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e Lord's operation RAW novel - chapter (21)
ⓒ 흑곰작가
=======================================
****
악덕 군주 연산! -21화
이틀 후, 훈구파 영의정의 사가 사랑채.
“주상께서 일주일 후에 대전 앞마당에서 연회를 베푸시겠다고?”
노사신은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상선 김처선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대감.”
“왜 갑자기?”
“주상께서 영의정께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뭐라고?”
“깨우치고 뉘우칠 기회는 한 번은 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랬단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한 번 참겠다고 공표했으니 행동할 때는 거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상께서 명분을 쌓겠다는 거군요.”
“그리 생각되실 수도 있습니다.”
“바로 탁영 대감의 사가로 가실 건가?”
탁영은 김일손의 호다.
“예, 그렇습니다.”
“주상께서는 나보고 나서라는 거요?”
“주상께서 전하시기를 소나무 근처에는 소나무만 자란다고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무오사화가 일어났을 때 영의정은 그래도 사림파를 살리기 위해서 꽤 많이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으음!”
바로 신음을 터트리는 영의정이었다.
“그러면 쇤네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상선.”
“예, 영의정 대감.”
“혹여 주상께서 모후에 관해서 말씀이 없으셨소?”
“영의정 대감, 저의 혀는 주상 전하의 뜻만 전하는 혀입니다. 그 외에 혀를 놀리면 제가 스스로 잘라내야 할 혀이지 않겠습니까.”
사내의 그것이 없다고 해서 사내가 아닌 것이 아니고.
또 충신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거였다.
“아, 상선, 상선께서는 왜 그리 주상을 따르는 겁니까?”
“조선 건국 이후에 환관이 어디 사람 취급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요?”
“주상께서 가라사대 환관도 충신이 될 수 있고, 실록에 충신으로 기록될 수 있다고 하셨나이다.”
실록을 편찬하고 기록하는 자들은 사대부다.
그러니 사대부가 아닌 자들의 업적을 기록할 때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 위험한 말씀이군요.”
영의정은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사대부가 아닌 자들이 업적 그대로 실록에 기록된다는 건 사대부의 힘이 그만큼 약화한다는 뜻이기에 영의정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 * *
사림파 김일손의 사가 사랑채.
영의정 노사신의 사택을 방문했던 상선 김처선은 바로 사림파의 거두 김일손의 사가로 왔다.
“주상께서 궁궐에 사당패를 불러서 노시겠다고?”
사림의 거두 중 한 명이 김일손이 인상을 구겼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자는 환관 김처선이고.
그는 내시였으나 충신 중 하나였고.
역사적으로는 연산군과는 악연이며 연산군에 의해서 다리가 부러지고 또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는데 죽는 그 순간까지도 직언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강직한 인물이었다.
그런 품성을 가진 인물이라면 지금의 임금 융과는 어찌 지낼까?
“예, 그렇사옵니다. 주상 전하께서 연회를 베푸시며 신하들과 하루를 즐기시겠다고 하셨나이다.”
“왜, 기생은 부르지 않았나?”
시림의 거두 김일손은 뭐든 조선 임금 융에 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의 말에 내시 김처선이 인상을 구겼다.
‘씨는 못 속인다.’
폐비 윤 씨의 소생인 임금 융이 언제 폐비 윤 씨 사사 문제를 들고나올지도 모르니 불안감에서 나온 행동이리라.
[주상께서 훈구파와 더 가까워지신 것 같습니다.]사림파 선비 하나가 자기에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주상이 간신배들과 어울리니 조선에 주자의 도가 무너지는 거다.]“주상 전하께서 내일 모든 업무를 잠시 미루고 신료들의 노고를 위로하신다고 했습니다.”
“알겠네, 또 무슨 기행을 일삼으시려고, 쯧쯧!”
사림파의 거두 김일손에게 조선의 임금 융이 하는 모든 업적은 기행에 불과했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양반을 중시하는 조선에서 잡기를 다루는 대장장이를 우대하고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서 전국에 저수지 200개를 왕실 내탕고의 재물로 만들었으며, 한양에 사사로이 장사할 수 있는 시전을 다섯 개나 개설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내의원 의원들에게 의원 양성 학교를 설립하라고 지시했고 바로 실행에 옮겨졌는데 유학 말고는 모든 학문과 기술을 잡학으로 치부하는 유교 탈레반인 김일손은 그 자체가 성리학을 배척한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한마디로 사림의 거두 김일손은 그냥 조선의 임금 융이 싫은 거다.
“소인 김처선이 탁영 대감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탁영은 김일손의 호였다.
“말해 보시게, 상선.”
