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90)
‘판테라가 대장님을 노리고 있다.’
헤인켈은 검집에서 검을 뺀 후,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대장님! 제가 보호하겠습니다!”
있는 힘껏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후우…… 턱!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검날 끝에 나무가 보였다.
“나, 나무?”
토막 난 나뭇등걸에 칼이 박혀 버린 것, 그걸 들고 있는 사람은 바로 마커스였다.
“잘됐다. 그거 좀 썰어라.”
“예?”
“부목으로 쓸 거다.”
* * *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올보그 황제는 몬스터도 국경 수비의 한 축이라고 생각했다.
몬스터가 국경 주변에 적당히 서식하는 건 오히려 국방에 득이 된다고 말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몬스터들을 관리해 왔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국경과 인접한 산속까지 몬스터를 소탕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산에서만 살고 인가로 내려오지만 않는다면 절대로 죽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경이 아닌 곳에서 몬스터가 출몰한다? 그래서 제국민들을 위협한다?
당연히 몰살감이다.
내 부하, 동료가 된 몬스터들이 죽는 걸 원치 않으니 토벌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몬스터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데빌몬스터 소탕 작전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모처럼 탄과 연락을 주고받던 중, 오라스 지방의 붉은 판테라 무리가 내 도움이 필요하단 얘기를 들었다.
하여 지금 붉은 판테라와 접촉을 하게 된 거였다.
-아플 거다.
[크윽.]내 앞에 나타난 붉은 판테라는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이 다리로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는지. 다행히 세피린 나뭇잎을 먹어서 그런지, 덧난 곳은 없었다.
나는 부러진 뼈를 부목을 대고 맞춘 후, 붕대를 감았다. 그러고 나서는 마나치료술 시전. 마지막으로 포션 하나만 먹이면 끝이다.
나는 옆에서 덜덜 떨면서 조수 역할을 하는 헤인켈에게 말했다.
“그 가방에서 파란 포션 하나 꺼내 줘.”
“예, 예.”
헤인켈은 붉은 판테라가 무서운지, 두 눈과 귀가 빨개졌다.
판테라가 데빌에스녹스 보다 더 무섭게 생겼나?
뭐 다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이거 일주일 뒤에 풀어.
[고맙다. 은인.]판테라 치료가 이어졌다. 그동안 헤인켈은 조수 일을 도맡았는데, 눈치가 썩 빠른 자였다.
세이건이 옆에 있는 거 같이 편하게 진료에 임할 수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치료가 끝나자, 판테라들이 복창했다.
[은인, 돕는다. 불러라!]-알았어. 데빌몬스터에게 당하지나 마.
판테라는 내게 고개를 숙이더니, 숲으로 되돌아갔다. 아마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겠지.
쿠웅, 쿠웅, 쿠웅.
서서히 해가 뜨고 있는 이른 새벽, 판테라의 이동 소리만 들릴 뿐, 사방이 조용했다.
“자, 이제 우리도 돌아갈까? 잠깐 너 피곤하지?”
“아, 아닙니다. 돌아가서 신성 기사에게 치료받으면 거뜬해 질 겁니다.”
피곤한 거네.
나는 헤인켈에게 마나치료술을 시전해 피로를 날려 버렸다.
“와! 이거…… 푹 잤을 때보다 더 팔팔한데요?”
“가자.”
돌아가는 길에 나는 헤인켈을 칭찬했다.
“무서웠을 텐데, 잘 참아 줬다. 네가 도와준 덕분에 편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대장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헤인켈을 쳐다봤다.
“……제 부모님은 데빌몬스터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생도요.”
온 가족이 몬스터에 몰살당했다는 말에 말문이 막힌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저도 죽을 뻔했습니다만 마침 레온 주교님이 저를 구해 주셨죠.”
몬스터 토벌대가 나타나 그를 구해 줬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대장이 레온 주교였는데, 가족을 잃고 갈 데가 없는 헤인켈을 거둬 줬다.
충격에 실어증까지 생긴 헤인켈이었지만, 신성기사들의 활약을 보며 ‘복수’를 꿈꿨다.
