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33)
마운드의 빌런-133화(133/285)
마운드의 빌런 133화
김민규 단장이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더럽게 덥군.”
그가 인상을 쓰자 보좌관이 가지고 있던 물통을 건넸다.
“됐어. 그나저나 정하성과 약속은?”
“그게…….”
“왜?”
“정하성 선수가 당장은 만나기 어렵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뭐야?”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오면서 거절했습니다.”
김민규가 이를 악물었다.
“이 새끼는 도대체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군.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주지도 않겠다는 건가?”
보좌관이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김민규가 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음이 가기만 하고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인간은 왜 전화를 안 받아?”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는 김민규의 핸드폰에는 하성의 작은아버지 번호가 찍혀 있었다.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되는군. 일단 호텔로 가자.”
“아, 예.”
두 사람이 공항을 빠져나갔다.
* * *
같은 시각.
한국에선 하성의 아버지가 작은아버지를 만나고 있었다.
“너 하성이에게 전화했다면서?”
“어, 들었어요? 웬만하면 국가대표에 합류하라고 조언 좀 해줬어요.”
“조언? 네가 왜?”
“왜긴 왜예요. 집안 어른으로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부모인 나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나서서 애한테 그런 소리를 해?!”
“아니, 작은아버지로서 이 정도도 말하지 못해요? 형 너무하네.”
작은아버지인 상필은 오히려 당당하게 나섰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한국이란 사회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에게는 한국이란 나라의 문화보다 아들이 우선이란 것이었다.
쾅!
분노에 찬 아버지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상필은 당황하며 그를 바라봤다.
“왜…… 왜 이래……?”
“왜 이래? 너 이 자식, 아무리 하성이가 네 조카라지만, 선은 넘지 마. 내 아들이다. 내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하건 부모인 내가 존중하겠다는데, 작은아버지인 네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야?”
“그게 아니라…….”
“네 논리대로면 내가 너보다 어른이니 너희 집에 들어가서 가정사를 뒤흔들어도 된다는 거냐?”
“아니, 그건 억지 아닙니까?”
“뭐가 억지냐? 네가 말한 논리대로라면 나 역시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
아버지의 말에 상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논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주장을 단번에 눌러버리는 이야기였다.
“우리 집안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하성이가 어떤 선택을 하건 부모인 우리가 반대하지 않는 이상, 네가 뭐라 할 자격은 없어!”
“으음…….”
“그러니 두 번 다시 한창 시즌 중인 애한테 연락하지 마라. 알았냐?”
“후우…… 알았습니다.”
동생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하나만 물어봅시다.”
“뭐냐?”
“정말 하성이 귀화할 수도 있는 거요?”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녀석이 원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
그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 * *
김민규가 오클랜드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하성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망할……. 날 이렇게까지 홀대한다고?’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선수와 만남을 요청했는데, 미루는 일 따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하성은 약속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나오는 건 한숨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와아아아아!!”
하성의 실력을 말이다.
오늘 경기 17번째 탈삼진을 잡으며 내려가는 하성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제 교체되겠네요.”
보좌관의 말에 이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TV에서 봤을 때도 대단했지만, 직접 보니 공의 움직임이 엄청나네요. 똑같은 궤적을 그리는 공이 단 하나도 없어요.”
보좌관이 연달아 감탄을 터뜨렸다.
그의 말대로 하성의 공은 하나 같이 엄청난 구위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에도 무빙패스트볼을 던지는 애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저 녀석만큼 던지는 녀석은 없어. 분명 포심을 던지는데 하나같이 커터나 투심처럼 들어간다.’
일명 무빙패스트볼.
무브먼트가 심한 공들을 의미한다.
포심 패스트볼은 기본적으로 수직 움직임을 보이는 공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점점 떨어지는 궤적을 그린다.
그 각이 크지 않아 일직선으로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수직 무브먼트를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이런 포심 패스트볼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스트레이트적인 움직임이 아닌 수평적인 움직임이 더해진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의 그립을 교과서처럼 가르치지 않는다. 투수에게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만들지. 그렇기에 패스트볼이라는 교과서적인 공을 던져도 모두 다른 무브먼트가 나온다.’
이런 무빙패스트볼이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하나둘 그립의 자유가 도입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동일한 그립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많았다.
이는 딱히 지도자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부모들이 인터넷에서 본 어설픈 지식으로 지도자를 압박하기에 생기는 일이었다.
특히 이름 없는 지도자일수록 이런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태일고 역시 내가 알아본 바로는 정형화된 그립을 가르친다. 저 녀석도 분명 1학년까지는 그런 공을 던졌었는데.’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서 투구 스타일이 아예 달라졌다.
‘쯧! 이런 걸 생각해서 어쩐다고.’
감탄은 여기까지였다.
지금 필요한 건 저 녀석을 설득시키는 일이었다.
“경기 끝나고 미팅 잡도록 해. 여차하면 어슬레틱스 구단과 미팅을 진행하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해.”
“아, 예. 알겠습니다. 경기 끝까지 보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지금 경기나 보자고 이 멀리까지 온 줄 알아?”
“아…… 아닙니다.”
