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4)
마운드의 빌런-14화(14/285)
마운드의 빌런 14화
3이닝 무실점 1피안타.
하성의 첫 경기 성적이었다.
“1피안타만 아니었으면 완벽한 성적이지.”
제임슨은 경기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평균 구속 94마일. 최고 구속 99마일에 구종은 패스트볼 단 하나. 제구력은 90마일 중반대까지는 잡는 편이지만, 97마일 이상이 되면 흔들리는 경향을 보인다.”
첫 경기에서 보여준 하성의 피칭은 경이로웠다.
“아무리 싱글A라지만 6구로 2개의 아웃 카운트라니.”
오히려 싱글A이기에 나오기 힘든 기록이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예상치 못한 에러가 나오기 쉽다. 수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어.”
거기에 1사 만루였다.
수비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단 하나.
투수가 자신의 힘으로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해냈지.”
그것도 공격적인 피칭으로 타자를 잡아냈다.
백미는 역시 두 번째 타자를 상대할 때였다.
“등판 후 던진 초구의 임팩트가 강렬했어. 그러니 후속 타자도 그 공이 이미지로 남았지.”
모든 것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과연 여기까지 생각하고 던졌을까?”
궁금했다.
물어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합격점이야. 이대로 두세 경기만 잘 던지면…….”
제임슨이 명단을 확인했다.
“더블A로 올라가도 되겠어.”
불현듯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백영호, 그를 더 좋아합니다.]그 말에 담긴 뜻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그처럼 빠르게 마이너리그를 통과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정말 그럴 수 있겠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메이저리그는 다시 볼 것이다.
백영호의 재림을 말이다.
* * *
첫 경기는 완벽했다.
“원하는 코스로 공이 던져졌어.”
숙소에 도착해 가볍게 어깨를 만졌다.
“피로도 누적되지 않았고.”
공을 던지면 그에 따른 피로가 어깨에 누적된다.
누적된 피로는 데미지로 바뀌어 어깨를 망가뜨린다.
지금은 괜찮지만, 반복된 투구는 결국 그의 어깨를 망가뜨릴 것이다.
“아직 성장기다. 굳이 무리해서 어깨를 혹사시킬 필요는 없어.”
사람의 몸은 평균적으로 20대 중반까지 끊임없이 성장한다.
성장기의 몸은 제대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었다.
“선발에서 빠지기 위해서 작업을 치고 있으니, 그쪽에서도 눈치를 챘겠지.”
오늘 하성은 3이닝을 던졌다.
그중 90마일 중반 이상의 공을 던진 건 2이닝까지.
7번째 타자를 상대하면서 구속이 떨어지고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설마 그렇게 연출했는지 눈치챌 사람은 없겠지.”
누가 들으면 경악할 소리다.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오히려 흔들리는 모습을 연출하다니?
그러나 하성이 그런 모습을 연출한 건 다 계획이 있었다.
“오클랜드라 하더라도 선발은 이미 정해진 상태야. 거길 파고드는 건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중간계투와 마무리라면…….”
하성이 그런 장면을 연출한 건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선발로 쌓일 데미지를 늦추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바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현재 로스터 상황이었다.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
선발에 부족한 중간계투.
그곳이라면 올 시즌안에 진입이 가능하다.
그것을 노리고 인스트럭터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중간계투에 어울리는 투수라고 말이다.
“날 선발감으로 생각할 수 없게 해주지.”
* * *
블레이즈에 괴물이 등장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그 괴물은 90마일 후반대의 강속구를 뿌리며 타자를 윽박질렀다.
무엇보다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는 투구를 선보이며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오오-! 또 삼진을 잡아냈어.”
“이걸로 7타자 연속 탈삼진인가?”
“블레이즈에 이런 투수라니.”
“곧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베이커즈필드의 주민들은 블레이즈에 등장한 괴물에 하나 둘 경기장을 찾았다.
“잘한다!!”
“피하질 않네!”
“이런 녀석을 보는 맛에 블레이즈 경기를 보는 거지!”
싱글A 팀을 응원하는 이들은 선수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선수를 육성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흡!!”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다음 타자를 상대로도 하성은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었다.
그 모습을 인스트럭터는 유심히 지켜봤다.
‘오늘로써 6번째 등판. 앞선 경기에서는 모두 3이닝 이후부터 제구와 구위가 흔들렸어.’
자료를 넘겨 이전 성적과 그의 훈련데이터를 확인했다.
‘훈련 데이터를 봤을 때 체력적인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어. 하지만 성적은 긴 이닝을 끌고 가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건 집중력인 문제로 봐야겠지.’
간혹 투수 중에 그런 유형들이 있다.
긴 이닝은 잘 끌고 가지 못하는데 짧은 이닝에서 언터처블의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
그런 이들은 마무리 혹은 중간계투로 올리기 딱 좋은 유형이었다.
딱!!
“마이!!”
예상대로 이번에도 일곱 번째 타자부터 공이 배트에 맞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야를 벗어나지 않는 뜬 공이었다.
퍽!
“아웃!!”
2루수가 가볍게 잡아 이닝을 종료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제임슨이 기록지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이번 공은 제구가 흔들렸지만 구위는 살아 있었어. 그러니 공이 외야까지 뻗지 않았지.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저런 공도 맞으면 외야까지 날아간다.’
기록지에 쓰는 건 자신의 코멘트였다.
‘정하성은 선발보다는 처음부터 중간계투 혹은 클로저를 염두에 두고 성장시키는 게 좋아 보인다.’
