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04)
마운드의 빌런-104화(104/285)
마운드의 빌런 104화
개막전에서 보여주는 하성의 호투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지렸다.
-팬티 갈아입고 옴.
-5회까지 100마일 이하로 떨어진 게 손에 꼽을 정도네.
-아니, 메이저리그 타자를 상대로 이 투구 수 실화냐?
-이대로면 완투도 가능할 각인데?
-완투 문제가 아니라 퍼펙트도 가능함.
-거품이라고 했던 싹 사라졌네.
-클-린!
팬들은 열광했다.
그동안 불안했던 기류가 보였기에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하성이 원했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성은 마운드에 다시 오르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제부터 중요하다. 100구에 가까워질수록 공의 위력과 집중력이 떨어진다. 조심해야 해.’
이번 삶에서 선발로 뛴 경험은 없다.
하지만 이전의 삶에서 하성은 누구보다 많은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였다.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에 언제 어떤 타이밍에 위기가 찾아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진을 손에 묻힌 하성이 마운드에 섰다.
‘왜인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체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없어.’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
빠른 공을 던진다는 건 그만큼 체력을 소비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언제 지쳐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성은 자신의 체력이 떨어지면 조절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체력이 떨어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지칠 때까지 던진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일이야.’
새로운 하드웨어를 얻었다.
이 기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테스트하는 건 실전밖에 없었다.
하성은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 경기에만 집중했다.
“후우…….”
호흡을 고르고 트레버와 사인을 교환했다.
[6회 초 타석에 들어선 7번 타자 프랭클린 구티에레즈가 들어섭니다.] [첫 타석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프랭클린 선수입니다.]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던 프랭클린은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첫 타석에서 공을 봤으니 이번 타석에서는 그래도 공이 보일 거야.’
그런 프랭클린의 생각을 다른 이들도 했었다.
타순이 한 바퀴 돌았으니 하성의 공을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몸쪽을 찌르는 패스트볼에 배트 헛돕니다! 스트라이크 원!]후웅!!
뻐억!
“스윙! 스트라이크 투!!”
[90마일의 슬라이더에 배트가 헛도네요! 두 번째 스트라이크가 올라갑니다!] [타자 일순이 된 뒤부터 슬라이더를 절묘한 타이밍에 섞으면서 타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어요.] [정말 절묘한 투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하성이 슬라이더를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건 4회부터다.
커터와 패스트볼을 노리고 들어왔던 타자들은 하성의 슬라이더에 번번이 속으면서 불리한 볼카운트를 가져갔다.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면서 타자들은 조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타자들은 하성에게 좋은 먹잇감밖에 되지 않았다.
“흡!!”
[3구 던졌습니다!!]손을 떠난 공이 타자에게서 가장 먼 곳.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치는 라인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액-!!
타자는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가는 공을 멀뚱히 쳐다봤고.
뻐어억!!
공은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뒤이어.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삼구삼진!! 타자가 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묘한 공이 미트에 들어갑니다! 선발 첫 경기에서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합니다!!] [이번 공도 구속이 101마일이 찍혔습니다. 투구 수가 60구가 넘었지만, 여전히 구속이 떨어지지 않네요.] [정말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정하성 선수입니다!]10개의 탈삼진을 잡아낸 하성은 로진을 손에 묻히며 다음 타자를 바라봤다.
‘선발로 뛰니 이 인간을 자주 보게 되네.’
타석에는 날렵한 체형의 동양인 선수가 들어서고 있었다.
[타석에는 일본의 전설! 스즈키 이치로가 들어섭니다!!]스즈키 이치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교타자 중 한 명이었다.
* * *
스즈키 이치로는 일본의 야구영웅이었다.
일본을 평정하고 메이저리그에 넘어와 매년 200안타 이상을 기록해오고 있었다.
특히 04시즌에는 262안타를 때려내며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우는 등.
