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38)
마운드의 빌런-138화(138/285)
마운드의 빌런 138화
회귀하기 전.
하성은 강속구 투수로 KBO를 호령했다.
최고구속 155㎞까지 던지는 우완 파이어볼러였던 그는 대부분 구위로 타자를 윽박질렀다.
하지만 그걸로 KBO를 제패할 순 없었다.
선발투수였기에 다양한 구종들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첫 번째로 익혔던 것은 슬라이더였다.
고속슬라이더와 종슬라이더를 번갈아 던지면서 타자들을 압도했다.
두 번째는 체인지업이었다.
수준 높은 체인지업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어 헛스윙과 범타를 유도했다.
이후 세 번째로 배웠던 공이 바로 스플리터였다.
‘사실상 프로에 입단하고 배운 구종이었지. 그리고 내 프로 생활에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했던 공이고.’
당시 배웠던 스플리터지만, 회귀 후에는 아직 던진 적이 없었다.
이유는 꺼려졌기 때문이다.
‘은퇴하게 된 날, 마지막으로 던졌던 공이 스플리터였지.’
그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일까?
회귀 후에도 한동안 스플리터는 던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러한 트라우마는 이미 떨쳐낸 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던지기에는 가장 완벽한 공이었다.
결정을 내린 하성이 상체를 숙이고 트레버와 사인을 교환했다.
‘어떻게 할까?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뺏을까?’
‘이걸로 가자.’
하성이 사인을 보냈다.
투수와 포수가 주고받는 사인은 투수마다 다른 게 아니라 팀 단위로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하성도 스플리터 사인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트레버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타임!”
[트레버 포수가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를 방문합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순간이니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여러 추측들이 오가는 사이.
마운드에 방문한 트레버가 하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금 사인 뭐야?”
“뭐긴 뭐야. 본 대로지.”
“정말 이 상황에서 한 번도 던지지 않았던 걸 던진다고?”
“그래. 그러니 괜히 시간 더 보내지 말고 내려가. 이러다 눈치채겠다.”
“아, 그래.”
너무 오래 마운드에 있으면 상대 진영이 눈치챌 수도 있었다.
그걸 깨달은 트레버가 다급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큰일은 아니었나 봅니다. 트레버 포수가 일찌감치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아마 간단하게 확인을 한 듯합니다.] [이번 타자를 잡아내면 타이기록을 달성하게 되는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팔을 들어 올린 하성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 몸을 틀면서 킥킹과 함께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콰직!!
스파이크가 마운드에 박히고 하성의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휘릭!!
스플리터에 있어 중요한 건 패스트볼과 같은 투구 폼에 있었다.
그렇기에 하성은 모든 동작은 스패스트볼과 동일하게 가져갔다.
“흡!!”
기합까지 말이다.
쐐애애액-!
[던졌습니다!]하성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 순간, 타자의 배트도 매섭게 돌아갔다.
‘머저리 같은 놈! 여기에서 또 포심이냐?!’
후웅!!
공을 확인한 타자는 포심일 거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스윙에 망설임이 없었다. 범타가 되더라도 기록은 끝내겠다는 기세였다.
그 순간.
‘어?’
공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처럼 날아오던 공이 사라지자 목표를 잃은 배트가 할 수 있는 건 허공을 가르는 것밖에 없었다.
후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삼진입니다!! 정하성 선수가 10번째 탈삼진을 잡아냅니다!!]10연속 삼진.
톰 시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간이었다.
* * *
하성이 결정구로 던졌던 공이 슬로우가 걸리며 다시 재생되었다.
[분명 중간까지는 패스트볼이라 생각했던 공이었는데요.] [맞습니다. 공의 궤적이 변한 건 중간을 지나서부터였죠. 바로 여기에요.] [이건 마치 포크볼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네요.] [타자 입장에선 공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아, 지금 그립이 나오네요. 손가락을 벌리고 있는 걸 봐서는 포크볼로 보이는데요?] [검지와 중지가 벌어진 게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이건 포크볼보다는 스플리터로 봐야 할 거 같네요.]해설위원의 해설은 정확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정하성 선수가 스플리터를 던진 적이 있나요?] [현재까지는 없었습니다. 아마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던진 거 같네요.]대단한 배짱이었다.
한 번도 던진 적이 없던 공을 던졌다.
그것도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기록에 도전하고 있을 때 말이다.
-이게 말이 되냐?
-와…… 도대체 어떻게 된 배짱이냐?
-자신이 주로 던지던 공도 아니고 처음 던지는 공을 지금 상황에 던지네.
-이 정도면 강심장이 아닌데?
-확실한 건 정상은 아닌 듯.
-진짜 미쳤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하성이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기록 달성을 한 것보다 그런 선택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톰 시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정하성 선수,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다음 타자가 타석으로 들어섰다.
[만약 이번 타자마저 삼진으로 잡아내면 정하성 선수는 한 경기 연속 삼진 기록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게 됩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내야 합니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기에 정하성 선수가 기록을 달성했으면 좋겠네요.]카메라가 하성을 비추었다.
마운드 위에 있는 그가 트레버와 사인을 교환했다.
[사인을 교환한 정하성 선수, 신기록을 위한 도전에 나설 1구를 던집니다!]와인드업과 함께 던진 공이 미트에 꽂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를 찌르는 패스트볼! 구속은 96마일이 나왔습니다!] [투구 수가 늘어나면서 구속도 자연스레 줄어들고 있습니다.]패스트볼의 구속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하성은 던지는 걸 겁내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2구 던집니다.]쐐애액-!
