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
마운드의 빌런-1화(1/285)
마운드의 빌런 1화
[9회 말 이사만루. 데블스 위기에 빠집니다.]한국시리즈 7차전.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연출됐다.
[주자 한 명이라도 들어온다면 한국시리즈는 연장으로 이어집니다. 두 명이 들어오면 엔젤스가 우승 트로피를 들게 됩니다.]서울 엔젤스.
서울을 연고로 하는 세 개의 야구단 중 한 곳.
정통적인 강호로서 데블스의 라이벌 구단이다.
엔젤스와 데블스.
두 팀은 30년간 한국시리즈에서 4번 마주쳤다.
그리고 2번의 승패를 주고받았다.
이번 한국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다.
[투수를 교체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무리투수인 김혁건 선수의 투구 수가 벌써 40구가 넘었습니다. 교체해야 해요.] [하지만 데블스의 믿을맨인 김혁건을 내리고 누굴 올릴 수 있을까요?]여러 답이 나왔다.
하지만 모두 예상이다.
현장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다.
카메라가 데블스의 벤치를 비추었다.
[데블스의 박상철 감독이 정하성 선수에게 다가갑니다. 설마 어제 완투를 펼친 정하성 선수를 올리진 않겠죠?]6차전 MVP.
정하성.
투구 수 132개, 11탈삼진, 3볼넷.
9이닝 1실점을 기록한 정하성이 올라오는 건 무리로 보였다.
“하성아.”
하지만 박상철은 그를 불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데블스는 정규 시즌 4위를 기록하며 와일드카드부터 올라왔다.
준플레이오프 5차전, 플레이오프 4차전, 그리고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투수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박상철은 의사를 물었다.
정하성이 팀의 에이스라서?
그것도 하나의 이유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선수가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하성은 이번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해외 진출을 노린다.
무리한 투구는 거부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반 선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정하성은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였기에 가능했다.
“감독님.”
정하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왼손에는 헤진 글러브가 잡혀 있었다.
“팀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전 언제든 나갈 겁니다.”
“고…… 고맙다.”
오글거리는 대사.
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할 이유는 없었다.
투수의 마인드컨트롤에 방해될 수 있으니까.
[정하성 선수가 몸을 풀기 시작합니다.] [데블스는 결국 정하성이란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군요.] [오늘도 정하성 선수가 등판한다면 이틀 연속 등판, 그리고 한국시리즈 4경기 등판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네요.] [현대 야구에서 한국시리즈 4경기 등판이라……. 그것도 정하성 선수는 선발로 2경기, 불펜으로 2경기를 나서게 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되네요.]현대 야구에서 투수의 분업화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넘어서는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정하성도 언터처블 플레이어였지만, 정규 시즌에는 온전히 선발투수로서 활약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는 다르다.
한 경기에 모든 게 끝날 수 있다.
그렇기에 뛰어난 투수가 보직을 넘어서 등판하는 일도 잦았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만화와 같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박상철 감독, 마운드를 방문합니다. 교체겠죠?] [예. 그럴 겁니다.]박상철은 심판에게 교체를 확인해 주고 마운드의 김혁건에게서 공을 받았다.
“고생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김혁건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벤치로 돌아가는 그와 걸어 나오던 정하성이 마주쳤다.
김혁건은 후배인 정하성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부탁한다, 하성아.”
“형님, 고개 드세요. 오늘 패배투수로 형님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을 테니까요.”
김혁건은 손등을 타고 올라오는 오글거림에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그…… 그래. 부탁한다.”
정하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와 동시에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일제히 응원을 보냈다.
“장! 하! 성!”
“장! 하! 성!”
거대한 함성이 경기장을 울렸다.
마운드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함성 소리에 하성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날 응원해 주는 팬들을 위해서…….’
데뷔 때부터 정하성은 팬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성적에 굴곡이 없고 사생활도 깨끗했다. 거기에 팬서비스 역시 훌륭해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팬들의 사랑은 하성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됐다.
‘반드시 막는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전의를 불태운 그가 마운드에 서서 연습 투구를 던졌다.
휙-!
쐐애액!
파앙!!
가볍게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화면에서 그의 공에 대한 구속이 표시됐다.
[연습 투구지만 133㎞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이시나요?] [공이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볼 끝이 살아 있지 못해요.] [정타만 만들어도 장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네요.]불안한 예상들이 쏟아졌다.
그만큼 현재 정하성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팬의 반응은 달랐다.
-우리 하성이 가즈아!
-하성이 아니면 누가 막냐?
-ㅇㅈ. 지금 데블스 불펜에서 얘 아니면 어차피 지는 거.
