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e Lord's operation RAW novel - chapter (55)
ⓒ 흑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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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대전 회의장.
드디어 황제의 칙사가 도성에 도착해서 내 앞에 거만하게 서 있다.
“칙사,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보통 조선 임금은 명나라 칙사가 조선에 오면 사대문 밖까지 나가서 마중한다. 그러니 명나라 황제의 칙사도 조선에 오기 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거다.
그래서 내 앞에 거만히 서 있는 명나라 황제의 칙사가 불쾌한 표정인 거다.
‘그럴 수는 없지.’
그래서 잔꾀를 냈다.
아마 명나라 황제가 보낸 사신은 내가 사대문 밖까지 마중 나오지 않은 것을 속으로는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나는 왕이다. 망할 놈아!’
최소한 명나라 황제가 직접 와야 마중을 나가는 것이 맞다.
자꾸 엎드리고 굽실거리면 망해가는 명나라의 기만 살려주는 꼴이니까.
“아닙니다. 전하. 제가 듣기로 조선은 길이 좁고 정비가 되지 않아서 여정이 험하다고 들었는데 직접 와보니 꼭 그렇지는 않기에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도로를 정비한 것을 봤다는 거다.
“그렇소?”
“예, 그렇습니다. 전하, 저는 황제 폐하의 칙사로 이제 전하께 황제 폐하의 칙령을 전하겠습니다.”
명나라 칙사가 내게 말했다.
‘일어나라고?’
공손히 칙령을 들으라고?
지금의 명나라가 그 정도로 강력한가?
사실 토목의 변 이후로 명나라의 국운은 꺾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하고 있다. 그러니 명나라는 조선이 그 어느 주변국보다 예쁠 수밖에 없으리라.
“칙사, 과인이 며칠 전에 낙마하여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으니 이해하시오.”
대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마음은 공손히 황제 폐하의 칙서를 새길 것이니 이해하시오.”
나는 칙사를 보며 웃었다.
[명나라 사신단 중 일부가 서해안을 살폈다고 합니다.] [서해 해안을 살폈다?] [예, 그렇사옵니다. 또한 의주부터 시작해서 평양까지 오는 동안 조선 산천의 수목을 살핀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해안 지형을 살피고 수목을 살폈다면 군선 건조의 여력을 확인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나이다.] [그리고?] [과거 고려 때 원나라의 요구로 열도 정벌 준비에 관해서 확인했다고 합니다.] [하하하, 그렇단 말이지.]명나라는 왜구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그걸 해결하려고 명나라 황제가 칙사를 조선에 보낸 것 같다.
“알겠습니다.”
명나라 황제의 칙사가 내게 짧게 말하고 명나라 황제의 칙령이 적힌 두루마리를 조심히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저걸 두만강 이북에서 썰어, 말아?’
곱게 굴면 살아 돌아갈 것이고.
아니면?
명분을 만들어줄 죽음을 선물할 생각이다.
* * *
대마도 도주의 성.
“왜관이 폐쇄된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왜 아무런 움직임도 없지?”
대마도 도주는 왜관을 폐쇄하고 섬에 새로운 왜관을 설치한다고 통보받았을 때부터 조선이 대마도를 정벌할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조선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기에 더 불안했다.
“첩자도 색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더 불안해.”
대마도 도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조선에 보낸 사신이 부산포에 당도했을 겁니다.”
“일단 조선에 빌고 또 빌어야지.”
전쟁이 일어나면 식량이 부족한 대마도가 제일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대마도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마도 도주는 힘을 잃은 막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사실 이것이 대마도가 처해 있는 정치적 또 지리적 현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대마도는 일본 본토보다 조선과 더 가깝기에 조선이 강해지면 대마도는 당연히 조선의 땅이 될 수밖에 없었다.
* * *
대마도 해안가 숲속.
“이곳이 과거 대마도 정벌 때 대마도 군이 방어선을 펼친 곳입니다.”
조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였지만 이미 대마도에 정찰병은 은밀히 침투한 상태였다.
그리고 남벌군 사령부에 소속되어 있는 정찰병들은 대부분 박충선과 함께 귀순한 항왜인데 그들은 대마도나 일본 다이묘들에게 원한이 사무치는 존재들이었다.
정찰병 조장은 박충선이 자기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 주군.] [주군? 오랜만에 듣는군.]사실 박충선은 일본 본토 해안에 있던 작은 영지의 다이묘의 아들이었다.
[우리의 주군은 오직 임금이시다. 명심하게.] [예.]하여튼 정찰병이 은밀하게 대마도에 침투했다는 것은 임금 융이 진행하는 남벌의 시작점인 대마도 정벌이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군.”
“만약 남벌군이 저 해안에서 상륙하려고 군선을 접안 한다면 대마도 병력은 이곳에서 방어선을 펼칠 공산이 아주 큽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부하의 말에 정찰 부대 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과거란?
아마도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을 말할 걸 거다.
‘왕립 무기창에서 신무기를 개발했다고 했어.’
사실 조선 남벌군 정찰 부대는 왕립 무기창에서 만든 비격진천뢰를 매설해 놓을 곳을 찾고 있었다.
‘군선에서 신기전을 쏘고 이곳에 왜군이 방어선을 펼치면, 하하하!’
거기다가 조선은 최대한 많은 양의 신기전을 보유하기 위해서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신기전은 인류 최초의 다연장 로켓이니 엄청난 힘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상륙 작전을 수행할 조선군의 피해가 없을 것 같은 정찰 부대 조장이었다.
“돌아가세.”
임금 융의 남벌을 위한 최종 정찰까지 끝난 거다.
“예.”
하여튼 조선의 임금 융은 대마도 점령 작전을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 * *
조선의 대궐 대전.
