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93)
모헨 대공이 말한 제피크 마법사는 제피크 마탑 출신 마법사를 뜻하며, 상당한 실력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피크 마탑의 수준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피크 마탑은 입학시험부터 일반 마탑과 수준이 달랐다. 입학시험에 매번 출제되는 두 개의 문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일루전 마법’이다.
샤렌 마법사가 말했던 공부 자체가 어려워 대부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그 마법이다.
나머지 하나는 ‘그림자 마법’이고.
그림자 마법은 말 그대로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를 5분 이상 숨겨야 하는 마법이다.
그냥 몰래 숨으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독관은 바로 수험생.
수험생들 서로가 서로의 감독관이 되는 것이다.
시험 룰은 간단하다. 목숨만 붙여 놓으면 모든 게 다 허용된다.
내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 선택되는 시험인 것이다. 아니면 압도적으로 뛰어난 실력자이거나.
이것이 제피크 마탑이 원하는 인재상이다.
그들이 이런 시험을 거치는 이유는 있었다. 제피크 마탑은 마신이 자신의 전사를 키우기 위해 세운 교육 기관이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과 인성까지 고려해 그들과 맞는 마법사를 발탁해서 마신의 졸개, 흑마법사로 키우기 때문에, 세간에는 정신계 마법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마탑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마법사가 두 명이 있는데, 블록과 세니아였다.
디토는 이 두 사람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하여 자네 둘 중 한 사람이 이 일을 맡아 주면 좋을 거 같은데, 문제는 너무 멀다는 거지.”
“제가 가겠습니다.”
호전적인 블록은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 주겠나?”
“그럼요, 그런 귀족들 모임에 슬그머니 숨어들려면 저 같은 사람이 제격이죠.”
특출나지 않는 목소리, 한번 보고 뒤돌면 생각이 잘 안 날 정도로 개성 없는 외모가 바로 블록의 장점이자 무기였다.
“마커스 율리시즈라는 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요.”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세니아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레 세니아로 향했는데, 세니아를 바라보는 블록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굉장히 뛰어난 자 같았어요. 블록 마법사 실력으로는 그를 죽일 수 없을 거예요.”
“뭐야?”
세니아의 발언에 블록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세니아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되받았다.
“오히려 죽임을 당하면 당했지.”
싱긋, 세니아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블록을 바라봤다.
“내가 그 녀석에게 진다면 너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설마요. 제겐 이게 있는 걸요.”
세니아가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며 대답했다. 목걸이 펜던트는 중화된 마기를 응축해 만든 것으로 필요할 때, 삼키면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난해, 성과를 인정받아 상으로 받은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함세. 괜찮다면 두 사람이 함께 가 주겠나?”
“싫습니다.”
“싫어요.”
디토의 제안에 두 사람이 동시에 거절했다. 그리고 또다시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혼자 가겠습니다.”
“저 혼자면 충분해요.”
모처럼 실력 발휘할 기회를 서로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갈 만큼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아니, 서로 싫어한다.
그런 이유로 제피크 마탑 3인자인 칼레이까지 합류해 세 사람이 율리시즈 영지로 출발했다.
* * *
원래는 행사 일주일 전에 출발하려고 했으나, 새로 합류한 헤인켈의 그리핀, 가벨로의 컨디션을 위해 나흘 먼저 출발했다.
낮에는 비행하고 저녁 무렵에는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 야숙했다. 헤인켈도 야숙에는 이골이 났는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거 같기도 했다.
특히 지금 이 시간을 아주 좋아했다.
“칼이라는 건 죽이는 무기로만 생각했지,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헤인켈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공자님이 좀 괜찮은 분이긴 합죠.”
옆에서 니들홀더를 내게 건네는 세이건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야숙을 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근처 야생동물들을 치료했다.
야숙할 장소를 정하면 곧바로 동물들에게 알렸다. 아픈 녀석들이 있으면 이리로 오라고.
그리고 팅거와 벨라가 산을 돌아다니면서 아픈 동물들을 모아오기도 했고.
하여 지금도 아픈 동물들이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희들, 내 앞에서 싸우면 가만히 안 둔다!
동물의 세계는 철저한 힘의 세계. 저 녀석들은 그냥 느낌으로 알고 있는 거다. 자기들보다 내가 힘이 세다는 것을.
“지금 이 장면을 동료들에게 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겁니다. 늑대와 토끼가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다니요.”
