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66)
마운드의 빌런-166화(166/285)
마운드의 빌런 166화
메이저리그는 두 개의 리그로 구성되어 있다.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이 두 개의 리그에서 각각 챔피언을 뽑는 시리즈를 챔피언십 시리즈라 일컫는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리그 챔피언을 총 12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15회를 차지할 정도로 비등한 업적을 가지고 있었다.
[레드삭스야 워낙 명문구단이니 이해됩니다만, 의외로 어슬레틱스가 리그 챔피언을 다수 차지했네요?] [어슬레틱스가 스몰마켓이라 약팀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아메리칸리그의 강팀 중 한 곳입니다.] [그만큼 팀 운영을 잘해왔다는 거겠죠?] [예. 하지만 불안요소는 분명 있습니다.] [불안요소라면 어떤 점일까요?] [바로 1990년 이후로 리그 챔피언을 차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겁니다.]어슬레틱스의 지구 우승은 1990년 이후에도 자주 있었다.
아메리칸리그 최다를 자치할 정도로 그들은 서부지구의 패자였다.
하지만 리그 챔피언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이유는 어슬레틱스 구단의 선수 육성에 있었다.
[페넌트레이스는 장기전이니만큼 선수들이 부진해도 다시 기회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은 다르죠.] [단기전이니만큼 시리즈를 지배해야 하는 선수가 나와야 한다 하더군요.] [맞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신인으로 구성된 어슬레틱스는 그동안 그런 선수가 나오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었죠.] [하지만 올해는 다르지 않을까요? 정하성 선수가 듬직하게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전문가들은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하성이 어떤 활약을 펼칠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맞습니다. 단기전에서 에이스의 역할이 더 중요한 만큼 그런 부분에서 어슬레틱스가 더 유리한 상황입니다.]레드삭스와 어슬레틱스.
두 팀을 비교했을 때 다른 부분은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이스로 한정 짓는다면?
의견의 차이는 없었다.
모든 전문가와 팬이 어슬레틱스의 우위를 점한다.
그만큼 이번 시즌 하성이 보여준 활약은 절대적이었다.
[정하성 선수가 경험이 적어 포스트시즌에서 흔들릴 수 있을 거란 이야기는 이미 디비전 시리즈를 통해 힘을 잃은 상황입니다.] [관건은 역시 타격 쪽에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어슬레틱스 타자들이 디비전시리즈에서만큼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지가 관전 포인트가 되겠습니다.]사람들의 관심이 챔피언십 시리즈에 집중됐다.
* * *
디비전 시리즈를 결정지은 다음 날.
하성은 크리스 단장과 면담을 가졌다.
“컨디션은 좀 어떤가?”
“좋습니다. 언제든지 나가서 던질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성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자네를 보고 있으면 마치 베테랑 선수를 보고 있는 거 같아.”
“그렇습니까?”
속으로는 뜨끔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이 정도의 말에 감정을 드러낼 정도로 어리지도 않고 말이다.
“오늘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이번 회견에도 자네가 나가줬으면 해서 말이야.”
챔피언십 시리즈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다.
당연하게도 언론은 그런 대중의 니즈를 채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중 하나가 기자회견이다.
포스트시즌의 각 시리즈를 앞두고 감독과 대표선수가 나와 공식인터뷰를 진행한다.
여기에서 두 팀의 기 싸움도 나오고 선수들의 포부도 들을 수 있어 인기가 제법 좋았다.
하성은 이미 디비전 시리즈에도 회견에 나가 좋은 인터뷰를 해주었다.
“자네가 기자들 앞에서 레이스 타자들은 내 공을 치지 못한다! 라고 외쳐준 덕분에 흥행에 성공했어.”
“그럼 챔피언십 시리즈 기자회견에 나가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그것보다 더 강해도 좋겠지.”
이건 예상 못 한 반응이었다.
원래 그런 말을 한다고 하면 말려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여기는 메이저리그야. 쇼맨십은 누구나 좋아한다고. 물론 그걸 싫어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크리스 단장은 하성의 스타일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스타일이 대중에게 먹히는 걸 마음에 들어 했다.
그렇기에 하성의 인터뷰 스타일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마음대로 한번 날뛰어보겠습니다.”
“기대하겠네.”
* * *
아메리칸리그의 챔피언십 시리즈는 레드삭스와 어슬레틱스.
내셔널리그의 챔피언십 시리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붙게 되었다.
네 팀은 리그 챔피언과 함께 월드시리즈 티켓을 위해 정면 대결을 벌인다.
그 전초전의 성격으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곳은 역시 ALCS의 기자회견이었다.
“레드삭스는 벨트레가 나온다는군.”
“예상 밖으로 베테랑을 데려오는데?”
“그만큼 최근 페이스가 좋으니까.”
“올 시즌에 레드삭스가 벨트레를 영입하지 않았으면 가을야구는 꿈도 꾸지 못했겠지.”
“1년 계약을 맺은 것도 신의 한 수야.”
“레드삭스가 과연 연장계약을 할까?”
애드리안 벨트레.
LA다저스에서 데뷔해 시애틀과 FA 계약을 맺었던 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하고 자유계약으로 풀렸다.
하지만 기량이 하락했단 평가를 받으며 어떤 팀과도 장기 계약을 맺지 못했다.
FA 미아가 될 뻔했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레드삭스였다.
레드삭스는 1년 계약을 제시하며 그와 손을 잡았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0시즌 3할 2푼 1리, 28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과 함께 완벽히 부활했다.
