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18)
마운드의 빌런-118화(118/285)
마운드의 빌런 118화
5회 말.
위기에서 벗어난 하성이 더그아웃에 돌아왔다.
“후우…….”
한숨을 내쉰 그에게 데이비스가 음료수를 내밀었다.
“미안하다. 내 실수였다.”
“땡큐. 실수야 누구든지 하는 법이지. 중요한 건 그다음에 실수를 만회하는 거고.”
“……그렇지.”
“집중해 데이비스. 이대로 실수하고 넘어가면 넌 정말 병신이 될 뿐이야.”
다소 과격한 말이었다.
하지만 하성은 상대의 반응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음료를 입으로 가져갔다.
데이비스 역시 하성의 말에 상처를 받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을 곱씹었다.
“병신이 될 순 없지.”
“정답.”
하성의 대답을 들은 데이비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하성은 그라운드를 지켜봤다.
‘우리 애들은 오늘도 더럽게 못 치는구나.’
두 팀의 스코어는 0 대 0이었다.
투고타저의 시대라고는 하나, 이 정도로 점수가 나지 않는 경운 보기 힘들었다.
‘아놀드의 타격감은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그 녀석만 괜찮으니 문제란 말이지.’
아놀드는 기회가 찾아오면 대부분 그 기회를 잡아냈다.
실제 WAR이 하성 다음으로 높은 게 아놀드였다.
그만큼 승리기여도가 높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타순에서 그만 컨디션이 괜찮으니 투수들이 그와의 승부를 피한다는 것이었다.
‘볼넷을 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상대하니 결국 배드볼히터가 되거나 1루에 나가는 게 전부지.’
그리고 그런 현상은 오늘도 나타나고 있었다.
퍽!
“볼! 베이스 온 볼!!”
[오늘 경기 두 번째 볼넷을 얻어내는 아놀드 선수입니다.] [선구안이 좋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투수가 의도적으로 그와의 승부를 피하고 있습니다.] [현재 어슬레틱스의 타선이 어떤 상황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 같습니다.]그리고 타석에는 데이비스가 들어섰다.
[직전 수비에서 실책을 범했던 데이비스 선수, 오늘 경기에서도 2타수 무안타를 기록 중인데요.] [여기에서 만회하는 타격을 보여줘야 합니다.]데이비스는 이번 타석에서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었다.
딱!!
“파울!!”
[7구 다시 걷어내면서 승부 이어갑니다!] [아~ 데이비스 선수 간결하게 스윙하면서 끝까지 승부를 이어가고 있어요!] [투수 입장에선 짜증이 날 거 같습니다. 볼카운트 투스트라이크 투볼에서 8구 던집니다!]퍽!
“볼!!”
[볼입니다!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잘 참아내는 데이비스!] [아주 잘 참았습니다!] [투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끈질기게 풀카운트 승부까지 끌고 오는 데이비스!]이번 타석에서 데이비스는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선 타석에서는 매번 스플리터에 헛스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걸 참아낸 것이다.
‘정말 집중력이 올라갔는데?’
하성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로 올라간 집중력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딱-!!
[9구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 3루 라인을 타구 흐릅니다!!]안타를 만들어내는 게 말이다.
그것도 평범한 타구가 아니었다.
3루 라인 선상에서 원바운드된 공이 파울라인을 넘어 펜스를 때렸다.
완벽한 장타 코스.
[스타트가 빨랐던 아놀드 선수 2루를 벌써 지납니다!]수비가 공을 잡기도 전에 아놀드는 2루 베이스를 통과했다.
풀카운트이기에 공이 맞는 순간부터 공격적으로 리드를 가져갔다.
그리고 공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전력 질주를 시작한 덕분이다.
[이제야 공을 잡는 좌익수! 동시에 아놀드가 3루 베이스를 통과합니다!!]아놀드가 속도를 더했다.
아직 젊은 나이인 그의 주력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메이저리그다.
[공은 홈으로 날아듭니다!!]좌익수가 던진 공이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누가 더 빠를지 알 수 없는 상황.
아놀드는 홈플레이트를 터치하기 위해 몸을 날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촤아아앗-!!
퍽!
슬라이딩과 거의 동시에 공이 도달했고 포수는 빠른 동작으로 아놀드를 글러브로 터치했다.
