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83)
* * *
크르르르…….
시뻘건 안광을 번들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데빌울프를 본 순간, 오킬즈는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사, 살려 줘.]카발라 제국에 데빌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있는 곳은 카발라 제국의 동쪽 국경 지역. 카발라라고 말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오킬즈는 소문을 한 귀로 흘렸다. 그런 걸 귀담아듣기에는 얼마 전에 입수한 정보가 너무나 솔깃했기 때문이었다.
파라세듐이 발견됐다는 거였다.
그는 곧장 달려와 운이 좋게 원하는 광물, 파라세듐을 손에 넣었다.
파라세듐을 쇳물에 섞으면 가볍고 단단한 강철이 된다. 무게는 반으로 줄지만, 경도는 두 배 이상으로 강해지는 것이다.
이걸 욕심내는 게 아니었나?
오킬즈는 파라세듐이 들어 있는 봇짐을 끌어안고 벌벌 떨었다.
그래도 한 마디 소리를 지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저, 저리 가!]크와아아아!
그 말이 시발점이 됐을까, 노려보던 데빌울프가 자신에게 덮쳐 왔다.
오킬즈는 예감했다.
‘죽는구나.’
오킬즈는 두려움에 봇짐을 더욱더 꽉 끌어안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랬는데.
퍼억!
깨갱갱갱!
자신을 물어뜯어야 할 데빌울프의 단발마 비명만 들릴 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눈은 뜨지 못했다. 눈을 뜨면 시뻘건 데빌울프의 시뻘건 눈동자가 바로 자신 앞에서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자신에게 무기를 제작의뢰를 하러 오던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인간?”
오킬즈는 놀랍고도 반가워서 눈을 번쩍 떴다.
“저놈에게 물린 곳은 없나요?”
앳된 청년이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 * *
[무적 체력Lv2 2006/10000] [데빌울프를 잡아 마나가 1000 축적되었습니다]“이제 한 종류만 남은 건가?”
5종류를 잡았을 때 주어지는 마나 보상보다 사실 히든보상이 기대되었다.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주변의 소리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데빌몬스터는 떼로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
-얘들아, 다른 놈들이 보이냐?
[없어!]대표로 벨라가 대답했다.
“아쉽군.”
놈들을 잡아 경험치나 올릴까 했는데.
주변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할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야산에 사람이라니. 산사람인가?
할아버지는 자연인인지, 수염이 굉장히 덥수룩했다.
“할아버지,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크흐흠, 난 할아버지가 아니오.”
그때였다. 뒤에서 세이건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공자님. 저 사람, 아니 저분? 아 모르겠네. 어쨌든 드워프 같아요.”
“드워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앞에 노인을 자세히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얼굴을 덮고 있는 갈색 수염 사이로 부리부리한 두 눈이 나를 직시했다.
체구도 굉장히 단단해 보였고.
드워프 맞네. 예전 같으면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이제는 덤덤했다.
[그렇소. 난 자랑스러운 드워프 일족이오. 인간, 날 구해 줘서 고맙소.]할아버지, 아니 드워프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드워프의 키가 1m 남짓이라고 하더니, 사실이었다. 작고 튼튼한, 그렇지만 눈은 부리부리한 드워프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악수를 한 것.
“크핫핫핫핫. 아주 고맙소. 덕분에 목숨을 구했소. 난, 오킬즈라고 하오.”
“마커스 율리시즙니다.”
“오! 당신이 그 유명한 드루이드요?”
“절 아시는지요?”
“잘됐소. 우리 마을에 가서 동족을 좀 봐 주시오.”
“환자가 있습니까?”
“그렇소. 매일 쇠를 두들겨대거나 나무로 뭔가를 만들다 보니, 다치는 게 일이지요. 그런데 한 영감이 좀 많이 아프다오.”
그때였다. 갑자기 허공에 황금색으로 글씨가 반짝였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퀘스트: 드워프를 치료하라.
퀘스트 보상: 마나 500 지급, 치료한 드워프 소에 따른 경험치 지급
보너스 보상: 대륙 최고의 장인, 드워프와 인연을 맺을 기회.
히든 보너스 보상: ?
* * *
우리는 근처에 있는 드워프 마을로 이동했다.
