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75)
“자네 말대로 놈들이 연합군을 결성했더군. 몬스터 습격을 각 나라가 힘을 합쳐 막기 위해서라는데, 속셈은 따로 있을 것이다.”
역시 북쪽 네 나라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게 틀림없군. 그래서 무기를 만들 철이 필요했던 거였고.
“피해가 심하긴 했나 보더군. 영지민들 생활이 굉장히 고된 모양인데, 그걸 해결해 줘야 할 놈들이 싸우고 있으니.”
“분쟁이 심한가요?”
“롤린스 제국의 황제가 유한 모양이야. 그러니까 귀족 놈들이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특히 그 뱀 대가리 놈이 활개를 펴고 다닌다는데, 쯧. 한 놈만 본보기로 족쳐 주면 다른 놈들은 알아서 길 텐데.”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황제라면 그 토르넨 공작이라는 자는 진즉 참수당해 목이 성문 앞에 걸렸을 거다.
그 야심만만한 올리프 공작도 감히 황제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대놓고 하지 못한다. 단지, 자신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별짓을 다 해서 그렇지.
“그런데 그 연합군이라는 걸 누가 만든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신지요?”
“윗대가리가 얀톤인지, 아니면 토르넨 놈인지 그걸 알아야 방향을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얀톤은 롤린스 제국의 황제를 지칭하는 말일 테지.
“당연히 황제 폐하가 아닐까요?”
“연합군을 얀톤이 결성한 거라면 두 가지를 다 생각해야 한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기 위해서라면 남하할 이유가 없지. 아니 여력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지금부터 대비를 철저하게 해 놔도 몬스터는 막기 힘들다.”
황제가 말을 하다말고 나를 바라봤다.
“그 점에 대해서는 자네가 참 고마워. 자네가 잘 막아 준 덕분에 대륙에서 우리 제국이 지난겨울, 경제 성장이 대륙 최고였다네.”
“경하드리옵니다.”
“하하하, 인사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지. 자네가 몬스터 웨이브를 잠재웠을 뿐 아니라, 겨울철 수익 창출 방법도 고안해 내지 않았나?”
“그저 신하로서 할 도리를 했을 뿐입니다.”
“하하하하. 자네가 내 제국민이라는 게 정말 기쁘군.”
황제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나를 칭찬한 후, 말머리를 바꿔 원래 주제로 돌아왔다.
“귀족들의 세력다툼과 먹고 살기 힘들어진 제국민들의 불만을 제국 밖으로 터뜨리기 위해 전쟁을 할 수도 있지.”
“그런 거라면 우리도 반격 준비를 해야겠네요.”
“당연하지. 이참에 북쪽 국경 수비를 강화할 생각이다. 높은 산과 몬스터가 천혜의 성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안일했어. 이참에 카우덴 지역에 국경 수비대를 늘려야겠군.”
언젠가 내가 킬리안 황태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매년 몬스터 웨이브로 영지민이 고통받느니, 아예 씨를 말리면 어떻겠냐고.
그랬더니 황태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
“몬스터가 주로 북부 국경지대에 분포되어 있는데, 덕분에 북쪽은 외세 침입으로부터 안전하다.”
한마디로 황제는 몬스터도 국경수비대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
황제는 몬스터가 인가를 습격하는 것만 수습해 온 것이다.
만약에 몬스터가 아니었다면, 살기 힘든 북부지역에서 수도 없이 쳐들어왔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만약에 황제가 아니라 귀족이 주동자라면 대처를 달리해야 한다.”
내가 정보를 물어와서인지, 황제는 아주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연합군을 귀족파가 장악한 거라면 표면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결론은 하나. 반역. 황제를 끌어내리겠다는 거다.
“만약 귀족파가 실세라면 우리는 어떤 대처를 하면 좋겠나?”
황제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가장 좋은 방법은 롤린스 제국의 황제에게 도움을 주면서 실리를 취하는 겁니다.”
“실리?”
“예, 북쪽 나라들을 경제 속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호오!”
“북쪽 지역은 땅이 광활한 대신 너무 춥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높은 산들도 많고요. 그곳들을 폐하께서 점령한다고 해도 산간오지까지 흡수하기에는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릴 겁니다. 비용 또한 엄청날 거고요.”
