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6)
마운드의 빌런-16화(16/285)
마운드의 빌런 16화
락하운즈의 홈구장인 시큐리티 뱅크 볼파크에 한 대의 택시가 멈췄다.
택시의 문이 열리고 동양인 남성이 내렸다.
그는 환호성이 들려오는 경기장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겼다.
“하필이면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돼서 늦게 도착했어.”
햄버거를 먹느라 늦게 비행기에 탄 승객에게 원망을 퍼부으며 동양인 남성, 백준기는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와아-!!”
경기장에 들어서자 관중들의 환호성이 귀를 때렸다.
마이너리그하면 인기가 떨어질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 구단들은 지역 친화적인 마케팅을 자주 펼쳐 지역에서의 인기는 높은 편이었다.
“휘유~”
경기장에 들어선 백준기는 락하운즈 유니폼을 입은 홈팬들이 가득한 걸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미국은 야구의 고장이라니까.”
마이너리그조차 이렇게 가득 메운 관중들의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경기는 지고 있어도 응원은 멈추지 않는군.”
스코어는 2 대 1.
락하운즈가 1점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투수 교체인가?”
그때 벤치에서 감독이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백준기는 자신의 좌석을 찾아 앉으며 시선은 불펜 쪽을 바라봤다.
“응? 저건…….”
그때 불펜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정하성.”
그 선수는 다름 아닌 하성이었다.
“운이 좋았어. 오자마자 하성의 등판이라니.”
백준기는 다급히 카메라를 꺼내 세팅했다.
전문가용 카메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DSLR이었기에 웬만한 카메라보다는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영상도 담아봐야지.’
백준기가 카메라를 세팅하는 동안 하성은 마운드에 도착했다.
감독이 공을 건네자 하성은 그것을 받아들고 마운드에 섰다.
‘더블A 마운드라…….’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서부터는 진정한 프로의 세계였다.
여전히 투잡을 해야 하지만, 제대로 된 벌이가 생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프로는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버느냐로 판가름이 나지.’
프로에 대한 하성의 신념은 확실했다.
더블A부터는 그래도 혼자서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돈이 나온다.
그가 가진 프로에 대한 기준에 맞는 장소인 셈이었다.
그러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퍽!!
“굿! 아주 좋아!”
연습 투구를 끝내자 감독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첫 등판이지만, 너무 떨 필요는 없어. 자네의 공이라면 여기 있는 친구들이라도 쉽게 때릴 수 없으니까.”
“떨리진 않습니다. 다만…….”
“다만?”
“어떻게 해야 데뷔전을 잘 던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뭐?”
감독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여러 선수를 만나왔다.
그들 중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란 이들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도 첫 등판에는 조금은 긴장을 했었는데. 이 녀석은 긴장이라곤 전혀 하지 않잖아?’
노련한 베테랑을 보는 것 같았다.
“뭐가 됐건 자네의 실력을 확실히 보여주도록 하라고.”
“알겠습니다.”
격려와 함께 내려가는 감독을 보며 하성이 경기장을 쓱 둘러보았다.
‘2루상에 한 명. 저 녀석이 들어오면 점수는 2점 차로 벌어진다. 적은 점수긴 하지만, 오늘 경기는 유독 점수가 나오지 않고 있어.’
경기마다 흐름이란 게 존재한다.
어느 날은 타자들의 컨디션이 좋아 대량득점이 일어나는 일도 있지만, 오늘처럼 타자들이 비실비실대는 날도 있었다.
‘이런 흐름은 결국 마운드를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오랜 경험을 통해 하성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역할이 중요했다.
‘아웃 카운트는 제로.’
즉, 세 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단 하나의 안타도 내주면 안 된다.
내주더라도 안타까지만 허용된다.
장타를 내주는 순간 주자는 홈을 노릴 것이다.
그런 위험을 내주지 않고 이닝을 끝내는 게 가장 좋았다.
‘내 실력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게 좋지.’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로 가는 게 목적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짧은 이닝에선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쉬고 피처 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상체를 숙인 채, 잭의 사인을 확인했다.