하여 열심히 노력하여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영웅들의 일대기에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여기까지는.
“레온 주교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오시기 전에 판테라가 저를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레온 주교님이 도착하시기도 전에 죽었을 겁니다.”
“응?”
여기서 갑자기 판테라가 나오다니?
“판테라가 데빌몬스터를 막아 줬습니다.”
그러니까, 데빌몬스터와 판테라와 싸움이 붙었는데, 그 중간에서 헤인켈이 살아남았다는 말이었다.
자신들의 구역에 데빌몬스터가 나타나서 화가 나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데빌몬스터가 자신들의 먹잇감에 손을 댔다고 화가 났을 수도 있고.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헤인켈은 도움을 받았고, 판테라를 은인으로 생각하게 됐다. 이런 말이었다.
각각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
“감사합니다. 대장님 덕에 빚을 갚은 느낌이었습니다.”
헤인켈은 판테라를 은인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몬스터 토벌대로 투입될 때마다 판테라를 죽여야 할 상황이 오면 고민이 많았다는 거였다.
꼭 죽여 마땅한 데빌몬스터와는 다르게.
나는 후련한 얼굴로 걸어가는 헤인켈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우리는 데빌몬스터의 흔적을 밟으며 토벌을 이어 나갔다.
“우와와와와와!”
연승으로 토벌대의 사기는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아졌고 그만큼 기량이 상승한 까닭에 데빌몬스터 소탕도 점점 수월해졌다.
“음, 아직 북쪽에 있는 놈들은 남하하지 않은 모양이군.”
데빌테일과 데빌플라이는 나타나지 않은 상황. 데빌테일의 꼬리를 조금 더 구하려던 나의 계획은 무산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나타나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녀석들이니, 앞으로도 소식을 듣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오라스 영지의 소탕 작전은 끝물이 되어갔다.
로이칸을 타고 오라스를 돌아다니며 마기의 흔적을 쫓았지만, 더는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팅거와 벨라도 같은 생각이었다.
[여긴 없어.] [웅, 그런 거 같아.] [마기에 오염된 인간들이 있긴 하지만 뭐, 이 정도 오염된 인간들은 어디든 있으니까.] [웅, 데빌몬스터는 없엉.]팅거의 오염된 인간이라는 말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저놈이 우리 사람들에게 비관적인 말을 내뱉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여 나는 무시하기로 했다.
“흠, 그럼 복귀할까?”
그때, 지로드 총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역시 율리시즈 대장의 말이 맞았습니다. 데빌플라이는 화염 공격에 맥을 못 추더군요.
데빌플라이가 나타났는데, 지로드 교수와 마법전투사들의 공격으로 막았다는 내용이었다.
책에서 데빌플라이는 단독 행동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번에도 데빌플라이는 한 마리만 등장.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긴, 나도 그때 그놈이 세이건만 잡아가지 않았더라면 대번에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법전투사들이 수십 명이 달려들어 내가 말한 전략대로 놈을 손쉽게 사냥했다고 말했다.
=율리시즈 대장의 조언과 피닉스 기사단의 활약으로 이쪽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거긴 어떻습니까?
“여긴 정리가 다 됐습니다.”
그렇게 데빌몬스터의 습격은 일단락이 되었다.
황제는 토벌대를 크게 치하하며 신성기사단의 제국 내 주둔 문제를 카발라 제국과 상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데빌몬스터의 습격을 상시 대비해야 할 것 같다면서.
아마 조만간 대륙 연합군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이 펠로톤 3황자를 어떻게 조지지? 아니 그 전에 귀족파들은 어떻게 할까?
그런데 우연히 기회가 생겼다.
앨버부르크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나는 당분간 황도에 머무르게 되었다.
지로드 교수에게 마법전투술을 한 수 배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지로드 교수는 내 조언으로 데빌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었다면서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줬다.
배움은 황궁의 연무장에서 이뤄졌다. 물론 실내에서는 지로드 교수의 가르침을 수행하기에는 문제가 있었기에, 실내 연무장이 아닌, 야외 연무장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오늘은 ‘마나감응 능력 심화 과정’에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마나감응?
