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44)
마운드의 빌런-144화(144/285)
마운드의 빌런 144화
하성은 이번 일을 조금 쉽게 생각했다.
앤서니는 이번 일을 주도한 핵심인물이었다.
로드리고에게 직접 약물을 주사할 정도로 그의 신뢰도 얻었다.
그렇기에 그가 자백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설마 징계를 각오하고 테스트를 거부할 줄은 몰랐어.’
테스트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도핑테스트에 걸려 중복적발로 받는 제재보다 약하다는 부분이었다.
고민하는 하성에게 이사벨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로드리고의 주위에는 뛰어난 변호사들이 있어요. 그들이 로드리고에게 어떻게 하면 지금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는지 말해주고 있을 거예요.”
“징계가 더 약한 쪽으로 도망치는 방법 말이죠.”
“맞아요. 그리고 로드리고는 비난을 감수하고 그 방법을 택할 거예요.”
“그게 의미가 있습니까? 도핑테스트를 거부한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이미지가 박살 날 텐데.”
이사벨이 고개를 저었다.
“로드리고가 걱정하는 건 팬들의 민심이 아니에요. 자신의 커리어와 계약 위반에 대한 위약금을 걱정하고 있어요.”
‘뭐, 타당한 이유네.’
로드리고는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다.
엄청난 커리어를 쌓아왔고 이것은 훗날 그가 해나갈 제2의 인생에서 엄청난 이득이 된다.
거기에 현재 그는 광고 계약에 따른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광고 계약에 도핑과 관련된 부분이 있었나요?”
“통상적으로 도핑과 관련된 부분은 들어가지 않지만,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경우 위약금을 내도록 되어 있어요.”
“으흠, 도핑에 적발되면 로드리고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갈 테니, 그걸 피하고 있는 거군요.”
“네, 맞아요.”
광고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위약금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란 소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도핑을 인정할 가능성은 적었다.
“도핑 거부로 인한 징계는 얼마나 나오죠?”
“최대 100경기까지 정지를 시킬 겁니다. 그게 선수 노조와의 협약이니까요.”
“바뀔 가능성은요?”
“노조 측에서 거부할 겁니다. CBA가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기에 이전에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
사무국과 노사는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지고 메이저리그 규정에 대한 협약을 맺는다.
문제는 이 협약을 일방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는 것 역시 노조와 상의하여 결정해야 했기에 현재의 도핑검사 시스템을 바꿀 방법은 없었다.
“그럼 로드리고에게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는 거네요.”
“도핑검사 거부에 따른 징계밖에 없어요.”
여전히 답답한 상황이었다.
이 부분까지 알아보고 터뜨렸어야 했다.
아니, 알아봤다 하더라도 설마 로드리고가 이렇게 치졸하게 나올지는 몰랐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던 슈퍼스타가 바닥까지 보여주네.”
이사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이 로드리고의 에이전트였다 하더라도 이번과 같은 대응을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그때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는 그녀를 보던 하성은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징계가 확정되면 녀석이 퇴출되는 건 못 보는데.’
이전 삶에서도 녀석이 커리어를 끝까지 채우는 모습을 보고는 욕지거리가 올라올 거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런 꼴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역겨웠다.
하지만 방법이 따로 없다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녀석이 올 시즌을 뛰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큰 피해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이런 거에 만족할 필요도 있었다.
그때였다.
“뭐? 그게 정말이야?”
전화받는 이사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심각한 얼굴로 통화하던 그녀가 이내 전화를 끊더니 하성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일이 좀 복잡하게 됐어요.”
“뭔데요?”
“로드리고가 정하성 선수를 고소할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에요.”
로드리고의 반격이 시작됐다.
* * *
이사벨을 통해 변호사와 만남을 가졌다.
“일단 웬만해서는 이번 소송은 협박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변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에서 명예훼손이 어떻게 걸리는지 알던 하성이기에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아, 한국에는 그런 법이 있더군요.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사실을 적시한다고 해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로드리고 측 변호사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테니. 일종의 언론플레이라 봐야겠죠.”
미국에서는 허위사실에 대한 명예훼손만이 가능했다.
물론 그것 역시 입증을 피해자 측에서 해야 한다.
그걸 로드리고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건 일종의 협박이었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자신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협박 말이다.
‘날 건드렸단 말이지.’
원래도 마음에 들지 않던 놈이다.
그런데 더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까 머릿속에 여러 방법들이 떠올랐다.
그때 변호사가 스마트폰을 보더니 그것을 건넸다.
“사무실에서 날아온 기사인데. 이건 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가 건넨 스마트폰에는 또 다른 스캔과 관련된 기사가 떠있었다.
[라이언 브론도 약물을 투여받았다?!]라이언 브론에 대한 기사가 떴다.
“아무래도 이번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 거 같지 않군요.”
변호사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과거의 기억이 있었다.
‘로드리고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동료를 팔았었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라이언 브론과 팀 동료였던 프란시스코 서벨리였다.
동료를 판다는 건 메이저리그에서 금기였다.
‘실제 로드리고가 동료를 판 게 알려지면서 노조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지.’
