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e Lord's operation RAW novel - chapter (108)
ⓒ 흑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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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전 회의장.
“누구인가?”
나는 제대로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대사헌 권오복에게 다시 물었다.
“낙향한 유순정입니다.”
“유순정?”
“예, 그렇사옵니다. 유순정은 어린 종을 함부로 겁탈하였고 그 종이 임신하자 매질하여 낙태시켰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데?”
슬쩍 유순정의 편을 들었다.
“하오나 낙태한 어린 종이 끝내 죽었고 노비가 죽게 되면 조사하게 되어 있나이다.”
“그런가?”
“예, 그렇사옵니다. 사대부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짓을 한 유순정을 벌하셔야 합니다.”
“꼭 벌해야 하나?”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자 조정 신료들은 웬일이냐는 표정이다.
“예, 그렇사옵니다. 사대부가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이유와 명분은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때문인데 외척이라고 해서 조선의 백성을 함부로 죽게 만든다면 어느 백성이 사대부를 따르겠나이까.”
“잠깐.”
“예, 전하.”
“대사헌은 노비도 조선의 백성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옳다. 노비도 조선의 백성이다.”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조정 신료들은 일이 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것 같다.
“전하, 낙향한 유순정을 귀양을 보내시어 본을 보이소서.”
이조판서가 최대한 빨리 이 사건을 마무리하겠다는 눈빛으로 내게 고했다.
“이조판서도 그리 생각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대부로서 또 외척으로 본을 보여야 하는데 어린 노비를 희롱하고 또 낙태까지 시켜서 죽게 만든 죄가 크옵니다. 그러니 귀양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할 것 같소.”
하지만 유순정은 귀양을 갈 수가 없다.
왜?
모두가 낙향한 줄 알고 있지만 이미 유순정과 그의 아들의 뼈도 승냥이들에 의해서 똥이 됐을 거니까.
‘나중에 장계로 올라오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사헌을 봤다.
“북녘 갑산으로 귀양을 보내셔야 합니다.”
공조판서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이조판서처럼 수습해야겠다는 의도로 내게 말했다.
‘갑산이면?’
삼수갑산을 말한다.
조선에서 최고의 귀양지를 꼽으라면 삼수갑산일 거다.
“잠깐.”
내가 말하자 조정 신료들은 모두 인상을 찡그렸다.
“대사헌.”
“예, 전하.”
“죽은 어린 노비에게는 부모도 없소?”
“있습니다.”
“부모가 있는데 주인에게 겁탈당하고 낙태를 위해서 매를 맞고 애가 떨어지고 산모까지 죽었는데 지금까지 왜 고변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요?”
이것이 진짜 이번 대전 회의의 목적이다.
“전하, 경국대전에 의하면 노비는 그 어떤 경우에도 주인을 고발할 수 없나이다.”
“그게 조선의 법이오?”
“예, 그렇사옵니다. 주인을 고발하는 노비는 참형에 처하게 되어 있나이다.”
“그렇구려, 형조판서.”
“예, 전하.”
“형조판서는 딸을 무척이나 아끼는 아비로 알고 있는데 그대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소?”
“노신이라면···. 노신이라면···.”
조선에서 최고의 딸바보는 형조판서다.
“그렇소, 형조판서라면 어떻게 하시겠소?”
“전하, 달걀로 바위를 치는 형국이겠지만 저는 고발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게 부모지요. 그런데 부모가 그럴 수 없게 만든 것은 경국대전이 잘못된 겁니까?”
처음에는 대사헌에 이 임무를 주려고 했었다.
“경국대전은 올바릅니다.”
“왜요?”
“악법도 법입니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소크라테스가 떠오르겠지만 소크라테스는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망할 쪽바리들.’
일본 놈들이 조선인을 쉽게 통치하려고 만든 거짓이다. 하지만 나는 악법도 법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이용할 생각이다.
‘그대로 돌려준다.’
물론 한참 후겠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하오나 법을 바꾸는 것은 전하의 권리이십니다.”
