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02)
마운드의 빌런-102화(102/285)
마운드의 빌런 102화
두 번째 경기 등판이 마무리됐다.
하성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경기 내용을 속보로 모든 언론사의 사이트를 도배했다.
[정하성 4이닝 1실점 1볼넷으로 두 번째 시범경기를 마무리해!] [최고 구속은 97마일! 여전히 빠른 공이지만, 마무리 시절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전문가들 하성의 선발 전향에 물음표를 보내.]언론은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크리스 단장 역시 결국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똑똑-!
“오~ 어서 오게.”
다음 날.
그는 하성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하성을 반갑게 맞이한 크리스가 자리를 권했다.
“컨디션은 어떤가?”
“좋습니다. 부르신 이유는 최근 경기 내용 때문인가요?”
“음, 역시 자네는 직설적이란 말이지. 맞네, 단장 입장에선 조금 불안해서 말이야.”
“감독님이나 투수코치님은 별다른 이야기가 없으시던데요.”
“그들은 자네의 문제점을 스트라이드에 있다고 보는 거 같더군.”
“정확합니다. 키가 크면서 스트라이드에 변화를 줘야 했습니다. 그걸 테스트하는 과정이고요.”
“그럼 지금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직 스트라이드를 잡지 못했다는 건가?”
“아뇨. 스트라이드는 현재 적응했습니다.”
적응했다는 하성의 말에 크리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차마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런 크리스의 모습에 하성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 왜 그랬는지 궁금하신 거군요.”
“일부러 그런 건가?”
“일부러는 아닙니다. 단지 힘을 빼서 던졌을 뿐이죠. 굳이 시범경기에서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까?”
“힘을 빼고 던졌다고?”
“예. 페넌트레이스가 시작되면 6개월간 저는 1선발로 경기에 나서야 합니다. 지옥의 레이스가 시작되는 거죠. 체력을 아낄 수 있을 때 확실히 아껴야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으음…….”
힘을 빼고 던졌다는 말에 순간 욱했다.
하지만 이유는 듣고 나니 납득됐다.
무엇보다 저런 모습은 구단 입장에선 오히려 좋아해야 했다.
선수가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그런데 2년 차인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인가?’
그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냈다.
“자네의 말대로라면 내가 걱정할 건 없겠군.”
“예. 전혀 없습니다. 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뭔가?”
“세 번째 등판은 취소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취소?”
“예. 더 이상의 실전 등판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모든 테스트를 끝냈습니다. 현재 감각 자체가 나쁘지 않아 이 상태로 실전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성의 생각은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시범경기는 사실상 선수들이 마지막 컨디션을 체크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베테랑들은 오히려 시범경기에서 페이스 조절을 한다.
컨디션 조절과 기술적인 부분들을 점검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성적이 페넌트레이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성적이 잘 나올 수밖에 없지.’
하성은 베테랑과 같은 조절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괜한 걱정이었어. 이 녀석은 완벽한 프로야. 벌써부터 자신의 루틴대로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에 크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자네의 뜻대로 마지막 등판은 취소시키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활약 기대하겠네.”
“충분히 기대하셔도 됩니다.”
자신감 넘치는 하성의 말에 크리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 * *
크리스는 곧장 언론을 통해 하성의 마지막 등판을 취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이 사실은 여론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시범경기 마지막 등판 전격 취소! 그 이유는 무엇인가?] [두 번째 등판에서도 불안정했던 정하성의 세 번째 등판을 취소한 어슬레틱스!] [크리스 단장은 “더 이상 등판은 의미가 없어서 취소했다”라고 밝혀.] [국내 다수의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하성의 이번 시즌 전망에 먹구름이 꼈다고 밝혀!] [미국 유명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 정하성의 선발 전향은 실패다! 라고 혹평!]엄청난 기사들이 하성의 등판 취소를 다루었다.
안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하성을 물고 뜯었다.
-구단에서도 포기했네 ㅋㅋ
-이 정도면 예고편에서 폭망한 수준 아니냐?
-그냥 마무리로 돌아가자.
-마무리로 돌아가도 이제 예전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지.