헤인켈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진료를 받기 위해 앉아있는 동물들을 바라봤다.
“쥐어 터지지 않으려면 저러고 있어야지.”
우리는 매일 밤에 동물들을 줄 세워 치료를 해 나갔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진료를 이어 나갔는데, 아픈 동물이 많아 거의 새벽녘이 되어야 진료가 끝이 났다.
“자, 다들 고생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쉬도록.”
“후, 네…….”
세이건은 진짜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곯아떨어졌고, 헤인켈도 졸린 기색이 역력했다.
“헤인켈, 너도 자. 그러다 낮에 비행하다가 가벨로 등 위에서 떨어진다.”
“예, 그래야겠습니다. 눈앞에 희끄무레한 것이 어른거리는 게 이러다 대장님 말씀대로 추락하게 생겼습니다.”
“아이고 저런,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 포션 한 병 마시고 자.”
나는 가방에 있는 포션을 꺼내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헤인켈이 피곤해서 눈앞이 희끄무레한 것이 보인 게 아니었다. 헤인켈은 제대로 본 것이다.
“말이잖아?”
백마, 아니 새하얀 망아지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어디 다쳤니? 엄마는 어딨어?
나는 망아지에게 말을 걸었다.
[힝! 아포오.]동그란 눈을 한 망아지는 내 말에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고 곧장 대답해 왔다. 아프다고.
-아이고, 이런.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이리 와.
[무셔.]-안 무서워. 내가 널 고쳐 줄게.
나는 헤인켈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헤인켈, 저기 망아지가 있는데, 어디 다친 거 같아.”
“망아지가요?”
“그래, 그런데 저 망아지, 겁이 많아 보이니까, 조용히 하고 기다려.”
“예, 알겠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게요.”
눈치 빠른 헤인켈은 드러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저기 겁에 질린 망아지가 있으니, 너희들 가만히 있어! 특히 호크 너! 킁킁거리지도 마, 알겠지?
다들 알았다고 눈을 껌뻑이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조심스레 망아지에게 다가갔다. 아주 천천히.
아니, 그런데 저게 뭐지? 나뭇가지인가?
나는 처음에는 망아지 머리 주변에 기다랗게 보이는 게 망아지 뒤에서 있는 나뭇가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걸어가자, 망아지는 불안한지 한 자리에 있지 않고 조금씩 뒷걸음을 치기도 했고, 다시 앞으로 걸어 나오기도 하면서 위치가 바뀌었다.
그런데 배경으로 있던 나뭇가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심지어 망아지가 움직여 나무가 없는 곳에 서 있었는데도, 망아지 머리 뒤에 보이는 나뭇가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뭐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자세히 보면서 망아지를 향해 걸어갔다.
아, 이런…….
욕지기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이 참았다. 대신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만약 내 손에 뭔가가 들려 있었다면, 순식간에 가루가 됐을 거다.
내가 나뭇가지라고 생각했던 건 화살이었던 거다.
지금 이 순간, 다행인 건 내가 동물 친화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 그렇지 않았다면 이 겁 많은 망아지는 벌써 도망치고 말았을 거다.
망아지 앞으로 다가가니, 상황 파악이 되었다.
망아지 뒷머리에 화살이 관통한 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피가 흐르지 않았다는 거다.
화살이 관통한 주변에 피가 한두 방울 묻어 있을 뿐, 큰 출혈은 없었다. 그렇다는 건 화살이 출혈을 막고 있다는 거다. 화살을 뽑는다면? 과다출혈로 즉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괜찮아. 내가 고쳐 줄게.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망아지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녀석의 등을 쓰다듬었다.
[힝!]녀석은 무서웠는지, 쓰다듬는 내 손에 몸을 더욱 기댔다. 나는 그렇게 잠시 있으면서 망아지 몸에 마나를 불어넣어 줬다.
통증이라도 가시라고.
잠시 그렇게 있으니, 망아지가 칭얼거렸다.
[배고파오.]잠시 후, 나는 녀석을 우리 캠프로 데리고 오는 것을 성공했다.
망아지의 상태를 본 헤인켈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내 지시를 기억해 낸 것이다.
그렇게 망아지가 분위기에 적응할 시간을 두더니, 헤인켈은 조용히 움직여 녀석을 위해 자루 속에 있는 과일과 곡물 알갱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팅거와 벨라의 식량이었다.
