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16)
마운드의 빌런-116화(116/285)
마운드의 빌런 116화
45이닝 연속 무실점 피칭.
하성은 역사에 남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 사실은 한국 팬들에게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속보) 정하성 45이닝 연속 무실점 달성!
-미쳤다.
-와~ 이걸 해버리네.
-얘는 뭐 던질 때마다 역사를 만들어버리냐?
-자잘한 것들 합치면 더 될걸?
-마지막 마우어 상대로 패스트볼만 던지는 거 봤음?
-ㅇㅇ 진짜 지리더라.
-그걸 던질 수 있는 배짱이 더 쩌는 듯.
하성의 기록 달성 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포털사이트에는 하성의 기록과 관련된 검색어들이 순위권을 차지했다.
[1위 정하성] [2위 정하성 신기록] [3위 연속 이닝 무실점] [4위 메이저리그 신기록]1위부터 10위까지 하성과 관련된 기록들로 도배되었다.
그만큼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 현상은 오프라인에서도 나타났다.
[신기록을 달성한 정하성 선수가 4회에도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번 이닝도 무실점으로 막아낸다면 역대 6위인 칼 허벨의 45.1이닝을 넘어서게 됩니다.]TV 속 중계진이 설명했지만, 알아듣지 못한 영어교사가 물었다.
“칼 허벨이 누구야?”
그의 말에 대답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칼 허벨은 1930년대에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명투수입니다. 그는 스크류볼을 주로 던졌는데. 팔을 비틀면서 던지다 보니 은퇴 이후에는 팔이 아예 뒤틀린 걸로 유명해요.”
“김태현,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어?”
“제가 메이저리그를 좀 좋아해서요.”
“그래? 그럼 앞으로 자세히 좀 알려달라고!”
“오오~”
“태현이 쩌는데?”
주위 친구들의 반응에 김태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메이저리그를 파고들었던 자신이 뿌듯했다.
수업 시간에 야구를 본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하성의 활약이 사회현상에 가깝게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학교만이 아니라 직장인들도 업무 틈틈이 경기를 볼 정도로 하성의 경기에 많은 이의 관심이 집중됐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세 번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칼 허벨의 기록을 넘어서는 정하성 선수!] [기록도 기록이지만, 오늘 경기에서도 정말 좋은 활약을 펼쳐가고 있습니다.]경기가 이어질수록 하성은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 * *
[메이저리그 정하성 선수가 7이닝 무실점 10탈삼진 피칭을 이어가면서 시즌 6번째 퀄리티스타트 플러스 경기를 펼쳤습니다.] [정하성 밥 깁슨을 넘었다!] [49이닝 연속 무실점 피칭을 펼친 정하성! 메이저리그 5위에 기록되다!] [최고의 마무리에서 최고의 선발투수가 된 정하성의 경이로운 기록들!]트윈스와의 경기에서도 하성은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면서 활약을 계속 이어나갔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정하성 선수의 경이로운 두 번째 시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가 처음 선발로 전향한다고 선언했을 때 나왔던 모든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의 활약인데요.] [불식이 아니라 그 모든 우려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활약이죠. 정하성 선수의 성적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역대급 성적입니다.]메이저리그 정하성 특집 프로그램.
하성의 활약을 집중조명하는 프로그램을 공중파에서 아예 만들어 30분이란 시간을 편성했다.
이는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다.
공중파 방송은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
광고도 미리 선판매가 되어 있기에 함부로 그 일정을 바꿀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방송국이 일정을 바꾼 것이다.
‘광고사에서는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했지. 별 무리는 아니었어.’
방송을 지켜보는 PD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광고사들은 방송국의 결정을 환영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가장 핫한 선수를 주제로 다루는 프로그램에 광고가 붙는다.
광고사 입장에서는 자다가 떡 얻는 격이었다.
그렇기에 별 무리 없이 특별프로그램을 편성할 수 있었다.
[정하성 선수가 이런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뭐가 있을까요?] [성공적인 벌크업과 거기에 맞는 투구 메커니즘의 수정이 성공적이었다 봐야겠죠.] [정하성 선수의 벌크업은 시즌에 들어가기 전에는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이제 성공의 이유가 됐네요?] [근육이 대폭 늘어나면 유연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메커니즘에 이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하성 선수는 메커니즘까지 같이 수정을 한 거죠.] [한마디로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거기에 맞는 소프트웨어까지 미리 설치해 둔 겁니다.] [이제 21살의 투수가 혼자 거기까지 생각을 한 걸까요?] [아마 옆에 훌륭한 트레이너가 있을 겁니다. 이 정도까지 미래를 보고 준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물론 하성은 혼자 생각하고 준비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그가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합쳐 20년이 넘는 세월을 야구에 받쳤기 때문이다.
시즌이 시작되고 한 달.
하성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인정받고 있었다.
* * *
5월.
두 번째 등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경기도 무실점을 끝낸다면 월터 존슨을 넘게 되는 건가?’
빅 트레이 월터 존슨.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완투수로 불리는 선수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스트볼은 기차보다 빠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강속구를 던졌다.
정밀 측정이 불가능한 1900년대 초를 호령했던 투수였지만, 그의 명성은 2000년대가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7이닝을 던지면 그의 기록을 넘게 된다.’
그런 월터 존슨도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의 기록은 55.2이닝.
49이닝을 던진 하성이 그의 기록을 넘어서려면 오늘 경기에서 7이닝 이상을 던져야 했다.
