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92)
원로원을 나서는 모헨 대공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미소를 지을 듯 말 듯한 표정, 그리고 살짝 치켜든 턱, 시선은 살짝 아래로.
모헨 대공은 원로원을 들어갈 때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단 한 곳만 제외하고는.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그의 손등에 핏줄이 굵게 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의 심정이 손등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모멸감.
그가 원로원에 머물면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원로원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것도 어언 20년.
그동안 모헨 대공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도 있다.
궁으로 돌아와 집무실 의자에 앉자마자 원로원에게 받은 모멸감은 분노로 표출되었다.
쾅!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뭉치가 벽으로 날아가 박혔다. 칼, 활도 아닌 고작 종이 뭉치가.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 이것이 바로 모헨 대공의 힘이었다.
“후.”
벽에 박힌 종잇조각들을 보며 모헨 대공은 화를 삭였다.
‘조그만, 조금만 더 힘을 키울 때까지. 그때까지만 참자.’
때가 되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복수를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풀렸다. 모헨 대공은 크게 외쳤다.
“진상 조사단을 불러와.”
“예.”
뒤에 서 있던 수행비서가 대답하자. 모헨 대공이 재차 소리쳤다.
“이거 작성한 놈들도 함께!”
그렇게 ‘마기량 감소 진상 조사반’이 꾸려졌다.
기획 부서, 예측 부서, 측량 부서, 생산 부서, 심지어 재무 담당 부서까지.
마기 수집에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부서 직원들은 며칠 밤을 새우면서 조사에 매진했다.
그래서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았다.
원인 모를 마기 소멸 사건. 이것은 카발라 제국에서 최근 일어난 사건이었다.
데빌몬스터가 죽으면, 그 데빌몬스터가 흡기한 마기는 공중으로 흐트러지게 된다. 근처에 데빌몬스터가 있어서 마기를 재흡기 하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공기 중으로 희석되어 버린다.
물론 그런 마기는 주변 생명체로 흡수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그 생명체의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메루트가 증가하게 되니, 데빌몬스터가 죽는다고 해서 마신에게 큰 타격을 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카발리 제국에서 발생한 사건은 그 결을 달리했다.
데빌몬스터가 떼죽음을 당했을 뿐 아니라, 마기까지 사라진 것이다. 아주 깔끔하게 흔적도 없이.
보통 신성기사들이 제거하는 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마기가 사라진 것.
“이번 카발라 제국에서 작업 중이던 데빌슬롯, 그놈들은 보통 데빌슬롯보다 세 배 이상 강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다들 어디로 갔지? 증발한 건가?”
“그게…….”
질문을 받은 조사반장 디토는 고개를 숙였다. 초반에는 승승장구하며 마기량을 최대치로 끌어모으던 놈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본인도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나가 있었어도 할 말이 없기는 매 한 가지였을 것이다.
고작 젊은 청년 한 명이 그들을 몰살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니까.
모헨 대공도 딱히 대답을 들으려고 윽박질렀던 건 아니었는지, 시선을 서류에 두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여긴 또 왜 이런가?”
“……예?”
탁.
모헨 대공이 보던 서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디토 발 앞에 떨어졌다.
종이에는 큰 글씨로 ‘롤린스 제국 현황’이, 바로 밑에 작은 글씨로 ‘베랑토’라고 쓰여 있었다.
롤린스 제국은 최근 바즈람 마법사가 고안한 마기 흡기 장치를 시험하고 있었는데, 성과가 꽤 좋았다.
그런 이유로 롤린스 제국은 다른 곳과는 달리 유일하게 마기량이 증가했던 곳이다. 단 한 곳만 제외하고는.
그런데, 모헨 대공이 그곳을 콕 꼬집어 물은 것이다.
“그, 그게 아직 파악을 못…… 죄송합니다. 빨리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베랑토 역시 카발라 제국의 그라우덴처럼 이해가 가지 않은 곳이다.
그 많던 데빌테일은 왜 사라졌는지, 아직 원인 파악을 못 했다.
모헨 대공은 그런 곳만 꼬집어 물어봤고,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땀만 삐질삐질 흘리던 디토는 대공실에서 나오자마자 긴급 조사반을 꾸려 현장으로 보냈다.
대륙 북부 꼭대기에 이름도 모를 공국에서 마커스의 흔적을 찾아 나선 것이다. 졸지에 도마 위에 오른 마커스는 앨버부르크에서 한창 공부에 매진하는 중이다.
* * *
“여길 잡으면 돼?”