[구심의 판정은?!]모든 이들의 시선이 구심에게로 쏠렸다.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아놀드 선수가 빨랐다는 판정! 드디어 정하성 선수가 승리투수 요건을 갖춥니다!]* * *
올 시즌 6번의 등판을 한 하성이 올린 승수는 단 2승이었다.
모든 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했음에도 2승이라는 건 타선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이게 얼마 만의 일이냐.’
그렇기에 마운드에 오른 하성도 오늘의 일이 감격스러웠다.
[승리투수 자격을 갖추고 마운드에 오른 정하성 선수! 5회까지 던진 투구 수는 현재까지 72개입니다!] [아직 투구 수에는 여유가 있습니다.]하성의 평균 투구 수는 100구 전후였다.
웬만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토니 감독은 거기에서 하성을 교체시켰다.
첫 시즌이기에 충분히 배려를 해주는 것이었다.
[이번 이닝을 잡아내면 55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게 됩니다.] [현재 정하성 선수는 54이닝으로 4위인 잭 쿰스 선수의 53이닝 기록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매 이닝 역사를 향해 도전하고 있는 정하성 선수, 이번 이닝에서도 무실점을 이어갈지. 첫 타자를 상대합니다!]기록이 달려 있었지만, 하성의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흡!!”
쐐애애액!
딱!!
[초구 파울입니다. 바깥쪽 패스트볼을 건드렸지만, 정타는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경기가 중반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100마일에 근접한 99마일의 공을 뿌리고 있어요.]초구부터 패스트볼을 던지더니.
쐐액!
퍽!
“스트라이크!”
[2구 슬라이더가 존을 파고듭니다! 이번에도 우타자의 엉덩이가 뒤로 빠질 정도로 각이 큰 슬라이더였습니다!]2구에선 슬라이더를 던져 유리한 카운트를 잡아냈다.
[정하성 선수가 던지는 두 가지 종류의 슬라이더가 정말 위력적이네요.] [그렇습니다. 구속은 빠르지만 변화가 적은 고속 슬라이더도 위력적이지만, 올 시즌부터 던지기 시작한, 이 교과서적인 슬라이더가 무척 위력적입니다.]선발로 전향하면서 하성은 슬라이더를 나눠서 던지고 있었다.
‘클로저야 1이닝만 던지면 되지만, 선발로 전향한 이상 구종을 좀 늘릴 필요가 있지.’
거기에 근육을 늘리면서 팔을 보호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벌크업에 성공할지 몰랐으니까.’
올 시즌을 앞두고 돈을 들인 보람이 있었다.
전지훈련에만 수천만 원이 쓰였지만, 그 결과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역시 쓰는 돈만큼 돌아오는 법이지.’
모든 일이 그런 법이었다.
돈을 써야 거기에 맞는 대가를 얻을 수 있었다.
“후우…….”
[사인을 교환한 정하성 선수, 세 번째 공은 어떤 공으로 던질지!]와인드업과 함께 하성이 세 번째 공을 뿌렸다.
“흡!!”
[던졌습니다!]쐐애애액!!
딱!!
“파울!!”
[하이 패스트볼을 겨우 걷어냅니다! 구속은 101마일!!]하성은 쉬지 않고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번에는 102마일의 패스트볼이 몸쪽을 날카롭게 찌릅니다!] [완벽한 공이었습니다! 타자가 꼼짝도 할 수 없는 코스였어요!]첫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하성은 두 번째 타자를 2구만에 플라이볼을 만들어냈다.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타구는 공교롭게도 중견수인 데이비스를 향해 날아갔다.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그가 저질렀던 에러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실수는 두 번 나오지 않았다.
퍽!
“아웃!”
중계진의 목소리는 흥분됐지만, 하성은 여전히 침착한 모습이었다.
“후우…….”
사인을 교환하고 심호흡을 내뱉은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1구 던집니다!]“흡!”
쐐애애액!
딱!!
[때렸습니다!!]초구로 던진 101마일의 패스트볼이 스윙에 걸렸다.
정타로 맞은 타구가 좌익 방향으로 날아갔다.