-하성이 내년에 메쟈 가야 하는데. 너무 혹사시키네.
-한국시리즈 우승이 먼저지!
-엔젤스 발라버려!
팬들은 정하성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만큼 정하성이 보여준 게 많았기 때문이다.
[연습 투구가 끝났습니다. 정하성 선수, 몸을 돌려 전광판을 바라보네요.]카메라에 정하성이 잡혔다.
[무척이나 신중한 얼굴입니다.]로진을 손에 묻힌 하성이 플레이트를 밟고 섰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쉬고 상체를 숙였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재개됐다.
포수가 다리를 오므리고 손을 내려 사인을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하성이 상체를 세웠다.
‘초구는 패스트볼.’
하성은 다시 사인을 되새겼다.
패스트볼.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공이다.
최고 구속 160㎞.
국내 최고의 파이어볼러인 그가 던지는 공은 타자를 윽박지르기에 완벽했다.
‘바깥쪽 낮은 코스.’
무엇보다 하성의 패스트볼은 컷패스트볼에 가까웠다.
일명 커터라 불리는 공.
슬라이더처럼 횡적인 변화가 크진 않지만,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정타를 만들기 어렵다.
거기에 구속이 160㎞까지 나온다면 마구에 가깝다.
메이저리그가 그를 노리는 이유였다.
‘간다.’
준비를 끝낸 하성이 다리를 차올리며 몸을 돌렸다.
본래 주자가 있을 때 와인드업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루이기에 과감하게 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전력을…….’
탁!
다리를 뻗는 스트라이드 동작에 이어 발이 마운드에 고정됐다.
발이 단단한 기둥이 되자 몸이 앞으로 쏠렸다.
하성은 그 힘을 이용해 상체를 회전시켰다.
휘릭!!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그 회전력을 살려 팔을 채찍처럼 돌렸다.
파앙-!!
팔을 앞으로 끌고와 정확한 포인트에서 있는 힘껏 공을 챘다.
바람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그리고 하성은 깨달았다.
‘실투!’
공을 놓는 게 밋밋했다.
거기에 컨트롤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못됐음을 감지했다.
하지만 손을 떠난 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발 놓쳐라!’
스트라이크존 중앙으로 날아가는 공.
너무나 좋은 먹잇감이다.
타자가 생각이 많으면 놓칠 공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베테랑이었다.
휙!
이런 실투를 놓칠 리 없었다.
따악!!
경쾌한 소리가 그라운드를 울렸다.
[때렸습니다!! 쭉쭉 뻗어가는 타구!! 담장을 그대로 때립니다!!!]한국시리즈가 끝났다.
* * *
엔젤스는 축제 분위기였다.
연일 우승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졌다.
엔젤스 팬들은 커뮤니티에 기쁨을 쏟아냈다.
반면 데블스는 초상집이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박상철 감독 사퇴!]한국시리즈 준우승도 대단한 업적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엔젤스와 데블스.
지역 라이벌이자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라이벌 구단이다.
그런 엔젤스에게 역전패를 당했다는 게 뼈아팠다.
화살이 감독에게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또 한 명.
-솔직히 정하성 올린 거 씹오바였다.
-정하성 씹새는 뭔 자신감으로 올라갔냐?
└쓰레기네. 정하성이 그래도 팀을 위해서 올라간 건데.
└그럼 뭐 함?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도 좀 봐라.
└선비쉑. 결과가 모든 거다.
안티가 없던 하성에게 안티가 하나둘 생겼다.
그리고 여론은 점점 나빠졌다.
그때 하나의 뉴스가 떴다.
[데블스의 정하성 토미 존 수술 결정!]토미 존 수술.
팔꿈치의 인대가 파열되어 다른 부위의 인대로 가져와 교체하는 수술을 말한다.
과거에는 선수 생활이 끝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부상이었지만, 현재는 의학의 발달로 회복이 가능한 수준이 됐다.
-그렇게 혹사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거.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포스팅은 어케 됨?
└나가리지.
-회복은 되려나?
└재활 성공률 높으니까, 가능하겠지.
-1년은 그대로 날아갔네.
토미 존 수술에 부정적이던 여론은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팀을 위해 헌신한 하성에게 박수를 보냈다.
복귀할 그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3년 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웨이버 공시란 선수와의 계약을 포기하는 것이다.
즉, 방출이라는 소리였다.
거기에 또 하나의 소식이 야구계를 흔들었다.
[부상에서 복귀하지 못한 에이스 정하성, 은퇴 선언!]정하성이 은퇴한 것이다.
* * *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여기 반반 한 마리 주세요.”
“예-!”
정하성은 치킨을 튀기고 있었다.
