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32)
마운드의 빌런-132화(132/285)
마운드의 빌런 132화
국가대표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없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될 부분도 분명했기에 때에 따라서는 국가대표 유니폼도 입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는 게 최우선이다. 국가대표에 나간다면 내 몸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제일 커.’
선발로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 뒤라면 상관없다.
그 데이터에 맞춰 체력을 안배하고 대표팀에 합류해서 경기에 뛰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선발 첫해였다.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팀에 합류했다간 예측하지 못한 일에 휘말릴 수 있다.
그렇기에 올해까지는 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끝까지 날 합류시키겠다는 말이지. 가족까지 건드려서 말이야.’
작은아버지가 어떻게해서 나섰는지는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대한민국에서 학연, 지연, 혈연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지. 그게 꼰대들 마인드고.’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삼연의 힘은 강력했다.
문제는 하성이 그렇게 혈연과 지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단 것이었다.
무엇보다 프로야구 세계에선 학연과 지연보다 우선시되는 게 바로 실력이었다.
실력이 뛰어나면 그 어떤 요소도 선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하성은 한국을 넘어 메이저리그에서 최고로 뛰어난 선수였다.
그에게 압박을 넣을 수 있는 요소는 없었다.
‘꼰대들 입장에선 그런 내가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하성은 독특한 캐릭터였다.
학연이나 지연에 얽메이지 않고 거기에 나이에 대한 압박에서도 자유로운 선수였다.
무엇보다 실력만으로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즉, 그들이 컨트롤할 수 없으니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가족을 건드렸단 말이지.”
가족을 건든 건 선을 넘었다.
그러나 의문도 들었다.
“왜 작은아버지지? 인맥이 거기에서 끊겼나?”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서포트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인맥을 쌓아오셨기 때문에 겹치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프리랜서인 자신과 다르게 아버지는 엄연히 사회인이었다.
무엇보다 영업부에 계셨기에 평소에도 인맥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분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했다.
“확인해 봐야겠어.”
시간을 확인한 하성이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예, 아버지. 안 주무시고 계셨어요?”
[조금 늦게 잔다. 그런데 이 시간에 웬일이냐?]“다름이 아니라 혹시 아버지에게 KBO 쪽에서 접촉이 오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거냐?]“왔어요?”
[며칠 전에 대한상사 김 차장이 오랜만에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기술위원장이란 양반이 있더구나.]“김 차장이라면…….”
[그 왜 너 중학생 때 같은 야구부였던 김현곤이 아버지 말이다.]“아…….”
역시나 KBO는 온갖 인연을 타고 아버지에게도 접촉했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연락하지 않으셨어요?”
[경기 치르기도 바쁜 아들한테 뭐, 이런 일로 연락을 하겠냐?]“국가대표에 나가게끔 하라고 전해들으신 거 아니에요?”
[그거야 네가 결정할 일이지.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사실은…….”
하성이 작은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전화에 대해 말했다.
[이 망할 놈이!!]당연히 아버지는 극대노하셨다.
[넌 신경 쓰지 마라! 내 이 녀석 당장 찾아가서 한소리를 해야겠어! 가문의 명예는 얼어 죽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정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요?”
[물론이다! 예전부터 너희 엄마랑 항상 하던 말이 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건 끝까지 지원해주겠다고 말이야.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더더욱 국가대표란 자리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네가 결정해야 한다.]아버지의 말에 하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하성은 창밖을 바라봤다.
“참, 좋은 부모님들이야.”
이전 삶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삶에서도 부모님은 부모님다웠다.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이제 한번 붙어봐야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분명하게 보여줄 때였다.
* * *
김민규 위원장은 문자를 온 걸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조카 녀석에게 말해두었습니다.]문자를 보낸 건 하성의 작은아버지였다.
“역시 나이가 들수록 대화가 되는 법이지.”
자신의 뜻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김민규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 녀석을 만나러 가면 되겠지.”
집안사람이 움직였으니 녀석도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다.
국가대표에 합류할 게 분명했고 그리되면 총재도 자신을 달리 볼 게 분명했다.
‘앞으로 감독도 하려면 총재나 사장단의 눈 밖에 나는 일은 없도록 해야지.’
김민규가 원하는 건 프로구단의 감독이었다.
아니, 이건 김민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야구인이 원하는 바였다.
은퇴 이후 가장 많은 명예와 돈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프로야구 감독이었으니 말이다.
웬만한 선수보다 높은 연봉과 엄청난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 별다른 부와 명예를 주지 않는 기술위원장이란 자리를 선뜻 수락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흥행시키면 구단들도 나를 내버려 둘 수 없을 거야.’
아시안게임은 한국이 이기는 게 당연한 국가대항전이다.
그렇기에 흥행을 위해 여러 요소가 필요했다.
현재 시점에서 흥행에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역시 정하성의 합류였다.
그것을 성공시킨다면 자신의 가치는 더없이 높아진다.
“자, 이제 슬슬 연락을…….”
그때였다.
“위…… 위원장님!”
“뭐야?! 허락도 없이 내 방문을 열고 미쳤어?!”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 좀 보셔야 합니다!”
부하직원이 다급히 스마트폰을 건넸다.
“에이 쯧! 난 이런 거 다루질 못해!”
“그…… 그냥 거기에 뜬 기사를 보시면 됩니다.”
“에잉! 난 이런 작은 글씨는…… 응?”
스마트폰에는 기사가 떠 있었다.