팅거, 벨라의 능력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웬만한 이들보다 월등하다. 심화 과정이라고 해 봤자, 별거 있겠어?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시작합니다.”
“예.”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런 나를 보며 지로드 교수가 싱긋 웃더니 팔을 들었다.
연무장에 비치된 연습용 바위, 돌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지로드 교수가 마법으로 띄운 것.
슈우우우웅.
돌들이 가만히 공중에 떠 있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빠른 속도로 내게 날아왔다.
후우우웅.
나는 마나를 손끝으로 끌어 올려 날아오는 돌들을 격추했다.
“하압!”
퍼벙 펑펑펑펑.
그게 시작이었다.
후우웅웅.
지로드 교수는 연무장의 모든 것들, 심지어 바닥에 깔린 모래까지 모조리 무기로 이용해 나를 공격해 왔다. 내게로 날아오는 것들이 모두 수업을 위해 준비된 거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아무리 내가 마나 축적이 많이 되었고, 체력이 강해졌다고는 해도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모래알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피웅!
모래알 하나가 내 머리를 맞췄다.
“아얏!”
아, 진짜! 엄청 아프네. 이거 잘못하다가는 진짜 벌집 되겠는데?
“작다고 무시하면 큰일 납니다. 이거 그저 날아드는 모래알로 보이겠지만, 웬만한 궁수부대 이상의 역할을 하지요. 아 물론 율리시즈 공자는 하루 정도 누워 있으면 아물겠지만요. 조금 더 속도를 내 볼까요?”
지로드 교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전혀 무시하지 않거든요!
나는 이마를 문지르면서 속도를 더 높인다는 교수의 말에 눈이 커졌다.
아닌 게 아니라 돌과 모래들이 더욱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마나 문지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으갸갸갸갸갸!”
나는 생각도 멈춘 채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모래알을 파괴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막고, 또 막고 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 수련 시간이 끝나 버렸다.
“잘 버텼군요. 오늘은 이쯤으로 끝내고 내일 봅시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속도를 높입시다. 내일은 라온산에서 수업을 진행합시다.”
지로드 교수는 그렇게 연무장을 떠나갔다. 나는 온몸이 후들거려 그 자리에서 드러누워 버렸다.
“후, 온몸이 흐물흐물한 게 무슨 연체동물이 된 거 같네.”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구나.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마나를 온몸 구석구석 돌렸다.
이렇게 1시간 정도만 있으면 바로 회복될 거니까.
내가 마나감응 수업을 너무 얕잡아봤구나. 에고고 팔다리, 안 아픈 곳이 없네.
그나저나 산에서 수업을 하자니, 이러다 나무뿌리는 물론이고 멧돼지 같은 놈들까지 날아오는 거 아니야?
그렇게 내일에 있을 수업을 상상하고 있는데 연무장 밖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났다.
“상표를 구했습니다.”
“확실한가?”
“예.”
“지난번처럼 어설픈 거라면, 말도 하지 말게. 오히려 뒤집어쓰기만 할 걸세.”
“이번엔 다릅니다. 빌리드 공국의 제피크 마탑 출신 마법사인데, 제대로 봉인할 수 있답니다. 바즈람 마법사가 인정한 자입니다.”
“바즈람 마법사가?”
“예, 아주 실력이 뛰어난 자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봐도 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안 갑니다. 도란 자작님이 보셔도 알아내기 힘드실 겁니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약속을 잡아 봐.”
“알겠습니다.”
탁닥닥닥.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나 싶더니, 누군가의 혼잣말이 이어졌다.
“하여간에 율리시즈 상단 놈들은 머리 하나 기가 막히게 잘 쓴단 말이야. 그딴 것을 포션이라고 내놓고 말이야. 흐흐흐, 1할만 잡아도 도대체 얼마야?”
상표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찜찜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우리 상단과 관계된 일이었다.
“도란 자작이라고 했지?”
저자는 분명 귀족파 작당일 것이다.
“은신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