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56)
마운드의 빌런-156화(156/285)
마운드의 빌런 156화
알렉스 로드리고의 체포 소식을 본 하성은 비웃음을 지었다.
‘병신. 아무리 자기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고 해도 연관이 되어 있다면 결국 걸릴 수밖에 없는 건데.’
로드리고는 이번 갱단과 어둠의 거래를 자주 해왔다.
마약을 손에 넣거나 여자를 소개받는 등.
다양한 불법적인 일을 갱단에 부탁해왔다.
물론 대리인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철저하게 숨겼다지만,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는 법이었다.
‘갱단에선 이미 로드리고가 의뢰하는 걸 알고 있었다.’
긴 세월 거래를 해오면서 로드리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걸 폭로할 이유는 없었기에 모른 척 그와의 거래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불법적인 거래란 건 결국 더 많은 이익을 주는 곳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거지.’
하성은 아놀드의 친구들과 거래했다.
알렉스 로드리고가 배후에 있다는 걸 증언한다면 자신이 경찰 쪽에 이야기해서 이번 일에 대해 최대한 선처를 해줄 것을 말이다.
그리고 아놀드의 역할도 컸다.
‘갱단과 친분이 두터운 아놀드 덕분에 일이 잘 처리됐어.’
아무리 생각해도 아놀드와 인연을 맺은 건 자신에게 큰 이득으로 돌아왔다.
설마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번 알렉스 로드리고의 사건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남겼다.
‘도핑이야 선수로서의 명예에만 흠집이 가는 일이지만, 강력범죄는 이야기가 다르지.’
단순히 강력범죄가 끝이 아니었다.
알렉스 로드리고는 연봉보다 스폰비용이 높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스폰서를 맺었던 기업들 대부분이 그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기나긴 소송의 결과가 나온다면 그는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양키스에서도 방출이 될 것이고.’
메이저리그 복귀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그의 기록은 말소될 가능성이 높았고 남는다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돈과 명예가 사라진 그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날 건드린 죗값이다.’
하성은 비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그에게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9월을 잘 마무리해야 해.’
어슬레틱스는 현재 지구 1위를 차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완벽하게 지구를 제패하진 못했다.
여전히 텍사스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포스트시즌 티켓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뭐, 팀 성적이야 어떻게든 될 거고.’
사실 하성은 팀 성적보단 자신의 성적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오늘 경기에서 이긴다면 20승을 채운다. 사바시아가 현재 20승이니 동률을 이루게 되겠어.’
아메리칸리그 다승 1위인 사바시아는 20승을 채운 상태였다.
19승인 하성이 다승 1위가 되기 위해선 그를 확실하게 따라잡아야 했다.
그렇기에 오늘 경기가 중요했다.
“하성!”
트레버가 부르는 목소리에 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두 사람이 함께 그라운드로 나갔다.
* * *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오늘 경기는 9월 정하성 선수의 첫 등판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최근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정하성 선수였지만, 사실 오늘은 휴식을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 사건들에 휘말렸기 때문이겠죠?] [예. 제 야구인생 중 이런 충격적인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메이저리그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사건사고가 있어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역대 그 어떤 사건들과 비교해도 최악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팬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하성이 휴식을 취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 등판은 정하성 선수가 직접 크리스 단장에게 요청을 했다 하더군요.] [직접 말입니까?] [예. 본인의 성적은 물론 팀 성적 역시 중요한 상황이기에 자신이 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인터뷰를 했더군요.] [아직 어린 선수지만, 팀을 위하는 마인드는 베테랑과 다를바 없군요.]하성은 실제 해설위원이 말한 것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물론 본심은 아니었다.
마운드에 오른 그의 마음속에는 팀을 위한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내가 잘되는 게 최우선이지. 무슨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이전 삶에서도 딱히 애정을 둔 팀이 아니다.
그렇다고 팬들에게 애정이 깊은 것도 아니다.
이제 고작 2년을 뛰었을 뿐인데 애정이 생겼을 리 만무했다.
‘이미지 메이킹은 언제나 중요한 법이지.’
이미지가 얼마나 몸값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아는 하성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립서비스는 충실히 했다.
거기에 팬서비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좋은 편인지라 팬들 사이에선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이런 메이킹도 결국에 실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라 하더라도 실력이 떨어지면 인기를 끌지 못한다.
실력이 우선되어야 했다.
그걸 잘 알기에 하성은 마운드 위에서 집중력을 유지한 채 연습 투구를 이어갔다.
[정하성 선수가 연습 투구를 이어갑니다.] [1회 초, 동료 타자들이 득점을 내지 못한 상황이지만, 정하성 선수에게는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사실 정하성 선수는 득점 지원을 많이 못 받는 투수 중 한 명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매 경기 득점 지원이 2.7점으로 다승 1위인 사바시아 선수의 4.8점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입니다.]하성은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하는 투수 중 한 명이었다.
에이스이기에 그럴 수 있다지만, 같은 에이스 격인 사바시아의 득점 지원보다 2점이나 낮은 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단순히 선발투수 1위가 아니었다.
불펜까지 포함한 모든 투수들 중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올 시즌 정하성 선수가 크게 무너지지 않는 이상, 밥 깁슨 이후로 라이브볼 시대 최초의 1점 초반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게 됩니다.]밥 깁슨은 1968년 1.1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바 있었다.
아쉽게도 하성은 현재 1.2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밥 깁슨의 기록을 깨는 건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평균자책점을 내린다면 역대 메이저리그 순위 10위 안에 들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런 상황이기에 하성의 투구는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뻐어억-!
“나이스 볼!!”