후웅!!
타자의 배트가 돌아가는 순간, 공의 궤적이 크게 휘면서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당연히 스윙의 각이 나오지 않으면서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슬라이더에 배트 크게 헛돕니다!] [구속은 떨어졌지만, 슬라이더의 궤적은 여전히 날카로운 정하성 선수입니다.] [다시 유리한 카운트를 잡아낸 정하성 선수! 과연 신기록 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투스트라이크로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아낸 하성은 3구에서 종슬라이더로 타자의 배트를 유인했다.
퍽!
“볼!!”
하지만 타자의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기록의 재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중력이 높아진 듯 했다.
다시 투스트라이크 원볼이 된 상황.
하성은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사인을 보냈다.
[정하성 선수가 사인을 보냅니다.] [중요한 순간에 정하성 선수가 사인을 보내는 일이 많네요.] [그렇습니다. 사인 교환을 끝낸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와인드업에 들어간 하성이 4구를 던졌다.
“흡!!”
쐐애애액-!!
하성의 손을 떠난 공이 다소 높은 위치로 날아들었다.
타자가 하이 패스트볼이라 판단하고 배트를 거둔 순간.
휘릭!
공이 뚝 하고 떨어지면서 존으로 빨려 들어갔다.
타자가 급히 걷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퍽!
공은 그대로 미트로 들어갔고 모든 이의 시선이 구심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구심이 다리를 뒤로 빼며 외쳤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신무기 스플리터로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달성하는 정하성 선수!] [새로운 기록이 탄생했어요! 톰 시버를 넘어 11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합니다!!]메이저리그 신기록이 갱신되는 순간이었다.
* * *
[메이저리그 정하성 선수가 11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메이저리그 신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정하성 완투승과 11연속 삼진 달성!] [메이저리그 첫 완투승,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쓴 정하성!] [신무기 스플리터를 선보인 정하성! 톰 시버를 넘어섰다!]하성의 기록 달성과 함께 엄청난 양의 기사가 쏟아졌다.
비록 마지막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기록은 11연속 삼진으로 마감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뉴스였다.
그 뉴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메이저리그 첫 완투승이란 기록이 묻힐 정도였다.
-정하성 도랐네.
-이걸 진짜 달성하네 ㅋㅋ
-말이 되냐?
-얘는 진짜 어나더 레벨이다.
-메이저리그도 어나더인데, 거기에서도 어나더네.
-이런 애가 갑자기 툭 하고 떨어지냐?
-말이 안 나온다.
-이거 7월 이달의 투수도 정하성이네.
-4월부터 4개월 연속 아님?
-ㅋㅋㅋ 이러다가 시즌 내내 받겠다.
-남들은 한 번 받기도 힘든 걸 계속 받네.
하성의 활약에 팬들은 즐거웠다.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기록이 하나 둘 깨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남다른 재미였다.
무엇보다 그것을 실시간으로 직접 본다는 건 야구팬들에겐 가장 큰 행복이었다.
하성이 이런 활약을 펼치고 있는 동안, 구단들은 데드라인까지 활발한 트레이드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와 카드를 제대로 맞춰보자니까?”
[미안하지만, 자네 팀에서 데려올 만한 녀석이 없어서 말이야.]“잠깐, 잠깐!”
[뚜우-! 뚜우-!]크리스 단장 역시 부족한 자원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젠장!”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휩쓸었던 그였지만, 너무 오랜 시간 단장직으로 있으면서 전략이 노출되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카드를 숨기고 이득을 보는 트레이드를 해야 하는 시장에서 그것은 매우 큰 손해였다.
“이러다가 아무런 수확 없이 시장이 닫히겠어.”
현재 어슬레틱스는 상승세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이 계속될 거란 보장은 없었다.
‘마운드는 하성이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지만, 타선을 이끌어줄 만한 선수가 없어.’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만한 네임밸류를 가진 선수를 트레이드로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카드를 맞추는 게 어려웠고 데드라인이 끝나가고 있었다.
“젠장…….”
크리스는 점점 먹히지 않는 자신의 실력에 좌절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트레이드 시장이 닫히다.] [8월이 되면서 트레이드 시장이 모두 닫혔다. 포스트시즌을 노리는 팀들이 전력보강에 성공한 가운데, 정하성 선수의 소속팀인 어슬레틱스는 이렇다할 전력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아 눈길을 끈다.] [자신감인가? 아니면 능력부족인가? 크리스 단장의 생각은?] [전문가들 이번 트레이드 시장의 승자로 텍사스 레인저스를 손꼽아.] [과연 어슬레틱스는 가을야구에 도전할 수 있는가?]트레이드 시장이 닫히면서 어슬레틱스와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졌다.
“크리스 단장도 이제 끝물이지.”
기사를 보던 하성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크리스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단장 중 한 명이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머니볼 이론에 기반하여 팀을 운영한 단장 중 가장 유명한 단장이다.
그만큼 전략도 크게 노출이 되면서 말년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양반이 레드삭스 갔으면 재밌었을 텐데.”
야구에는 만약이란 게 없다지만,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는 일이었다.
“어쨌건 내가 해야 할 건 남은 2개월 동안 미치도록 던지는 거지.”
정규시즌 종료까지 2개월.
하성은 성공적인 선발 첫 시즌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후우…… 보기만 해도 찜통이네.”
호텔 내부는 에어컨이 돌아가기에 덥진 않았다.
하지만 밖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땀이 흐를 정도였다.
8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