레드삭스 역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선수와 구단 모두 윈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가 기자회견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난 벨트레보다 하성이 더 기대되는데?”
“어슬레틱스는 아놀드가 나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하성이네.”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하긴, 아놀드는 마이크웍이 조금 떨어지지.”
“솔직히 빅리그에서 하성보다 마이크웍이 좋은 선수가 어딨어?”
“하하! 그건 그렇네.”
메이저리그 선수라고 해서 모두 기자들 앞에서 언변이 좋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선수들은 마이크 앞에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기자들은 말을 잘하는 선수를 좋아했다.
마이크 앞에서 제대로 된 멘트를 치지 못하면 기사로 쓸 게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실력이 좋은 건 물론이거니와 쇼맨십이 좋은 선수를 보는 걸 즐겼다.
그러니 하성의 인기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양측 감독들과 선수가 입장했다.
* * *
기자회견은 형식적으로 진행됐다.
감독들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기자들이 사전에 제출한 질문에 답을 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역시 지루하단 말이지.’
하성은 감독들의 인터뷰를 보며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회견장에 있는 자신도 이렇게 지루한데 보는 이들은 얼마나 지루할까?
‘역시 계획대로 가야겠어.’
보고 있는 팬들의 지루함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야말로 자신이 빛을 발할 것이다.
‘이전 삶에서는 너무 조용히 야구를 했어. 실력이야 좋으니 충분히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지.’
야구팬을 끌어모으는 건 일류선수라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게 필요했다.
바로 스타성과 쇼맨십이었다.
두 가지 모두를 가진 선수라면 야구를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하성의 위치가 이 위치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고작 1년이다. 내가 완벽하게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중요해.’
1년을 반짝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미래에 코디 벨린저나 애런 저지와 같은 선수들도 전국구 스타가 된 이후 슬럼프에 빠지면서 인기가 빠르게 식었다.
물론 이후 슬럼프에서 벗어나면서 다시 스타가 되었지만, 초반의 폭발력을 가져가지 못했다.
이는 야구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이런 현상은 자주 보였다.
‘그리고 돈을 버는 건 결국 스타성과 화제성을 가진 선수들이 벌게 되어 있지.’
그 종목을 넘을 정도의 화제성을 가진 선수는 엄청난 유명세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하성이 원하는 건 바로 그거였다.
“그럼 다음으로 선수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감독에서 선수로 바뀌었다.
“벨트레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기자들은 마치 메인디시를 아끼는 아이들처럼 벨트레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하성의 대답은 나중에 듣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 기자들의 모습에 하성은 여유롭게 기다리며 벨트레의 대답을 듣기만 했다.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정하성 선수를 만나게 될 텐데. 자신 있으십니까?”
“정하성은 무척이나 좋은 투수입니다. 페넌트레이스에서도 자주 마주쳤지만, 매우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였죠. 하지만 그는 챔피언십 시리즈의 경험이 적습니다.”
벨트레의 대답은 원론적이었다.
상대를 도발하고는 있었지만, 큰 임팩트가 없었다.
하지만 살살 건드는 것은 있었기에 기자들의 시선이 하성을 한 번씩 바라봤다.
그러나 하성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제스처도 드러내지 않았다.
벨트레에 대한 질문이 끝나고 드디어 기자들이 하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하성 선수, 챔피언십 시리즈에 대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 기자의 질문에 하성은 잠시 고민하다 마이크를 잡았다.
“언제나 똑같습니다. 타자들에게 맞지 않고 던질 겁니다.”
뭔가 큰 걸 기대했던 기자들의 얼굴에 순간 실망이 나타났다.
너무 원론적인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하성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 벨트레 선수가 저한테 경험이 적다고 했는데. 웃기는 소리네요.”
“웃기는 소리요?”
“전 이미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였고 지금은 최고의 선발투수입니다.”
하성의 시선이 벨트레에게 향했다.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쓴 저한테 경험이 적다는 건 너무 어거지 아닙니까?”
기자들의 시선이 벨트레에게 향했다.
자신을 도발하는 하성의 태도 때문일까?
벨트레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경험이 적다는 건 팩트 아닙니까?”
“그렇다고 제 공을 때릴 수 있는 건 아니죠. 벨트레 선수는 제 공을 단 하나도 정타를 만들어내지 못할 겁니다.”
“뭐라고?!”
벨트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완벽하게 어그로가 끌린 듯 벨트레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소리쳤다.
“내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네 공을 담장 밖으로 넘겨버리겠어!”
“그럼 난 당신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죠.”
예고 홈런과 예고 삼진이 모두 터지는 순간이었다.
* * *
언론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ALCS에 대한 기사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건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
-벨트레가 예고홈런을 선언해?
-거기에 하성이는 전 타석 삼진으로 돌려세우겠다고 했다던데?
-ㅁㅊ ㅋㅋ
-벌써 개꿀잼 각이네.
-아니, 메이저리그 기자회견이 언제부터 이렇게 화끈했냐?
-기자회견 영상 보니까 하성이가 도발했던데?
-벨트레도 선 넘었지.
-2년 연속 사이영상 받을 게 확실한 하성이한테 경험 드립 ㅋ
-누가 이기건 말 못 지키는 순간 쪽팔려 뒤지겠다 ㅋㅋ
모든 건 하성이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그 어떤 대회보다 관심을 모으게 된 2010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시리즈.
그 대망의 1차전이 오클랜드 콜로세움에서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