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82)
황제의 시종을 따라 황궁 깊은 곳으로 따라간 지 20여 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크고 육중한 문 양쪽에는 사람 키 두 배만 한 불사조 석상이 서 있었다.
휘유, 저 눈빛하고는. 석상일 뿐인데 팅거가 나를 흘겨보는 눈빛과 비슷했다.
마치 우리를 감시하는 거 같군.
시종은 왼쪽에 서 있는 불사조 석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올려다봤다.
그 순간.
번쩍!
스위치가 켜진 듯 불사조 눈동자에 빛이 켜졌다.
“헛!”
놀란 내가 눈을 크게 뜨며 불사조를 쳐다보는 동안, 시종은 오른쪽 불사조에 가서 똑같이 행동했다.
마찬가지로 눈에 불이 켜졌다.
“후!”
긴장했는지, 시종은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열쇠 구멍에 황제에게 받은 열쇠를 꽂았다.
끼기기긱!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시종이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나만? 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니, 시종이 고개를 숙였다.
“제한 시간은 오늘 자정 까집니다.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나갈 땐 어떻게 나갑니까?”
“안에서는 언제든지 문을 열고 나오실 수 있습니다. 다만, 나오실 때, 빈손으로 나오시거나 보물을 하나만 들고 나오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 제약이 있으니, 나 혼자 들여보내는군.
나는 알았다고 대답한 후, 보물창고에 들어갔다.
“우와 대단하네.”
마도구 전등이 은은하게 실내를 비추는 창고는 온갖 보물들이 가득했다.
색색으로 빛나는 보석, 금화, 금괴가 넘쳐났고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예술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없던 사심도 생기겠네.”
만약, 지금 내 통장이 빈약하다면 눈독을 들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 통장이 바로 화수분이거든.”
지금 이 순간에도 불어나는 통장이 있는 나는 담담히 보석코너를 지나쳤다. 황제가 기껏 이런 보석류와 돈을 가져가라고 나를 여길 들여보내진 않았을 테니까.
다음 코너로 가니 무기류와 투구, 갑옷, 건틀렛, 부츠 등 방어구가 진열되어 있었다.
보물이라고 한 만큼 하나같이 번쩍번쩍 대단해 보였다.
“하. 뭘 고르냐?”
좋은 걸 고르려고 해도, 눈이 막눈이니 고를 능력도 안 되는구나.
이럴 땐 마냥 힘만 세서 주먹질만 했던 과거의 내가 한탄스럽다. 보는 눈이 있어야 이런 곳에서 전설급, 희귀급 무기를 고를 텐데.
“그냥 여기 있는 검 중에 하나 가지고 나갈까?”
뭘 가지고 가든 보물일 테니까.
나는 하나씩 만져봤다. 그립감이라도 좋은 걸 가져가자.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는 전형적인 결정 장애를 앓으며 하나씩 만져봤다.
그러다 우연히 방어구 코너로 눈을 돌렸는데.
“음? 부츠에 디파인석이?”
반지와 같은 보석이 박혀 있는 부츠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끼고 있는 촌스러운 반지와 달리 부츠는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었다.
“어디 한번.”
그냥 순순한 호기심으로 한번 신어 볼 생각으로 부츠를 집어 들었다. 그랬는데 순간 갑자기 손이 ‘지이잉’하며 진동했다.
“응?”
이상한 느낌에 손에 들었던 부츠를 내려놓으니, 진동이 멈췄다. 다시 집어 들었더니 또 지이잉 손이 울렸다. 그걸 몇 번을 해 본 결과.
“이건…….”
* * *
“허허허, 역시 율리시즈 치료사는 신께서도 인정하셨나 봅니다. 어떻게 그 많은 보물 중에 그런 귀한 것을 골랐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도 관심도 가지지 않는 보물을요. 값비싼 보석이나 금괴, 전설급 무기를 가지고 나올 텐데 말입니다. 특히 율리시즈 치료사처럼 젊은이는 더욱더!”
황제와 대주교가 감탄했다.
어린 나이에 욕심이 없다고도 말을 했고, 가치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는 말도 하면서.
“반지와 부츠를 함께 착용하면 날 수 있습니다.”
“……예?”
“하하하, 율리시즈 치료사가 타고 다니는 캡틴 그리핀처럼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날 수 있다는 건 아니고, 그 뭡니까? 순간적으로 한 몇 분? 날 수 있다는 거지요.”
“전투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요긴하게라니요. 대단한 물건 같은데요?
지난번 데빌테일에게 속절없이 끌려가는 것과 같은 일은 당하지도 않을 거고, 적군에서 사로잡혀 오도 가도 못할 상황에 하늘로 슉, 도망칠 수 있으니.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할 진정한 방어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밖이 어수선해졌다.