대사헌이 할 일을 형조판서가 했다.
“그렇소?”
“예, 그렇습니다.”
“알겠소.”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조정 신료들을 봤고.
이제는 의회파라고 할 수 있는 이조판서와 공조판서가 또 당했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내게 어느 아비가 말하기를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고 했소.”
어젯밤에 형조판서가 내게 했던 말이고.
내가 자기가 한 말을 조정 회의에서 인용하자 형조판서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여식이 그렇게 참담하게 살해되는 일을 보고도 노비라서 고발하지 못하는 법이 조선의 법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우니 과인은 경국대전을 또 한 번 고쳐야겠소.”
“전하, 법을 함부로 바꾸시면 아니 됩니다.”
형조판서가 가만히 있는데 이조판서가 나섰다.
“함부로 바꾸는 겁니까?”
“그렇사옵니다.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게 되면 강상의 도가 무너집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이조판서는 이일은 꼭 막아야겠다는 눈빛이다.
“강상의 도?”
“예, 그렇습니다.”
“그 강상의 도는 왜 노비만 지켜야 합니까? 강상의 도리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조선의 근간인 사대부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하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주상 전하. 노비들이 주인을 고발하게 되면 수많은 무고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런 무고는 사헌부와 한성부 그리고 포도정이 가려내면 될 것이오.”
“전하!”
“혹시 이조판서께서도 어린 종을 희롱하셨소?”
“아, 아닙니다.”
“선비의 도리를 지키고 사대부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양반들은 법이 바뀌어도 두렵지 않을 것이오, 법을 두려워하는 자는 오직 죄인들 뿐이니까. 도승지는 들으라.”
“예, 전하.”
“오늘 이후에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면 참형에 처하는 법을 폐지한다. 노비도 과인의 백성이기에 억울함이 없게 만들고자 함이니 최대한 빨리 계몽하여 억울한 나의 백성이 없게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또한 낙향한 죄인은 한양으로 압송하여 의금부에서 조사하고 죄가 밝혀지면 삼수갑산으로 귀양을 보낼 것이다.”
물론 귀양을 갈 수 없다.
이미 죽었으니까.
‘그 인간의 가산도 몰수하겠네. 하하하!’
또 하나를 개혁하는 순간이다.
“바로 실행하겠나이다.”
“신료 중에 내게 더 고할 것이 있는 신료가 있소?”
내 물음에 모두가 눈치만 살폈다.
“없는 모양이니 오늘 대전 회의는 이것으로 끝냅시다.”
나는 바로 옥좌에서 일어났고.
신료들이 모두 허리를 숙였다.
* * *
임금 융이 나가버린 대전 안.
“형조판서.”
이조판서가 형조판서를 노려보며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이조판서 대감.”
“미치셨소?”
“내가 미친 것 같소?”
“노비들이 이제 주인을 고변하게 됐소, 그렇게 되면 이곳에 있는 신료 중에 누가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소. 전하에 밀명을 받은 대사헌이 신료를 이유 불문하고 탄핵할 것이고 훈구파 공신들은 탄핵할 것이니 다시 사림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올 것인데 형조판서께서 미치지 않고서는 그러실 수 있소?”
이조판서는 너무 화가 나서 대사헌 권오복이 있고 영의정이 있는 상태에서도 형조판서를 보며 소리쳤다.
“으음!”
형조판서는 침묵했다.
“대사헌은 속으로 웃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번 일이 대사헌에도 해당할 날이 올 것이오. 훈구파와 사림파를 구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모르시오.”
“불똥이 이렇게 튈 줄은 몰랐소이다.”
“정말 몰랐소?”
“몰랐소이다.”
“형조판서는 참으로 딱합니다. 딱해요. 입궁하시다가 넘어지셔서 머리를 다치셨는데 그것 때문에 미친 것 같소.”
조선의 신료가 이렇게 다른 신료를 공식 석상에서 비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게요, 머리가 깨지니 정신이 번쩍 났소.”
