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09)
마운드의 빌런-109화(109/285)
마운드의 빌런 109화
이진철 부장은 인상을 구겼다.
“왜 연락을 안 하는 거야?”
분명 경기가 끝나면 연락 달라고 보냈다.
그런데 회신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오클랜드의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새벽으로 넘어간 시간이었다.
“젠장…… 지금 전화할 수도 없고.”
차라리 경기가 끝난 직후에 전화했어야 한다.
지금은 자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내일 연락해 봐야겠군.”
선발 등판을 했으니 내일은 경기에 나서지도 않는다.
문득 자신이 먼저 연락해야 한다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 올라왔다.
“싸가지없는 자식. 도대체 협회를 뭐라 생각하는 거야? 게다가 한참 후배인 새끼가 선배에게 먼저 연락하게 만들어?”
“이 부장님, 아침부터 왜 그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아, 김 과장. 다른 게 아니라 정하성 이 새끼 말이야. 연락하라고 했는데. 전화도 안 하더라고.”
“또 그 자식입니까?”
KBO는 선수 출신 직원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 부장과 김 과장 두 사람 모두 선출로 프로에서 뛰었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입장에선 후배인 하성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어? 상대는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인데. 한낱 협회의 직원인 우리가 선배로 보이겠냐?”
“뭐 그건 그렇겠죠. 하지만 이대로 있기에는 좀 억울하지 않습니까?”
“방법이 없잖아.”
“지금이야 그렇지만, 계속 연락받지 않으면 언론에 살짝 흘려볼까요?”
“어떻게?”
“저번에 WBC도 사실상 이 녀석이 구라 쳐서 무산된 거잖습니까? 그러니 이번에 그때 이야기랑 같이 또 대표팀 나오지 않으려고 연락하지 않는다면서 흘리면 딱이죠.”
조용히 의견을 말하는 김 과장을 바라보던 이 부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 괜찮네.”
“너무 바로 건들면 우리가 역공당하기 좋으니 충분히 빌드업을 쌓도록 하죠.”
“아주 좋아.”
이 부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하성은 전용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어느덧 4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점.
하성의 네 번째 등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번 등판에서 하성의 상대는 뉴욕 양키스가 되었다.
양키스와의 일전을 하게 되자 언론은 벌써 난리였다.
[정하성 작년 챔피언 양키스를 만나다!] [앙숙인 로드리고와 정면 대결!] [로드리고 인터뷰에서 “정하성은 뛰어난 투수지만, 난 위대한 선수다.”라고 발언해.]언론은 특히 로드리고와 하성을 묶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드리고는 작년 포스트시즌에서의 맹활약으로 명성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흠집이 생긴 건 여전하지만, 그의 스타성은 여전했다.
거기에 라이징스타로 떠오른 하성과는 작년부터 악연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언론 입장에선 기사를 쓰기에도 좋았다.
‘그나저나 얘 내후년에나 약물이 또 적발되던가?’
2009년 약물 시인 사건은 이대로 묻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년 뒤에는 또 한 번의 약물 스캔들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 번은 징계를 피했지만, 다음번에는 징계를 피하지 못하고 200경기 이상의 출전 정지를 받게 된다.
‘뭐 이놈이랑 자꾸 엮이면 나한테는 땡큐지.’
라이벌 관계는 언제나 이득이 된다.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팬들은 이런 관계를 좋아하고 열광했다.
그걸 잘 알기에 하성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이 관계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에 잠겨 있었다.
‘오랜만에 마이크웍을 해야겠군.’
언론과 대중이 원하는 걸 해주기로 마음먹으며 그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 * *
뉴욕에 도착한 어슬레틱스 선수단은 전용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일단의 팬들이 모여 있었다.
한인들을 비롯해 현지의 팬들도 많이 보였다.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어슬레틱스가 인기 구단도 아닌데 이 정도의 팬들이 모이는 게 말이다.
문이 열리고 어슬레틱스 선수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기다리던 선수가 버스에서 내렸다.
“꺄아아악!!”
그리고 그 선수가 버스에서 내리자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 팬들의 환호와 함께 나타난 인물은 붉은 머리의 하성이었다.
그에게 엄청난 사인 요청이 쏟아졌다.
“오케이, 한 명씩.”
하성은 그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며 천천히 구장으로 이동했다.
“악수 한 번만 해줘요!”
“콜.”
팬들은 사인만 요청하는 게 아니었다.
사인을 시작으로 사진, 그리고 스킨십까지 다양하게 요구해 왔다.
하성이 손을 잡아주자 여성 팬은 비명과 함께 그를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하성은 가볍게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고 다음 팬에게 건너갔다.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지만, 하성은 싫은 티를 내지 않고 팬서비스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기자들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하성의 팬서비스는 정말 끝내주네.”
“그러게 말이야.”
“저 정도 인원에게 다 해주는 건가?”
“다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거 봐.”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는군.”
하성에 대한 평가는 나날이 높아져 갔다.
* * *
가볍게 몸을 풀고 클럽하우스에 도착한 하성을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들은 하성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그의 코멘트를 따기 위해 노력했다.
비슷비슷한 질문들이었지만, 하성은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때 한 기자가 약간의 도발성 질문을 던졌다.
“혹시 로드리고 선수의 인터뷰 기사는 보셨습니까?”
“어떤 거요?”
“정하성 선수를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했지만, 자신은 위대한 선수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성이 피식 웃었다.
“올해 들은 유머 중 가장 재밌네. 언제부터 위대한 선수의 성적에서 스테로이드 냄새가 났었지?”
직설적인 하성의 멘트를 기자들이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하루 이틀도 아니었지만, 이번에 그의 발언은 성격이 달랐다.
‘대박이다!’
