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7)
마운드의 빌런-17화(17/285)
마운드의 빌런 17화
첫 타자를 범타로 돌려세운 하성은 두 번째 타자를 맞이했다.
‘과연 두 번째 타자는 어떻게 상대할까?’
백준기를 비롯해 관중들, 그리고 구단의 수뇌진들은 궁금했다.
과연 하성이 두 번째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지 말이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내면서 선취점을 가져온 녀석이야. 이전 경기에서도 홈런을 때렸고.’
로널드 감독은 데이터를 확인하며 하성에게 시선을 두었다.
‘과연 저런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 거지?’
감독은 궁금했다.
하성이 어떤 공을 던질지.
그때 하성이 초구를 던졌다.
쐐애애액-!
딱!!
“파울!!”
초구부터 타자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1루 라인을 벗어났지만, 타이밍은 맞췄다.
‘구속은 94마일. 저 공에 타이밍을 바로 맞췄어. 확실히 타격감이 좋다.’
타자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감 있게 배트를 돌렸다.
“으흠…….”
하성은 로진을 손에 묻히며 방금 전 공을 복기했다.
‘몸쪽에 붙인 공을 바로 반응했단 말이지. 첫 타석에서 때려낸 홈런에 자신감이 붙은 건가?’
마운드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타자의 스윙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런 타자는 조심해야 하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하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타이밍이 좋으니 피하면 결국 도망치는 것밖에 되지 않아.’
컨디션이 좋은 타자는 매 경기 나온다.
그때마다 피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스스로 족쇄를 차게 된다.
‘나를 믿어라.’
피처 플레이트에 발을 올렸다.
‘내 훈련을 믿어.’
이런 순간이야말로 스스로를 믿어야 했다.
자기최면에 가까운 암시를 건 하성이 2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액-!!
후웅!!
타자가 배트를 돌렸다.
두 궤적이 하나가 되려는 순간.
휘릭!
공의 궤적에 변화가 일어났다.
횡으로 변화해 바깥쪽으로 휘어져 배트로부터 도망쳤다.
후웅!!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고.
뻐억-!!
공이 미트에 꽂혔다.
“스윙! 스트라이크 투!!”
두 번째 스트라이크가 올라갔다.
미트의 위치를 확인한 타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슬라이더? 아니야.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변화했으니 커터에 더 가까워.’
머리가 복잡해졌다.
‘브레이킹볼에 가까운 커터를 던지다니. 젠장.’
투수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했다.
다른 브레이킹볼을 던질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었다.
배터박스에서 조금 앞으로 이동했다.
변화구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 공을 공략할 생각에서였다.
그 모습을 본 하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나도 너희를 제대로 모르지만, 너희 역시 나를 모르잖아?’
콜업 이후 첫 번째 등판이다.
상대 팀이 자신을 파악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러니 내가 더 유리하지.’
겁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
하성은 흐름을 타고 곧장 3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이번에 선택한 공은 패스트볼.
변화가 생기는 무빙 패스트볼이 아닌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몸쪽을 찌르는 공에 타자의 배트는 움직이지 못했다.
초구와 달라진 점은 없다.
구속도 같았고 코스 역시 동일했다.
그럼에도 타자가 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다.
‘생각이 많아지면 반응이 느려질 수밖에 없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투수.
하지만 그 안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베테랑이 숨겨져 있었다.
* * *
2이닝 무실점 무피안타 4탈삼진.
더블A 첫 등판에서 거둔 성적이었다.
‘경기에서도 이겼고.’
하성을 시작으로 락하운즈 마운드는 안정을 찾아갔다.
그 결과 기회가 넘어왔고 타자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아주 좋아.’
경기에서 이기는 건 언제든지 기분이 좋다.
좋은 기분으로 라커룸을 나서려는 그를 한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백 기자님?”
“아, 이제 나오는군.”
그는 백준기였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떻게 오긴 자네 취재하러 왔지. 잠깐 시간 괜찮나?”
“예. 뭐, 시간이야 만들면 되는데.”
“가지.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자고.”
밥을 사준다는 말에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돈을 보내준다고 하나 빠듯한 생활비다.
밥을 사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백준기를 따라 이동한 곳은 구장 근처에 있는 식당이었다.
