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2)
마운드의 빌런-12화(12/285)
마운드의 빌런 12화
미국으로의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하성과 그 가족들.
부모님은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하성을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하성아, 진짜 혼자 가도 되겠니?”
“엄마, 괜찮아요. 구단에서 숙소를 제공해 줘서 어차피 오셔도 같이 못 지내요.”
“후우…… 그렇다니 어쩔 수 없네.”
같이 가겠다는 어머니를 설득한 건 구단에서 제공하는 숙소였다.
물론 제공이라 해도 3개월이 전부다.
그것도 허름한 모텔일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 머릿속에는 한국의 환경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 숙소를 제공한다는 건 기숙사의 개념이다. 식사도 나오는 그런 곳 말이다.
‘빵이나 제대로 나오면 다행이겠지.’
미국과 한국의 차이.
그것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괜히 말했다간 어머니가 진짜 따라온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 여보. 우리가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씩 가면 되는 거지.”
아버지가 어머니를 달랬다.
그때 한 사내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이거 이별의 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베이스볼 투데이의 백준기 기자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 날 알아요?”
“최근에 절 자주 쫓아다니셨잖아요.”
“쫓아다니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어머니의 질문에 백준기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쫓아다닌 게 아니라 취재차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맞아요. 크게 문제 될 행동은 하신 적 없으세요.”
“으음…….”
“그런데 취재라니? 무슨 취재 말이냐?”
“아, 제가 말씀드리죠. 저는 메이저리그를 전문으로 십여 년간 취재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보는 눈이 메이저리그에 맞춰져 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 제가 봤을 때 정하성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걸로 보입니다.”
부모님의 눈에 호감이 나타났다.
눈앞에서 아들을 칭찬하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미리 취재를 하시는 거군요.”
“예. 그리고 내년 시즌이 시작되면 미국에서 취재를 할 거라 정하성 선수의 경기도 간간이 취재할 계획입니다.”
“어머! 정말요?”
미국에서도 취재를 한다는 말에 부모님의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
몇 마디 더 이야기가 오가고 호감을 얻은 백준기는 하성과의 인터뷰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기자님, 운 좋으시네요.”
“응? 내가?”
“예. 올 시즌이 지나면 저와 단독인터뷰 하기 힘드실 테니까요.”
“자신감이 대단하네.”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서 나오는지 절 지켜보신 기자님은 아시잖아요?”
백준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신장은 더 커서 190이 되었고 체중은 100㎏에 육박하는 상태.”
하성의 피지컬은 1년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키는 더욱 컸고 몸무게는 증가했다.
그렇다고 뚱뚱해진 건 아니다.
대부분 근육량으로 늘어난 체중이었다.
덕분에 몸무게가 세 자리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순발력은 줄지 않아서 스프린트 기록은 오히려 증가했지. 유연성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말이야.”
백준기는 하성을 유심히 관찰했다.
덕분에 그의 발전이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괴물 같은 성장이야. 통상적으로 근육을 늘리면 유연성이든 순발력이든 줄어들어야 하는데…….”
이 시대에선 저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래에선 다르다.
벌크업을 진행하면서 순발력과 유연성도 가져가는 방법들이 연구됐다.
하성은 그러한 방법들을 전문적으로 공부했고 회귀 후 자신에게 접목시켜 몸을 성장시켰다.
그러니 백준기가 놀라는 게 당연했다.
“계속 놀라고 계실 건가요? 아니면 인터뷰를 할까요?”
“아 물론 해야지.”
인생 두 번째 단독인터뷰가 시작됐다.
* * *
미국에 도착한 하성은 곧장 베이커즈필드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그는 구단에 도착해서 제임슨을 만났다.
“어서 오게. 그런데 몸이 이전보다 더 커졌군.”
“미국에 적응하려면 몸을 키워야 하니까요.”
“좋은 생각이야. 동양에서 온 친구들은 키는 커도 몸이 크지 않아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거든.”
한국에서 웨이트 붐이 일어나는 건 앞으로 몇 년 뒤다.
그전에는 웨이트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정설처럼 굳어져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프로 선수들조차 웨이트에 대한 상식이 희박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성은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웨이트를 진행했다.
덕분에 제임슨이 보기에도 커 보이는 몸을 만들 수 있었다.