기사의 제목은 큰 폰트로 되어 있었기에 읽기 편했다.
하지만 김민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이게 뭐야? 이거 진짜야?”
“예…… 예!”
“진짜라고?!”
“예…….”
재차 확인한 김민규가 다시 스크린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믿을 수 없는 제목이 떠 있었다.
[정하성 미국으로 귀화하나?]하성의 귀화기사였다.
* * *
귀화란 국적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국적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다른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소리였다.
한국의 스포츠 스타가 다른 국가에서 활약할 때 한 번씩 찾아오는 이야기였다.
바로 병역문제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20대 중반에나 귀화설에 대해 흘러나온다.
그렇기에 하성의 귀화 기사는 엄청난 이슈와 의문을 만들어냈다.
-귀화 기사 뭐임?
-가능성 여부라던데?
-아니, 이제 21살짜리에게 무슨 귀화 기사야?
-오클랜드 구단이 지원해 준다더라.
-이런 케이스가 또 있었나?
-병역 문제 때문인 듯.
-예전에 코리안특급도 귀화하면 다저스에서 지원해 주겠다고 한 적 있었음.
-이거 어디 언론에서 나온 거야?
-미국 언론이라는데. 큰 곳은 아님.
정보가 빠른 사람들이 언론사까지 특정 지었다.
일단 대형 언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네티즌은 달랐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음?
-가능성은 충분하지.
-정하성 정도면 솔까 귀화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지 않나?
-ㅇㅈ
-한국보다 미국에서 사는 게 더 나을 듯.
-한국에선 그놈의 병역의무 때문에 커리어에 지장받음.
-금메달 따면 되잖아?
-그게 어디 혼자 힘으로 되냐?
-그건 맞지.
네티즌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한 쪽은 귀화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이었다.
반대되는 의견은 당연히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귀화는 아니지 않음?
-나라를 버리는 거네?
-매국노네.
-아무리 병역이 싫다 해도 나라를 버리냐?
-나라 버린 놈은 부모도 버릴 놈이지 ㅋㅋ
-패드립 지리네.
-난 얘 원래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니까.
-위아래도 없는 놈이 그렇지 뭐.
원색적인 비난까지 섞이면서 하성을 비난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후속 기사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단 하나의 기사로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국내 언론사들은 뒤집혔다.
“정하성이랑 인터뷰 되는 놈 없어?!”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거절?”
“예! 만약 관련 질문을 한다면 앞으로는 자신과 인터뷰할 생각을 버리라는 말까지 내뱉었어요.”
“이런 젠장!”
웬만한 이들은 언론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하성은 달랐다.
언론은 무서워하긴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협박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국내 언론이 하성을 건들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실력이 미치도록 뛰어나니 뭐 어떻게 흠집을 낼 수 없군.”
언론이 가진 힘은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거다.
기사의 문구 하나만 슬쩍 건드려도 여론이 알아서 분개하고 기뻐해 주니 편리했다.
하지만 하성은 그걸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가 되었다.
‘함부로 건들면 오히려 우리가 당할 수 있어. 지금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언론은 하성의 이번 귀화 뉴스를 파고들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여기인가?”
몇몇 기자들은 직접 발로 뛰었다.
첫 보도가 나왔던 언론사를 찾았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을 취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온 답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좀처럼 나오는 게 없네.”
백준기는 수첩을 보며 인상을 썼다.
“첫 보도를 내놓은 곳에서는 자기들이 나름대로 취재한 내용이라고는 하지만, 믿기 어려운 곳이고.”
이번 귀화기사를 최초로 내놓은 곳은 오브스였다.
전국구 언론사는 아니었고 지역 언론에 가까웠는데, 문제는 오클랜드 지역에 있는 곳이 아니란 점이었다.
‘왜 이런 곳에서 최초의 기사가 나온 거지?’
오클랜드 지역 언론이라면 이런 기사가 나와도 이해한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온 기사이니 의심이 가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정하성도 이번 일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어. 그저 루머로 봐야 하나?’
루머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기사에서도 확실하다기보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정도였고.’
오브스에서 내놓은 기사는 이럴 수도 있다는 기사 정도였다.
그런 기사 하나에 한국이 발칵 뒤집혔으니 정하성이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직접 물어보는 건 금지였으니…….”
이는 백준기 역시 포함이었다.
과거의 인연으로 어떻게 해볼까도 했지만, 정하성이란 선수는 그것을 허락해 줄 성격이 아니었다.
“후우…… 골치 아프군.”
두통이 밀려오고 있을 때였다.
우웅-!
“얘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번호를 확인한 백준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선배! 김민규 위원장이 미국으로 갔어요!!]“뭐? 언제?”
[2시간 전에요! 내일이면 도착할 거예요!]전화를 끊은 백준기는 곧장 택시에 몸을 실었다.
“공항으로 가주세요.”
김민규가 직접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정하성과 담판을 짓겠다는 소리야.’
귀화까지 언급된 상황이니 기술위원장 입장에선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대표팀을 꾸리는 건 전적으로 기술위원장에게 권한이 있으니 말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중요한 건 화제성이다. 우승은 당연하다 보니 대중들에게 그런 부분은 어필이 되지 않아.’
국가대항전은 리그의 흥행에 촉진제 역할을 하기 좋았다.
KBO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화제성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 중심에는 정하성이란 슈퍼스타가 있었고 말이다.
‘어떻게든 이번에 결판이 나겠어.’
특종의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