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74)
마운드의 빌런-174화(174/285)
마운드의 빌런 174화
마운드에 오른 하성은 감회가 새로웠다.
‘원래라면 이 무대에 오클랜드가 아니라 텍사스가 올랐어야지.’
그리고 에이스의 대결도 자신이 아닌 클리프 리와 팀 린스컴의 대결로 화제를 모은다.
하지만 역사는 바뀌었다.
텍사스는 디비전 시리즈에도 오르지 못했으며 클리프 리는 팀까지 옮겼음에도 포스트시즌에 나오지 못했다.
이 바뀜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상대 타선을 짓누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샌프란시스코의 첫 타자가 타석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1번 타자 버스터 포지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작년 잠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었던 버스터 포지 선수,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기대주답게 올 시즌 데뷔하자마자 좋은 활약을 펼쳐주고 있습니다.] [타율 108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 5푼 홈런 18개 67개의 타점을 기록하면서 OPS 0.862 장타율 5할 5푼을 기록했습니다.] [몰리나가 텍사스로 트레이드된 이후로는 샌프란시스코의 안방마님으로서 포수로서의 능력도 발휘하고 있습니다.]버스터 포지의 활약은 대단했다.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한 것이 그 증거였다.
화려한 데뷔와 함께 그는 201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로서 이름을 알린다.
비록 부상으로 전성기가 길지는 않지만, 완성형 포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공수 모두에서 뛰어났다.
하지만.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첫 타자 버스터 포지를 5구 만에 100마일의 패스트볼로 돌려세우는 정하성 선수!]하성의 상대는 아니었다.
분명 앞으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그였지만, 현재의 하성은 메이저리그 톱클래스의 타자들도 건들 수 없는 투수였다.
그런 하성의 피칭은 월드시리즈라고 해서 변하지 않았다.
[월드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도 자신의 공을 훌륭하게 던지고 있는 정하성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하성의 부모님은 관중석에서 아들이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을 던지다니…….”
“정말 하성이가 대단한 거 같아요.”
“그러게 말이야.”
TV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사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그런데 직접 공을 던진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떨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열심히 응원합시다.”
“네.”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의 손을 꽉 잡으며 아버지는 하성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런 응원 덕분이었을까?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월드시리즈 첫 등판에서 두 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해 내는 정하성 선수!] [무대는 더욱 커졌지만, 정하성 선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언터처블입니다!]1회에만 2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기세를 올렸다.
그런 하성의 모습에 팀 린스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팀 린스컴은 하성을 인정했다.
아니, 그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가 그를 인정하고 있었다.
사건 사고가 많긴 했지만, 야구 하나만 놓고 보면 그를 인정하지 않을 선수는 없었다.
그만큼 하성의 실력은 언터처블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생각은 없다고.’
팀 린스컴은 글러브를 챙겨 더그아웃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내 시간이다.’
그의 피칭이 시작됐다.
* * *
팀 린스컴은 왜소한 체격에도 100마일의 공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투구 폼이 정석에서 벗어나 전신을 쥐어 짜는 듯한 방식으로 던져 보는 이들에게 다이나믹을 선사했다.
‘그게 결국 본인을 잡아먹게 됐지.’
더그아웃에서 쉬고 있는 하성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리는 팀 린스컴을 바라봤다.
‘화면에서 볼 때도 무척이나 다이나믹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한층 더 역동적이네.’
노모 히데오가 사용했던 토네이도 투구 폼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전신을 쥐어 짜내서 모든 힘을 끌어올리는 건 같은 원리였다.
문제는 저런 방식으로 공을 던지게 될 경우 신체의 데미지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투구라는 건 신체에 큰 데미지를 입히는데. 저렇게까지 쥐어짜 내면 당연하게도 데미지가 더 커지지.’
투구 메커니즘은 이때보다 10년 뒤에 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다양한 기술들이 새롭게 도입되면서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팀 린스컴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조언을 따랐다.
전문가라고는 하나 발전하는 투구 메커니즘을 받아들이지 못한 린스컴의 패착이었다.
‘뭐, 그건 미래의 일이지. 중요한 건 이 시기의 녀석은 베스트 컨디션이란 소리고.’
2010년의 린스컴은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다.
어슬레틱스 타선이 쉽사리 공략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놀드까지 부상으로 빠진 이상 우리 타선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점수는 1점 정도겠지.’
아놀드의 부상이 뼈아팠다.
기대 득점이 낮은 상태에서 하성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다 잡는다.’
월드시리즈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잡고 또 잡는다.
그렇게 되면 결국 승리의 문이 열릴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 *
하성의 예상이 빗나갔다.
“젠장…….”
7회가 지난 시점.
두 팀의 스코어는 여전히 0 대 0이었다.
[월드시리즈에서 이런 투수전이라니…….]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호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정하성의 호투는 예상됐다.
페넌트레이스 최고의 투수이자 포스트시즌에서도 퍼펙트한 성적을 올린 그였다.
월드시리즈로 무대가 바뀌기는 하지만, 그가 무너질 거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없었다.
