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e Lord's operation RAW novel - chapter (1)
성종은 붕어 직전이기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나는 성종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슬픈 눈으로 내일이 없는 아버지를 내려보고 있다.
딱 눈물 한 방울만큼 흘릴 정도로 슬프다.
딱 그 정도다.
사실 오늘을 기다렸다고 해야 할까?
왕이 죽으면 왕이 될 남자!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 앞에는 조선 9대 임금이 마지막 밤을 버티고 있다.
내일이면 아버지의 조선은 끝나고.
나의 조선이 시작될 된다.
성군이라고 칭송받은 조선의 9대 임금.
‘과연 성종이 성군이었나?’
내 아버지인 성종은 정희왕후와 훈구파들에 의해서 왕으로 추대된 인물로 월산대군을 뛰어넘어 왕이 됐기에 정치적 입지가 좁았다.
정희왕후와 훈구파에게 저자세로 일관했으니 친정을 시작하면서 태종과 세조에게 숙청당했던 사림파를 중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기는 했었다.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한 정도가 업적인데 계비 윤 씨 그러니까 내 어머니를 폐출했는데 3명의 왕비와 9명의 후궁을 두었다.
‘그리고.’
야사이기는 해도 어우동과 추문이 있었던 호색이기도 했다.
‘그래도 성군일까?’
아니다.
강한 조선을 만들지 못했다.
물론 적장자가 아니기에 입지가 좁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나처럼 직접 왕이 될 존재가 아니고.’
추대되었기에 힘을 가질 수가 없었고.
훈구파 공신들에게 휘둘리기만 했었다. 그러면서도 훈구파의 권세를 밀어내보려고 사림파를 등용했지만, 그 역시 조선의 개혁을 이루지는 못했다.
하여튼 옆으로는 아들의 죽음 직전의 상황을 비통해하는 할머니, 인수대비가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고.
이제는 과부가 되실 정현왕후께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떨고 있고 그의 품에 안긴 이복동생 진성대군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자기를 볼 때마다 놀아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세자, 성군이···. 성군이 되거라.”
거친 숨을 몰아쉬는 상태에도 아버지이신 성종께서는 내게 성군이 되라고 하신다.
‘자신도 못 해본 것을.’
아버지는 아들인 내게 죽음 직전에 강요하고 있다.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왜?
나의 이름은 융, 훗날 사람들은 나를 폭군 연산이라고 부르게 되니까.
‘젠장, 하필이면, 왜 연산이야?’
태종도 있고.
세종도 있고
아니면 벽에 똥칠할 정도로 살았던 영조도 있는데 말이다.
사실 나는 그들의 삶을 다 기억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눈을 떠보니 현대가 아닌 과거 조선인 걸 알았고.
신분제도가 철저한 조선에서 백정의 자식으로 광대의 자식으로 또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어디겠는가.
모두가 나를 원자 아기씨라고 불렀는데 아버지인 성종께서는 나를 융이라 부르셨다.
그때 알았지.
내가 연산이 될 녀석이라는 것을.
하여튼 8살이 되고 세자로 책봉이 될 때까지 미치고 환장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한문을 왜 배우는지?’
세종대왕께서 만들어 놓으신 한글이 쉬운데 죽을 글자인 한자로 된 책을 읽고 군주의 덕목을 배우고 익히라고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래도 참았다.
왜?
달리 반항할 방법이 없으니까.
‘거기다가.’
세종대왕께서는 한글을 반포할 때 어린 백성이 쓰라고 했다.
어린 백성?
어리석은 백성이라는 뜻이니 어리지 않은 사대부와 왕족은 한문을 쓰라는 소리고.
그저 세종께선 자신을 훌륭한 성리학자로 생각했기에 한글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이게 뭔 소리냐고?
예외 없이 나는 한문을 써야 한다는 것.
이 시대에서 한문은 힘이고 권력이며 그걸 지탱하는 도구다.
‘연산군으로 살면?’
혈기 왕성한 31살에 폐위된 후에 독살당한다.
그렇게는 죽고 싶지는 않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내게 힘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이제 내일이 오면 나의 시대가 열린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울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겉으로는 울고 속으로는 웃을 것 같다.
“세자···!”
죽어가는 시선으로도 성종은 어린 진성과 젊은 후처만 바라보다가 무엇인가 걱정이 된 듯 나를 불렀다.
“예, 아바마마.”
담담하고 담백할 수밖에 없는 대답.
원자 때부터 아버지인 성종을 자주 보지도 못했고.
세자가 된 후에도 내게는 차갑기만 했던 아버지셨다.
‘이해는 된다.’
내 어머니가 폐비 윤 씨이니까.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인 성종은 폐비 윤 씨가 떠올랐을 거다.
“이젠 허튼짓 말고 성군이 되어 주시게. 진성에게도 좋은 형이 되어 주고.”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내게 말하는 아버지시다.
성종께는 16남 12녀가 있는데 그들 중에서 오직 진성만 챙기고 있다.
나머지 자식들은 다 필요 없다는 듯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허튼짓 말고?’
내가 진행하는 일들을 아버지께서 안다는 거?
[What is your name?]내가 어릴 때 가장 엉뚱했고.
