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70)
마운드의 빌런-170화(170/285)
마운드의 빌런 170화
시리즈 스코어 2 대 1.
레드삭스는 절벽 끝에서 기사회생했다.
‘역시 명문팀답다고나 할까. 이겨야 할 타이밍에는 이기는군.’
사실 3차전까지 이긴다면 베스트였다.
그렇다면 하성 자신이 시리즈를 끝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으니 말이다.
‘내가 시리즈를 끝낸다면 그것도 좋은 그림이 될 텐데 말이지.’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영향력에 둘 수 없는 문제였다.
경기에 나서지 않는 이상 자신이 경기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극히 적었다.
그런 상황에서 팀이 이기게끔 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지.’
마운드에 오른 하성은 로진을 손에 묻히며 마운드의 상태를 살폈다.
마운드의 컨디션은 좋았다.
나쁠 건 전혀 없었다.
문제가 되는 건 마운드가 아닌 주위의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확실히 멘탈이 튼튼한 녀석이라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겠어.’
하성의 시선이 주위의 관중석으로 향했다.
그 순간.
“죽여버려!!”
“저 개자식!”
“우리의 벨트레에게 예고 삼진이라고?!”
“오늘 아주 떡이 되도록 두드려 버려!”
“보스턴을 걸어서 나갈 생각은 버려라!”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그래도 보스턴은 하성에게 우호적인 지역이었다.
라이벌 팀인 양키스의 슈퍼스타 알렉스 로드리고를 나락으로 보내버린 남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성의 예고 삼진과 함께 그러한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다.
‘휘유…… 이건 뭐 역적이 된 기분이네. 마치 양키 스타디움에서 던지는 거 같잖아?’
이런 야유는 하성에게만 쏟아지는 게 아니었다.
어슬레틱스 팀 전체에 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해 선수들이 제 기량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녀석들의 도움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군.’
오히려 방해만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
하성은 가볍게 기지개를 켜면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타석으로 들어서는 타자를 보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주위의 풍경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오늘도 날뛰어볼까.’
믿을 건 오직 하나.
자신의 공뿐이었다.
* * *
[1회, 정하성 선수의 피칭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말씀드리는 거지만, 첫 타자를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하성 선수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트레버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정하성 선수, 1구 던집니다.]후웅-!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 헛스윙입니다. 초구가 패스트볼이 아닌 슬라이더라니. 진귀한 장면이네요.] [그렇습니다. 평소 정하성 선수는 초구 패스트볼을 선호했는데요. 오늘은 슬라이더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해 냅니다.]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타자들 역시 정하성 선수가 패스트볼을 선호하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허를 찌른 전략이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좋은 선택으로 헛스윙을 유도한 정하성 선수, 2구 던집니다.]딱!!
“파울!!”
[2구 98마일의 빠른 공! 타이밍이 늦으면서 타구는 파울이 됩니다.] [1구가 슬라이더로 들어왔기에 타자가 패스트볼의 타이밍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하성은 순식간에 유리한 볼카운트를 점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하성이 뛰어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볼카운트였다.
괜히 어설픈 공을 던져 불리한 볼카운트를 가져가지 않는다.
언제든지 유리한 카운트를 잡아놓고 타자를 유린한다.
그것이 하성의 공을 때려내기 어려운 이유였다.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정하성 선수,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이제 타자의 머리는 복잡해졌습니다. 웬만한 공들은 다 커트해 내야 하는데, 정하성 선수의 공을 커트해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과연 어떤 공을 택할지, 사인을 교환한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와인드업에 들어간 하성이 3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타자가 팔을 몸에 붙여 스윙을 가져가는 순간.
휘릭!
공에 스핀이 걸리면서 바깥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타자가 급히 몸에 붙였던 팔을 떼내 공을 커트하려고 했지만.
후웅-!!
공의 변화를 배트가 따라가는 건 무리였다.
그만큼 급격하고 빠른 변화를 일으킨 공은 배트를 피해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퍽!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입니다! 정하성 선수 3구에서도 슬라이더를 던져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해 냅니다!] [아~ 정하성 선수의 슬라이더! 정말 명품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슬라이더의 완성도가 좋아지는 거 같습니다.]하성은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가볍게 잡아냈다.
그런 하성을 향해 레드삭스 팬들의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
“꺼져라!!”
“이 새끼야! 운 좋게 삼진 잡은 걸로 폼 잡지 마!”
엄청난 욕설도 들려왔다.
F로 시작하는 욕부터 시작하여 입에 담기도 무서운 욕들이었다.
부산이나 마산 야구장에서 들었던 욕들과 비슷한 수위의 것들이었다.
그런 욕설은 더그아웃에서도 들을 수 있었기에 토니 감독과 투수코치는 걱정하고 있었다.
“이거 너무 야유가 심한데?”
“아무리 어웨이라고는 하지만, 수위가 너무 심하네요.”
“하성이는 괜찮겠지?”
“뭐, 워낙에 멘탈이 튼튼한 녀석이라 괜찮긴 하겠지만…….”
사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야유라면 베테랑 선수라 할지라도 멘탈이 흔들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수위도 높고 강도도 강했다.
아무리 그동안 멘탈적으로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온 하성이라 하더라도 오늘만큼은 우려됐다.
“다른 애들도 걱정입니다.”
“음…….”
코치의 말에 토니 감독도 동의했다.
오늘 경기에서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그것이 경기장의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오늘 경기장의 분위기는 레드삭스에 완벽하게 치우쳐져 있었다.
‘최소한 마운드라도 버텨줘야 한다.’
토니 감독이 원하는 건 하나였다.
이런 분위기에 다른 선수들이 적응할 수 있을 시간을 하성이 벌어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하성마저 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너만 믿는다.’