-저 근육부터 어떻게 해야 됨 ㅋㅋ
-이렇게 슈퍼루키가 사라지는구나
-입 털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역시 사람은 올라갈수록 겸손해야 함.
안티들은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하성을 물어뜯었다.
그를 응원하는 팬들 역시 반박글을 올렸지만, 금세 묻히거나 안티팬들의 새로운 먹잇감이 됐다.
커뮤니티 사이트는 이제 안티들의 천국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시범경기가 모두 마무리되고 메이저리그는 페넌트레이스 개막을 앞두게 되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예정대로 정하성을 개막전 선발로 확정!]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로 개막전 선발로 나서는 정하성!] [불안한 시선이 가득한 가운데 개막전 선발이 된 정하성 선수.]어슬레틱스는 개막전 선발로 하성을 내세웠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향한 첫해지만, 하성만큼 좋은 투구를 하는 선수는 어슬레틱스에 없었다.
-어슬레틱스 올 시즌에도 선수 풀이 약하네.
-얘네는 언제나 이랬지 뭐.
-언제 또 한 명 터질 줄 모르는 팀임 ㅋ
-하성이 승리해야 할 텐데.
-어림도 없는 소리임 ㅋ
-시범경기에서 던지는 거 보면 5이닝만 버텨도 기적임.
-역배 가즈아-!
하성의 개막전 선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정적인 게시글은 더욱 늘어났다.
그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 레딧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선발 전향 괜히 한 거 아니야?
-작년의 언터처블 하성은 어디에 갔냐고?
-디 엔드 시절이 그립다.
-너무 벌크업을 했어. 슈워제너거 보는 줄.
-다시 마무리로 돌아가면 좋겠다.
-개막전 선발은 무리 아닐까?
인터넷에선 부정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오클랜드에선 전혀 아니었다.
“드디어 시즌이 시작되는구만.”
“이렇게 야구 시즌을 기다려 보는 건 2000년대 초반 이후로 처음이야.”
“작년에 야구 보는 게 너무 즐거웠단 말이지.”
“특히 우리의 하성을 보는 게 최고였지.”
오클랜드 주민들은 개막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기대의 중심에는 역시 하성이 있었다.
그들은 하성이 시범경기에서 부진한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단지 하성의 투구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데 하성이 시범경기에 부진했다던데?”
“그게 좀 불안하긴 하지.”
“벌크업을 많이 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더구만.”
온라인의 여론이 오프라인까지 뻗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클랜드 주민들은 인터넷의 여론보단 경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예매로 나타났다.
“첫 3연전은 모두 매진됐네요.”
“으하하! 이게 얼마 만의 개막시리즈 매진이야!”
크리스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팀 성적이 나빠진 이후로 개막시리즈는 작년까지 매진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굴욕이었다.
개막시리즈는 겨울 동안 야구를 기다린 팬들이 몰리기에 대부분의 팀이 매진을 기록한다.
그런데 매진이 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팀의 인기가 하락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개막시리즈의 매진은 크리스를 기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사전 오픈한 스토어를 통해 선수들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작년 대비 300퍼센트가량 매출이 늘었습니다.”
“300퍼센트?”
“예. 특히 정하성 선수의 저지가 가장 많은 양이 팔리고 있어요. 이대로면 물량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시! 당장 연락해서 하성의 저지를 더 요청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하성의 스타성은 이미 어슬레틱스의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만큼 하성은 오클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푸드 쪽은 어떻게 되고 있지?”
“하성의 고국인 한국을 떠올릴 수 있는 불고기를 기반으로 메뉴들의 준비가 끝난 상황이에요.”
“김치가 유명하지 않나?”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경기를 보면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많아서요. 요리사들도 메뉴에 접목하기 어렵다 하더라고요.”
“흠, 그건 그쪽이 프로니 잘하겠지. 이후 진행할 이벤트들도 잘 마무리했겠지?”
“코리안데이는 아직 협상 중이지만, 대부분의 이벤트는 서류에 적힌 대로입니다.”
크리스는 하성의 인기를 이용해 코리안데이를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과거 LA다저스에서 진행했던 행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만큼 하성의 인기가 높아졌기에 가능한 전략이기도 했다.