“자네가 시즌에 보여줄 모습들이 기대되는군.”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
“하하! 자네가 좋은 게 그거야. 자신감이 넘치거든. 그런데 이렇게 빨리 미국으로 넘어오다니. 아직 시즌은 멀었다네.”
“알고 있습니다. 다만 현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넘어오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군.”
전생에서 미국 생활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선 처음이다.
정신은 전생과 큰 차이가 없지만, 신체는 달랐다.
‘계약을 위해 미국에 왔을 때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피곤함을 느꼈지.’
시차 적응의 부작용은 모두 느꼈다.
수면 부족.
그에 따른 컨디션 저하까지.
문제점이 발견됐으니 그것을 해결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군. 그럼 숙소는 어떻게 하겠는가?”
“계약대로 구단에서 3개월 지원을 해주시면 됩니다.”
“바로 말이지?”
“예.”
“좋아. 그럼 오늘 내가 데려다주도록 하지. 잠깐 쉬고 있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꽤 파격적인 대우였다.
제임슨은 구단에서도 지위가 높았다.
어슬레틱스에서 파견 나온 인물이니 말이다.
그런 제임슨이 직접 데려다준다는 건 그만큼 하성을 관심 있게 본다는 소리였다.
‘가능성만 보여주면 빠르게 올라갈 수 있겠군.’
좋은 징후에 미소를 지으며 그가 퇴근하길 기다렸다.
* * *
모텔에 도착한 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그럼 그렇지.”
처음부터 시설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낼 때와 비교하면 너무 낡은 시설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베드버그는 없겠지?”
미국에 처음 건너왔을 때 고생했던 베드버그, 간단히 말해 매트리스에 서식하는 빈대다.
다행인 건 여기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잠을 자야 제대로 알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취사 시설은 있어서 다행이네.”
그냥 잠만 자고 씻는 모텔은 아니었다.
나름 요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3개월 동안 시차 적응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바로 완벽한 몸 상태로 시즌을 맞이하는 거야.”
메이저리그와 달리 마이너리그는 스프링캠프랄 게 따로 없었다.
각자 알아서 몸을 만들고 4월에 합류해야 했다.
간혹 마이너리거 중 일부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하성은 아직 보여준 게 없는 몸.
초청장이 올 리 없었다.
“3개월 뒤에는 시즌 시작이다.”
달콤한 과일을 얻기 위해.
지금은 인내할 시간이었다.
* * *
캘리포니아의 1월은 따뜻한 편이었다.
최고 기온이 18도까지 오르면서 한국의 10월과 비슷한 기온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운동을 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다.
“훅! 훅!”
하성은 자신의 루틴에 맞춰 훈련을 진행했다.
숙소 근처의 짐(GYM)에 등록해 웨이트를 진행하고 아침과 저녁에 유산소를 병행했다.
“으음…….”
하지만 시차 적응은 어려운 일이었다.
새벽이면 뒤척이다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후우…… 오늘도 잠을 설치겠네.”
수면 부족은 여러모로 악영향을 끼친다.
육체적인 데미지는 물론 정신적인 데미지까지 입는다.
일단 잠이 부족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로 인해 훈련의 효과도 낮아지게 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문제다.
‘수면 부족은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거기에 근육 회복은 자는 시간에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대로면 웨이트 효과도 떨어진다.’
여러모로 대책을 마련하긴 해야 할 때였다.
“일단 여러 가지를 찾아보자.”
당장은 자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하성은 평소 코스대로 러닝을 뛰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보는 베이커즈필드의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미국에는 공원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달릴 맛이 났다.
까앙-!!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자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 베이스볼의 나라라니까.”
한국과 달리 미국은 일반인이 야구를 즐길 수 있게끔 도시에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야구장이 존재했고 각 학교에는 야구부도 많았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야구를 접할 수 있었다.
‘점점 내려가긴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에서도 야구의 인기는 점점 하락세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시장은 계속 커져 선수들의 연봉은 미치도록 상승한다.
‘뭐가 됐건 이 시장에서 성공하면 인생이 바뀌는 거지.’
자신에 대한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어느덧 야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국의 야구장은 펜스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이곳은 없는 곳으로 야구를 하는 애들도 모두 어린아이들이었다.
까앙-!!
“잘 맞았다!”
“달려! 달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왔다.
꽤 멀리까지 날아온다 싶더니 투바운드와 함께 하성의 발밑까지 공이 날아왔다.