[정하성 선수가 호투를 하는 와중에 오클랜드가 점수를 낼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는데요.] [하지만 전문가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게 있습니다.] [바로 팀 린스컴이 예상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는 부분이죠.]팀 린스컴은 오늘 경기 완벽한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7회 초까지 던진 팀 린스컴은 지금까지 15개의 탈삼진을 잡는 동안 볼넷 2개, 피안타는 제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기록만 놓고 보면 오늘 경기에서 안타 2개를 허용한 정하성 선수보다 더 좋은 성적입니다.]팀 린스컴은 노히터를 기록 중이었다.
[정하성 선수의 안타 2개 중 하나는 에러성이라고는 하나, 하나는 깨끗한 안타였습니다. 현재까지는 분명 팀 린스컴 선수가 더 좋은 투구를 하고 있습니다.]중요한 건 두 투수 모두 훌륭한 피칭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대 타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6회가 끝난 시점에서 정하성 선수는 94개의 투구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래 정하성 선수의 투구 수라면 7회에 올라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네요.]하성은 평균 투구 수 100구 초반을 유지했다.
만약 오늘이 페넌트레이스라면 하성은 교체됐을 거다.
하지만 7회 초에 하성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를 바라보며 토니 감독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100구가 넘어가면서부터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거기에 경기내용은 답답할 정도로 풀리지 않는 상황. 어린 네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하성이 아닌 다른 투수였다면 교체를 했을 거다.
‘하지만 너니까 믿는다.’
그러나 정하성은 믿을 수 있다.
아니, 하성을 제외한 누구도 지금 이 마운드에 올라와서 버틸 수 없다.
왠지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토니 감독의 머리에 가득했다.
‘데이터가 아닌 느낌일 뿐이지만…….’
야구는 점점 정교한 데이터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토니 감독은 옛날 사람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란 것에 의지할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반드시 막아다오.’
토니 감독이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마운드 위의 하성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동안에는 100구쯤 지나면 팀이 이기는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오늘은 영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질 않네.’
이기는 상황이었다면 굳이 던지려고 하지 않았을 거다.
교체를 요청했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어쩔 수 없지. 뭐, 체력이 그렇게 빠진 상태도 아니고.’
그동안 전문가들은 100구를 하성의 한계 투구 수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잘못된 이야기였다.
‘그동안은…….’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사인을 교환한 하성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몸쪽을 강하게 찌릅니다! 구속은 여전히 100마일!! 100구가 넘은 상태에서도 100마일의 공을 뿌리는 정하성 선수!!]하성의 투구에 관중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놀라는 타자를 바라보며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굳이 던질 이유가 없어서 그 이상 던지지 않았을 뿐이야.’
하성 본인조차 체력의 한계를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하드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심폐 지구력만 놓고 보면 웬만한 엘리트 운동선수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끝까지 해보자고.’
하성이 노리는 건 승리였다.
팀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타이틀을 위해서였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 선수라는 타이틀을 뺏길 순 없지.’
아직까지는 공석이었지만, 앞으로는 나오게 된다.
그것을 알기에 하성은 이 타이틀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 타이틀을 얻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테니 말이다.
“후우……!”
하성은 심호흡과 함께 타자들을 상대해 나갔다.
* * *
[7회 말, 정하성 선수가 세 명의 타자를 깔끔하게 돌려세우며 0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투구 수가 어느덧 114개까지 늘어났다는 거네요.] [이 정도면 이번 타석에서 교체해도 이상할 게 없을 거 같습니다.]8회 초.
이번 이닝에는 하성이 마지막 타석에 들어서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교체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팀 린스컴의 노히터가 계속 이어질 것인지! 8회 초, 어슬레틱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팀 린스컴의 투구 수도 어느덧 110개를 넘어섰다.
그를 교체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자이언츠의 코치진도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월드시리즈에서 이런 경기라니…….’
경기의 흐름을 깨고 싶지 않은 게 양 팀 더그아웃의 동일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8회 원아웃까지는 이어졌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6구 만에 타자를 돌려세우는 팀 린스컴! 하지만 투구 수는 116개까지 늘어납니다!] [이제 슬슬 지쳐가는 게 보이네요.]팀 린스컴의 구속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린스컴의 공은 타자를 압도하지 못했다.
그 결과.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8번 타자 존슨의 타구가 우중간을 향해 날아갔다.
펜스를 그대로 때릴 수 있을 정도로 큼지막한 타구였다.
그때 우익수 팻 버렐이 펜스 앞에서 점프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 타구가 떨어지는 타이밍을 정확히 캐치해 몸을 날렸다.
퍽!
[잡았습니다! 장타성 타구를 잡아내는 팻 밸러!] [엄청난 수비가 나왔습니다.] [마운드 위의 린스컴이 밸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어슬레틱스 입장에선 좋은 기회가 날아가고 말았습니다.]밸러의 호수비에 두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공격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토니 감독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출루에 성공하면 교체하려고 했지만…….’
하성은 9회에도 올라갈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기에 대기 타석에 있는 그를 불러들일 수 없었다.
‘지금 녀석을 내리는 것보단 차라리 계속 올리는 게 낫다.’
경기가 장기전으로 가면 어떻게든 불펜을 아끼는 게 상책이었으니 말이다.
[정하성 선수가 타석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교체 없이 그대로 마운드에 올릴 생각인 거 같네요.]하성이 타석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