“뭔가?”
황제가 입을 열었다.
“전령입니다.”
“들라.”
전령이 뛰어 들어와 황제에게 고했다.
“폐하, 데빌투스쿠스가 나타났습니다.”
“무엇이라? 어디서?”
“예, 그라우덴이라는 곳이온데, 목장들이 몰려 있는 곳입니다. 몬스터놈들이 지금 소, 돼지 할 거 없이 잡아먹으며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일순간 알현실에 적막이 찾아왔다. 알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침통 그 자체였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말해 주고 있었다.
황제가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명령했다.
“기사들은 토벌준비를 하라.”
* * *
황제와 대주교가 또다시 내게 협조를 구했다.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어차피 놈들을 잡으러 갈 생각이었던 나는 로이칸을 타고 먼저 장소로 날아갔다.
데빌놈들을 잡는데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마기 제거인데, 이 채찍이 있으니 굳이 신성기사와 같이 갈 필요가 없었다.
한 놈이라도 빨리 잡고 싶기도 하고.
[마커스! 저기!]팅거가 갑자기 크게 외치며 빨간 날개로 아래를 가리켰다.
쿠와아아!
크롹칵!
악어처럼 생긴 괴물이 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있었다.
놈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덜덜 떨고 있는 소들의 커다란 눈망울에 공포와 절망이 느껴졌다.
음머어어어…….
[사, 살려 줘…….]“저 미친놈들이!”
당장이라도 내려가 놈들을 찢어발기고 싶은 마음에.
-로이칸! 적당한 곳에 날 내려 줘.
[알았다!] [저놈들, 데빌투스쿠스는 굉장히 잔인하고 센 놈이야.] [지금까지 네가 알고 있던 놈들과 또 달라. 물리면 그냥 즉사해.]하강하면서 팅거와 벨라가 주의를 줬다.
실제로 본 데빌투스쿠스는 악어 두상을 한 데빌투스쿠스는 파충류와 포유류를 반반 섞어 놓은 것 같이 생겼다.
쿠웅…… 터억. 쿠웅…… 터억. 쿠웅…….
걸을 때마다 지면을 울렸다. 특히 꼬리가 바닥을 내려치니 땅이 깊숙이 패일 정도였다. 저놈들의 꼬리를 보니, 내 손에 들린 데빌테일 꼬리채찍은 그냥 끈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떻게 놈들을 잡을까, 고민하면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데빌투스쿠스가 소에게 달려드는 게 보였다.
흐머머머…….
겁에 질린 소가 비명도 제대로 내지르지 못한 채 그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크어어!
와그작…… 뚝!
데빌투스쿠스가 소의 목을 꺾고 그대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 시력이, 내 청력이 원망스러웠다. 모든 게 너무나 생생하게 보이고 들렸다. 놈들이 소뼈까지 아그작 씹는 소리까지.
“……으으으, 저 자식이!”
나는 품에서 마법폭탄을 꺼내 놈에게 투하했다.
퍼버벙.
놈은 그 자리에서 즉사. 나는 꼬리채찍으로 놈의 마기를 흡수해 버렸다.
“그나저나 어디서 저렇게 몰려드는 거야?”
서식지가 어딘지 알면 거길 깨부수고 시작하면 좋을 텐데.
“악어처럼 생긴 놈들이니, 분명 호수나 강에서 올라왔을 텐데.”
로이칸이 착지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느라 선회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근처에 커다란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발견했다. 호수에서 데빌투스쿠스 놈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저기다.”
나는 로이칸에게 말했다.
-로이칸, 저 호수로 가자.
[알았다.]충직한 로이칸은 이유도 묻지 않고 호수로 날아갔다.
다행히 마법 폭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폭탄을 투여한 후, 곧바로 손끝에 마나를 끌어모아 화염을 발사했다.
퍼버펑!
화르륵!
호수가 그대로 타올랐다.
경험치가 올랐다는 번쩍이는 글씨들을 보니, 체감상 놈들이 많이 죽은 거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잊고 있던 꼬리채찍을 휘둘렀다. 이제는 마기를 흡수할 타임이다.
휘이익!
그때, 로이칸 머리에 서 있던 팅거가 나를 어이없다는 듯 뒤를 돌아봤다.
[너 뭐 하냐?]-뭐 하긴? 마기 흡수.
[그거 할 시간이 어딨냐? 지금 소들이 잡아먹히는 거 안 보여?]-보이지, 그렇지만 마기 흡수도 해야지. 마기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며?
[이리 내놔!]-뭘?