“그들을 통치하려고 돈을 쏟아붓느니, 그냥 알짜배기만 쏙쏙 뽑아먹겠다는 뜻이군.”
“예. 저의 짧은 식견으로는 그러하온데…… 송구하옵니다.”
“하하하, 아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놈들에게는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지? 광산 몇 개 넘겨받고 우리 제국군을 지원해 주면 되겠군.”
말이 지원이지 황제는 이참에 군사력을 장악해 롤린스 제국을 꿀떡할 생각인 거다.
“아 그리고 자네가 주웠다는 이거 말일세.”
황제가 뱀 대가리 훈장을 손에 들었다.
“이거 수정구에 나왔던 프레드릭 놈의 훈장이더군.”
토르넨 공작이 관계가 됐다는 뜻이네. 롤린스 제국 황제의 뜻인가? 아니면 귀족파들이 뭉친 건가?
“그놈 것이 갱도 안에서 발견됐다는 건 토르넨이 이 일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겠지.”
황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놈들의 상황을 확실히 알면 이쪽에서 대비하기가 수월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좀 애매하군. 조금 더 밀착 정보가 있으면 좋으련만. 쯧.”
“송구하옵니다. 조금 더 유능한 정보원을 빠른 시일 내로 추려 보겠습니다.”
옆에서 비서관이 고개를 조아렸다.
정황을 캐내는 거라면 내가 적임자 같은데?
은신술도 익혔겠다, 마법 전투사의 공격 패턴도 파악했겠다. 거기에 밀착 정보원인 팅거와 벨라까지.
“제가 가겠습니다.”
“자네가?”
“예, 로이칸을 타고 가면 어디든 수월하게 갈 수 있습니다.”
“흠, 그건 그렇지. 그러나 적지로 파고드는 건 위험한 일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건 나도 믿는다.”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자네가 가 주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러다가 자칫 위험에 빠지기라도 하면…… 음, 고민이군.”
놈들이 말한 한 달이라는 시간이 벌써 열흘도 넘게 지나갔다. 한시가 급하다.
“보내 주십시오. 만족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나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좋다. 그럼 갔다 와라.”
“명 받들겠습니다.”
놈들이 전쟁을 일으켜도 당연히 우리가 이기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놈들이 가지고 있는 걸 탈탈 털어 줘야 한다.
그게 뭐가 됐든.
“지하자원이 많다고 했으니, 눈먼 마정석 광산이나 금광 정도는 손에 넣어야 수지가 맞지.”
내가 굳이 정보원으로 자처한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미리 가서 알짜배기 정보를 챙기기.
나중에 양국 간에 협상할 때, 나도 한몫 챙길 생각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팅거와 벨라가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
[왔냐?] [마커스, 이거 정말 맛있어. 먹어봐.]-많이 먹어라. 그거 먹고 가봐야 할 데가 있다.
[어디? 벌써 실전에 투입되는구나. 으힛, 씐나! 가자 가!] [에헤헤, 로이칸, 마커스가 놀러가쟤.]녀석들은 벌써 정원으로 나가 로이칸 머리 위에 앉아있었다. 하여간에 로이칸을 타고 다니는 걸 너무 좋아한단 말이지. 날개도 있는 놈들이.
순식간에 카우덴 산맥을 넘어 버넌 왕국 쪽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 카우덴 광산 주변을 조사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음? 이거 큰데?”
갱도를 몇 번이나 드나들었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입구는 갱도 입구가 아니라 터널 같았다.
마차가 드나들어도 될 만큼.
아무래도 녀석들은 굴을 파서 침공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덤으로 철광석도 좀 챙기…… 가만, 북쪽 지역에 광물이 많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남의 땅에 빨대를 꽂을 필요가 있나?
이거 진짜로 냄새가 나는데?
사리사욕을 채우든지, 아니면 무기 제작을 위해 철광석을 있는 대로 끌어모으던지.
그리고 저기 뱀머리 휘장이 휘날리고 있는걸 보아 분명 토르넨 공작이 주동자일 거다.
-너희들은 저기 깃발이 휘날리는 저택을 살펴보고 와.
[알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듣고 오란 말이지?]-그래.
녀석들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날아갔다.
은근히 저런 거 좋아한다니까.
“자, 나는 저기 사람들에게 한번 가 볼까?”