히이잉. 망아지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짓더니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팅거 녀석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망아지 옆으로 다가가서 뭐가 더 맛있는지 가르쳐 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헤인켈이 망아지가 먹는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보더니 나직이 물었다.
“대장님, 저 화살, 당장 뽑아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안 돼. 함부로 뽑았다간 죽을지도 몰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헤인켈에게 무턱대고 뽑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저걸 제대로 제거해 주려면 수술 도구, 장비가 필요한데, 지금은 무리다는 말까지 첨가했다.
“그래도 일단은 저 튀어나온 부분들이 불편할 거니, 그건 제거해 줄 생각이야.”
“후, 그렇군요. 그래도 저 녀석이 유니콘이라 지금 살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유니콘?”
헤인켈의 말에 나는 녀석을 다시 살폈다. 그러고 보니, 이마에 야트막하게 튀어나온 혹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예, 신수이지요. 아직 어미 유니콘과 함께 지낼 나인데, 어미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건 그렇다. 나는 망아지, 아니 새끼 유니콘에게 물었다.
-네 엄마는 어딨니?
[……히이잉, 어…… 엄마.]새끼 유니콘은 엄마라는 말에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안하다. 내가 괜히 물었구나.
나는 우는 유니콘을 다독여 주면서 산 전체 동물들에게 물었다.
-나 드루이드가 너희들에게 묻겠다. 이 산에서 유니콘을 본 녀석들이 있는가? 있다면 대답하라. 지금 내 옆에 새끼 유니콘이 어미를 잃어버렸다.
잠시 산에서 온갖 동물들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였다.
팅거와 벨라 역시 귀를 쫑긋하며 소음에 집중했다.
동물들의 제보를 정리하면 이러했다.
이 산에 유니콘이 네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세 마리가 잡혀갔다. 내 앞에 있는 이 새끼 유니콘은 죽은 거로 생각해, 그냥 버리고 갔다.
“아무래도 잡혀간 거 같군.”
“신수 전문 밀렵꾼이 잡아갔을 겁니다.”
“밀렵꾼?”
여기도 그런 놈들이 있나?
“아주 큰돈을 버니까요.”
“심각하군. 일단 그 문제는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저 녀석 치료부터 하자.”
잠시 후, 세이건이 일어나더니 까무러치게 놀랐다. 유니콘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지금 저 유니콘의 상태를 보고 놀란 거였다.
나는 유니콘에게 마취약을 먹여 재운 후, 튀어나온 화살 부분만 잘랐다.
그것만으로도 편해졌는지, 마취에서 깨어난 유니콘은 방방 뛰며 좋아했다.
[조하! 조하!]그런 유니콘을 바라보며 세이건은 나머지 화살은 어떡하냐며 걱정했다.
“공자님,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저러고는 오래 살 수는 없을 거 아녜요?”
“그렇지. 나머지도 제거해 주면 좋은데, 여기서는 힘들어. 데리고 가서 수술해 주고 싶은데.”
나는 유니콘에게 물었다.
-너, 우리 따라갈래?
[조아!, 조하요! 델꼬 가 주세요!]-그래.
그건 그렇고, 유니콘을 잡아간 놈들이 누군지 조사를 해 봐야겠군.
아무래도 마신과 관련된 놈들 같단 말이지.
우리는 그 후로는 별다른 문제없이 율리시즈 영지로 날아갈 수 있었다.
나는 유니콘 이름을 스노우에서 따서 스우라고 지었다.
스우는 다행히도 하늘을 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가벨로 등에 얌전히 앉아서 비행을 즐겼다.
“후, 내일쯤이면 도착하겠군.”
귀향길이 이런 건가, 이제는 고향이 되어버린 율리시즈 영지가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 * *
한편, 마커스 일행보다 먼저 율리시즈 영지에 도착한 제피크 마법사들은 어떤 건물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바라봤다.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이 내려다보였다. 바로 율리시즈 영지의 번화가 바트롱가 광장이었다.
“흐음, 저기서 노면마차 개통식인가 뭔가를 한다고 했지? 지금도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그때는 엄청나겠군.”
아래를 내려다보는 블록은 신이 난 표정이었다.
“이번엔 실수하면 안 돼요, 아시죠?”
세니아가 블록에게 톡 쏘아붙였다.
“내가 무슨. 그때 한번 실수한 거 가지고 진짜!”
“흥.”
“자자, 두 사람. 진정하고. 계획을 세워 보자고.”
칼레이가 두 사람을 다독거리며 앞으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