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73)
마운드의 빌런-173화(173/285)
마운드의 빌런 173화
메이저리그 풀타임 첫해였던 2009년.
하성은 마무리투수로서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작성하며 팀을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이끌었다.
많은 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성은 루키임에도 훌륭한 포스트시즌을 치렀다.
하지만 알렉스 로드리고의 활약과 오클랜드 마운드의 붕괴로 팀은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정하성의 오클랜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다!] [월드시리즈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만나는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에이스 팀 린스컴과의 대결이 확정된 정하성!] [에이스와 에이스의 대결!] [도박사들 1차전 승리로 정하성의 오클랜드를 찍었다!]하성은 선발로 전향해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단어 그대로 하성이 멱살을 잡고 끌고 올라왔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페넌트레이스 최고의 선발투수로 꼽혔던 정하성 선수, 많은 이들이 선발로서 첫 포스트시즌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하성 선수는 자신이 왜 페넌트레이스 최고의 선발투수였는지 증명하듯이 디비전시리즈 1차전,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 4차전에서 각각 승리를 챙겼습니다.] [단순히 승리를 올린 것이 아니라 3경기 모두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한 마디로 상대 타선을 압도했습니다.] [특히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큰 화제가 되었죠.] [적지 한가운데서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팬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는 대단했죠.]하성의 퍼포먼스는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경기 이후의 일이었다.
[이건 미국 현지에서 보도된 내용인데. 경기에선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정하성 선수지만, 경기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의 사인 요청에 기꺼이 응했다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예. 파파라치들에게 찍힌 사진이 공개되어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퍼포먼스는 단순히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사인을 해주는 하성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여론은 그렇게 바뀌었다.
덕분에 하성에 대해 일어났던 일부의 비판은 조용히 사라졌다.
[이제 남은 일정은 월드시리즈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현지에선 오클랜드보단 샌프란시스코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입니다.] [에이스의 대결은 정하성 선수가 우위에 있다 보는 시선입니다만, 문제는 타선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샌프란시스코의 타선이 오클랜드를 압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거기에 아놀드 선수가 부상으로 인해 월드시리즈 출장이 어렵다는 공식성명이 나오면서 무게가 기울어지고 있습니다.]챔피언십 시리즈가 끝나고 오클랜드는 악재가 나왔다.
아놀드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해 월드시리즈 출장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단순 타박상이 아니라 뼈에 금이 가면서 경기가 불가능했다.
[타선의 핵심인 아놀드의 부재는 오클랜드 입장에선 뼈아플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오클랜드 입장에선 어려운 월드시리즈가 될 겁니다.]오클랜드의 전망은 어두웠다.
그렇기에 더더욱 1차전이 중요했다.
[1차전,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 정하성과 팀 린스컴의 선발 대결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월드시리즈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하성의 부모님이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들인 하성의 월드시리즈 등판을 보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한 남자가 마중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정하성 선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오클랜드의 지미 킴입니다.”
지미 킴과 인사를 나눈 부모님이 그가 가지고 나온 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어머니는 운전하는 지미에게 물었다.
“하성이는 잘 지내나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영어도 워낙 잘해서 본래 통역으로 배정되었던 제가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하성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합니까?”
아버지의 질문에 지미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잘합니다. 팀 선수들과 대화에도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이 정도라면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을 거 같은데. 맞습니까?”
“아니요. 딱히 교육을 시킨 적은 없는데…….”
“정말입니까?”
“예.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느라 다른 공부는 좀 소홀히 했습니다.”
“허…… 그런데 그렇게 잘하다니. 놀랍네요.”
지미 킴은 본래 하성의 통역으로 어슬레틱스와 면접을 봤다.
하지만 하성이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인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어슬레틱스의 다른 업무를 보면서 하성이 필요할 때마다 그의 일을 도와주었다.
일종의 비서인 셈이었다.
오늘도 하성의 부탁으로 부모님을 마중 나온 이유였다.
본래는 하성이 나올 예정이었지만, 그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면 난장판이 될 걸 알기에 취소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어느덧 하성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지미 킴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하성의 방에 도착했다.
“오시느라 힘드셨죠?”
“아주 편하게 왔다.”
“비행기 몇 번 타봤지만. 일등석은 처음이라서 이렇게 편한 줄 처음 알았어.”
부모님은 하성이 보내준 퍼스트클래스 티켓으로 미국까지 왔다.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하는 부모님을 배려한 하성의 선택이었다.
처음 부모님은 너무 비싸다며 반대하셨지만, 막상 타고 오시니 무척이나 편하신 표정이었다.
하성은 지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달하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그럼 이틀 뒤에 월드시리즈 1차전에 등판하는 거냐?”
“네. 그날 더그아웃 쪽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니 거기에서 경기 보시면 되세요.”
“우리 아들이 월드시리즈에서 던지다니…….”
아버지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월드시리즈.
야구의 시작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선택받은 자들만이 설 수 있는 무대였다.