‘바깥쪽으로 던져봐.’
잭의 사인은 간결했다.
위 아래를 정하고 않고 단지 바깥쪽이란 사인만 보냈다.
신인을 리드하는 것으론 나쁘지 않다.
‘긴장하는 신인에게 정교한 제구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투수가 긴장할 수 있는 상황.
제구를 기대하기보다는 지금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했다.
그런 면에서 잭의 리드는 아주 좋았다.
‘그럼 여기에서는 내가 원하는 코스로…….’
하성이 상체를 세웠다.
‘가볼까.’
“플레이볼!!”
결정을 내린 순간.
구심이 경기재개를 알렸다.
* * *
“후우…….”
호흡에 집중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와아…….”
관중들의 응원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와…….”
그러다 이내 소리가 사라졌다.
보이는 건 온전히 포수와 타자밖에 없었다.
극도의 집중력 상태.
전생에서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었다.
올림픽 결승전에서 그랬었고 첫 번째 한국시리즈 무대에서도 이런 집중력 상태를 경험했다.
“후우…….”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며 투구 자세에 들어갔다.
와인드업은 어렵다.
2루에 주자가 있었으니 말이다.
‘던져야 할 건…….’
글러브 안의 공을 이리저리 돌려 그립을 쥐었다.
‘포심.’
뭐니뭐니해도 초구는 포심이다.
확실히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전력으로 간다.’
결정을 내린 하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2루를 확인했다.
리드폭을 늘릴려던 주자가 주춤 물러나며 무게중심을 베이스로 향했다.
지금 던져봐야 녀석은 안전하게 귀루할 터.
뭐, 처음부터 2루를 견제할 생각은 없었다.
목적은 무게중심을 옮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하성이 슬라이드스텝을 밟았다.
콰직!
빠르게 스텝이 이동하며 마운드에 징이 박혔다.
동시에 하체를 회전시켰다.
그리고 골반이 홈플레이트로 향하는 순간.
하체의 회전을 멈추며 힘을 상체로 이동시켰다.
휘릭!!
그리고 그 힘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상체도 회전시키며 있는 힘껏 팔을 돌렸다.
후웅-!!
바람 소리와 함께 팔이 그의 머리 위를 지났다.
그리고 릴리스포인트에 도달하는 순간.
촤르르륵-!!
전력을 다해 실밥을 긁었다.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타자는 하성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걸 확인하고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허리를 돌리려는 찰나.
뻐어어억-!!
하얀 선이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 잭의 미트에 그대로 박혔다.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에 타자의 시선이 미트를 확인했다.
“스트라이크!!”
동시에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 * *
“와아아아아!!”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그 사이에서 투구를 지켜보던 백준기의 시선이 스코어보드로 향했다.
‘96마일.’
154㎞에 달하는 강속구였다.
‘와인드업 포지션도 아니고 세트 포지션에서 던졌는데도 150㎞ 중반을 던지다니.’
괴물이란 단어가 딱 어울렸다.
‘던지는 폼이 무척이나 안정적이야. 척 보더라도 하체가 발달해 있다. 거기에 투구 동작이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힘의 전달을 완벽하게 해냈어.’
투구는 여러 동작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 동작들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으면 좋은 공을 던질 수 없다.
‘하성은 모든 동작이 부드럽게 이어졌어. 그렇기에 자신의 힘을 온전히 공에 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저렇게 하체를 잘 쓰는 선수가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 중 하성의 또래는 존재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때 하성이 2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따악!!
이번에는 타자의 반응이 한 박자 빨랐다.
잘 맞은 타구가 3루 선상을 향해 날아갔다.
‘안타?!’
놀란 백준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공이 휘면서 라인 밖에 떨어졌다.
“파울!!”
파울이 선언되면서 3루 베이스를 밟으려던 주자가 아쉽다는 듯 땅을 차며 귀루했다.
“후우…… 잘 맞은 타구였는데. 타이밍이 조금 빗겨 나갔나? 어쨌든 다행이군.”