은신술을 쓴 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다 보니,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복장이 그냥 광부 같지 않은 걸 보니, 책임자들인가? 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반장님, 저쪽에 복구 작업이 거의 다 끝난 모양입니다.”
“음, 큰일이군.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두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에서 말이 다음 주면 다시 갱도에 들어갈 예정이랍니다.”
“기껏 폭파해 작업을 멈췄는데, 소용이 없게 생겼군. 자네가 인부들을 조금 더 다그쳐 보게.”
“알겠습니다.”
“오늘부터는 쉬지 않고 작업에 들어가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작업 소리는 어떡합니까? 낮에는 저쪽도 북구 작업을 하느라 시끄러워 상관이 없는데, 아시지 않습니까? 밤에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는 것을요.”
“흠, 할 수 없지 내가 프레드릭 기사단장님과 의논해 보겠네.”
그러니까, 일부러 갱도를 파괴했다는 거네? 미친놈들. 저놈들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니 이가 갈렸다.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팅거와 벨라가 날아왔다.
[야, 저기 싸움 났어.]팅거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싸움이라니?
-뭐라고 하던데?
[서로 롤린스로 가겠다고 싸우던데?]-그게 무슨 말이야?
[아 진짜, 답답해. 그러니까 남으로 가라, 북으로 가라. 싸우더라고.] [대화 중에 올보그 황제와 맞서 죽기 싫다는 말이 나왔어. 그런데 올보그가 누구야?]누구긴, 엘라로투스 제국의 무시무시한 황제 이름이지.
역시 내부의 불만을 밖으로 쏟으려고 전쟁을 준비한 거였어. 그런데 되려 놈들은 이 기회를 틈타 역모를 할 생각이고.
“이거 그림이 그려지는데?”
나는 곧장 황제의 최측근 비서관이 건네 준 직통 통신구를 꺼냈다.
“마커스 율리시즙니다.”
=말씀하십시오.
“롤린스 제국의 황제 폐하를 만나 봬야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바로 옆에 황제가 있었는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통신구가 울렸다.
=셍티스 공국의 치료탑주가 롤린스 제국의 황궁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 치료사로 합류하십시오.
“누가 아픕니까?”
=황자가 아프답니다.
“감사합니다.”
잘됐군. 황궁 깊숙이 들어갈 기회가 생겼네. 황자를 치료해 주고 기회를 만들어 보자.
그전에 얼굴은 좀 바꿔야겠는데.
가끔이라도 일간지에 나온 터라, 혹시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레가시에게 연락을 해봐야겠군.
=공자님, 치료탑에 계신 줄 알았는데, 언제 그 멀리까지 가신 거예요?
하여간에 정보력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군.
“필요한 게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얼굴을 바꿔야겠다.”
=롤린스 제국에 덴미코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 펜타시장에 가서 토마를 찾으십시오.
* * *
토마의 도움을 받아 까만 머리카락에 구리빛 피부의 치료사로 변신했다. 물론 눈동자 색도 까만색.
“이거 왠지 전생이 떠오르는데?”
이 정도면 아무도 내가 마커스인 줄 모를 것이다.
비서관이 알려준 곳에서 치료탑주를 만난 후, 우리는 함께 황궁에 입성했다.
“랑데 치료사, 어서 오시게.”
“폐하, 강녕하셨습니까?”
“날파리들이 들끓어서 그렇지 나야 괜찮아. 황자가 걱정이지.”
역시 황제들에게 귀족들은 날파리로 인식되나 보군. 그 날파리 이 몸이 없애 주지.
“황자 전하께서는 괜찮아지실 겁니다.”
“흠, 그러면 좋겠군. 그런데 그대는 누군가? 랑데 치료사가 아무나 데리고 오지는 않을 것이고.”
“황자 전하를 치료하기 위해 데리고 온 치료삽니다. 요즘 최고의 치료법인 신치료법을 볼프 탑주께 가서 익히고 돌아온 유학파입니다.”
랑데 치료사가 황제에게 나를 소개했다.
“호오, 볼프 탑주에게? 그렇다면 실력이 대단한 친구겠군.”
볼프 탑주의 명성은 대단하군. 여기 황제까지 감탄하게 하다니.
“존귀한 황제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얀톤 황제의 몸에 붉은색 마나가 느껴진 것.
이거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