“와, 이런 곳에 드워프 마을이 있다니. 저분을 따라오지 않았다면 바로 옆을 지나가도 몰랐을 거예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는 세이건이 중얼거렸지만, 나는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주변에 마나가 충만했기 때문이다.
벨라가 숨 몇 번만 쉬면 신성력이 차오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다. 신성력은 아니었지만, 마나가 그냥 몸 안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마나가 충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가다 보니, 주택지가 나왔다. 나무로 만든 집이었는데, 굉장히 탄탄하고 실용적으로 보였다.
“여기가 우리 마을이오.”
마을을 구경할 새도 없이 나는 오킬즈를 따라 어떤 집으로 갔다. 환자가 있는 집이었다.
롤랑이라는 드워프의 오른쪽 약지가 퉁퉁 부어 있었다. 피부색이 시꺼멓게 변해 있는 걸 보니, 아픈지 꽤 되어 보였다.
“금속 조각이 박혀 있네요.”
나는 휴대용 투시 마도구와 금속 탐지기로 확인한 후, 처치과정을 설명했다.
칼로 피부를 헤집는다는 내 말에 롤랑은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루이드여, 부탁하오.”
롤랑도 내 소문을 들은 거 같았다. 하여 나는 부담 없이 수부 수술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율리시즈 공방에서 만든 수술도구, 바늘, 실, 겸자 핀셋 같은 것을 사용했다.
겁나지도 않은지, 부리부리한 눈으로 자신의 손가락 수술을 지켜보던 롤랑이 이렇게 말했다.
“칼로 베는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니, 역시 소문대로 위대한 드루이드군요.”
데빌투스쿠스의 이빨을 간 것을 사물 속성 변환 능력인 멜팅을 시전해 액체로 만든 후, 손가락 주변에 주입했던 것이 주효한 것이었다.
부분 마취의 능력을 확인한 셈.
수술이 다 끝난 후, 실로 환부를 꿰매면서 주의 사항을 말했다.
“한 이틀 정도는 물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그리고 이 포션을 하루에 두 번 드시고요.”
항생제 포션을 롤랑에게 주면서 수술도구를 정리했다. 그런데.
롤랑이 내 수술 도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크흐흠, 그런데 그거 누가 만든 거요?”
역시 장인. 새로운 도구에 관심이 가나 보다. 나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안은 제가, 제작은 우리 율리시즈 영지 공방에서 만들었습니다.”
“그거 쓰기 편하오?”
그렇게 물어온다면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써 왔던 수술도구에 비하면 품질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대안이 없는 지금으로는 최선의 도구였다.
“차차 나아지겠죠.”
“쯧!”
롤랑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킬즈가 입을 열었다.
“그거 똑같이 만들면 되는 거요?”
“네?”
“내가 보니까, 그거 아주 못 쓰겠는데? 정확하게 잡지도 못 하고. 그 뭐냐? 방금 꿰맨 바늘은 썩 좋아 보이지도 않고. 칼도 날이 무딘 게…… 너무 조잡하오. 그런 걸 가지고 어디 실력발휘를 제대로 하겠소?”
답답했던 내 심정을 대변해 준 말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부탁드립니다.”
그로부터 며칠, 나는 퀘스트의 보상이 주어질 때까지 드워프들을 치료하며 지냈다.
드디어 보상이 주어진 날 저녁. 드워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크하하핫! 드루이드여. 정말 고맙군요. 요 몇 달간 나를 괴롭혔던 통증이 씻은 듯 다 나았구려.”
“내가 할 말입니다. 쇠붙이 때문에 하마터면 다리를 못 쓸 뻔했다니.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다 납니다. 드루이드여, 고맙습니다.”
“내가 제일 고맙지. 이 손을 다시 쓸 수 있게 됐으니까. 제작도 못 하고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는데.”
대장장이들이 대부분인 드워프들은 손, 다리에 부상이 많았다. 쇠, 목재 등 재료에 찔린 건 기본이고 화상 환자도 제법 많았다.
그걸 궁극의 마나치료술로 고쳐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며 드워프들이 잔치를 벌여 준 것.
드워프들이 맥주를 좋아한다는 게 사실인지, 다들 큰 맥주잔을 들며 크게 떠들어댔다.