‘설마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발을 할 줄이야.’
‘작년에는 마무리였으니 큰 문제는 없지만, 올해는 아니야.’
‘선발투수로 뛰니까 수없이 마주쳐야 한다. 이 둘의 관계가 조명되면 팬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어.’
슈퍼스타와 라이징스타의 대립은 팬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스토리였다.
그때 한 기자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오늘 로드리고 선수와 만나게 될 텐데. 자신 있습니까?”
“기자님, 상대 전적 체크 안 했습니까?”
“예?”
“로드리고가 저한테 안타를 뽑아낸 적이 있나요?”
“하지만 그건 마무리 시절의 데이터라…….”
“마무리던 선발이건 제 공은 변함없습니다. 오히려 작년보다 올해 제 공은 더 위력적입니다. 반면 그 녀석은 여전하죠. 아, 혹시 그가 공을 때릴 수도 있습니다.”
기자들이 하성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또 약을 빨았다면 때릴 수 있겠죠.”
* * *
[정하성 “로드리고는 위대한 선수 아냐.”] [로드리고의 성적에선 스테로이드의 냄새가 난다고 발언한 정하성!] [정하성의 끝없는 도발!!]당연하게도 하성의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이게 뭐임?
-실화냐?
-헐…….
-발언 너무 쎈데?
-미쳤다 ㅋㅋㅋㅋㅋ
-아니, 얘 브레이크가 없는 거 같은데?
-와…… 수위 장난 없네. 이게 바로 아메리카 스타일인가?
-미국에서도 이 정도는 안 함 ㅋㅋㅋㅋㅋ
대중은 경악했다.
설마 로드리고를 상대로 이 정도까지 발언을 할 줄이야.
이전에도 강한 발언을 한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발언에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연히 당사자인 로드리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쾅-!!
클럽하우스에서 기사를 접한 로드리고가 스마트폰을 던졌다.
반으로 쪼개진 스마트폰이 땅에 떨어지면서 주위 선수들이 그를 바라봤다.
“망할 새끼…….”
하지만 로드리고는 동료들의 반응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분노를 표출했다.
“감히 내게 그런 망발을 해?”
그의 분노가 치솟았다.
* * *
양키스 팬들에게 하성은 눈엣가시였다.
“이 새끼 또 로드리고 건드렸네?”
“하…… 겨우 잠잠해졌는데. 왜 또 들쑤시는데?”
“언제까지 과거의 일을 가지고 발목을 잡을 거야?!”
“망할 새끼! 오늘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겠어!”
“가자고!!”
양키스 팬들은 더 이상 로드리고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작년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뒤로는 오히려 그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무엇보다 그가 양키스로 이적한 뒤에는 약물을 하지 않았다는 게 그들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양키스 팬들의 주장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메이저리그 팬들은 그들의 주장을 내로남불이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특히 레드삭스 팬들은 대놓고 비난하며 여전히 로드리고를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하성의 발언은 다시 로드리고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양키스 팬들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완승 가야 한다!!”
“오클랜드 따위는 작살내 버려!!”
“이런 놈들에게 빌빌대면 너희들이 작살날 줄 알아!!”
팬들의 엄청난 응원과 협박에 올 시즌 양키스의 에이스 사바시아는 1회 초를 삼자범퇴로 마감하고 내려왔다.
[올 시즌 현재까지 3승을 달리고 있는 사바시아, 오늘 경기에서도 쾌조의 스타트를 보여줍니다.] [작년 양키스에서 영입한 사바시아가 올 시즌에도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운드에는 어슬레틱스의 에이스! 올 시즌 스타트부터 말 그대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하성이 마운드에 올라오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경기장이 떠내려가라 양키스 팬들이 외쳤다.
“우우우우우-!!”
“꺼져라!!”
“예의도 모르는 자식!”
“네가 로드리고를 무시해?!!”
경기장이 떠내려갈 듯한 야유에 순간 캐스터가 당황했다.
[하…… 하하. 양키스 팬들이 무척이나 열정적이네요.] [그렇습니다. 어웨이라고는 하지만, 오늘 양키스 팬들의 야유가 무척 심하네요.]야유 소리는 카메라를 통해 한국으로까지 전달되었다.
-야유 지리네…….
-누가 보면 하성이 레드삭스 소속인 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을 던지냐?
-멘탈 지키고 서 있는 것만 해도 장난 아니겠네.
-난 그냥 지리고 자빠질 듯.
-그때 카메라에 하성이 잡혔다.
-쟤 왜 웃고 있냐?
-와…… 실화냐?
-잘못 본 거 아니지?
카메라에 잡힌 하성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웃는 게 아니라 마운드 위에서 관중석을 쳐다보면서 웃고 있었다.
-멘탈 하나는 진짜 국보급이다.
-이미 국보 아니냐?
-한국에선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퍼펙트게임을 본고장에서 했는데 국보 맞지.
-어쨌건 오늘 경기도 재밌겠네.
미소 짓는 하성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팬들이 벌써 기대하고 있었다.
* * *
양키스는 평소대로의 타선을 들고 나왔다.
서벨리를 시작으로 테세이라 카노로 이어지는 극강의 타선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서벨리를 101마일 광속구로 돌려세우는 정하성 선수!!]선두타자인 서벨리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딱!!
[2구를 강타! 하지만 타구 높게 떠오릅니다! 우익수 거의 제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타구 잡아냅니다! 투아웃!!]테세이라는 2구 만에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마지막으로.
펑-!!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입니다! 세 명의 타자를 깔끔하게 잡아내는 정하성 선수!]로빈슨 카노를 삼구삼진으로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감했다.
완벽 그 자체의 스타트였다.
그런 하성을 보며 로드리고가 이를 갈았다.
‘다음 이닝에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