계약금으로 치킨집을 차린 그는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대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고사는 데 문제없었다.
[한국시리즈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과거의 시리즈를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역대 한국시리즈 명장면! 10위!] [엔젤스와 데블스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9회 말 투아웃에서 역전 장면이 선정됐습니다!]갓 튀긴 치킨을 내가던 하성이 움찔했다.
화면을 보던 손님의 동공이 빠르게 TV와 하성을 번갈아 봤다.
“어?!”
이럴 때가 난감하다.
은퇴하고 10년이 지났음에도 알아보는 손님이 나오면 말이다.
몰래 한숨을 내쉰 하성이 모르는 척,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런 하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태수]“얘가 웬일이야?”
정태수.
하성과 동기로 메이저리그 통산 67승을 거두고 올해 국내로 복귀했다.
국내 복귀 시즌에서 11승을 거두며 아직 건재함을 알렸다.
플레이오프에서 안타깝게 탈락하며 시즌을 마감했지만, 성공적인 시즌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여보세요.”
[여! 뭐 하냐?]“닭 튀긴다.”
[어으, 기름 냄새! 오늘 일찍 끝내고 놀자.]“네가 쏘냐?”
[당연하지!]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였다.
* * *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강남 청담에 위치한 한 가게였다.
별다른 간판도 없는 곳.
차를 앞에 세우자 정장을 입은 사내가 다가왔다.
그는 태수의 얼굴을 확인하곤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주차 좀 해줘.”
“옙!”
차 키를 그에게 건넨 태수가 익숙하게 가게로 걸어갔다.
하성은 그런 태수의 뒤를 어정쩡한 포즈로 따라갔다.
“야야, 여기 뭐 하는 데야?”
“상위 10% 최고급 술집.”
“뭐? 야, 여기 겁나 비싼 데 아니야?”
“야야, 나 미국에서 충분히 벌었다. 그러니 돈은 걱정 마라.”
맞는 말이긴 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태수는 1년에 백억이 넘는 돈을 벌었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 메이저리그였다.
“후우…….”
떨리는 마음으로 가게로 들어갔다.
* * *
“오빠도 야구 선수였어?”
옆에 앉은 파트너가 놀라 물어봤다.
하긴…… 누가 자신을 알겠는가.
은퇴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그때 태수가 말했다.
“쟤가 부상만 아니었으면 나보다 더 유명했을 거야.”
“정말?”
“그래. 쟤 메이저리그 갔으면 선발로 날아다녔겠지. 그럼 최소한 몇천억은 벌었을걸?”
“우와! 지금은 뭐 하는데?”
파트너의 눈이 빛난다.
“……치킨집.”
그리고 빠르게 식었다.
* * *
술자리가 끝나고 태수가 끌고 온 벤츠 S클래스 뒷자리에 앉았다.
푹신한 좌석에 몸을 누이자 피로가 풀리는 거 같았다.
“아우, 등신아.”
옆에서 잔소리를 쏟아내는 저 녀석만 없었다면 말이다.
“아, 또 왜.”
“거기서 치킨집 한다고 해서 분위기 잡치냐?”
“치킨집이 어때서?”
“어차피 오늘 보고 안 볼 애인데 그냥 구라 좀 치면 되지.”
“네 말대로 안 볼 사이인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에휴…… 착해빠진 놈. 그런 성격 때문에 이용만 당해놓고는 여전하냐.”
이용당했다는 말에 입맛을 다셨다.
“다 내 선택이지.”
“선택은 개뿔! 너 팔꿈치 그렇게 된 것도 혹사 때문이잖아. 거기다 수술이 잘못됐는데 그걸 그냥 덮게 만들다니.”
“야야, 들린다.”
하성이 운전석에 앉은 기사를 보며 말했다.
대리기사지만, 이런 곳에서의 말이 밖으로 퍼진다.
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냐. 이미 내 팔은 아작났는데. 보상은 충분히 받았어.”
“고작 5억 받아놓고? 너 메이저리그 갔으면 수백억은 벌어! 그런데 5억 받고 만족하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후회해서 무얼 할까?
그저 현실을 살아갈 방법밖에 없었다.
그때.
(돌아갈 수 있다면?)
목소리가 들렸다.
“응? 뭐라고 했어?”
“뭐가?”
태수가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뭐지?
(흠~ 아직 상황파악을 못 하네. 일단 만나서 이야기할까?)
“만나……?”
빠아아아앙-!!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환한 빛이 벤츠 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아침.
하나의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전(前) 메이저리그 장태수 교통사고로 사망! 동승자 역시 사망!!]장태수의 사망이 보도됐다.
그리고 하성은 이름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