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3)
마운드의 빌런-13화(13/285)
마운드의 빌런 13화
싱글A의 수준은 매우 낮다.
갓 프로가 된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치르는 곳이니 낮은 게 당연했다.
그러다 보니 취미 생활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하! 드디어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군!”
“이봐. 비시즌에 너무 논 거 아니야? 배가 너무 나왔잖아.”
“으하하! 이거 빼려고 야구 하는 거지.”
호탕하게 웃는 아저씨가 자신의 배를 자신 있게 내밀어 보였다.
저들은 본업이 야구선수가 아니다.
본업은 따로 있는 상태에서 단순히 야구가 하고 싶어 이곳에 온 선수들이다.
‘역시 싱글A는 극명하게 갈린다니까.’
취미 생활로 나온 부류가 있는가 하면 한쪽은 비장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쟤들은 위로 올라갈 생각밖에 없겠지.’
그러니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하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싱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어. 최대한 빨리 더블로 올라가야 한다.’
시즌은 이제 막 시작됐다.
하지만 하성은 1월부터 미국에 건너온 상황.
무엇보다 부모님의 지원을 계속 받고 있었다.
‘트리플은 가야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겠지.’
트리플부터는 그래도 급료가 제법 나온다.
풍족하진 않지만, 아껴서 쓴다면 충분히 쓸 수 있다.
‘첫 번째 목표는 올해 안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야 했다.
‘컨디션도 최고조다. 언제든지 나갈 수 있어.’
싱글A는 이기기 위한 경기만 하지 않는다.
더 유망한 종자를 골라내기 위한 작업을 병행한다.
그러다 보니 한 경기에도 여러 번의 선수 교체가 나온다.
‘오늘 선발은 리들.’
리들 쿠퍼.
22살인 그는 미국인으로 95마일의 빠른 공을 던졌다.
좌완이란 걸 감안하면 무척이나 인상적인 공이었다.
하지만.
퍽!!
“볼! 베이스 온 볼!!”
“또 볼이군.”
“이걸로 3타자 연속 볼넷인가?”
“저 녀석 구속 하나는 일품인데. 제구가 너무 불안해.”
감독과 코치는 물론 동료 선수도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리들의 제구력은 형편없었다.
‘자신감이 부족해. 정면승부를 해도 이 레벨에선 때릴 애들이 많지 않을 텐데. 생각이 너무 많다.’
저런 케이스는 흔히 있다.
위력적인 공을 가지고 있음에도 맞는 게 겁이 나서 정면승부를 피하는 타입.
딱히 뭐라 할 순 없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저런 모습은 여기에선 썩 좋게 보이지 않지.’
그래서일까?
“챈들러, 그리고 정. 슬슬 몸 풀자.”
“알겠습니다.”
“예.”
불펜코치가 빠르게 움직였다.
선발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임을 간파한 것이다.
하성이 마운드에 서자 그의 공을 받기 위해 한 포수가 자리에 앉았다.
‘동양인이네.’
포수 마스크를 쓴 이는 가진동이었다.
그 역시 트라이아웃에 통과해 입단에 성공했다.
오늘은 경기에 나갈 일이 없어 불펜포수로 공을 받기로 했다.
메이저리그라면 전담 불펜포수가 있겠지만, 이곳은 싱글A다.
인력이 부족해 선수가 마스크를 쓰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자! 언제든지 던지라고!”
가진동이 자신감 넘치게 외쳤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하성이 와인드업과 함께 1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뻐어억!!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지른 공이 가진동의 미트에 꽂혔다.
“아으으…….”
가진동은 미트를 뚫고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을 토했다.
‘뭐가 이렇게 아파?’
구속 자체는 빠르지 않았다.
85마일에서 90마일 사이의 어딘가였을 것이다.
그런데 통증은 예상을 가볍게 넘어섰다.
“계속 간다.”
“어? 자…… 잠깐!”
하성의 말에 위협을 느낀 가진동이 장갑을 한 겹 더 꼈다.
“어…… 언제든지 와!”
이전보다 자신감이 떨어진 그의 목소리에 하성은 피식 웃었다.
“사양하지 않고 갈게.”
“조…… 조금 사양해도 될…….”
쐐애애액-!!
뻐어억!!
가진동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공이 미트에 꽂혔다.
* * *
블레이즈의 선발 리들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뻐억-!!
“볼! 베이스 온 볼!!”
“허! 저기서 또 볼이네.”
“아니, 투 스트라이크 잘 잡아놓고 왜 연속으로 볼을 줘?”
블레이즈의 경기를 보기 위해 찾은 지역주민들의 한탄이 들려왔다.