“응. 아, 조금만 힘을 좀 빼. 그 조직은 아주 소프트, 아니 약해서 조금만 힘을 줘도 찢어지거든.”
“이렇게?”
“아주 좋아.”
원래도 환자가 많았던 앨버부르크 치료소는 최근 의뢰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새로운 치료법, 마커스 솔루션 의뢰 환자들이 많았다.
볼프 탑주의 부탁도 있고 치료사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서,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수술 강의는 물론이고 어려운 수술을 도맡아 했다.
수술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치료사가 많이 배출되면 배출될수록 메루트가 덜 만들어질 거니까.
나는 최선을 다해 수업과 수술을 해 나갔다.
그런데, 수술을 거듭할수록 손발이 맞는 멤버 확보가 절실했다.
후…… 이럴 때마다 성수호가 그립군. 그리고 양 선생도.
호흡이 잘 맞는 수술 멤버가 있으면 복잡한 심혈관 수술도 편하게 할 텐데.
지금 마밸리에 있는 내 소유의 연구소에서 수술 장비를, 그리고 오킬즈를 중심으로 드워프들이 열심히 수술 도구를 만들고 있으니까 조만간 심혈관 수술을 할 수 있을 거다.
멤버 문제로 고민하던 중, 디컴, 월트, 줄리. 이 셋이 내 수술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디컴은 수술 중 발생하는 자잘한 출혈과 회복을 돕기 위해 힐을 시전했으며.
월트는 겸자를 쥐고 있는 손에 힘 조절을 아주 잘 했다. 달리 말하면, 수술 중에 술야 확보, 그러니까 내가 수술 부위를 잘 볼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써 주면서도 조직이 뭉그러지지 않게 잘 잡아 주었다.
적재적소에 힘을 배분한다고 할까?
그리고 줄리.
줄리는 포션을 아주 잘 썼다. 조기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환자의 컨디션에 맞게 마취약물 조절에 아주 능숙했다.
결론을 말하면, 지금까지 수술하면서 이처럼 편했던 적은 없었다.
나만 바삐 살았던 것이 아니라 동기들 또한 치열하게 살면서 실력을 갈고닦았던 것이다. 원래 가진 재능에 노력까지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입원실에서 환자의 경과를 살피고 나오는데 환자에게 힐을 시전해 줬던 디컴이 말했다.
“이거 내가 보조했던 솔루션 환자가 회복하는 걸 보니, 은근 뿌듯한데?”
“나도 그래. 나도 빨리 실력 쌓아서 마커스처럼 솔루션을 척척 잘 해내는 치료사가 되면 좋겠어.”
줄리가 디컴의 말을 받았다.
“욕심나냐?”
“그럼. 당연하지. 마커스솔루션이 치료사의 꽃인데.”
내 묻는 말에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월트가 대답했다.
“오! 월트 너. 언제는 치료전투사가 된다면서?”
디컴이 비아냥거리니까, 월트 역시 디컴에게 한마디 했다.
“마나치료술을 배워 네 형에게 본때를 보여 준다고 했던 사람은 누구더라?”
“흥, 아무리 그래 봐라. 내가 화를 내나. 그것보다 더 마법 같은 기술이 있는데, 내가 왜? 난 최고의 마커스솔루션 치료사가 될 거다.”
디컴이 당당하게 외쳤다.
“호오.”
그런 디컴을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니.
“아, 다, 당연히 마커스 네 다음으로 말이야. 난 2인자가 될 거다!”
“무슨 소리! 내가 2인자가 될 거다.”
“흥, 마커스 오른팔은 나야, 나. 마커스, 나 포션 조절을 기가 막히게 잘 하지 않았어? 솔루션이 끝남과 동시에 코호드가 눈을 팍 떴잖아.”
“야, 그러니까 안 되었던 거야. 코호드를 그렇게 바로 마취에서 깨어나게 하는 녀석이 어딨냐? 마커스가 옆에 있어서 그랬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치료해 준 녀석에게 죽임을 당하면 꼴좋겠다.”
디컴이 줄리를 비웃었다. 그러나 그런 말투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었기에 누구도 상처받을 일은 없었다.
“너희들 혹시 나와 일을 함께 할 생각 있냐?”
“함께 하다니?”
“앞으로 마커스 솔루션이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해질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솔루션 방의 구성원들이 제일 중요해. 지금 너희들과 나처럼.”
“지금보다 더 어려워진다고?”
“응, 심장이나 머리까지 수술할, 아니 솔루션 할 생각이거든.”
“머리를?”
다들 심장보다 머리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응. 생각보다 머리 수술은 상당히 어렵거든. 아, 지금처럼 솔루션을 행하는 걸 수술이라고 해.”