토니 감독은 하성을 믿었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괴물 같은 활약을 생각하면 이 위기도 분명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런 믿음이 토니 감독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리고 하성은 그런 토니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100마일의 패스트볼이 미트에 꽂힙니다!] [타자의 몸쪽을 정확히 찌르는 공이었습니다. 쳤다 해도 빗맞은 타구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공이었죠.]하성은 경기장이 야유로 가득 차든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건 오직 하나.
타자였다.
[2구 던집니다.]딱!!
“파울!!”
[2구 싱커에 타자의 배트가 나왔지만, 빗맞으면서 파울 타구가 만들어졌습니다.] [타자의 스윙 궤적에서 공이 벗어나게 만드는 아주 좋은 무브먼트를 보여주었습니다.] [또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아낸 정하성 선수, 이번에도 빠르게 승부를 낼 것인지 기대되네요.]다시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하성을 향해 레드삭스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우우-!!”
펜웨이파크 전체가 울리는 듯한 야유소리에 중계진마저 놀랄 정도였다.
[레드삭스 팬들의 엄청난 야유가 정하성 선수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발표된 바에 따르면 펜웨이파크의 수용 인원인 34,000석이 모두 매진이 됐는데요. 일부 원정 응원단을 제외하고 경기장을 찾은 레드삭스 팬들이 모두 야유를 쏟아내는 거 같습니다.] [어림잡아 3만 명의 사람들에게 야유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네요.]보통 사람이라면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릴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그런 숫자가 일제히 야유를 쏟아낸다면 맨정신으로 서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성은 그런 분위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즐겼다.
‘좋은 생각이 났어.’
하성은 미소와 함께 트레버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걸로 간다고?’
트레버가 다시 사인을 보내오자 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트레버는 하성이 직접 보낸 사인을 거부하지 않았다.
미트를 내미는 그의 모습을 본 하성이 심호흡을 뱉었다.
“후우…….”
호흡을 뱉음과 동시에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주위 풍경이 검게 물들면서 오직 트레버의 글러브만이 하성의 눈에 들어왔다.
고도의 집중력 상태에서 나오는 현상이었다.
이것 덕분에 하성은 야유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었다.
‘전력으로…….’
정신을 집중한 하성이 팔을 들어 올렸다.
촤앗-!!
뒤이어 다리를 차올리는 킥킹과 함께 힘을 축적해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을 노리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하지만 그의 배트가 절반도 돌아가기도 전에 공이 홈플레이트를 지나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뻐어억-!!
후웅!
힘없이 허공을 가르는 배트에 구심의 손이 무심하게 올라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삼진!!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으로 처리하는 정하성 선수! 결정구는 104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었습니다!]중계진이 감탄하고 있을 때.
하성의 시선이 관중석을 향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쏟아지던 야유는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자신이 던진 공의 위력에 놀란 관중들이 야유를 하는 것도 잊어버린 듯했다.
몇몇 팬들이 야유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 위력은 확실하게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 하성이 손을 들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검지를 들어 올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아-! 레드삭스 관중들을 도발하는 정하성 선수!] [하하…… 이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네요.] [정말 대단한 배짱입니다! 적지 한가운데서 자신에게 야유를 쏟아내는 팬들에게 도발을 하다뇨!]중계진은 감탄했지만, 도발의 효과는 굉장했다.
“저 새끼가!!”
“죽여버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저 새끼 당장 끌어내려!!”
“우우우우우-!!”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던 펜웨이파크가 다시 야유와 욕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타석으로 애드리안 벨트레가 들어섰다.
“벨트레!! 오늘은 한 방 날려라!”
“너 오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안 날리면 작살날 줄 알아!”
“최소한 안타라도 날려!!”
레드삭스 팬들의 압박감은 하성에게만 쏟아지는 게 아니었다.
같은 팀 타자인 애드리안 벨트레에게도 엄청난 중압감을 주었다.
베테랑 타자인 벨트레 역시 이런 분위기는 처음 겪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흥분한 팬들은 처음이야.’
자신조차 주눅이 들 정도로 엄청난 팬들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멀쩡한 거지?’
마운드 위에 있는 하성은 야유를 듣고 있음에도 표정 변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팬들을 도발하는 행동을 하면서 야유를 더 끌어냈다.
‘마치 지금 상황을 즐기는 거 같아.’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반응이었다.
“플레이볼!!”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구심은 냉정하게 게임 시작을 알렸고 벨트레는 집중을 하지 못한 채 타석에 섰다.
그리고 그런 벨트레는 하성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정하성 선수 1구 던집니다.]뻐어억-!
“스트라이크!!”
[103마일의 빠른 공이 벨트레의 몸쪽을 찌릅니다! 원스트라이크!]딱!!
후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순식간에 볼카운트가 몰린 벨트레에게 레드삭스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야 이 새끼야! 제대로 못 해?!”
“뻔히 보이는 공에 헛스윙이나 하냐?!”
“제대로 치란 말이야!!”
여기가 홈인지 어웨이인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성은 자신의 베스트 볼을 던졌다.
“흡!!”
쐐애애액-!!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정하성 선수 또 한 번 무결점 이닝을 만들어냅니다!] [아~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이라니!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내는 정하성 선수입니다!]또 한 번의 무결점 이닝을 만들어낸 하성을 카메라가 포커싱했다.
그 순간 하성은 다시 입 앞에 검지손가락을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관중석에 보냈다.
완벽한 투구를 본 직후라서 그런 걸까?
이번에는 레드삭스 팬들이 야유를 보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거지.”
순식간에 펜웨이 파크를 조용하게 만든 하성이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