아무리 뛰어난 활약을 펼치더라도 운이 나쁘면 월드시리즈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그런데 하성은 불과 2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그것도 1차전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선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올라가는 게 아니에요.”
“응?”
“반드시 이길 겁니다.”
하성의 다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우리 아들인데 당연하지.”
“우리도 열심히 응원할게!”
어머니가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에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게 되니 무척이나 즐거운 하성이었다.
* * *
다음 날.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하성은 토니 감독과 함께 기자들 앞에 섰다.
챔피언십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은 하성의 빅마우스가 발동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월드시리즈 무대라고 해서 다를 건 없습니다. 올라가서 던진다. 그리고 승리한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너무 담백한 대답이었다.
분명 이것도 충분히 수위가 높았지만, 기자들이 원하는 건 이 정도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공약 같은 거 하지 않습니까?”
“챔피언십 시리즈 때처럼 누군가를 삼진으로 처리하겠다는 식의 공약은 이제 없는 겁니까?”
“시원하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이 원하는 건 하성의 예고플레이였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니 월드시리즈에서도 같은 모습이 나와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하성은 그러지 않았다.
“월드시리즈가 그렇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챔피언십 시리즈는 쉬웠다는 이야긴가요?”
“이야기를 굳이 그렇게 끌고 갈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하성의 말에 질문을 던졌던 기자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하성이 먼저 선수를 쳤다.
“이번 대회는 멀리 한국에서 부모님이 처음으로 보러 와주신 경기입니다. 그런 만큼 꼭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아쉬움이 남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승리 선언이었기에 기자들은 이 정도로 만족해했다.
그때 샌프란시스코쪽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투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정하성 선수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기자들의 시선이 그 투수에게로 향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근육질에 덩치가 컸다.
엄청난 돈이 모이는 곳이니만큼 피지컬은 그 어떤 스포츠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특히 선발투수는 내구력을 위해서라도 피지컬이 좋아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장발의 저 투수는 미소년적인 외모에 왜소한 체격을 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린스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하지만 이 남자의 이름.
팀 린스컴을 말하면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유명한 메이저리그 투수였다.
저 왜소한 체격으로 최고 구속 100마일까지 나오는 포심 패스트볼과 투심, 스플리터, 커브까지.
다양한 공을 던지면서 07년 메이저리그에 데뷔, 08년과 09년 연속해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획득한 선수였다.
올 시즌 역시 16승 10패 3.43의 평균자책점과 231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등.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디비전시리즈에서는 14탈삼진 완봉승과 챔피언십 시리즈에선 필라델피아의 로이 할러데이와의 에이스 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엄청난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 린스컴은 특유의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1차전은 우리 샌프란시스코의 승리가 될 겁니다. 그러니 하성의 부모님은 아들의 경기를 처음으로 관전하는 날, 승리를 보지 못하게 되시겠죠. 아쉬움이 남는 하루가 될 겁니다.”
린스컴의 멘트에 기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위가 높은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과연 하성이 저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갈 건지 조마조마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그때 마이크를 잡은 하성이 입을 열었다.
“아쉬움은 없을 거 같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고 저희 부모님은 아들이 대활약하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 말이죠.”
두 선수의 신경전에 미디어실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경기 전부터 대단한 신경전을 일으키는 두 투수의 모습에 기자들은 이번 대회 역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 * *
한국에서는 이번 월드시리즈에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정하성 선수의 월드시리즈 등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승리투수가 탄생할 것인가?] [관건은 어슬레틱스의 타선이 터져줄 것인가?] [정하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어슬레틱스의 타선이다!] [아놀드의 부재가 아쉬운 어슬레틱스, 과연 정하성을 도와줄 타자는 누가 될 것인가?]하성의 등판을 앞두고 각종 미디어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해 월드시리즈를 분석했다.
공중파에서도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할 정도로 하성의 월드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이번 월드시리즈 1차전에선 정하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게 되네요?] [예. 월드시리즈는 다른 리그에 속한 두 팀이 붙는 것이기에 지명타자 규정이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홈팀이 속한 리그의 규정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정하성 선수의 타격 데이터는 적지만, 올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첫 홈런과 함께 나온 배트 플립은 메이저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기억나는군요. 당시 배트 플립으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을 정도였죠?] [아무래도 문화가 다른 메이저리그니까요.] [정하성 선수가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때려낸다면 이 역시 진귀한 기록이 되겠네요.] [하하! 꿈 같은 이야기지만,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한국인 메이저리거는 그동안 많이 나왔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와는 큰 인연이 없었다.
반지를 차지한 선수도 한 명밖에 없을 정도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선수가 적었다.
선발투수와 타자로서 기록을 남긴 선수가 전무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만약 하성이 선발투수와 타자로서 기록을 남긴다면 이는 역대 한국인 최초의 기록이 된다.
[과연 정하성 선수가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지 월드시리즈 1차전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