이번 타구가 라인 안쪽으로 떨어졌으면 분명 안타가 됐을 거다.
코스도 좋아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기에는 충분한 타구였다.
‘역시 더블A부터는 타자들의 수준이 달라진다.’
흔히 사람들은 싱글A가 아닌 더블A부터 진정한 프로라 말한다.
이유는 더블A부터는 트리플A를 경험한 선수들도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저 녀석도 작년까지는 트리플A에서 뛰었지. 확실히 스윙이 날카로워.’
백준기는 타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성을 바라봤다.
‘여기서부터는 브레이킹볼을 섞어야 해.’
더블A부터 투수들의 브레이킹볼 수준이 높아지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다.
타자의 수준이 높아지니 투수들 역시 브레이킹볼로 경우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하성도 그것을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하성의 브레이킹볼을 볼 수 있겠군. 커터의 수준도 높았으니 다른 브레이킹볼도 수준이 높겠지?’
백준기는 전국대회에서 보여주었던 하성의 커터를 떠올렸다.
브레이킹볼이 아닌 무빙 패스트볼이었지만, 그 정도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건 분명 다른 브레이킹볼의 수준도 높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이제 확인할 수 있으니 기대가 컸다.
그때 하성이 슬라이드스텝을 밟았다.
그리고 3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빠르게 날아드는 공에는 변화가 없었다.
‘다시 패스트볼이라고?!’
백준기가 놀라고 있을 때.
타자는 이미 반응을 보였다.
후웅-!
간결한 스윙과 함께 배트가 돌아갔다.
스윙의 궤적과 공의 궤적이 일치하는 순간.
딱!!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타구는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투수인 하성에게 되돌아갔다.
“퍼스트!”
굴러오는 공을 잡은 하성이 그대로 1루로 뿌렸다.
퍽!
“아웃!!”
첫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타이밍이 어긋났어.’
타자의 스윙 타이밍이 예상보다 빨랐다.
‘2구에서는 분명히 타이밍을 맞췄는데. 이번에는 왜 타이밍이 어긋…….’
그때 불현듯 전국대회에서 던졌던 공이 떠올랐다.
‘커터였나?’
* * *
원아웃을 잡은 하성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더블A부터 브레이킹볼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과거 마이너리그에 대해 공부하면서 배웠던 말이다.
‘꼭 그럴 이유는 없지.’
하지만 하성은 브레이킹볼을 아직 던질 생각이 없었다.
‘패스트볼 하나만 하더라도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에서는 변형 패스트볼이 개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변형 패스트볼이 더 발전한 것은 2010년대라 할 수 있었다.
1세대를 지나 2세대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한 시기가 이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성도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으면서 변형 패스트볼 중 하나를 주 무기로 사용했다.
‘이걸 내가 조금 더 일찍 내 것으로 만들었다면 난 더 오래 공을 던질 수 있었을 거야.’
글러브에 들어 있는 공을 돌리며 그립을 잡았다.
평범한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검지와 중지를 붙이는 형태의 그립이었다.
‘커터.’
정식명칭은 컷패스트볼.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날카롭게 횡으로 휘어진다 하여 커터라는 별명이 붙은 구종이었다.
“후우…….”
하성이 커터를 처음 배웠던 것은 27살의 여름이었다.
당시 트리플A와 메이저를 오가던 AAAA급 용병인 라이언에게 배운 구종이다.
하성은 이 커터를 자신의 주 무기로 애용했다.
특히 팔꿈치 부상이 심해졌을 때는 슬라이더의 비중을 줄이고 커터의 비중을 대폭 늘려 현역생활을 이어갔었다.
‘슬라이더는 팔꿈치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아낄 수 있을 때까진 아껴야 한다.’
하성의 몸은 아직 성장기였다.
무엇보다 팔꿈치 주위의 근육은 아직 완성형태가 아니었다.
아직 브레이킹볼에 조심스러운 이유였다.
‘오늘 경기에선…….’
휙!!
슬라이드스텝을 밟은 하성이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위해 공을 뿌렸다.
‘커터로 간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