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20)
마운드의 빌런-120화(120/285)
마운드의 빌런 120화
하성의 시즌 7번째 상대는 에인절스였다.
[오늘 정하성 선수가 상대할 팀은 같은 지구의 LA에인절스입니다. 최근 에인절스 역시 페이스가 매우 나쁘죠?] [그렇습니다. 전력 보강을 한 선수들이 실패하면서 타선과 마운드가 모두 총체적 난국에 빠졌습니다.]에인절스는 현재 지구 4위를 달리고 있었다.
바로 위에 어슬레틱스가 존재했으니 두 팀이 지구 3~4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만큼 두 팀은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
일단 새로 영입한 타자들이 힘을 쓰지 못했다.
마운드 역시 불안한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어슬레틱스가 나은 부분은 역시 에이스의 존재였다.
[1회 초, 어슬레틱스가 안타를 만들어냈지만, 득점까진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첫 공격이 다소 허무하게 마무리됐네요.] [이제 마운드에는 어슬레틱스의 에이스 정하성 선수가 기록을 수집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중계진도 하성의 별명을 아는지 멘트를 거기에 맞춰서 내보냈다.
[56이닝 연속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고 있는 정하성 선수, 오늘 경기에서 3이닝 이상 무실점을 기록한다면 오렐 허샤이져와 타이기록, 그 이상을 던진다면 신기록을 작성하게 됩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신기록 달성에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동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스타트가 가장 중요할 겁니다.]타석으로 에인절스의 1번 타자인 토리 헌터가 들어왔다.
[토리 헌터 선수, 에인절스의 중견수를 맡고 있는데요. 발이 썩 빠른 편은 아니지만, 현재 에인절스 타자들 중에는 타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합니다.] [현재까지 타율이 2할 8푼 3리입니다.] [매우 높다고 할 순 없으나, 에인절스의 현 상황을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다 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얼마 전까지 어슬레틱스 역시 에인절스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에인절스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만큼 에인절스의 현 상황은 메이저리그의 어떤 팀과 붙더라도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첫 타자를 4구 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하성 선수!]그렇기에 에인절스 타선은 하성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 * *
2회를 끝낸 하성이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다.
카메라에 그가 잡히자 캐스터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정하성 선수 오늘도 완벽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회까지 던진 현재 4탈삼진 1볼넷을 기록하면서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하성 선수의 호투는 사실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현재 대기록에 도전하는 중인데도 평상시와 같다는 게 매우 놀랍습니다.] [위원님도 현역 시절 다양한 기록에 도전하셨는데요. 그때 어떠셨습니까?] [겉으로는 표현을 안 했지만, 무척 떨렸습니다. 그 떨림을 이겨내야 대기록을 작성할 수 있는 법이죠.] [정하성 선수는 정말 강심장인 거 같습니다.] [타고난 선수입니다! 저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 신기록에 도전 중인데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게 대견합니다!]그런 하성의 활약에 보답하듯 어슬레틱스 타선은 3회에서 선취 득점을 올렸다.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 삼유간을 가릅니다! 3루 주자 천천히 홈으로 들어오면서 선취점을 뽑아내는 어슬레틱스!] [최근 공격이 아주 잘 풀리고 있습니다! 아주 좋아요!]공격도 풀리면서 여유로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정하성 선수가 3회 말, 2점의 리드를 등에 업고 마운드에 오릅니다!] [최근 정하성 선수가 이렇게 빨리 득점 지원을 받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하하! 그렇습니다.]마운드에 오른 하성이 로진을 손에 묻히며 전광판을 확인했다.
‘59이닝…….’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하성 본인도 떨리긴 매한가지다.
야구가 시작된 메이저리그.
그곳에서 나온 신기록이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세운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
메이저리그의 수준이 압도적으로 높기에 다른 리그에서 세운 신기록은 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일견 타당한 이야기였기에 거기에 동조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하성이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우……!”
하성은 심호흡을 뱉으며 마운드에 섰다.
‘기록은 도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전의 삶에서 얻었던 것들을 다시 되새겼다.
‘달성한 뒤에야 유일한 존재가 되고 내 가치가 높아지는 거야.’
잔인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지만, 하성은 동의하지 않았다.
‘과정이 중요하면 모든 이들이 성공해야지. 과정 중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그걸 결과로 만들어냈을 때야 빛을 발하는 거다.’
타석으로 타자가 들어서자 하성이 피처 플레이트를 밟았다.
‘나는 결과를 내겠어.’
뒤이어 구심이 손을 들었다.
“플레이볼!!”
59번째 이닝이 시작됐다.
* * *
[3회 말, 정하성 선수가 첫 번째 타자를 상대합니다.]사인을 교환한 하성이 1구를 던졌다.
쐐애액-!
딱!!
[배트 돌렸습니다! 하지만, 공의 구위에 눌리면서 타구는 3루 쪽 관중석에 떨어집니다.]첫 번째 스트라이크가 올라갔다.
2구는 슬라이더를 던져 배트를 유인했지만, 타자의 배트가 나오진 않았다.
3구에선 패스트볼을 던지면서 카운트를 잡아냈다.
[원볼 투스트라이크. 정하성 선수가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어냈습니다.] [정하성 선수의 스타일대로라면 여기에서 승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하성이 공격적인 투수라는 건 이제 메이저리그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승부를 결정 지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패스트볼이 올 거다.’
‘승부를 지을 거야.’
‘강속구겠지?’
팬들은 물론 중계진 그리고 타자까지.
하성이 강속구로 승부를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하성이 공을 던졌다.
[4구 던졌습니다!]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걸렸어!’
