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89)
내 시력은 이미 정상인의 그것을 아득히 넘은 상태,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창공에서 마법을 시전하며 선전 중인 아군들의 모습이 너무나 잘 보였다.
“음, 저놈이군.”
아마 놈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내게 본인의 얼굴이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저렇게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지.
당장 날아올라 놈에게 한 방 먹일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랬다가는 잘 싸우고 있는 아군들의 사기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
나는 놈의 얼굴을 기억해 놓은 후, 하던 일을 이어 나갔다. 손끝에 모이는 마나로 데빌에스녹스의 눈을 공격해 나갔다.
슛슛슛슛슛!
크어헉!
굉장한 속도로 질주하던 녀석들이 갑자기 중심을 잃고 날뛰자 뒤따라 질주하던 놈들마저 크르륵, 쿠어어어! 등등의 소리를 내며 뒤엉켜 버렸다.
순식간에 대열이 흐트러졌다. 마치 빗길에 삼, 사십 중 추돌 사고가 난 것 같은 상황.
나는 아주 쉽게 놈들을 제압해 나갔다.
눈이 활활 타오르는 고통에 내가 근처에 다가가도 놈들은 그저 괴로워 날뛸 뿐.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 놈들을 가뿐히 사냥했다.
퍽! 끅!
퍽! 꾸엑!
퍼퍽! 께헤에에!
놈들이 쓰러지면 어김없이 검은색 마기가 피어났고 팅거, 벨라가 테일 채찍을 흔들며 그것들을 제거했다.
박자가 딱딱 맞는 상황. 나는 쉬지 않고 놈들을 압살했고, 머리 위에서는 끊이지 않고 황금색 글씨가 번쩍였다. 경험치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것.
나는 벌판을 질주하며 데빌에스녹스들을 사냥했다.
크롹!
커억!
발광하며 날뛰는 녀석들의 비명이 벌판을 울렸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내 손가락을 쳐다봤다.
“이거 참 좋단 말이지. 진짜 화살이었다면 진즉 다 떨어졌을 텐데.”
마나 공격이 가성비 최고의 무기라는 생각을 하며 공격을 이어 나갔다. 놈들을 때려잡고 있는 사이에 기사를 태운 그리핀 부대가 착륙했다.
착착착착착착!
우두두두두!
그리핀 등에서 뛰어내린 기사들이 신속하게 전투 대세를 취하자 나는 기사들에게 크게 외쳤다.
“전군 돌격!”
“우와와와와!”
아무리 강한 적이라고 해도 눈먼 적은 하찮게 보이는 법. 더욱이 이곳에 있는 기사들은 최정예 최고 기사들이다.
질주하는 데빌에스녹스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만, 저렇게 쓰러지거나 발광하며 날뛰는 데빌에스녹스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짐작대로 기사들은 그들은 아주 쉽게 놈들을 쓰러뜨렸다.
나는 단독으로 행동.
곳곳에 숨어 있는 데빌에스녹스를 찾아 나섰다.
신성력이 어느 정도 차오른 나는 손쉽게 놈들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찾기도 전에 방정맞게 소리치는 놈이 있긴 하지만.
[마커스, 저기!]-알았다!
팅거의 빨간 날개가 가리키는 곳에는 어김없이 데빌에스녹스가 숨어 있었고, 나는 그대로 마나공격으로 녀석을 쓰러뜨렸다.
그러면 어느새 그리로 날아가 있던 팅거, 벨라가 놈의 마기를 제거했다.
[야, 마커스. 근데 저 기사는 뭔데 네 뒤를 밟는 거냐? 너 저놈에게 원한이라도 산 거 아니야?]-글쎄. 내 기억에는 없는데?
[아니긴, 네 뒤통수를 노려보는 눈이 여긴 매서운 게 아닌데.]창공에서 나를 공격했던 놈이 나를 미행하는 것을 팅거가 눈치챘다.
-올리프 공작이 보낸 자겠지. 나를 못 죽여 안달 난 영감이니까.
[올리프 공작이면 로이칸을 죽이려고 한 작자지?]-응.
[확! 내가 그냥 죽여 줄까?]로이칸 이야기가 나오니 팅거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내가 죽일 거다.
대장을 암살하려고 한 죄목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경고를 위해서는 한 놈을 처단하긴 해야 한다. 그래야 다들 몸을 사리지.