“소인이 탁영 대감을 뵐 때마다 소나무를 떠올립니다.”
“소나무?”
“그렇습니다.”
“허허, 왜 그런가?”
“항상 푸르시고, 강직하니 그리 떠올렸습니다.”
“그렇소?”
“예, 그렇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환관 김처선이 머리를 숙인 후에 돌아서서 김일손의 사가 대문을 나왔다.
“상선 영감, 왜 김일손 대감께 소나무 같다고 하셨습니까?”
조선의 임금 융은 환관 김처선에게 갑사 무사 셋을 호위로 붙여줬다. 물론 내시부에도 무장한 내시 출신 무사들이 존재했지만, 그들과 함께 자기 일을 돕는 김처선을 보호하게 했다.
“소나무이니까요.”
“예?”
“소나무 주변에는 소나무만 있지요.”
환관 김처선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소나무는 자기만 독야청청하려고 주변의 다른 나무와 풀을 다 죽이지요. 그러니 탁영 대감은 소나무이지요.”
갑사 부대 군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충고인지 알아먹어야 할 건데, 쯧쯧!’
환관 김처선은 김일손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주상전하, 산이 되려면 떡갈나무도 있어야 하고, 밤나무도 있어야 하고 소나무도 있어야 합니다.]환관 김처선은 밤에 주상에게 했던 말을 떠올랐다.
[옳은 말씀이오.] [작금의 조선이 산이라면 모두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이까?] [그렇소, 그런데 상선.] [예, 주상 전하.] [곰곰이 생각해 보시오, 소나무가 자라는 솔 산에 다른 나무가 있는지? 모든 나무가 조선의 사대부라면 풀은 조선의 백성일 것인데, 소나무 말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곳이 바로 솔밭이고 솔 산이오. 아시겠소.] [아!]김처선은 어제 조선의 임금인 융이 사림을 소나무로 정했으니 곧 결단을 내릴 것이라 확신했다.
* * *
유자광의 사택 사랑채.
조선은 겉으로는 태평성대처럼 평온해 보이지만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 상당했는데 그걸 누르고 있는 존재가 임금 융이었다. 그리고 조선이 태평성대처럼 보이는 이유는 임금 융이 만든 20여 곳의 서해 염전과, 가뭄과 홍수의 대비는 물론이고 농사를 지을 농업용수까지 충분히 비축한 전국 200개에 달하는 저수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임금 융은 전국에 2,000개가 넘는 저수지를 생각하고 있고.
그 저수지 이후에는 상수도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이극돈 대감께서 김일손에게 부탁했는데 거절했다?”
이극돈은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의 아들이었고.
영의정을 지낸 이극배의 동생으로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로 유자광에 의해 지목되어 사림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된 훈구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신진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림파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사초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수정해 줄 것을 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극돈 대감이 눈에 불을 켜고 이걸 찾아냈다고? 하하하!”
유자광은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면 사림을 쓸어버릴 수 있다. 하하하!’
유자광 역시 사림파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예, 그렇답니다. 김종직이 누구입니까? 김일손의 스승이지 않습니까.”
밀고자도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유자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의 실제 내용은 항우에게 살해되었던 초회와의 사례로 세조 대왕께서 거병한 것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세조의 거병?
그건 계유정난이었다.
김종직이 세조를 조롱하는 것은 세조의 증손자인 임금 융을 조롱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그냥 묵과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래서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법이다.
“주상께서 사림파를 눈엣가시로 보시지. 으흐흐!”
올해는 무오년.
드디어 무오사화가 촉발되기 직전인데 조선의 임금 융도 따로 준비한 것이 있으니 이 둘이 합쳐지면 역사에 기록된 무오사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 * *
대궐 대전 임금 융의 서재 전각.
“왜인 충선이 대마도로 떠난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도승지가 내게 말했다. 내가 조선의 임금으로 즉위한 지 2년이 지난 상태에서 이제 조선은 농업만을 장려하는 국가에서 상업도 천대하지 않는 국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사림파를 비롯한 성균관 유생들과 지방 선비로 불리는 놈들이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말이다.
‘상업이 활성화가 되어야.’
농업에서 증산이 이루어지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공업도 진행할 수 있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기가 맞지 않아.”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인상을 구겼다.
‘1498년 포르투갈이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지.’
여기까지는 시기가 비슷하다. 그런 후에 포르투갈 범선이 항해하다가 난파되어 일본에 표류하게 된다는 사실이 내가 가진 역사 지식이다.
“예?”
내 말의 뜻을 알아차릴 수 없는 도승지가 되물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일본 열도로 간 충선이 천운을 얻지 못하면 양인의 코는 보지도 못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