형조판서의 말에 이조와 공조판서가 인상을 찡그렸다.
“형조판서께서는 그냥 입궁하다가 넘어지신 것이 아니지요?”
공조판서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맞소. 다리가 부실하여 넘어졌소.”
“그리 부실하시면 이참에 낙향하시오.”
“낙향도 좋지만 그게 어디 나의 뜻대로 되는 조선이오, 전하가 허락하셔야 되는 일이지.”
형조판서는 왜 그렇게 전임 영의정 노사신이 낙향하려고 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딸년만 없으면 그냥 낙향하겠는데, 으음!’
귀인 안 씨 때문에 낙향도 할 수 없는 형조판서였다.
하여튼 조선의 법이 또 하나가 변했다.
* * *
김 생원의 집 사랑채.
“그런데 아버지, 사돈어른께서 가만히 있을까요?”
김 생원의 아들이 자기 아비에게 물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열녀문이 서면 우리만 덕을 보나? 자기도 덕을 보지.”
김 생원이 사악하게 웃었다.
“그렇기는 합니다.”
“백번 죽여도 마땅한 계집이잖아.”
사악하게 웃던 김 생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예?”
“너는 몰라도 된다. 고마운 며느리이니 그냥 묻고 가야겠다.”
김 생원의 아들은 자기 아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 * *
유구국 박충선의 상단 건물 안.
박충선은 오랫동안 유구국에 머물고 있었고 명나라에서 잡아 온 미녀 노예들을 보고 있었다.
[명나라인들을 나는 한족이라 부를 것이다.]박충선은 임금 융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족 계집들은 다리가 길군.”
박충선은 유구국에 유곽을 세운 상태고.
왜에도 유곽을 설치해서 막대한 재물을 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젖이 작은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다리가 길어서 미끈하기는 합니다.”
“저 계집은 사내의 손을 탔나?”
덜덜 떨고 있는 한족 계집 중에서 군계일학을 발견한 박충선은 유곽 관리를 맡을 부하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물론 고향에서 손을 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절색이다.”
“그렇사옵니다.”
“유구국의 왕이 어린 계집을 즐기니 그에게 선물해야겠다.”
다시 말해서 한족 계집은 남자를 상대하기 아직 어리다는 거였다.
“저 계집에게 형제나 자매가 있나?”
“잡혀 올 때 어린 여동생이 둘이 같이 잡혀 왔습니다.”
유곽 책임자의 말에 박충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너무 어려서 유곽에는 두지 않았습니다.”
“잘 됐군, 나라를 망치는 존재가 저런 절색의 계집이지, 하하하!”
작업이 들어가는 순간이다.
“저 계집을 데리고 와라.”
박충선의 지시에 다리가 미끈한 한족 계집이 박충선 앞에 섰다.
“네 이름이 뭐냐?”
박충선은 명나라 말로 물었고 박충선이 명나라 말로 자기에게 물었기에 한족 계집은 놀랐다.
“판빙빙입니다.”
눈치를 보며 한족 계집이 대답했다.
“너의 이름은 이제 달기다.”
“예?”
“네게 어린 동생 둘이 있다고 들었다. 네가 내가 시키는 일을 잘하면 네 어린 동생 둘은 유구국의 거친 사내를 상대하지 않게 해줄 거다.”
말을 듣지 않으면 창부로 바로 만들겠다고 협박하는 거였다.
“정, 정말입니까?”
“그러니 나랑 거래하겠느냐?”
신하는 주인을 닮아가는 법이다.
“싫다면 네 어린 동생들은 오늘부터 거친 유구국 놈들을 상대해야 할 거다.”
협박까지 찰지게 하는 박충선이다.
“뭐든 시키는 다하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언니지.”
그런데 분명 박충선은 한족 계집의 이름을 달기라고 다시 지어줬다.
나라를 망처 먹은 중국의 요부 중 하나가 달기였다.
“이봐.”
“예, 단주.”
“씻겨서 내 방으로 넣어.”
박충선도 남자였다.
*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