나는 놈이 내 뒤로 바싹 따라붙을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으, 으아아아아!”
몬스터가 아닌 사람의 비명이 들린 것. 누가 다쳤나 싶어서 돌아보니, 저 멀리 누군가가 쓰러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바로 나를 공격하려고 따라붙은 놈이었다.
“흠.”
주변을 보니 데빌몬스터가 공격한 건 아닌데, 뭐지? 자기가 자기를 찌르는, 셀프 공격을 당해 저리 쓰러진 건 아닐 테고.
[으헤헤헤. 꼴좋다.]머리 위에서 팅거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펄럭였다.
-팅거, 네가 그랬냐?
[무슨 소리야! 난 아무것도 안 했다.]-그런데 저놈이 왜 나자빠져 있는 거냐?
뒤를 돌아 녀석에게 다가갔는데, 바닥에 쓰러진 놈은 여전히 비명을 내질렀다.
놈의 옆에는 동료 기사가 한 명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
“율리시즈 행동대장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옆에 서 있던 기사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으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놈과 저를 죽여 주십시오.”
기사가 머뭇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잠시 후, 기사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율리시즈 대장님, 죄송합니다. 부하를 잘못 관리한 죄, 죽어 마땅합니다. 저를 죽여 주십시오.”
가시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검을 치켜들었다.
“하압!”
그대로 쓰러진 놈의 목에 검을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내리꽂았다.
헉!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나는 순간 날아올라 놈의 검을 발로 차버렸다.
툭!
바닥에 검이 내동댕이쳐진 걸 본 기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검이 손에서 사라진 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 이게 무슨…….”
나는 팔짱을 낀 채 기사를 노려봤다. 말하지 않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놈이 대장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몇 번이나 목격했지만, 이놈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으며 대장님께 보고도 못 드렸습니다. 분명한 직무유깁니다. 죽여 주십시오. 다만 이놈을 죽일 기회부터 주십시오.”
“허!”
나는 기사의 말에 두 번이나 놀랐다. 놈의 살인 계획을 눈치챘다는 거. 그리고 그걸 책임지려고 하는 점.
“네 이름은?”
“헤인켈입니다.”
나를 공격했던 놈은 지금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웅크리고 있었다. 처단은 모두가 모였을 때, 할 생각이다.
“헤인켈, 이놈을 감시해라.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 * *
몬스터 토벌이 종료된 후, 기사단은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배신자가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이 자는 율리시즈 대장님을 죽이려고 한 자다.”
헤인켈의 크나큰 목소리가 벌판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기사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흉흉해졌다. 자신들의 우상이자, 영웅인 율리시즈 대장을 죽이려 들다니, 저놈은 미친 것인가?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나?
기사들이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악당을 내려다봤다. 헤인켈에게 오른 팔목이 꺾여 덜렁거리는 악당은 극심한 통증으로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조나스 또한 기사들과 같은 표정으로 악당을 노려봤다.
‘저 미친놈이. 들키긴 왜 들켜서는.’
조나스는 저놈이 이대로 죽어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자신과 자신의 상관 이름이 저놈 입에서 나불대는 일이 없을 테니까.
‘황자 전하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며칠 뒤에 합류할 자신의 주인, 펠로톤 3황자에게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조나스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부터 해결하자.
“감히 대장님께 위해를 가하다니, 저놈을 죽여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조나스가 큰 소리로 외치자 마커스가 그를 바라봤다.
“그런가?”
“그, 그렇습니다.”
마커스는 대답하는 조나스를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걸 본 조나스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건 조나스의 착각이었다.
“아니다. 토벌이 끝나는 즉시, 기사재판에 회부하여 죄를 물을 것이다. 그때까지 반드시 살려 둬라.”
마커스의 명령에 조나스의 눈동자가 아래위로 흔들렸다.
‘낭패다!’
마커스는 조나스를 오늘 처음 봤다. 당연히 그가 펠로톤 3황자의 심복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놈이 올리프 공작 끄나풀이 아닌 펠로톤 3황자였다는 사실도.
이 모든 것을 ‘속임수를 간파하는 현자의 눈’으로 알게 된 마커스가 낭패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조나스를 보며 조소했다.