그의 역할은 선수가 커가는 걸 보고 적합할 때 싱글A에서 더블A로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봤을 때 하성은 더 이상 싱글A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첫 스텝은 녀석의 말대로 됐군.’
백영호를 더 좋아한다는 말.
그 말을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스텝을 성공적으로 밟는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하성은 짐을 챙겼다.
‘한 달 만인가?’
시즌이 시작되고 정확히 한 달.
하성은 이 허름한 모텔에서 떠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스타트야.’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더블A부터는 조금 힘들어질 수도 있지만.’
싱글A를 한국의 프로야구와 비교하면 2.5군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2군에서 뛰기도 어려운 선수들이 모인 곳.
포텐셜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펼친다.
그곳에서 날아다녀도 1군으로 올라가는 건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지.”
그는 옷을 마저 집어넣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
* * *
백준기는 메이저리그 취재를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예상대로 오클랜드는 올해도 부진하군.’
오늘 취재를 나온 경기장은 뉴욕 양키즈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이었다.
양키즈의 상대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오늘 경기는 5회가 되기 전부터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
‘선발이 일찌감치 무너지면서 스코어는 벌써 7 대 0.’
악의 제국이란 별명을 가진 양키즈답게 올 시즌 역시 그들은 지구우승 후보자였다.
조 지라디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앉혀 시작한 시즌의 스타트는 순조로웠다.
‘오늘 오클랜드는 양키즈의 먹잇감밖에 되지 않겠군.’
백준기는 오클랜드의 라인업을 다시 확인했다.
‘선발은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뒤를 받쳐주는 계투진이야. 오늘처럼 선발이 갑자기 무너지면 계투가 약하니 경기를 버틸 수 없어.’
분업화 체계가 이루어진 현대 야구에서 계투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강력한 계투가 있냐 없냐에 따라 순위가 바뀔 정도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하성은 요즘 어떻게 하고 있지?’
싱글A부터 시작했기에 하성이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거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정보는 한 번에 수집하는 게 편했다.
‘오클랜드의 싱글A 마이너리그 팀이…… 베이커즈필드 블레이즈.’
인터넷에 접속해 블레이즈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최근 경기 기록에 들어가 출전한 선수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리 확인해도 하성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경기에 나서지 못한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성의 실력이라면 싱글A 정도는 이미 등판했어야 한다.
그런데 보이지 않다니?
그때 과거의 경기 기록에서 하성의 퍼스트네임이 보였다.
‘여기 있었군. 세 번째 투수로 올라와서 2와 2/3이닝 무실점 피칭. 피안타도 없고 탈삼진은 5개를 잡아냈어.’
싱글A지만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이 성적이라면 선발로도 테스트를 했을 거 같은데. 왜 이후 경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지?’
백준기는 블레이즈의 로스터를 확인했다.
“응?”
그런데 그곳에서 하성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의아함에 블레이즈의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인터넷은 너무 불편해. 역시 전화가 최고지.’
스마트폰으로 바꾼지 이제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백준기다.
아직까진 아날로그가 더 편했기에 전화를 택했다.
[예. 베이커즈필드 블레이즈입니다.]“아, 저는 한국의 백준기 기자라고 합니다. 한 가지 질문드릴 게 있어 전화드렸는데요. 블레이즈 소속인 정하성 선수가 홈페이지 로스터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요.”
[아~ 정이요? 그는 더블A로 올라가게 되어 팀을 떠났습니다.]“예? 승급이요?”
[네. 이야~ 그처럼 빠르게 올라가는 선수는 처음 봤어요. 하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이라면 납득할 수밖에 없죠.]직원의 극찬이 쏟아졌다.
‘도대체 블레이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준 거지?’
잠시나마 그에게서 눈을 뗐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혹시 그의 투구 영상이 남아 있습니까? 그리고 자세한 기록도 확인하고 싶습니다.”
[두 가지 자료 모두 외부로 노출할 수는 없어서요. 보시려면 직접 오셔야…….]“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하죠.”
백준기는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블레이즈를 떠나 도착한 곳은 텍사스 주의 미들랜드였다.
“끄응~ 찌뿌둥하네.”
덩치가 큰 하성에게 이코노미석에 앉는 건 꽤 곤욕이었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온다는 게 어디야. 제임슨이 잘 봐줘서 비행기지, 원래라면 버스였겠지.”
예전 삶에서 딱 한 번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까지 자차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 1박 2일 동안 운전만 해서 도착한 걸 생각하면 토 나올 거 같은 경험이었다.
그걸 다시 하지 않게 해준 제임슨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여기가 텍사스란 말이지.”
미들랜드는 인구 13만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미들랜드 락하운즈라. 나름 명문구단이군.”
미들랜드 락하운즈는 어슬레틱스와 계약을 맺은 더블A 구단이었다.
락하운즈가 창단한 것이 1972년으로 어슬레틱스와 계약을 맺은 건 1999년이었다.
즉 10년이란 세월 동안 어슬레틱스와 계약을 맺은 구단이란 소리다.
“나름 체계가 잡혀 있겠어.”
이제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그때 풍채 좋은 아저씨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정하성인가?”
“예.”
“반갑네. 락하운즈의 토니라고 하네. 자네를 마중 나왔지.”
“반갑습니다.”
“동양인이라고 들었는데. 덩치가 장난 아니군.”
“이 정도는 되어야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죠.”
“하하! 포부가 대단하군. 자, 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할까?”
“예.”
하성은 토니의 뒤를 따라 공항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