마이너리그 경기라고 해서 관중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역 친화적인 정책을 자주 펴서 경기에 관중들이 많이 찾아왔다.
‘익숙한 얼굴들도 보이네.’
3개월 동안 베이커즈필드를 누비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자신에게 아로마오일을 추천해 준 벤이나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재미없나 본데?’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볼넷을 남발하니 그럴 수밖에.
그때 불펜의 전화가 울렸다.
뚜르르르-!
“예, 예. 챈들러와 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둘 중에요?”
불펜코치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다.
“정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딸칵!
전화를 끊은 불펜코치가 하성을 바라봤다.
“정! 등판이다.”
“예.”
생각보다 이른 첫 등판이 결정됐다.
* * *
고작 싱글A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의 등판이라니.
‘인생을 두 번이나 살게 되니 이런 경험도 하는군.’
이전의 삶에선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만약 부상이 아니었다면 메이저리그에 직행했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잘했을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야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지.’
야구에는 IF가 없다.
그렇기에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정, 위기 상황에 올려서 미안하네.”
감독의 말대로였다.
1사에 주자는 만루.
단타 한 번만 맞아도 2실점을 하는 상황이다.
뭐, 상관없지.
“괜찮습니다. 야구를 하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죠.”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초반이니 1, 2점은 괜찮아. 하지만 대량실점만은 피했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실점이라니.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데뷔전이니만큼…….’
감독이 내려가고 하성은 로진을 손에 묻혔다.
‘완벽하게 경기를 끝내야지.’
찾아온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하성은 마운드에 서서 관중석에 앉아 있는 인스트럭터 제임슨을 바라봤다.
그 역시 이쪽을 보고 있었기에 눈이 마주쳤다.
한번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돌려 포수를 바라봤다.
‘깔끔하게 가자고.’
“플레이볼!”
그의 데뷔전이 시작됐다.
* * *
상체를 숙이자 포수가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낮은 코스.’
코스를 정하고.
‘패스트볼.’
구종을 정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상체를 세우고 피처 플레이트에 발을 올렸다.
주자가 있으면 세트 포지션에서 공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만루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에선 선수의 취향에 갈린다.
세트 포지션에서 던지는 이가 있고 누구는 와인드업 포지션으로 공을 던진다.
하성은?
후자였다.
촤앗-!!
정면을 바라본 상태에서 몸을 틀었다.
킥킹과 함께 상체를 비틀며 힘을 충전했다.
투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충전, 그리고 방출이었다.
얼마나 힘을 잘 충전시키고 방출하느냐에 따라 구속과 구위가 결정된다.
하성은 상체를 살짝 비트는 것으로 충전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그리고.
후웅-!!
충전된 힘을 그대로 담은 채, 다리를 내딛는 스트라이드 동작을 이어갔다.
스트라이드의 폭이 어느 정도 되냐에 따라 홈플레이트와의 거리가 달라지는 요소 중 하나였다.
하성의 스트라이드는 일품이었다.
하체가 이동하는 와중에도 골반이 돌아가지 않고 닫혀 있어 충전된 힘을 모두 모아둘 수 있었다.
그리고 발이 땅에 닫는 순간.
콰직!!
단단한 버팀목이 된 발을 축으로 회전이 시작되어 다리, 골반, 그리고 상체가 연달아 열렸다.
상체까지 자연스레 전달된 힘은 어깨를 타고 팔로 이동했다.
상체가 돌아가면서 앞으로 딸려 나온 팔을 최대한 끌고 나와 손끝과 등, 그리고 엉덩이와 아킬레스건까지.
대각선으로 일직선이 되는 순간.
“흡!!”
촤아아앗-!!
기합 소리와 함께 있는 모든 힘을 공에 전달했다.
공이 손을 떠나기 직전.
전력을 다해 손끝으로 실밥을 긁었다.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미트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뻐어억-!!
굉장한 소리와 함께 공이 미트에 꽂혔다.
그때까지도 타자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했다.
“스…… 스트라이크!!”
구심의 콜이 나온 뒤에야 타자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만큼 굉장한 공이었다.
“며…… 몇이야?”
감독의 질문에 투수코치가 다급히 구속을 확인했다.
“99……마일입니다.”
“미친…….”
감독의 시선이 관중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놀라고 있는 제임슨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제임슨도 모르고 있었다면 트라이아웃 때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는 소리군.’
트라이아웃은 날이 추워지기 전에 진행됐다.
당시라면 지금과 비슷할 정도의 구속이 나왔을 거다.
그럼에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건 속였다는 게 된다.
‘쇼맨십이 있어.’
감독은 그걸 나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좋게 봤다.
쇼맨십이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노리고 했든, 아니든 스타의 자질은 충분하다. 이거 오랜만에 괴물이 나타났는데.’