급히 일어나는 보좌관을 보며 김민규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정하성 시즌 12승 달성!] [8이닝 17탈삼진 괴력투를 선보인 정하성!] [후반기 3연승 질주 중인 정하성의 승리 본능!] [8이닝 2실점 17탈삼진을 거둔 정하성, 시즌 12승을 거두다!]경기가 끝나고 엄청난 양의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 내용이 비슷했지만, 이만큼의 기사가 쏟아진다는 건 그만큼 하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기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KBO 기술위원장인 김민규 오클랜드 콜로세움에 등장!] [최근 귀화 이슈가 있었던 정하성을 만나기 위해 오클랜드에 도착한 김민규 기술위원장!]김민규 위원장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그의 목적을 예상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기에 대중은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했다.
“쉽게 만나줄 순 없지.”
기사를 보던 하성이 비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집안사람까지 동원한 이상 그냥 만나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약속을 미루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현재 누가 위에 있는지 상대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보자……. 그럼 언제 만나볼까.”
하성은 날짜를 확인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시간대를 골랐다.
“이날이 좋겠군.”
디데이가 결정됐다.
* * *
이틀 뒤.
하성은 김민규와 만남을 가졌다.
“만나기 참 힘들군.”
첫 대면에서 김민규가 내뱉은 말이었다.
하성은 그런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좀 바빠서요. 미리 약속을 하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연락이 되어야 말이지.”
“제 에이전트를 통해 약속을 잡는 정상적인 절차를 지키셨으면 되셨을 텐데요?”
“후우…….”
정상적인 절차라는 말에 박진철이 떠올랐다.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그를 내보낸 일이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 싸움은 이쯤 하도록 하지.”
“싸움이랄 게 있나요?”
너스레를 떠는 하성을 보며 김민규가 이를 악물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편하신 대로 하시죠.”
“이번 아시안게임에 합류해 주게.”
“그건 이미 거절했을 텐데요?”
“대표팀은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야! 자네가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네!”
“그러니 나라에 보은을 해라, 뭐 이런 말씀인가요?”
“정확하네.”
이제야 말이 통하는 거 같자 김민규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하성은 여전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죠. 싫습니다.”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자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갈 거야.”
“회유가 안 되니 협박입니까?”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지. 자네는 지금 별다른 이유 없이 국가대표를 거부하고 있는걸세.”
“도돌이표네요. 이거 참, 바쁜 시간 짬 내서 왔더니, 결국 하는 말은 똑같군요.”
하성이 실망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하성을 향해 김민규가 다급히 외쳤다.
“자네는 애국심이란 게 없나?!”
“애국심도 상황에 따라 나오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떤 것보다 애국심이 우선이 되어야 해!”
“아시안게임에 메이저리거까지 불러들이는 게 애국심입니까? 그냥 리그의 흥행이 목적 아닙니까? 난 그런 대회에 관심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버리고 귀화까지 하겠다는 건가?”
“제가 언제 하겠다고 했습니까? 그냥 언론이 지껄인 거지. 하지만 이제 모르죠. 당신네들이 날 계속 귀찮게 하면 진짜 할 수도요.”
하성이 몸을 돌려 김민규를 바라봤다.
“그럼 정부에서도 참 좋아하겠네요.”
“뭐?”
“올 시즌 활약만 하더라도 제가 연봉 조정으로 얼마나 받을 거 같습니까?”
하성의 말에 김민규의 얼굴에 의문이 나타났다.
갑자기 돈 이야기라니?
“어림잡아도 500만 달러 이상은 받겠죠? 내년까지 합치면 천만 달러를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 거기에 따른 세금은 어디로 들어갈까요?”
“그건…….”
“다 한국 정부에 들어가죠. 엄청난 세금을 손에 쥐게 되는 거죠. 거기에 FA까지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성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제가 귀화하게 되면 한국에 내야 할 세금을 미국에 내게 되겠네요? 그럼 정부는 어떻게 할까요?”
“으음…….”
세금은 정부를 운영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성이 지금과 같은 활약을 하고 FA 계약까지 대박을 터뜨린다면 세금만 해도 수백억에 달할 것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세금이야 미국에 낸다지만, 한국에서 발생할 세금까지 귀화와 함께 사라지게 된다.
하성의 스타성을 생각하면 그 비용만 수십억이 훨씬 넘는다.
거기에 국내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손실까지 KBO에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제아무리 KBO라 하더라도 국가와 척을 질 수는 없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충분히 가능하기에 김민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성은 그런 김민규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나 건들지 마요. 여차하면 당신네들 목 다 달아나게 할 수 있으니까.”
“이익……!”
“사람이 예의를 가지고 대하면 그쪽도 선을 넘으면 안 되지.”
김민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제아무리 KBO가 야구에서 강한 단체라고는 하나 정부에 비빌 수는 없었다.
“오늘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분명히 밝히세요. 난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는다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귀화뉴스는 루머가 아닌 실제 일어날 사건이 될 겁니다.”
하성은 그 말을 끝으로 룸을 나갔다.
김민규는 그런 하성이 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방법이 없어…….’
외통수에 몰렸다.
* * *
다음 날.
잠에서 깬 하성은 스마트폰으로 기사부터 확인했다.
[KBO 기술위원장 김민규, 정하성은 국가대표에 합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정하성의 의견을 존중해 이번 국가대표에는 그를 선발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KBO!] [김민규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정하성은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선수다. 그의 의견을 존중해 국가대표 합류를 미루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김민규가 백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