[잘 맞은 타구!!]타구를 확인한 좌익수 아놀드가 펜스에 거의 붙어 점프할 타이밍을 잡았다.
그리고 공의 낙구 타이밍에 맞춰 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
높게 떠오른 아놀드가 떨어지는 공을 향해 글러브를 뻗었다.
퍽!!
[잡았습니다! 환상적인 점핑캐치로 장타성 타구를 잡아내는 아놀드!] [정확한 타이밍에 점프하면서 타구를 잡아냈어요!] [마운드의 정하성 선수가 박수를 보낼 정도로 환상적인 수비였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득점과 좋은 수비까지 보여주는 아놀드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55이닝 무실점을 달성한 하성이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 * *
하성의 호투에 힘을 입어서일까?
6회 말 어슬레틱스의 타선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딱!
[때렸습니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선두타자의 안타는 오랜만이네요.]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퍽!
“볼!”
[7구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참아내면서 걸어 나갑니다!] [무사 1, 2루의 찬스를 잡아내네요!] [여기에서 토니 감독 대타 카드를 씁니다!]토니 감독의 작전은 적절했다.
그리고 잘 맞아 들어갔다.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 좌중간을 가릅니다! 2루 주자 3루 돌아 여유롭게 홈으로! 1루 주자는 3루까지! 추가 득점을 올리는 어슬레틱스!] [오랜만에 정하성 선수가 타선의 도움을 받네요!]어슬레틱스의 타선이 살아나면서 공격 시간이 길어졌다.
추가 득점도 내고 있었지만,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공격 시간이 길어지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예?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요?] [사람의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체온이 내려갑니다. 이렇게 되면 근육이 비활성화 상태가 됩니다.] [아, 분명 그렇죠.] [문제는 90개 이상의 공을 던진 투수의 몸이 한 번 식으면 다시 활성화를 시키기 어렵다는 거죠.] [즉, 정하성 선수의 투구리듬이 깨질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습니다. 실제 많은 투수들이 기록을 진행하다 팀의 공격이 길어진 직후에 기록이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실제 그런 케이스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기에 해설위원의 이야기가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때마침 카메라가 하성을 잡았다.
수건을 뒤집어쓰고 벤치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TV를 통해 전국으로 송출됐다.
* * *
어슬레틱스의 공격이 마무리됐다.
투수 교체도 많았기에 공격 시간이 30분이 넘었다.
리듬이 깨지기엔 충분한 시간.
[과연 정하성 선수가 원래 페이스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1구를 던지는 걸 보면 알 수 있겠죠.]많은 이들이 우려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순간, 하성은 트레버와 사인을 교환하고 1구를 던졌다.
쐐애애액-!
딱!!
“파울!!”
[초구 96마일의 공을 커트해 냅니다!] [확실히 구속이 떨어졌습니다.]직전 이닝과는 다른 공이었다.
몸이 식으면서 구속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하성은 개의치 않았다.
“흡!!”
쐐애애액-!
퍽!
“스트라이크!”
[2구 슬라이더가 백도어 성으로 보더라인에 걸칩니다!]하성은 1구 이후에는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선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타자를 4구 만에 2루수 앞 땅볼을 만들어냈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힘없이 구른 타구! 2루수 잡아 1루로!]퍽!
“아웃!!”
[첫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갑니다!]하성은 패스트볼을 고집하지 않았다.
‘몸의 체온이 떨어졌으면 제구력 위주로 잡아내면 되지.’
제구력에 자신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구속이 더 강한 무기이기에 그것에 집중했을 뿐이다.
“흡!!”
쐐애애액!!
딱!!
[1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빗맞은 타구! 투수 정면! 가볍게 잡아 1루로!]퍽!
“아웃!!”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스스로의 힘으로 잡아내는 정하성 선수! 이로써 55.2이닝 무실점 기록을 세웁니다!] [아-! 드디어 월터 존슨과 어깨를 나란히 했어요!]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하성은 마운드에서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슬슬 달아오르네.’
한 번 식었다고 해서 몸의 체온이 올라오지 않는 건 아니다.
공을 던지면서 체온을 다시 끌어올린 하성이 세 번째 타자를 바라봤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는 화려하게 가야 하는 법이지.’
와인드업과 함께 하성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 * *
하성이 대기록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