싱글A 리그의 감독을 맡으면서 많은 선수를 봤다.
그중에는 지금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하성이 어떤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사이.
하성이 2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딱!!
“파울!!”
이번에는 타자가 반응했다.
하지만 타구는 3루 라인을 벗어났다.
“이번 구속은?”
“94마일입니다. 5마일이나 줄였는데요?”
“초구가 포수의 리드를 벗어났어. 그래서 구속을 줄인 걸 거야.”
“아직 제구가 잡히지 않았다는 소리인가요?”
“그렇겠지.”
2구를 보고 감독은 더욱 감탄했다.
‘대부분 강속구를 던지는 놈들은 거기에 집착하게 마련이지. 그래서 제구가 되건 말건 그거 하나만 밀고 나가는데.’
강속구는 분명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제구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무기로 쓸 수 없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건 강속구만의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젊을수록 이 마력에 사로잡혀 벗어나질 못한다.
‘이제 고작 19살인데, 어떻게 저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거지?’
마치 노련한 베테랑 투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데뷔전 첫 상대를 가볍게 돌려세웠다.
하지만 하성은 그걸 기뻐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다음 상대를 준비했다.
‘집중력도 좋군.’
그러한 모습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저런 투수가 마운드에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했다.
하성은 마운드에서 그런 감독과 제임슨의 반응을 체크하며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아직까지 전력투구를 하면 제구력이 흔들리는군.’
그러면서 냉정하게 자신의 실력을 파악했다.
‘일단 두 사람의 눈을 확실히 잡아뒀으니, 제구를 확실히 잡으면서 타자를 요리해야겠어.’
투아웃이 되었지만 여전히 만루는 변하지 않았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다.
그는 배터박스에서 최대한 뒤로 물러나서 타격자세를 취했다.
‘구속이 빠르니 최대한 공을 확인하고 때리겠다는 소리군.’
타자의 생각이 눈에 뻔히 보였다.
‘몸쪽 패스트볼.’
그런 하성에게 포수의 사인이 들어왔다.
고개를 끄덕인 하성이 피처 플레이트를 밟았다.
‘이번에도 포심 패스트볼은 조금 위험할 텐데.’
앞서 던진 세 번의 공이 모두 패스트볼이었다.
이번에도 패스트볼을 던진다면?
대기 타석에 있었던 타자가 때려낼 가능성은 높다.
옆이지만, 공이 날아오는 걸 봤으니 말이다.
‘조금 장난질을 쳐볼까.’
결정을 내린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흐읍……!”
그리고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멀리 날아갔다.
잘 맞았다는 게 소리에서도 느껴졌다.
하지만 공이 점점 옆으로 휘더니 이내 3루 라인 밖으로 날아갔다.
“파울!!”
“쳇!”
구심의 판정과 함께 타자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그 모습에 하성은 미소를 지으며 로진을 손에 묻혔다.
그리고 연달아 2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따악!!
“파울!!”
이번에는 타구가 외곽까지 날아가지 않았다.
배트에 빗맞은 타구가 내야 쪽 3루 라인을 벗어나면서 파울이 선언됐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
‘변화구로 갈까?’
여기에서 포수는 선택의 폭을 넓혔다.
하지만 하성이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 하나를 팔뚝에 올렸다.
‘정면승부로 가자고.’
‘알았어.’
하성의 컨디션은 좋았다.
굳이 그의 의견을 무시할 필요가 없었다.
포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미트를 내밀자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이걸로…….’
스트라이드와 함께 하체와 상체를 연달아 회전시키며 공을 던졌다.
‘끝이다!!’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갔다.
타자는 공이 날아오는 속도에 맞춰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배트가 절반이 채 돌기도 전에.
뻐어억-!!
공이 미트에 꽂혔다.
그리고.
후웅!!
배트가 힘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심판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이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이 코치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던진 공들…… 구속이 어떻게 됐지?”
“아…… 그러니까, 91마일 94마일, 그리고…….”
“그리고?”
“98마일입니다.”
마지막 공은 명백하게 빠지는 공이었다.
그럼에도 타자의 배트가 돌아가게끔 만들었다.
앞에서 던진 두 개의 공 때문이었다.
‘앞에서 스트라이크를 두 개 던졌어. 거기에 타이밍도 비슷하게 맞췄어. 그러니 타자 입장에선 자신감을 얻을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마지막 공은 전력투구로 90마일 후반이 나왔다.
앞에 공에 타이밍을 맞추었다면 당연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완급조절이군.’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19살짜리 신인이 저런 완급조절을 보여주는지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괴물의 등장이군.’
새로운 괴물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