성종의 눈에 허튼짓으로 보인 건 현대인의 영혼이 있기에 동궁전에 배치된 환관이나 장 교위에게 영어를 가르쳤다는 거다.
왜?
작금의 조선에서 영어는 남이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내가 편한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암호 같은 거니까.
또 나의 허튼짓이 어디까지 보고되는지 알고 싶었고.
누가 보고하고 또 누가 나와 맺은 비밀을 함구하는지 궁금했다.
‘내시 둘과 장 교위.’
이 둘은 나의 허튼짓을 함구했고.
나머지들은 인수대비와 성종에게 보고했는데 함구한 그들이 이제 내 수족이 된 상태다.
‘그 후에 나는 사냥을 즐겼다.’
사냥을 즐기려면 사냥꾼도 있어야 하고.
몰이꾼도 있어야 한다.
사냥을 즐긴 목적은 사병을 양성하기 위함이다.
조선 왕실의 권위가 높고 왕권 역시 최고조인 지금, 왕실의 적장자인 내게 아무도 모르는 사병이 필요한 이유는 내가 하려는 모든 일들이 사대부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라 어느 순간이 되면 힘으로 눌러버리기 위함이었다.
그래.
아버지이신 성종께서 보시기에 조선을 강하게 만들 나의 준비들은 허튼짓이리라.
‘그래서 나를 달가워하지 않은 거였나?’
폐위된 어머니도 한몫했겠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아버지인 성종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저는 다 압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어쩌면 지금 진짜 연산의 분노가 이입된 것 같다.
“뭐, 무엇을 안, 안다는 것이냐?”
성종은 꺼져가는 촛불이었는데 내 말을 듣고 힘을 낸 듯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두려움을 느낄 때 인간은 한없이 초라해지지만.
또 강한 힘을 발휘한단다.
그리고 아버지 성종의 강한 힘은 삶을 끈을 부여잡는 것 같다.
“어마마마께서 어찌 돌아가셨는지 압니다.”
내 말에 성종은 놀란 듯 눈이 커졌다.
‘나도 한 성질 하지.’
내가 진짜 연산군이 아니라도 성격대로라면 갑자사화든 뭐든 바로 저질러버리고 싶다.
그러면 훗날 연산군 되는 거고.
‘하여튼 정이라고는 없지.’
나의 영혼이 현대인의 영혼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이신 성종께서는 자기 손으로 내 어머니인 윤 씨를 폐위했기에 나도 미웠는지 그리 살갑게 돌보지 않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후궁이 많았던 아버지셨고.
어쩌면 내 어머니는 못된 시어머니와 간사한 첩들 때문에 더 표독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몸의 어머니인 폐비 윤 씨에게도 정이라고는 있을 수 없다.
“세, 세자.”
아버지 성종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마 지금 마음속으로도 내가 아버지를 성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역사를 알기에 가능한 일일 거다.
왜?
성종은 묘호이니까.
“그래도 잊을 겁니다.”
복수는 부질없는 것이라고.
허망한 것이라고 말할 거다.
마음을 숨기고 그렇게 말할 거다.
일단은!
‘어린 세자 때부터 준비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왕권이 강하다고 해도.’
왕실의 최고 어른인 인수대비의 협조가 있어야 내가 하려는 모든 일들을 수월하게 할 수 있으니까.
고부갈등!
원래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사이가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힘을 가지면?
복수는 당연한 거고 원수는 갈아 마신다.
“…….”
“성군은 어려워도 명군은 되어보지요.”
조금 전까지 놀랐던 성종께서 마지막 생기를 불태우시며 내 손을 꼭 잡으셨다.
그리고 미안한 듯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스르륵 눈을 감았고.
잡았던 손도 힘이 풀렸다.
‘내가 이제 조선의 임금이다!’
그냥 인생 확 즐기고 살까?
연산처럼?
짧고 굵게 또 화끈하게?
인생은 마초인 연산처럼?
그러다가 폐위당해서 독살까지 당하고.
진짜 연산군이 가는 길이 그런 길임을 알면서도 답습한다면 내가 사이코패스인 거지.
그러니 다른 길로 가보련다.
‘선만 지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문제가 될 건 없으리라.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성종의 적장자이니.
누구도 내게 반기를 들거나 부정할 수 없다.
‘진성이 열셋쯤 됐으면 어땠을까?’
폐비 윤 씨의 아들인 내가 못마땅한 인수대비는 성종의 적장자인 나를 밟고 진성을 보위에 올렸을까?
‘자기가 폐비 윤 씨에게 한 짓이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조선은 명분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실리 없는 세상!
인수대비라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명분 없는 자가 왕이 되면?’
조선은 신하의 나라로 또 공신들의 나라로 전락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왕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쉽게 가느냐?
어렵게 가느냐의 문제일 거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역사를 좀 안다는 거다.
한마디로 역사를 아는 공돌이 출신!
이거 뭐 될 거 같지.
지금은 왕권이 가장 강한 시대!
조선을 바꿀 마지막 기회가 내게 온 거다.
‘아버지의 죽음이 기쁠 수 있나?’
왕이 될 자라면 아버지의 죽음이 기쁘지는 않아도 기다려질 거다.
왕이 될 남자!
폭군이 되고 악마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자라면 또 기쁠지도 모르지.
그게···.
나다.
*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