‘조나스, 네놈 주장이 먹힐 줄 알았겠지만, 무슨 소리. 이런 절호의 기회를 내가 왜 발로 차겠냐? 배후를 알아낼 때까지 탈탈 털어야지.’
마커스는 그렇게 생각한 후, 무리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걸어갔다.
걸어가던 마커스가 앞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 위를 올려다보더니 훌쩍 날아올랐다.
그렇게 잠시 나무 위로 사라졌던 마커스는 다시 뚝 내려와서 다시 걸어갔다. 못 보던 가방 하나를 울러 메고.
나무 위에서 쉬고 있는 로이칸에서 챙겨온 것이었다.
그런 마커스를 지켜보는 자가 있었는데, 마커스에게 죄를 고했던 헤인켈이었다.
“어딜 가시지? 혹시 데빌몬스터를 사냥하러 가시나?”
분명 피곤한 기사들을 쉬게 하려고 혼자서 사냥하러 가시는 게 틀림없다.
“대단한 분이시다. 나라도 도와 드리자.”
헤인켈은 배신자를 처단하는 기사들 사이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마커스를 뒤따랐다.
마커스는 빠르게 걸어가서 근처 수풀로 들어갔다.
분명 수풀 속에 몬스터가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 헤인켈은 최대한 소리를 죽여 그를 따랐다. 검집에서 검을 빼 들고.
걸어가던 마커스가 갑자기 자세를 낮췄다.
“흡!”
분명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난 게 틀림없다. 이번에는 어떤 놈이지? 작은 놈인가?
헤이켈은 긴장하며 주변의 마기의 기척을 좇았다.
그런데.
“어이. 거기 뒤에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이것 좀 잡아.”
“네?”
헤이켈은 후다닥 뛰어가 마커스 앞에 섰다
눈앞에는 멧돼지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멧돼지 형상을 한 몬스터인가?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그거 놓고 이 겸자나 좀 잡아.”
“네?”
마커스는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작은 가위처럼 생긴 집게를 건넸다.
“후, 돌아가면 주벨로 마법사님께 그때 그 마법을 좀 배워야겠군. 수액통이 동동 떠 있으니, 아주 편하던데 말이지. 그러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수술할 수 있을 텐데.”
마커스는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헤인켈에게 이리 해라, 저리 해라, 지시하며 다친 멧돼지를 수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나치료술.
멧돼지는 금세 일어나 마커스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고생했다.”
마커스가 멧돼지 엉덩이를 툭툭 쳐주니, 멧돼지가 ‘꿀꿀’ 기분 좋게 울더니 수풀 속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반복되는 처치, 치료가 이어지고, 그럴 때마다 다 죽어 가는 동물들이 벌떡 일어나 마커스에게 고개를 숙인 후, 뛰어갔다.
“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지금까지 헤인켈은 전장을 누비면서 살생만 해 봤지, 생명체를 구해 본 적은 없었다.
지금도 그가 살린 건 아니지만 살리는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조금 전만 해도 당장이라도 시뻘건 불기둥이 튀어나올 듯 두 눈을 이글거리며 데빌몬스터를 사냥하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묵묵히 죽어 가는 동물들을 살리고 있었다.
마커스의 그런 행동은 해가 지고 어둠이 주변에 내려앉아도 계속됐다.
“힘들면 돌아가도 좋다.”
“아닙니다.”
“그래? 배고플 텐데.”
“괜찮습니다.”
“흠, 그럼 이거라도 먹을래?”
마커스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비상식량인 육포였다.
“감사합니다.”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새벽부터 지금까지 쫄쫄 굶었던 헤인켈에게는 지금 건네받은 육포가 너무나 반가웠다.
덥석 입에 물고 씹으려고 하는데.
쿠…… 웅 쿠…… 웅.
지면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숲의 나뭇잎이 흔들렸다.
‘몬스터다!’
헤인켈의 손이 저절로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리고 검을 잡는 순간.
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
눈앞에 커다란 판테라가 나타났다. 판테라를 쳐다보는 헤인켈의 눈동자가 아래위로 흔들렸다.
“으으…….”
지금까지 그 무시무시한 데빌몬스터를 단칼로 두 동강을 내던 헤인켈은 어디로 갔는지, 그는 그 자리에서 서서 검을 쥔 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