“아주 좋아.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어.”
“그런데 이 모든 계획들도 정하성 선수가 잘해주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이지.”
“만약 정하성 선수가 실패한다면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모두 취소해야겠지.”
“위약금이 장난 아닐 텐데요.”
직원의 우려에 크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성이 성공할지는 개막전에서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성공할 거라 믿고 있는 중이고. 그러니 행사들이나 잘 준비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크리스의 말대로였다.
이제 이틀 뒤에는 알 수 있다.
하성이 선발로 실패할 것인지 성공할 것인지 말이다.
* * *
개막 당일.
오클랜드 콜로세움에는 일찍부터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상대로 구단은 여러 장사를 한다.
선수들의 상품화한 유니폼이나 인형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 판매한다.
어슬레틱스는 개막전부터 코리안버거라는 메뉴를 내놓으며 하성을 이용한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코리안버거 하나 주세요.”
“예! 코리안버거 하나요!”
백준기는 매점에 들러 코리안버거를 시켰다.
금방 나온 먹음직한 버거 안에는 불고기와 상추가 들어 있어 마치 쌈을 연상시켰다.
“오…… 제대로 된 불고기인데?”
미국에서 먹은 불고기 중 맛이 제일 괜찮았다.
그만큼 구단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구단에서 밀어주고 있는데. 오늘 경기에서 잘 던져야 할 텐데 말이지.’
백준기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하성이 선수단과 함께 정렬해 있었다.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불안했던 모습을 개막전에서 반전시킬 수 있을까?’
하성의 시범경기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건 팩트였다.
하지만 시범경기 성적이 전부라고 할 수 없다는 걸 메이저리그를 오래 취재한 백준기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개막전을 보고 싶다.’
백준기는 한 명의 팬으로서 경기를 관람했다.
* * *
메이저리그 개막전.
하성은 마운드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어마어마하군.”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자리가 팬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모든 관중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이 떨렸다.
긴장으로 떨리는 게 아닌 흥분이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준비는 끝났어.’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연습 투구를 끝낸 하성이 로진을 손에 묻히고 마운드에 섰다.
“플레이볼!!”
[구심의 콜과 함께 2010시즌 메이저리그 페넌트레이스가 시작됐습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마운드에는 디 엔드 정하성 선수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하성 선수의 별명을 바꿀 때가 되었군요. 디 엔드는 경기를 끝낸다는 의미인데, 이제 선발이니 그럴 수 없지 않습니까?]캐스터와 해설위원이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이.
하성은 포수인 트레버와 사인을 교환했다.
‘초구는 이거지?’
트레버의 사인은 패스트볼이었다.
개막전 초구를 다른 공으로 던질 이유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하성이 투구 자세에 들어갔다.
‘집중력을 끌어올려라.’
집중력을 올리겠다 마음먹은 순간.
주위의 풍경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오직 트레버의 미트만이 눈에 들어왔다.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느껴.’
다리를 차올리면서 몸을 틀어 힘을 축적시켰다.
뒤이어 상체를 앞으로 이동시키는 순간.
몸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무게중심은 여전히 뒤에 둔 채로 힘을 충전시켰다.
콰직!!
스트라이드는 완벽했다.
이전과 길어진 스트라이드를 내딛는 순간, 하체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힘을 밑에서 위로 이동시켰다.
‘회전력까지 모아…….’
하체, 골반, 상체로 이어진 회전력이 올라오는 힘에 더해져 어깨를 지나 팔과 손끝으로 이동했다.
‘터뜨린다!’
그렇게 모인 힘을 모두 방출시켰다.
“흐읍!!”
기합 소리와 함께 던진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쐐애애애액-!!
뻐어어억!!
눈 깜박할 순간에 공이 미트에 박혔다.
“스…… 스트라이크!!”
구심이 말을 더듬을 정도로 위력적인 공이었다.
[초구 스트라이크!! 구속은…….]캐스터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카메라가 전광판을 잡았다.
그리고 구속이 나오는 곳을 클로즈업했다.
거기에는.
[103mph]103마일.
하성의 최고 구속이 갱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