“나, 나는 앞으로도 마커스와 함께 할래.”
줄리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나도.”
“그럼 나도.”
마지막으로 대답한 디컴이 한마디 더 얹었다.
“왠지 여기서 빠진다고 하면, 나만 뒤처질 거 같아 불안해서. 그리고 대륙 최강의 치료사 옆에 딱 붙어 있으면 1인자는 못돼도 최고 2, 3 인자는 될 수 있을 거 같거든.”
“잘 생각했다. 그럼 내가 없는 동안, 숙제를 내주마.”
“뭐, 숙제? 치료탑 수업도 버거운데, 숙제라니?”
“어허! 나와 함께 하고 싶다면서? 그럼 빨랑빨랑 실력을 쌓아야지.”
나는 녀석들에게 조만간 출간될 ‘수의 마커스 솔루션 개론 및 실습’ 책을 건넸다.
그동안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써내려 왔던 것으로 예전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이다. 다행인 건 기억력이 좋아졌는지, 방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는 거다.
“그거 달달달 다 외워. 그림까지 싹 다.”
“헉! 이 많은 것을?”
“어허! 그게 뭐가 많다고!”
그렇게 볼프 탑주의 강의를 들으랴, 동기들과 수술하랴 바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레온 주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레온 주교가 내게 연락했다는 건 하나밖에 없다. 데빌몬스터 출몰.
“주교님.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번에는 어떤 놈들입니까?”
=하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내가 갑자기 연락해서 놀랐죠?
“아, 뭐 조금요.”
레온 주교의 평안한 목소리에 나는 안도했다.
=내가 연락한 건 다름이 아니라 율리시즈 대장에게 기사가 찾아갈 겁니다.
“기사요?”
* * *
그렇게 말을 하길래,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피닉스 기사단의 최정예 기사이자, 내 조수 역할을 톡톡히 했던 헤인켈이 왔다.
“아니 네가 왜?”
“율리시즈 대장님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런 실력자가 내 옆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화염까지 다룰 줄 아니, 데빌플라이 놈이 나타나면 쓸모가 있겠어. 게다가 헤인켈은 그리핀을 타고 여기까지 날아온 거다.
“저 그리핀을 타고 왔다고?”
로이칸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리핀을 가리켰다.
“예.”
언제 왔는지, 팅거와 벨라는 새로 온 그리핀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후, 밥값은 하겠지.”
다행히 헤인켈은 세이건과 죽이 잘 맞았고, 더욱 다행인 건 스피카, 호크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특히 덩치와 맞지 않게 케이홀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늘 어깨 위에 케이홀을 얹고 다녔다.
“하하하. 너희들은 정말로 아름답구나.”
헤인켈은 테이블에 앉아서 팅거와 벨라의 깃털을 쓰다듬으며 좋아했다.
뾰로로롱!
“허이고 이렇게 울음소리까지 청아하다니, 너희들은 어디 하나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구나.”
또로로롱!
헤인켈의 칭찬에 좀처럼 들을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팅거가 꼬리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후우, 저 이중적인 성격하고는.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제는 한숨만 나올 뿐이다.
뭐, 객관적으로 보면 예쁘긴 하니까.
* * *
“뭣이? 정말인가? 고작 18살밖에 되지 않은 놈이라고?”
디토에게 보고를 받던 모헨 대공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예, 전하.”
“허허, 우리를 뒤집어 놓은 게 고작 18살짜리라니.”
“저도 처음에는 거짓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자기 가문에서 열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 중이라고?”
“예.”
“그것도 그리핀을 타고?”
“그렇습니다.”
마커스의 존재를 알게 된 모헨 대공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무슨 행사인지 알게 된 모헨 대공은 머리를 굴렸다.
“어쩌면 잘됐군. 그렇게 유명한 행사라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 거 아닌가?”
“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엘라로투스 제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답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번에는 인접국에서도 제법 많이 참석할 예정이랍니다.”
“아, 조금 전에 놈에게 피닉스 기사가 붙었다고 했지?”
“예, 얼마 전에 카발라 제국에서 파견했답니다.”
“흐음, 그래? 아마 그 마커스란 놈이 힘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신성력은 없는 모양이군. 신성기사를 보낸 걸 보면.”
모헨 대공은 피닉스 기사라는 말에 헤인켈을 당연히 신성기사라고 생각했다.
“신성력이 없으니 마기를 눈치채지 못하겠군.”
“그럴 겁니다.”
“제피크 마법사 중에서 제일 민첩한 놈을 보내서 놈을 제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