수술했으니, 당분간 금주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싹 다 낳았으니까.
맥주를 오랜만에 본 나도 마시고 싶었지만, 현실은.
“공자님, 아시죠?”
세이건이 눈을 부라리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건 그냥 보리 음료라니까. 딱 한 잔 안 될까?”
“안 됩니다. 공자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게 하루 이틀인 줄 아십니까? 그냥 이거 드십시오. 이것도 나름 마실 만합니다.”
세이건이 건넨 건 과일 주스였다.
“하아, 그래. 이거라도 마시자.”
나는 영혼 없는 표정으로 다디단 산딸기 주스를 들이켰다. 옆에서는 팅거와 벨라가 산딸기를 잔뜩 쌓아 놓은 채 부리로 쪼아 먹으며 좋아했다.
[마나가 충만한 곳이라 그런지, 아주 맛있군.] [웅, 이렇게 맛있는 산딸기는 진짜 오랜만인 거 같아.]스피카와 호크, 로이칸도 훈제 바비큐를 뜯으면서 즐거워했다.
그렇게 마시고 즐기는 가운데, 갑자기 오킬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를 고쳐 준 율리시즈 드루이드께 드워프를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킬즈가 고개를 숙이니, 나머지 드워프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보여 줬던 태도와 비교될 정도로 정중한 태도였다.
“드리게.”
오킬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급스럽게 생긴 가죽 가방을 들고 오킬즈 공방에서 본 적이 있는 드워프가 내게로 걸어왔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받아 주시지요.”
가방 안에는 내가 수술할 때 썼던 도구가 들어 있었다. 눈으로 훑어봐도 아주 훌륭해 보였다. 손으로 잡아보니 착 감기는 게 지금까지 내가 써 봤던 기구와는 격이 달랐다.
“와……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둘러앉아 있는 드워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특히 오킬즈는 입이 한껏 풀어진 채 대답했다.
“크흐흐흠, 당연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은인. 앞으로 은인이 필요한 물건은 말만 하시지요. 아주 멋지게 만들어 드리지요.”
그때였다. 눈앞이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이미 퀘스트 보상은 얻은 상태였으니 히든 보너스 보상이 주어진 것이겠지.
[히든 보너스 보상: 대륙 최고의 장인을 당신의 대장장이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단, 주문 장비 난이도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마나가 차감됩니다]대박!
지상 최고의 장인, 드워프를 고용할 수 있다니.
마나를 차감한다는 문구가 계속해서 번쩍였지만,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진료를 해도, 몬스터를 때려잡아도 쌓이는 게 마나니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애써 끌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어, 음. 이런 거 조금 더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비용은 업계 최고 대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 * *
거만하고 까다로운 드워프들과 고용계약을 맺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율리시즈 영지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간 곳은 노면전차 공사장.
주벨로가 감독을 맡은 노면전차 공사는 막바지로 치달았다.
공사장에는 베어독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었다.
-여어. 다들 잘들 지냈어?
[쿠우우! 반갑다!] [반갑다!]베어독들이 환한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고생한 흔적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모르니까.
-별일 없었냐? 힘들지는 않고?
[괜찮다.] [밥 많이 준다.] [몬스터 없다!]율리시즈 백작이나 주벨로가 하루종일 공사장만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 이들은 지시만 내릴 뿐, 일은 아랫사람들이 한다.
식비를 빼돌리거나 시간 외 일을 시킬 수도 있는 법. 확인 차 다시 물었다.
-진짜로 괜찮냐? 불만이 있으면 지금 말해. 잠을 적게 재운다든지 너무 오래 일을 시킨다든지.
[고향 그립다.] [고향! 숲.] [나무.] [동굴.]녀석들의 말을 취합해 보면.
-그러니까, 지금처럼 인가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는 거 말고 너희들만의 구역이 필요하단 말이군?
[그렇다!]베어독은 사람에 치이고 몬스터에 공격받는 최약체 몬스터에 속한다. 하여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안락한 서식지.
그것을 최고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쉴 때는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는 거였다.
“어차피 신도시를 만들 생각이었으니, 계획을 조금 수정하면 되겠군.”
이제는 여러 군데로 늘어난 내 소유의 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나는 율리시즈 백작에게 인사를 하러 본관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