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는데.
가만, 그런데 마치는 뭐지? 몸치를 마치라고 말한 건가?
마치, 마치, 마…… 치? 아! 그거구나.
마나를 느끼라는 거였어!
지금 교수가 내게 공격하는 건 다 마법을 부려서 하는 거니까, 어딘가에 마나가 스며들었을 거다. 공격받는 공간이든, 날아오는 돌이든.
“그래, 그거였어.”
나는 벌떡 일어나 녀석들을 보며 웃었다.
“으하하하하하. 애들아 고맙다.”
[미, 미친 거야?]팅거가 나를 괴물 보듯이 쳐다봤다.
[웅, 아마 조금 전에 머리도 맞았나 봐. 내가 마커스 머리로 날아가는 돌은 다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는 못 치웠나 봐. 어떡하지?]벨라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런 거였어? 어쩐지 목 위로는 돌이 날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벨라야 고맙다.
그 후로는 훈련이 쉬웠다.
슛슛슛슛슛슛슛.
펑펑펑펑퍼퍼펑.
돌이 날아오는 대로 그대로 서서 막았더니, 이번에는 자갈이 날아왔다.
샤샤샤샤샤샤샤샤.
퐁퐁퐁퐁퐁퐁퐁퐁.
역시 깨알 같은 자갈도 공중에서 바스러졌다.
음하하하. 역시 깨달음은 중요한 거군.
나는 자신감에 찬 얼굴로 지로드 교수를 바라봤다.
어떻습니까? 제가 이 정돕니다요.
“흠, 괜찮군. 이제 몸을 좀 푼 것 같으니, 수업에 들어가 볼까?”
뭐라고요? 이게 몸 푼 거라고요? 죽을힘을 다해 고생 고생했는데…….
그러나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갑자기 정원에 있던 돌, 바위, 모래, 흙 할 거 없이 모조리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
펑펑! 퍼엉! 퐁퐁퐁!
팔이, 손이 보이지도 않고 흔들어대면서 날아오는 것들에게 미친 듯이 마력을 쏟아부었다. 1년과 같은 1분여의 시간이 지나고 공격이 멈췄다.
“후…….”
두그닥닥,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는데 지로드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르칠 만하겠군.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봄세.”
이…… 게 테스트?
지로드 교수 실력은 도대체…….
나는 멀어져 가는 지로드 교수의 뒷모습에 대고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강해질 수 있다.
지로드 교수의 마법 전투술을 익힌다면 나는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원은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황제의 수행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드디어 황제가 보낸 정보원이 온 모양이다.
과연 짐작한 대로 놈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