이곳은 경기장 밖.
즉, 장외까지 공이 빠진 것이다.
그때 우익수였던 아이가 하성에게 글러브를 내밀었다.
던져달라는 의미였다.
‘뭐, 데드볼 상황인 거 같으니.’
타자 주자는 2루에서 멈춰 섰고 경기는 잠깐 소강상태가 됐다.
데드볼은 경기 진행이 되지 않을 때 선언되는 일종의 경기중단을 말한다.
아마도 여기는 경기장 밖으로 공이 나가면 데드볼을 선언하는 거 같았다.
하성은 허리를 숙여 공을 잡아 가볍게 던졌다.
쐐액-!
가볍게 던졌다고는 해도 하성이 던진 공이다.
꽤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아이는 대응을 하지 못했다.
퍽!
사실 대응은 필요 없었다.
하성이 던진 공은 정확히 아이의 글러브에 꽂혔다.
“와…….”
아이는 자신의 글러브에 들어 있는 공을 보며 감탄했다.
이내 하성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아이는 경기장으로 돌아가 심판 겸 코치로 보이는 이에게 뭐라 이야기를 전달했다.
잠시 후.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가 하성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저희 애가 말하기를 공을 잘 던진다고 하셔서요. 혹시 야구를 하셨는지……?”
“예. 올해부터 블레이즈에서 뛸 예정입니다.”
“아! 현역이셨군요! 저는 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벤입니다.”
“하성 정입니다. 남한에서 왔고요.”
“한국이요? 저도 몇 번 갔습니다! 홍대에서 놀던 때가 생각나네요.”
“한국에 오셨다고요?”
“예. 관광으로 두 번 갔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일본을 가기 위한 경유지였는데. 그때 사귀었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또 갔었죠!”
한국에 왔었다니.
의외였다.
이 시기 한국은 그리 유명하지 않을 때다.
그것도 2000년대 초중반이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왜인지 호감이 갔다.
“그런데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이시네요?”
“아, 미국에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아~ 시차 적응을 하시는군요. 그럴 때 아로마오일을 써보면 제법 좋습니다.”
“아로마오일이요?”
“예. 제가 동양권 문화에 관심이 많아 그쪽으로 여행을 한 번씩 가는데. 그럴 때마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괜찮으시면 이따 제가 하나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한번 써보세요.”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도 한국인들에게 많은 걸 얻었으니까요.”
“코치!! 경기 언제 해요?!”
그때 아이들이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벤이 몸을 돌렸다.
“곧 경기가 끝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돌아가는 벤을 보며 하성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웃으며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받는 게 있으면…….’
그는 우익수 아이의 머리를 만지며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주는 것도 있어야지.’
심판 마스크를 쓰던 벤이 하성을 발견하곤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런 벤을 향해 하성이 말했다.
“잠깐이라도 괜찮으시면 아이들 경기를 돕고 싶은데요.”
“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애들아! 이 아저씨가 올해부터 블레이즈에서 뛴단다!”
“와아! 정말요?”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하성에게 다가왔다.
* * *
다음 날.
눈을 뜬 하성은 시간을 확인했다.
“7시…….”
평소라면 새벽에 일어나 뜬눈으로 지새웠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마치 기절한 것처럼 푹 잤다.
“아로마오일이 이렇게 좋은 거였어?”
생전 처음 경험하는 숙면이다.
이렇게 효과가 좋다면 앞으로 시차 적응에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벤, 땡큐.”
아로마오일 병을 내려놓으며 하성은 훈련을 나갔다.
* * *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따뜻해져 갔다.
4월이 됐을 무렵에는 후덥지근하다는 생각이 될 정도였다.
오전 러닝을 끝내고 돌아온 하성은 몸에 묻은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후우…… 내일부터는 물을 더 챙겨야겠어.”
지잉-!
그때 테이블에 올려둔 전화가 울렸다.
물을 마시며 번호를 확인하자 [제임슨]이란 이름이 박혀 있었다.
“예, 제임슨.”
[내일 선수단 미팅이야. 잊지 않았겠지?]“물론입니다.”
[알았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선수단 미팅.
개막을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행사였다.
즉, 이것이 끝나면 시즌이 시작된다는 소리였다.
“올라갈 시간이라는 거지.”
그동안 참아왔던 걸 뿜어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