“조선의 왕은 짐을 도와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와 주변 섬을 정벌하여 조선이 왜구에 침입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명나라 남부 해안에서 왜구의 피해가 극심해서 대마도를 조선이 치라고 칙서를 내리는 건데 조선군이 단독으로 대마도를 점령해서 왜구에게 피해당하지 말라는 개소리를 보냈다.
“참으로 황송한 일입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신하의 나라인 조선을 아끼십니다.”
신하의 나라?
조선이 사대하니 명나라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사대는 돈이 되지.’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면 명나라에서는 정말 고마워서 몇 배나 되는 하사품을 내리니까.
‘그래서 난.’
다른 선대 왕들보다 사실 명나라에 사신을 많이 파견했고.
조공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사치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몇 배나 되는 하사품인데 그게 사치품이라는 것이 함정인 거다.
물론 그 하사품들을 나는 박충선에게 넘겨 왜에 팔아서 실질적인 이득을 챙기긴 했다.
“그렇지요. 그런데 칙사.”
“예, 전하.”
“아시겠지만 조선은 물산이 부족하고 병사 양성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당장 야차처럼 드센 왜구를 단독으로 정벌하기 곤란하오.”
엄살을 부릴 때다.
“물산이 부족하여 군선을 바로 건조하기 곤란하니 어찌 빨리 황제 폐하의 칙령을 시행하겠습니까. 그게 과인은 참으로 안타깝소.”
이게 무슨 소리냐고?
돈 달라는 소리지.
“전하께서는 황제 폐하의 칙령을 거부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눈빛이 확 달라지는 명나라 사신이다.
‘눈깔에 먹물을 쪽 빨아버릴까?’
썰어?
사실 지금 조선이 버겁기는 해도 명나라를 선제공격 못할 정도는 아니다.
“거부라니, 하하하, 명나라 황제께서 내리신 은혜가 깊은데 과인이 어찌 거부할 수 있겠소.”
이럴 때는 웃으면 되는 거다.
“단지 여력이 없다고 칙사에게 과인이 말하는 것이오. 일들이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있소.”
“으음!”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황송하게 내리신 칙령이니 어떻게든 칙사와 과인이 현명하게 논의해서 해결책을 찾았으면 합니다. 칙사께서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칙사도 내가 돈 달라는 소리라는 것을 아는 눈빛이다.
“그리고 대마도가 작다고는 하나 쉽게 점령하여 정벌할 수 있는 섬이 아니고, 거병하면 군량미도 부족할 수밖에 없고 군선도 건조해야 하니 정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돈도 주고.
쌀도 주고.
군선도 내놓으라는 소리다.
“보신 듯 조선은 물산이 부족하니 조선 홀로 준비한다면 지금부터 10년 후쯤에야 대마도로 출병할 수 있을 것 같소.”
물론 내 요구를 명나라가 받아들일까?
‘만력제라며 되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할 때 선조는 조선 백성의 임금이기를 포기하고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고.
또 평양이 왜군에게 함락된 후 두렵기에 압록강을 넘어서 요동으로 도망치려고 했었다. 그래서 명나라에서는 선조의 행동을 보고 조선과 왜가 연합하여 명나라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오해했었다.
하여튼 그때의 선조는 조선 백성의 임금이 아니었는데.
명나라 황제인 만력제는 조선을 구원하는데 명나라의 국운을 걸 정도라서 어쩌면 만력제가 조선의 황제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 황제 중 유일하게 만력제에게는 제삿밥을 먹인다.
“으음!”
내 말에 칙사가 바로 신음을 토해냈다.
“그 10년의 준비 시간 동안 왜구들이 얼마나 조선에 침입해 노략질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과인이 듣기로 겁이 없는 왜구들이 명나라 해안까지 침범하여 노략질을 일삼기 시작했다는데 안타까운 일인 것 같소.”
“그렇기에 황제께서 전하께 칙령을 내리신 겁니다.”
“알고 있소, 과인은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칙령을 반드시 수행할 것이오, 그러니 칙사께서 내게 지혜를 내어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소.”
“전하.”
“말씀하시오.”
“제가 황제께 고하여 대마도 정벌 준비가 수월할 수 있도록 상당한 물자와 병력을 파병하라고 아뢰겠습니다.”
물자까지는 좋겠는데 병력?
‘명나라 군대가 조선에 오면?’
그 패악이 상당하리라.
“하하하, 명나라 수군은 가도에 주둔하시는 것이 좋겠소.”
일단 본토는 안 된다.
‘으흐흐! 명나라 수군도 사람이잖아.’
사람?
어디에 팔면 비싸게 팔까?
“과인이 생각하기에 대마도 정벌을 위해서는 군량미 100만 석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과인의 뜻을 황제 폐하께 전해주세요.”
대마도를 정벌하고 점령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량을 쉽게 확보할 방법이 생긴 거다.
‘아쉽지만 군량미 100만석 때문에 칙사를 살려 보내야겠군.’
일단 대마도부터 점령하는 남벌을 시작해야 하니까.
‘군량미 100만 석을 부르면?’
최소한 명나라 황제는 조선에 10만석 이상의 군량미를 지원해 줄 거다.
흥정은 이렇게 하는 거다.
‘지원해 주지 않겠다면?’
지원해 주게 만들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3년 전 우승지에게 지시한 일이 떠올랐다.
[예?] [왜구들이 입은 옷도 모두 모아두라.]그냥 보면 조선인과 왜인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명나라 홍치제를 압박할 좋은 방법으로 쓰일 것 같다.
‘명나라 남부 해안이 왜구로 뒤집히면 지원 안 해주고 배겨? 으흐흐!’
*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