일본에서의 활약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이치로 선수는 09시즌에도 200안타 이상을 기록하며 9년 연속 200안타 기록을 세운 정말 대단한 타자입니다.] [그렇습니다. WBC에서 한국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죠.] [만약 그때 정하성 선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첫 타석에서 이치로를 상대로 5구 만에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낸 걸 보면 확실히 아쉬움이 남습니다.]첫 대결에선 하성이 판정승을 거두었다.
작년이었다면 그 승부가 끝이었을 테지만, 올해는 아니었다.
[이치로 선수 정도라면 두 번째 타석에서 정면 대결은 위험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와서 장타율은 떨어졌지만, 엄청난 정확도를 보여주는 타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선수에게 단조로운 패턴으로 승부를 이어간다면 안타를 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정하성 선수와 트레버 포수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사인을 교환한 정하성 선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해설진은 다소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평범한 투수라면 그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성은 오히려 더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치로? 좋은 타자지. 메이저리그의 전설이고 하지만…….’
다리를 차올린 그가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오늘 내 컨디션이 더 위다!’
콰직!
스파이크가 마운드에 꽂히고 그의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휘릭!!
“흡!!”
회전이 끝나는 순간 단말마의 기합과 함께 공을 던졌다.
쐐애애액-!!
하성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이치로는 공의 궤적을 확인하고 간결하게 배트를 돌렸다.
딱!!
“파울!!”
[초구 파울입니다! 몸쪽을 파고드는 패스트볼을 쳐내는 이치로 선수!] [첫 타석에선 초구를 그냥 지켜보기만 했는데. 두 번째 타석이라 그런지 바로 배트에 맞추네요.] [101마일의 광속구지만, 역시 이치로 타자의 배트는 정교하네요.]해설진들의 반응은 다소 오버스러웠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하성이 15명의 타자를 상대로 10개의 탈삼진을 잡아낸 걸 생각하면 반응이 납득됐다.
‘몸쪽 공을 바로 건드네. 2구는 슬라이더로 갈까?’
2구 준비를 끝내고 트레버가 사인을 보냈다.
조금 조심스럽게 가자는 신호였다.
하지만 하성은 고개를 저었다.
‘패스트볼로 간다.’
‘고집하고는…….’
고개를 저은 트레버가 미트를 내밀었다.
[사인을 교환한 정하성 선수, 2구 던집니다!]쐐애애액-!!
딱!!
“파울!!”
[이번에도 파울입니다! 배트가 완전히 밀렸네요!] [이번에는 102마일이 찍혔네요. 경기가 중반을 넘었음에도 정하성 선수의 구속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요!] [괴력을 선보이는 정하성 선수! 과연 3구는 어떤 공을 던질지 기대됩니다!]이치로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빨라졌어. 배트가 완전히 밀렸다. 덕분에 볼카운트가 몰려버렸어.’
투스트라이크.
이제 승부의 추는 투수에게 완전히 기울었다.
‘최대한 지켜보면서 내가 유리한 승부로 끌고 가야겠어.’
볼카운트가 몰렸다고 해서 급하면 안 된다.
어떻게든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어내야 했다.
‘어지간한 공은 전부 걷어낸다.’
결정을 내린 이치로가 타석에 섰다.
자신만의 루틴을 밟으며 정신을 집중한 그가 타격 준비를 끝내자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투스트라이크에서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큰 키에서 내딛는 스트라이드에 이어 거구에 맞지 않는 빠른 회전이 이어졌다.
“흡!!”
[3구 던졌습니다!!]그의 손을 떠난 공이 트레버의 미트를 향해 파고들었다.
정중앙 다소 높은 코스를 파고드는 공에 이치로의 배트가 돌았다.
‘실투다!’
실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직한 코스였다.
이치로의 배트가 공을 낚아채기 위해 돌아갔다.
후웅!!
그의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는 순간.
공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배트의 위를 지나 그대로 트레버의 미트에 꽂혔다.
뻐어억!!
“스윙! 아웃!!”