스테이크를 베이스로 여러 음식들을 파는 곳으로 제법 맛이 괜찮았다.
“여기 음식이 나쁘지 않아요.”
“락하운즈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벌써 맛집을 찾았군.”
“팀메이트인 잭이란 친구가 알려줬어요. 그 친구 덕분에 몇 군데 음식점을 알게 됐죠.”
“오, 정 아니야? 오늘 경기에서 멋지게 던지던데?”
“하하, 보셨어요?”
마이너리그이기는 하나 지역방송을 통해 라이브 중계가 됐다.
덕분에 식당 직원도 그의 피칭을 볼 수 있었다.
“뭘 먹을 거야?”
“스테이크로 주세요. 부위는 뭐 적당한 곳으로요.”
“그러지. 그쪽은?”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같은 걸로?”
“예.”
“음, 알았어요.”
돌아서는 직원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직원이 돌아가자 백준기가 녹음기를 꺼냈다.
“대화 녹음 좀 해도 될까?”
“예, 괜찮습니다. 잘라낼 부분은 알아서 잘라내 주시겠죠.”
“물론이지. 난 자네의 광팬이야. 해가 될 부분은 기사에 실을 이유가 없지.”
기자 정신이 투철한 백준기다.
약속을 받은 이상 그것을 지킬 것이다.
백준기가 녹음기를 켜고 대화를 이어갔다.
“싱글A에서 더블A로 한 달 만에 승급이 됐는데. 소감은 어떤가?”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예. 제가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었으면 아마 더블A로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까요.”
“그…… 그렇군. 말이 나온 김에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지 않은 이유를 알려줄 수 있나?”
“협회가 엿 같았거든요.”
“응?”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협회는 자기들 뱃속을 챙겼고 학교는 촌지를 주지 않는…….”
백준기가 다급히 손을 뻗어 녹음기를 껐다.
“이…… 이 내용은 인터뷰에 실을 건데. 그렇게 답변해도 되나?”
“예.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들 아는 사실이잖아요?”
맞는 말이다.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하지만 자네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은 아니지 않나?”
“워딩만 조금 수정해 주세요. 욕설만 빼주시면 될 거 같은데요?”
“하…….”
본인이 괜찮다니 더 할 말이 없었다.
백준기는 다시 녹음기의 전원을 올렸다.
그리고 질문을 이어갔다.
대부분 대중에게 알려진 내용들이다.
협회와 학교의 비리.
그리고 영구적인 기부금과 기금 납부에 대한 불만들이었다.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만은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겉으로 내뱉지 않았는데.’
협회가 가진 힘은 대단히 무섭다.
국내에서 야구를 하려면,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면 그들과 척을 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하성은 거침없었다.
‘어차피 살다가 뒤지는 인생인데 뭐.’
만약 전생이었다면 하성도 몸을 사렸을 거다.
그러나 다시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그는 거침없었다.
죽으면 자신이 쌓아왔던 것들이 모두 끝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 실력이 떨어지면 그들에게 아양을 떨어도 받을 수 있는 건 없어.’
결국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하성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나만 믿는다.’
하성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인터뷰가 멈춘 것은 직원이 거대한 접시를 가져오면서다.
“자, 우리 가게의 자랑인 빅스테이크 등장이오.”
양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거대한 접시가 하성의 앞에 놓였다.
거기에는 2㎏에 달하는 서로인 스테이크가 놓여 있었다.
“이…… 이걸 다 먹나?”
“예. 그리고 기자님도 드셔야죠.”
“응?”
“자! 한 그릇 더! 이거 락하운즈 애들만 시켜 먹는 건데. 호리호리한 양반도 드시다니. 몸에 비해 잘 드시나 봐요?”
백준기는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2/3가 하성의 입에 들어간 건 말할 필요가 없었다.
* * *
[(단독) 천재의 등장? 한 달 만에 더블A에 등판한 정하성과의 인터뷰!]이틀 뒤.
하성은 스포츠 기사란을 통해 자신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이야~ 이 양반 포장 잘하네.”
자신의 거침없는 언변을 포장지에 잘 싸서 내놓았다.
