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17)
마운드의 빌런-117화(117/285)
마운드의 빌런 117화
바이오 제니시스 스캔들은 2010년대를 관통하는 사건이었다.
여기에 연루된 선수들은 2000년대를 대표했거나 메이저리그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였다.
그렇기에 연관된 선수들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팬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부정했고 소송에서도 이겼지만, 결국 바이오 제니시스 스캔이 터지면서 혐의를 인정하고 말았지.’
특히 라이언 브론은 MVP를 수상한 직후에 약물 파동에 휩싸였기에 그 파장은 더더욱 컸다.
‘그런 브론이 이 시기부터 약물을 복용했다 이거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약물이란 복용한다고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일정 시간의 적응기가 필요했고 그것이 실전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제법 시간이 걸렸다.
2011시즌 MVP를 탄 것으로 보았을 때 지금 시기에도 약을 복용하는 게 이상할 건 없었다.
‘단순히 약을 복용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중간에서 브로커 역할까지 했단 말이지.’
단순 복용과 브로커는 아예 다른 이야기다.
브로커라면 죄질은 더욱 무거워진다. 그리고 이미지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뭐가 됐건 이게 터지면 어마어마한 뉴스가 되겠군.’
하성은 고민에 잠겼다.
이걸 터뜨려서 자신에게 이득 될 부분이 뭐가 있을지 말이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건 내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정도인가? 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겠지.’
이미지가 좋아지는 건 좋은 일이다.
자신을 모델로 쓰고 싶어 하는 기업도 더 늘어날 테고 말이다.
하지만 리스크 대비 얻는 게 적었다.
‘뭐, 일단 이건 킵해둘까?’
증거는 많을수록 좋다.
무엇보다 자신이 충분히 얻을 게 생길 때 터뜨리는 게 베스트였다.
하성은 자신에게 들어온 유통책의 연락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상치 못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되었다.
* * *
다음 날.
하성은 홈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정하성 선수, 오늘 경기에서 7이닝 이상 무실점을 기록한다면 월터 존슨을 넘어설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역사적인 장면을 보기 위해 오클랜드 콜로세움에 만원 관중이 찾아왔습니다.]오랜만에 관중석이 모두 찼다.
그 모습을 보며 크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정하성은 어나더 레벨의 플레이어야. 관중을 몰고 다니는 선수가 됐어.’
관중을 경기장으로 이끄는 선수.
슈퍼스타가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도 극소수만 존재했다.
그걸 단 2년 차인 하성이 해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첫해에는 클로저로서 신기록을 세우더니 두 번째 해에는 선발로서 다시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니.’
스타트를 퍼펙트게임으로 시작하더니 지금은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을 달려가고 있었다.
‘거기에 탈삼진과 평균자책점까지 1위를 달리고 있어.’
선발 중 평균자책점이 제로인 투수는 하성이 유일했다.
탈삼진은 74개로 선발투수 중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볼넷은 단 2개만을 내주면서 그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주었다.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없었어. 하성의 공은 작년보다 확실하게 진화했다.’
무엇보다 투수인 하성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의 공을 믿기에 정면으로 승부를 거는 과감한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그 결과 볼넷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고 삼진이 올라가는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내년 시즌이 끝나고가 문제로군.’
크리스는 벌써부터 골머리가 아파왔다.
내년 시즌을 하성이 별 탈 없이 마무리한다면 그 뒤에 다가오는 건 그의 연봉 조정이었다.
‘거기서도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겠어.’
2년 차인 현재 하성의 연봉은 최저연봉보다 조금 높은 60만 달러였다.
내년 시즌도 연봉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야.’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지만,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플레이볼!”
크리스 단장이 걱정하는 사이, 경기가 시작됐다.
* * *
[4회까지 무실점 피칭을 펼친 정하성 선수, 현재까지 탈삼진을 7개나 잡아내면서 오늘도 쾌조의 투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카메라가 더그아웃에 있는 하성을 잡았다.
[대기록이 진행 중인데도 정하성 선수는 평소와 같은 표정이네요.] [정말 이 선수가 2년 차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53이닝 연속 무실점 투구를 펼치고 있는 정하성 선수, 앞으로 2이닝을 더 던지면 이 부문 4위에, 3이닝을 더 던지면 월터 존슨을 제치고 3위에 오르게 됩니다.] [메이저리그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인 월터 존슨을 넘게 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최근 한국 중계진이 가장 자주 하는 멘트가 바로 월터 존슨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에는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많았다.
-월터 존슨을 어케 넘어 ㅋ
-빅트레인이 위대한 건 십수 년 동안 리그 최정상급 기량을 보여서 그런 거지.
-이제 선발투수 1년 차인 하성에게 비교할 건 아닌 듯.
물론 이런 의견에도 반대되는 의견이 더 많았다.
-어쨌든 월터 존슨 기록은 넘는 거지 ㅋ
-멘트 가지고 더럽게 태클 거네.
-지금 시대랑 그때랑 같냐?
-라이브볼 시대에 이 정도 기록이면 그 당시에는 더 쩔었겠지.
단순 비교가 어려운 과거와의 기록. 그리고 월터 존슨이 남긴 20년간의 업적은 한마디로 전설이었다.
명예의 전당 최초의 4인에 오른 이유가 바로 그 업적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하여간 호사가들 ㅋ 당사자는 조용히 있는데 떠들긴.
-그러게 말이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좀 즐겨라.
중립을 지키는 이들도 나오면서 커뮤니티 사이트는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성은 5회 초,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앞으로 3이닝.’