타자는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그의 배트가 빠르게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공은 도달하지 않았다.
‘이런……!’
허를 찌르는 체인지업에 타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후웅!
퍽!
“스윙! 아웃!!”
[아~ 여기에서 정하성 선수, 체인지업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었습니다!] [패스트볼을 예상했는데. 허를 찌르는 공으로 타자를 돌려세우네요.] [직전 경기에서 체인지업의 비중을 낮추었기에 오늘 경기에서도 비중을 줄이지 않을까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체인지업을 던지네요.]직전 경기에서 하성은 체인지업이 손에 제대로 걸리지 않으면서 그걸 포기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달랐다.
‘체인지업이 잘 붙네.’
오늘 컨디션이 좋은지 손의 감각이 날카로웠다.
덕분에 체인지업이 원하는 대로 들어갔다.
‘오늘 경기에선 자주 던져도 괜찮겠어.’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낸 하성의 시선이 타석으로 들어서는 거구의 사내에게 향했다.
[타석으로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가 들어섭니다!]2009시즌 뉴욕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실제 그는 09년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할 정도로 엄청난 맹활약을 펼쳤다.
[양키스를 떠나 천사의 품으로 온 마쓰이 히데키! 하지만, 올 시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타격 친화적인 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을 떠난 게 영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에인절스에 새로운 둥지를 폈지만, 투수 친화적인 구장 중 한 곳인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그의 실력은 이전보다 못했다.
거기에 노쇠화까지 겹치면서 양키스 시절만큼의 괴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질라는 고질라겠죠?] [맞습니다. 여전히 한 방을 갖춘 선수이기에 충분히 주의하면서 상대해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메이저리거가 맞붙습니다!]한일전이 형성되자 한국에서는 시청률이 쭉 올라갔다.
하지만 하성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일 국대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만난 걸로 호들갑 떨 이유는 없지.’
그에게는 그저 한 명의 타자일 뿐이었다.
‘물론 한 방을 조심해야 하는 타자.’
트레버와 사인을 교환한 그가 투구자세에 들어갔다.
[마쓰이 히데키를 상대로 1구 던집니다.]“흡!!”
쐐애애액-!!
하성의 손을 떠난 공이 마쓰이의 몸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몸에 맞을 수도 있는 공.
하지만 마쓰이는 피하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후웅-!!
동시에 공의 궤적이 바뀌면서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들었다.
두 궤적이 하나가 되는 순간.
딱!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때렸습니다!]타구가 빠르게 날아갔다.
안타성 타구였지만, 마지막 순간 궤적이 휘면서 3루 라인 밖으로 떨어졌다.
“파울!!”
[초구 파울입니다!] [하지만 히데키 선수가 아주 잘 때렸습니다.]실투는 아니었다.
그저 히데키의 반응이 좋았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연륜이라는 건가.’
히데키는 일본을 제패하고 메이저리그로 건너온 선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십 년이란 세월을 뛰면서 쌓인 경험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나도 경력으로는 밀리지 않지만, 이런 인간한테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
로진을 손에 묻힌 하성이 마운드에 섰다.
‘그럼 당신한테는 없는 무기로 싸워야겠어.’
피처 플레이트를 밟은 하성이 사인을 교환했다.
‘패스트볼로 가자.’
‘오케이.’
트레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한 번에 사인 교환이 이루어졌다.
히데키에게는 없고 하성에게는 있는 것.
‘내용물은 비슷할지 몰라도 껍데기는 내가 아주 팔팔하거든.’
투구자세에 들어간 하성이 와인드업과 함께 2구를 던졌다.
“흡!!”
쐐애애액!!
딱!!
“파울!!”
[2구 파울입니다! 100마일의 빠른 공에 배트가 밀리는 히데키 타자!] [나이가 들면서 마쓰이 히데키 타자의 배트스피드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반면 정하성 선수는 메이저리그 최고 구속을 던지는 투수거든요. 상성이 좋지 않아요.]투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하성이 빠른 템포로 세 번째 공을 던졌다.
[3구 던졌습니다!]“흡!!”
쐐애애액-!!
이번에도 패스트볼이었다.
히데키는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배트를 빠르게 돌렸다.
하지만 하성이 전력으로 던진 공을 따라가진 못했다.
뻐어억!!
후웅!!
“스윙! 아웃!!”
[헛스윙 삼진!! 102마일의 강속구로 마쓰이 히데키를 돌려세우는 정하성 선수!!] [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전설을 이렇게 돌려세우네요!] [정말 멋진 공이었습니다!]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이제 단 하나의 아웃 카운트를 잡으면 오렐 허샤이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하성은 세 번째 타자를 상대로도 쉴 틈 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퍼엉-!!
“스트라이크!”
[초구 몸쪽을 찌르는 패스트볼!]딱!!
“파울!”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걷어냅니다!]두 개의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하성이 사인을 직접 보냈다.
트레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성은 심호흡을 내뱉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집중…… 집중……!’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주위의 풍경이 사라졌다.
온전히 홀로 남은 하성은 자신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느끼며 3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보더라인을 정확히 꿰뚫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59이닝 연속 무실점을 달성하는 정하성 선수! 오렐 허사이져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정하성 선수!!]중계화면에 [정하성 59이닝 연속 무실점 달성!]이란 문구가 떠오르며 그의 기록을 축하했다.
* * *
[정하성 선수가 신기록을 작성했습니다. 이날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이 부문 종전 기록이던 59이닝 무실점을 넘어 62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새로 쓰게 되었습니다.]메이저리그 역사에 하성의 이름이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