만약 로드리고가 노조에서까지 버림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녀석은 혼자가 된다.’
지금은 노조에서 보호를 받고 있지만, 혼자가 된 로드리고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진다.
노조와 사무국이 협의하면 로드리고는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니 말이다.
‘일단 선수를 움직여야겠군.’
하성의 머릿속에 계획이 잡히고 있었다.
* * *
바이오 제네시스 파동은 메이저리그에 악재로 작용했다.
“메이저리그? 그런 걸 왜 보러 가? 어차피 그놈들은 약 빨고 야구 하는 놈들이잖아.”
“스포츠는 정정당당한 맛에 보는 건데. 약 빨면서 하는 놈들이 으스대는 꼴을 보러 갈 필요는 없지.”
“야구는 끝났어.”
올드 팬들은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에 실망하며 야구장에서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구단들의 매출은 눈에 띄게 줄었고 빈 관중석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양키 스타디움에 빈자리가 보이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만큼 팬들이 실망했다는 증거겠죠.]특히 이번 일의 중심이 된 로드리고의 소속팀인 뉴욕 양키스가 가장 많은 타격을 입었다.
양키스 팬들은 그동안 로드리고를 옹호하면서 그를 비난하는 다른 팬들에게서 실드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로드리고가 다시 약물 의혹에 시달리자 그동안 해왔던 일들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것이다.
거기에 박탈감까지 찾아오면서 야구에 정을 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영향을 받지 않는 팀이 있었다.
[어슬레틱스의 홈구장은 여전히 많은 팬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바로 하성의 소속팀인 어슬레틱스였다.
다른 팀들과 달리 어슬레틱스의 홈구장에선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죠. 소속 선수인 정하성 선수가 동료의 약물 복용을 밝혀냈으니 말이죠.] [오클랜드 지역 언론에서는 정하성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더군요.]오클랜드에서 하성의 평판은 매우 좋았다.
그런데 이번 일로 평판은 이전보다 더 좋아졌고 구단은 별다른 영향 없이 수입을 유지 중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면 우리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크리스 단장은 이번 스캔들을 메이저리그의 불안 요소로 보고 있었다.
이건 그만이 아니라 다른 구단의 단장들, 그리고 사무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노조만이 여전히 천하태평이었다.
‘망할 놈들……. 자신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으니 괜찮다는 거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힘을 알고 있기에 별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대안을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어.’
크리스 단장이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와아아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그라운드가 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함성을 터뜨렸다.
그들의 함성은 당연했다.
마운드로 하성이 올라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슬레틱스의 에이스! 정하성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직전 경기에선 비록 로드리고에 의해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약물을 복용한 선수와 경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맞습니다. 무엇보다 정하성 선수는 이전에 약물을 복용했던 로드리고를 확실하게 잡아냈던 전력도 있습니다. 그 부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한국에서 로드리고는 이미 약물 복용자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다수의 야구팬이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언론에서도 하성을 옹호하며 로드리고의 약물 사용을 부각시켰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하성 선수가 오늘 경기에서 어떤 피칭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로드리고의 약물 복용이라는 거대한 이슈가 터졌지만, 시즌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하성 역시 이런 상황에서도 경기에 올라야 했다.
그렇기에 그의 멘탈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게 기우라는 건 경기가 시작되고 곧 밝혀졌다.
“플레이볼!”
[경기 시작됐습니다. 정하성 선수,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어떤 투구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오늘 하성의 상대는 시애틀 매리너스였다.
하성은 매리너스를 상대로 1회부터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흡-!!”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하성 선수!] [이전 경기에서 홈런을 내주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구위를 보여주었습니다.]최고 구속 102마일까지 나오면서 하성은 세 명의 타자를 모두 돌려세웠다.
보는 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피칭이었다.
하성의 투구에 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우리 하성이는 대단하군.”
“그러게 말이야.”
“로드리고 같은 약쟁이와는 비교할 수 없지.”
“그런데 인터넷에서 봤는데, 하성이도 약물을 했을 수 있다던데?”
그때 누군가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의 주위에 있던 어슬레틱스 팬들이 그를 노려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그래?!”
“아주 죽으려고 작정했군!”
팬들의 성난 반응에 그는 다급히 부정했다.
“내가 했다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거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하성이 이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약물에 대해 그리 빠삭했는지, 그리고 로드리고가 약물을 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을 제기하더라고.”
“그건 그냥 의문이잖아?”
“그게 문제라는 거지. 정하성이 약물을 한 게 아니라면 모를 정보들이 있으니 사무국도 움직인 게 아니냐면서 말이야.”
인터넷에는 수많은 루머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익명성이란 가면을 쓰고 그 뒤에 숨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곳.
그곳에서 지금 하성에 대한 루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성의 강력한 피칭이 이어졌다.
* * *
[정하성 선수가 오늘도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단 1개의 볼넷을 제외하고는 모든 주자를 출루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안타를 허용하지 않은 정하성 선수, 7회 초 다시 마운드에 오릅니다.]하성의 노히터 경기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