하성 역시 기록을 의식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 기록을 달성하게 되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한마디로 내 몸값이 오른다는 거지.’
하성의 관심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닌 그에 따른 자신의 몸값 상승에 있었다.
뭐가 목적이건 그의 관심이 기록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마운드에 올라 정신을 집중시켰다.
[5회 초, 정하성 선수가 첫 번째 타자를 상대합니다.]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패스트볼이 몸쪽을 날카롭게 찌릅니다. 전광판에는 100마일의 속도가 찍혔습니다.] [저런 구속의 공이 몸쪽을 파고든다면 타자 입장에선 미쳐버릴 노릇일 겁니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정하성 선수, 2구 던집니다.]딱!
“파울!!”
[2구 몸쪽을 파고들다 한 번 더 타자의 몸으로 파고드는 싱커에 반응했지만, 파울입니다.] [1구와 거의 비슷한 코스로 날아왔기에 타자가 배트를 돌릴 수밖에 없었어요.] [투스트라이크로 유리한 카운트를 잡은 정하성 선수, 3구 던집니다.]3구와 4구는 유인구였다.
각각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며 타자의 배트를 유도했지만, 타자가 아슬아슬하게 참아냈다.
퍽!
“볼!”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타자의 배트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체인지업은 좋게 들어갔는데, 다소 아쉽네요.] [오늘 전반적으로 정하성 선수의 커터가 덜 위력적인 느낌입니다.]하성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커터가 손에 덜 걸리고 있어.’
본인의 주 무기 중 하나였지만, 오늘따라 손끝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보통 신인급 투수들은 이런 상황에 당황한다.
주 무기라는 건 그만큼 자신 있는 구종이란 소리다.
그런 공이 제대로 컨트롤되지 않는다면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이런 순간에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면서 더 얻어맞는 날이 많았지.’
과거의 경험은 현재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지 알게 해주었다.
‘무기가 하나기 때문에 멘붕이 오는 거지. 주 무기로 쓸 수 있는 무기를 여러 개 만들어두면 멘붕이 올 이유가 없어.’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하지만 하성은 그것이 정답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걸 실전으로 옮겼다.
[5구 던집니다!]“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타자의 몸쪽으로 붙어 들어갔다.
타자는 깜짝 놀라 엉덩이를 뒤로 빼는 순간.
공의 궤적이 크게 휘면서 스트라이크존의 보더라인을 지나 미트에 꽂혔다.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마지막 공은 각이 큰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아내는 정하성 선수! 오늘 경기 8번째 탈삼진을 잡아냅니다!] [마치 오른손의 랜디 존슨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슬라이더의 각이 정말 크게 들어갔어요.] [타자는 몸으로 들어오는 줄 알고 엉덩이를 뒤로 빼야 할 정도로 각이 큰 슬라이더였습니다!]오른손의 랜디 존슨.
라이브볼 시대의 투수에게 이보다 큰 찬사가 있을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랜디 존슨과 동등한 위치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하성은 두 번째 타자를 3루수 땅볼로 잡아내고 세 번째 타자를 맞이했다.
[54이닝 연속 무실점을 위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기 위해 정하성 선수 1구 던집니다!]하성의 손을 떠난 공이 스트라이크존의 중심을 파고들었다.
정직한 코스였기에 타자의 배트가 돌아갔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타구 높게 떠오릅니다!]코스는 정직했지만, 구속이 101마일에 달할 정도로 빠른 공이었다.
타이밍을 맞추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높게 떠오른 타구는 중견수를 향해 날아갔다. 체공 시간이 길었기에 잡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툭!
[아-!!] [이런……!]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낙구 지점을 착각한 데이비스! 타구를 떨어뜨립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나왔어요!] [어떻게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실수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경기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실수입니다!]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
아무리 이름값이 낮은 선수라 하더라도 메이저리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선수였다.
그런 데이비스가 평범한 플라이볼을 놓친 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좋지 않습니다. 이런 타이밍에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발생하다니. 정하성 선수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기록달성을 위해 전력 질주를 하고 있을 때다.
자신의 실수가 아닌 다른 이의 실수로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는 멘탈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아는지 트레버가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를 방문했다.
[트레버 포수가 마운드를 방문하네요.] [좋은 선택입니다. 투아웃이긴 하지만, 주자가 득점권인 2루까지 들어갔기에 정하성 선수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트레버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 순간에는 하성이 흔들릴 거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왜 올라왔어?”
“어?”
“설마 이런 거에 내가 흔들릴 거라 생각한 거야?”
하성의 질문에 트레버는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지만, 눈앞에 있는 하성의 모습은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지 마. 이런 거에 흔들릴 정도로 내 멘탈이 약하진 않아. 작년에 나와 온갖 상황을 마주하고도 모르겠어?”
하성은 오히려 트레버를 안심시켰다.
황당했다.
설마 2년 차 투수를 안심시키러 올라온 상황에 오히려 자신이 위로를 받을 줄이야.
“내가 위대한 사이 영 투수를 몰라봤네.”
“알았으면 이런 일로 올라오지 말라고.”
“크크, 그래.”
트레버가 웃으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의 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트레버 포수가 올라간 것이 과연 어떤 효과가 있었을지, 정하성 선수 득점권에 주자를 두고 다음 타자를 상대합니다.]많은 이가 우려하는 상황.
하지만 하성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100마일의 강속구가 미트에 꽂힙니다! 스트라이크 원!]딱!!
“파울!!”
[2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3루 쪽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스트라이크 투!]“흡!!”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103마일의 강속구에 타자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위기를 벗어나는 데 필요한 건 단 공 3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