[삼구삼진!!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괴력의 정하성 선수!!] [아-! 이치로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네요! 정하성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정하성 선수가 던진 3구의 구속이 다시 103마일이 찍혔습니다!] [6회에 자신의 최고 구속을 다시 한번 찍으면서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어요!!]103마일.
165㎞라는 구속이 다시 찍히자 오클랜드 팬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정하성 네가 최고다!!”
“으하하! 시원하다! 시원해!!”
하성은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거기에 패스트볼 세 개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교타자를 잡아냈다는 것에 팬들은 열광했다.
-ㅁㅊ 이치로를 공 3개로 잡아내네.
-그것도 패스트볼이 연달아 들어감 ㅋㅋㅋㅋㅋ
-101마일, 102마일, 103마일 실화냐?
-무슨 게임도 아니고 매 구속 증가하냐?
-게임도 이렇게 만들면 밸붕이라고 욕먹음.
-밸런스 줫망겜이네.
하성의 활약에 열광하는 팬들.
그리고 하성은 그런 팬들의 응원에 부응이라도 하듯 세 번째 타자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몸쪽을 찌르는 빠른 공에 타자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삼진으로 이닝을 마감하는 정하성 선수!] [아쉽습니다! 이번 타자를 상대로 공 4개를 던지면서 무결점 이닝을 만들어내지 못하네요.] [그렇지만 현재까지 18명의 타자를 단 한 명도 출루시키지 않는 괴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18명의 타자를 상대로 단 하나의 안타도 내주지 않고 있는 하성의 무결정 피칭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 * *
불문율이란 게 있다.
규칙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는 룰이었다.
야구에는 여러 불문율이 있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투수가 퍼펙트게임 혹은 노히트노런을 진행 중이면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중계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캐스터와 해설위원 누구도 중계를 하면서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은 아니었다.
[정하성 6이닝 퍼펙트 진행 중.]떡하니 자막을 붙여 시청자들이 알 수 있게끔 붙여두고 있었다.
-야야 정하성 6이닝 퍼펙트라는데?
-오늘 사고 치나?!
개막전 퍼펙트게임 기록하면 죽이겠다.
-데뷔 2년 차에 퍼펙트 ㅋㅋㅋ
-그것도 선발 전향 첫해에 이런 기록 세우면 지리겠네.
팬들은 당연히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었다.
-퍼펙트가 지나가는 똥개 이름도 아니고. 아무나 하겠냐?
-아직 아웃 카운트 9개나 남았음.
-퍼펙트게임은 원래 경기 막판에 깨지기 쉬움.
-ㅇㅈ.
-게다가 정하성 지금 투구 수 70개죠? 앞으로 3이닝 남았는데 가능하겠냐?
-이제 본격적으로 힘 빠질 타이밍인데 절대 무리지.
-거기다가 점수도 없는데, 되겠냐?
안티팬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오면서 초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 역시 딱히 틀린 건 아니었다.
퍼펙트게임과 노히트노런이 깨지기 가장 쉬운 타이밍은 경기 후반이었다.
7회 이후에 투수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구위와 제구가 흔들리니 타자를 출루시키게 만든다.
거기에 하성에게는 또 하나의 장벽이 있었다.
[6회 말이지만, 여전히 두 팀의 스코어는 0 대 0입니다. 두 에이스 투수가 각 타선을 틀어막고 있네요.]바로 점수가 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점수가 나지 않으면 9회까지 퍼펙트게임을 만들더라도 경기는 계속 진행된다.
퍼펙트게임은 경기를 끝내야지 인정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에르난데스도 6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여전히 완벽한 피칭을 이어갑니다!!]그리고 그러한 안티팬들의 반응은 에르난데스의 호투에 힘입어 더욱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대로 10이닝 퍼펙트하고 비공인으로 내려가면 꿀잼이겠네 ㅋㅋ
-ㅋㅋㅋ 한국에서도 그런 경우 있었지.
-어슬레틱스는 타선이 너무 약해.
-ㅇㅈ
경기는 이제 7회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