[그 채찍. 마기 흡수는 우리에게 맡기고 너는 빨랑 가서 저놈들을 조져!]쬐끔한 녀석들이 내 손에 들린 채찍을 낚아채더니 휘익 날아가 버렸다.
그렇다면 나야 좋지.
나는 부담 없이 달려가 놈들의 아가리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퍼억! 퍼억! 퍼억!
꾸롸롸롹!
화가 난 동료 데빌몬스터들이 몰려들면.
“엿차!”
점프해 공중으로 날아 방심하고 있는 놈들을 공격했다.
“이거 꿀인데?”
부츠를 선택하길 잘했다.
* * *
두두두두두두!
황궁에서 출발한 토벌대들이 지면을 울리면서 그라우덴으로 향했다.
선봉에서 달리고 있던 기사단장이 가슴에 달린 펜던트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확성마도구를 작동시킨 것.
“우리가 그놈들을 막지 못하면 시민들의 목숨은 위험해진다. 절대로 데빌투스쿠스를 그라우덴에서 벗어나게 하면 안 된다!”
“예.”
“옙.”
“알고 있겠지만, 놈들의 이빨에는 마비독이있다. 물리는 즉시 온몸이 굳어 버린다. 옆에서 동료가 구해 주기도 전에 즉시 잡아먹힌다. 절대로 물리면 안 된다! 알겠나?”
“예.”
“옙.”
대답하는 기사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원래도 강한 놈들이 이번에는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출진일 수도 있다. 기사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목적지로 달려갔다.
그런데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분명 음산한 마기가 충만하며 목장의 동물들의 비명과 그들을 잡아먹는 데빌투스쿠스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려야 했건만.
아니 소리는 들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예상과는 달라서 그렇지.
“아니!”
“단장님! 저길 보십시오.”
먼 곳에서 한 인형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사람이었다. 마커스 율리시즈. 그가 날아다니며 데빌투스쿠스를 마구 학살하고 있었다.
학살이라는 단어 외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
가까이에 가면 갈수록 데빌투스쿠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게 목격됐다.
“어어……?”
“하, 이런!”
기사단장은 물론이고 기사들의 표정이 점점 환해졌다.
할 수 있다. 놈들을 싹쓸이 죽여 버릴 수 있다.
용기를 얻은 기사들과 마커스는 그날, 토벌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 줬다.
* * *
“하하하, 내 지금까지 이토록 기뻤던 적은 없었습니다.”
황제가 대전이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나 또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는데.
[무적 체력Lv2 2005/10000] [데빌투스쿠스를 잡아 마나가 1000 축적되었습니다] [획득보상이 주어집니다] [데빌투스쿠스의 이빨:마비독]*데빌투스쿠스 이빨 사용법
주입 즉시 5분 동안 근육의 마비를 일으킴.
어마어마한 경험치 획득도 기쁘지만, 바로 마비독. 저걸 부분 마취에 쓸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아니면 화살에 발라 무기로. 흐흐흐, 어쨌든 엄청난 보물임이 틀림없다.
나는 데빌놈들을 싹쓸이한 후, 놈들의 이빨을 거둬들였다. 한 마리당 하나의 독니. 유난히 뾰족하고 컸기 때문에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숀과 도니 연구원에게 쥐여 주면 적정 사용용량을 알아내겠지. 얘들아, 빨리 가자!”
“후우우, 공자님. 좀 쉬다가 가요. 네?”
뒤에서 세이건이 투덜거렸다.
“배도 고프고요.”
[나도 배고프다.] [나도! 내가 얼마나 마기를 없앤다고 고생했는데? 사람이 인정머리도 없이!] [웅, 나도!]지금 이 녀석들이 이렇게 투덜거리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황궁에서 좀 쉬면서 맛있는 걸 먹고 와야 하는데 홀랑 나와 버렸으니.
-알았다. 벨라, 가다가 도시가 보이면 말해.
[웅, 알았어.]그렇게 한 시간 정도 날아가다가 근처에 큰 시장이 있다는 벨라의 말에 우리는 야산에 착륙했다.
“어휴, 배고파. 지금 같아서는 뭐라도 먹을 거 같아요.”
세이건이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갔다. 그때, 갑자기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오, 오지 마. 이놈아!]세이건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공자님,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 않으세요?”
“들려.”
나는 이미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저건 뭐지? 사람?
“어휴, 그냥 산짐승이면 좋겠는데, 몬스터라면 이제는 지긋지긋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세이건은 이미 손이 허리춤의 검집으로 가 있었다.
크르르릉.
사나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으아아악, 사, 살려 줘.”
사람의 비명이 귓가를 스치는 그 순간, 세이건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가자!”
“예!”
우리는 곧장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