연습 투구를 끝낸 하성의 곁으로 토니 감독이 다가왔다.
“큰일을 겪었지만, 공은 여전히 위력적이군.”
“뭐, 직접적으로 위협을 당한 것도 아닌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자네의 배짱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칭찬으로 들으면 되는 거죠?”
“하하! 물론이지. 투수에게 그보다 더한 칭찬은 없는 거야. 오늘도 자네만 믿도록 하지.”
“예.”
담백하게 대답하는 하성의 모습에 토니 감독이 피식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 * *
[1회 말, 정하성 선수의 20승 도전이 시작됩니다!]경기가 시작됐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였지만, 오늘은 마치 홈처럼 아늑했다.
“야야! 살살 쳐줘라!”
“로드리고를 보내버린 녀석인데 오늘은 좀 봐줘도 돼!”
레드삭스 팬들로 보이는 무리는 이상하게 하성에게 호의적이었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레드삭스와 양키스의 관계를 알고 있다면 이해가 된다.
[레드삭스 팬들이 정하성 선수에게 야유를 보내지 않네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모습이죠. 레드삭스와 양키스는 오랜 라이벌 관계였는데.레드삭스 팬들은 알렉스 로드리고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했거든요.] [1차 약물 파동 이후부터 특히 심해졌죠?] [그렇습니다. 로드리고를 가장 많이 공격했던 팬들이 바로 레드삭스 팬들이었죠.] [이번 바이오 제네시스 스캔들이 터진 후에도 그들은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만큼 로드리고를 싫어하던 레드삭스 팬들이기에 정하성 선수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레드삭스가 얼마나 양키스를 싫어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모든 레드삭스 팬들이 그를 응원하는 건 아니었다.
“로드리고는 로드리고고!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겨라!”
“포스트시즌도 생각하면 확실히 눌러야 해!”
“최근에 페이스도 나쁜데 이러다가 양키스에게 뒤집히기라도 하면 너희들 아주 아작낼 줄 알아!”
레드삭스의 최근 페이스는 나쁜 편이었다.
원래 10시즌의 보스턴 레드삭스는 주축 선수들이 모두 나락으로 빠지면서 지구우승에 실패한다.
하지만 이번 10시즌은 달랐다.
‘로드리고가 빠지고 라커룸 분위기가 엉망이 된 양키스는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면서 이놈들이 지구 2위를 차지하고 있지.’
또 한 번 역사가 바뀌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동안 바꾼 역사가 얼마나 많은데.’
문제가 생길 거였다면 진즉에 생겼을 거다.
그걸 알기에 하성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작해 볼까.’
피처 플레이트를 밟은 하성이 상체를 숙였다.
‘초구는 당연히 이거겠지?’
트레버의 사인은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코스는 바깥쪽.
정확한 위치를 요구하는 게 아닌 대략적인 코스였다.
고개를 끄덕인 하성이 투구 자세에 들어갔다.
[사인을 교환한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팔을 들어 올리며 힘을 모은 하성이 몸을 틀면서 다리를 차올렸다.
촤앗-!
킥킹과 함께 상체를 살짝 비튼 뒤, 그것을 풀면서 있는 힘껏 1구를 던졌다.
“흡!!”
쐐애애액-!!
[1구 던졌습니다!]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하성이 공격적인 유형이라는 건 메이저리그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타자 역시 초구를 놓칠 생각이 없는지 간결하게 배트를 돌렸다.
후웅-!!
타자의 배트가 공의 궤적을 따라 돌아가는 순간.
공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으며 배트의 위를 통과했다.
‘젠장!’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공의 궤적에 인상을 구기는 순간.
뻐어억-!!
공이 미트에 꽂히며 굉음을 토해냈다.
후웅!!
배트는 힘없이 허공을 갈랐고 구심은 냉정하게 손을 뻗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 헛스윙! 정하성 선수의 초구는 100마일을 찍으면서 타자의 배트를 헛돌게 만듭니다!] [정말 언제 봐도 시원하게 던지는 정하성 선수! 초구부터 타자의 배트를 헛돌게 만듭니다!]하성의 20승 사냥이 시작됐다.
* * *
하성이 호투를 하는 건 이제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오늘 경기 10번째 탈삼진을 잡아내는 정하성 선수!] [오늘 경기에선 타자들이 공격적으로 나오면서 탈삼진의 개수가 적지만, 투구 수를 아낄 수 있는 피칭을 해나가고 있습니다!]그렇기에 그의 경기를 보는 팬들은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크으! 역시 정하성의 피칭은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니까!”
“메이저리그 20승은 그냥 하겠는데?”
“부장님! 오늘 정하성 선수가 20승을 달성하면 한턱 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물론이지!”
하성이 활약하는 만큼 아버지의 직장 내 입지도 탄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비즈니스적으로 뛰어난 아버지였다.
그런데 하성이 대단한 활약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상태였다.
물론 이를 질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회생활이란 게 그런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딱!!] [높게 떠오른 타구! 좌익수가 안정적으로 잡아냅니다! 오늘 경기 8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상대 타선을 막아내고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투구 수로 보아 9회에는 마무리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기겠지만, 오늘 정하성 선수의 피칭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하성의 임무는 마무리됐다.
스코어는 3 대 0.
남은 건 마무리투수가 경기를 끝내주는 걸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정하성 선수가 메이저리그 선발전환 첫해에 20승을 달성합니다!]“와아아아!”
“20승이다!!”
업무시간인 사무실이 떠내려갈 듯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좋아하는 사원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생했다, 내 아들!’
항상 자랑스럽던 아들이 오늘따라 더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