‘현재 페이스라면 큰 무리는 아니지.’
개막 이후 한 번도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달성하지 못한 적이 없다.
팬들은 이제 그가 실점하는 모습을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럴 때야말로 가장 조심해야 되지만…….’
하성은 잘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 되는 순간이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걸.
그렇기에 더욱 철저하게 루틴을 지키고 있었다.
경기 전날.
구장에 나온 그는 평소대로 러닝, 웨이트 불펜피칭으로 몸 상태를 체크했다.
“퍼펙트하군.”
토니 감독의 말대로 하성의 루틴은 완벽했다.
“자네 혹시 피부 안에는 터미네이터 같은 로봇이 있는 거 아니야? 어떻게 이런 완벽한 루틴을 지킬 수 있는지 모르겠군.”
농담까지 건네는 토니 감독.
그가 얼마나 흡족해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훈련을 끝낸 하성은 클럽하우스에서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그래, 알았어. 지금 나가면 되는 거지?”
그때 누군가 통화하는 게 들려왔다.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팀의 중견수인 라자이 데이비스가 보였다.
‘무슨 통화인데, 저리 조심스럽게 통화를 하는 거야?’
평소 데이비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상한 모습이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다 생각했다. 그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파이더는?”
스파이더란 말에 돌아가려던 하성의 걸음이 멈췄다.
* * *
메이저리그에는 수많은 흑역사가 존재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대약물 시대라 불리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시대였다.
이 시대 타자들은 엄청난 홈런을 양산해 내며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특히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가 한 시즌 최다홈런을 놓고 다퉜던 1998시즌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해였다.
하지만 이런 기록이 모두 약물로 만들어졌다는 게 알려지자 메이저리그는 암흑기를 맞이했다.
‘그걸로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또 한 번의 약물 시대가 열리게 되지.’
2013년.
바이오 제네시스 스캔들이 터지면서 로드리고를 비롯한 수많은 선수가 연관되면서 또 한 번의 이슈를 만들어냈다.
‘그 스캔들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게 스파이더라 불린 놈이지.’
스파이더는 합성 테스토스테론이 함유된 사탕으로 알렉스 로드리고가 라커룸에서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걸 왜 데이비스가 언급하는 거지?’
바이오 제네시스 스캔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아니다.
거기에 연루된 선수만 하더라도 십수 명에 이른다.
그들을 모두 기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드리고를 기억하는 건 그가 빅네임이기 때문이다. 만약 로드리고가 아니었다면 기억도 못 했을 수 있다.
‘거미라는 게 꼭 그것을 지칭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 너무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일종의 은어였기에 그걸 언급했다해서 데이비스가 약물을 복용한다 볼 수 없었다.
하성은 몰래 그를 미행해 경기장 뒤쪽으로 이동했다.
‘점점 불안해지는데.’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는 데이비스의 행동이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특정 장소에 도착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여기는 너무 멀어서 말이야. 여기.”
“정말 이걸 먹으면 파워가 늘어나는 거야?”
“그래. 로드리고가 먹는 거와 같은 거니까, 의심할 필요는 없어.”
“좋아. 여기.”
데이비스가 돈을 건네고 물건을 받았다.
물건을 건넨 남자는 곧 사라졌고 데이비스는 검은 봉지를 열어 안에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그때였다.
“데이비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데이비스가 깜짝 놀라며 봉지를 뒤로 숨겼다.
“하…… 하성. 여기는 어쩐 일이야?”
“너야말로 뒤에 숨긴 물건은 뭐야?”
“수…… 숨긴 거라니? 아아~ 이거? 친구가 보내준 사탕이야.”
“사탕?”
“그…… 그래. 봐. 그냥 사탕이잖아.”
데이비스가 봉지를 내밀어 내용물 중 하나를 꺼냈다.
츄잉껌에 가까운 형태의 그것의 표면에는 거미 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거미 사탕이네? 맛있겠는데? 나도 하나만 줘.”
“미…… 미안. 이건 친구가 날 위해서 특별히 가져다준 거라서 주는 건 힘들어.”
“그 친구라는 녀석도 특이하군. 사탕을 만 달러나 주고 건네주다니 말이야.”
데이비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데이비스, 이전부터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한 거야?”
거기에 쐐기를 박는 하성의 한 마디에 데이비스의 얼굴은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 사탕에 합성 테스토스테론이 들어가 있는 걸 알고 있어. 지금이라도 실토하면 못 본 척 넘어가 줄게.”
“처…… 처음이야. 저…… 정말 처음이야.”
데이비스의 고개가 떨어졌다.
* * *
데이비스는 마지막까지 첫 거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확인시켜 주었다.
거기에는 일명 박사라 불리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모두 담겨 있었다.
‘정말 처음이군.’
데이비스의 말대로 두 사람의 대화는 초면인 사람들끼리의 대화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번이 첫 거래이기에 많은 양을 주지 못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누구한테 소개받은 거야?”
“그…… 그게…….”
“넌 그저 미수니까 징계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널 소개시켜 준 사람을 그렇게 보듬어서 넘어갈 생각이라면 어림도 없는 거 알지?”
“하아…….”
데이비스는 고민에 잠겼다.
이런 걸 소개시켜 줄 정도라면 상당히 친분이 있었을 거다.
그러니 그걸 이야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게 분명했다.
고민 끝에 데이비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다는 건 숨겨줄 수 있을까?”
“물론이지.”
“……브론이었어.”
라이언 브론.
바이오 제네시스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