문제는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내용이 너무 날이 서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크으-! 시원하다~
-제대로 협회 뼈 때리네
-엌ㅋㅋ 회장 바뀐 협회에 또 카운터 날리네.
-ㄹㅇ 이놈들은 기부금 받아서 어따 써먹음?
-뭐야? 한 번만 내는 게 아니었어?
기부금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협회를 욕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얘 너무 입 터는데?
-아니, 자기가 무슨 독립투사야? 결국 돈 주기 싫어서 갔다는 거 아님?
-이제 고작 더블A에서 뛰는 애가 무슨 협회를 까냐 ㅋ
-협회 기부금 내역 보니까, 나름 잘 썼드만
-스포트라이트 좀 받는다고 멋대로 떠드네
-입만 산 놈인가?
오히려 하성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는 법이지.”
맹목적인 환호를 받을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인기가 높고 명망이 두터워도 그 사람을 까 내리는 목소리는 어디든지 있으니 말이다.
“특히 모난 돌은 어디서건 얻어맞게 마련이지.”
지금 야구계에서 가장 모난 것은 자신이다.
남들처럼 시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게 누가 날 건들래.”
학교의 수뇌진은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건 협회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잘못은 덮고 가려 했던 놈들.
이런 놈들은 기회가 올 때마다 밟아두면 최고다.
“물론 나 역시 더 위로 가야 하고 말이지.”
올해까지는 협회도 가만히 있을 거다.
대중에게 나쁜 놈들로 각인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대중은 기억할까?
“대중의 기억력은 썩 좋은 편이 아니야. 나쁜 짓을 저질러도 몇 년 자숙하고 짜잔 하고 나타나면 다 잊어버리지. 하물며 협회같이 자신들의 생활과 상관없는 곳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대중의 기억에서 지금의 일들이 사라지면 협회는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 것이다.
그 방법은 지금보다 악랄할 것이 자명하고 말이다.
그때까지 자신은 성장해야 한다.
하성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각오를 다졌다.
* * *
덜컹! 덜컹!
그 각오는 하루 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이?
아니, 몸이 말이다.
“젠장……. 더블A로 올라와도 원정은 지옥이네.”
“흐흐, 그래도 싱글A보다는 낫지 않아? 여긴 화장실도 있다고!”
잭이 자랑스럽게 버스 뒤를 가리키면 말했다.
그래, 저거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싱글A 구단 버스는 화장실도 없어서 정말 싸서 말리는 놈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아…… 어서 위로 올라가야지.”
“트리플A로 가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어. 그나마 식사가 좀 제대로 나오고 버스가 더 좋아지는 것뿐?”
“잭, 너는 트리플에도 다녀왔어?”
“두 달 정도.”
“그곳은 어때?”
“장난 아니지. 내가 누구를 본 줄 알아? 브론을 만났었다니까!”
“브론이라면 밀워키의 라이언 브론?”
“그래!”
라이언 브론은 2000년대와 2010년대를 풍미했던 대단한 타자다.
07년부터 메이저리그에 합류했는데 신인으로 장타율 1위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뭐 약쟁이지만.’
하지만 그는 11시즌이 끝나고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된다.
이는 항소를 했지만, 이후 약물복용을 시인하면서 결국 그가 약쟁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그러고 보니 약쟁이들이 아직 남아 있겠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조심해야 할 놈들이 있었다.
그놈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 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참, 지금 원정 가는 미션스에 미친놈이 하나 있어.”
“미친놈?”
“그래. 완전 개또라이야. 경기 스타일이 엄청나게 난폭하거든.”
“얼마나 난폭한데?”
“네가 올라오기 전에 이 녀석을 맞춘 녀석이 있었어.”
“우리 팀에?”
“어. 실투였는데도 그 녀석이 바로 마운드로 뛰어와서 어퍼컷을 날려버리더라고.”
“완전 미친놈이네.”
실투 하나에 어퍼컷을 날리다니.
뭐 그런 미친놈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레이시스트야.”
인종차별까지 하는 놈이라니.
과거보다는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인종차별은 만연했다.
그런 놈이 상대라니.
‘뭐, 나만 건들지 않으면 되지.’
만약에 녀석이 자신을 건든다면?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지.’
의자에 몸을 기대는 하성의 입가에 뒤틀린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