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8)
마운드의 빌런-18화(18/285)
마운드의 빌런 18화
텍사스 샌안토니오.
미션스의 홈구장이 있는 곳이었다.
“후우…… 덥군.”
백준기는 록하운즈보다 먼저 샌안토니오에 도착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어. 먼저 식사나 하고 있을까?”
경기 시간까지는 4시간가량 남은 상황.
백준기는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지난번에 스테이크를 너무 먹어 질렸던 그가 이번에 택한 것은 평범한 샌드위치 가게였다.
“어서 오세요.”
반갑게 자신을 맞이하는 점원에게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면서 데이터를 확인했다.
‘더블A 첫 경기에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어. 이로써 싱글A까지 합치면 11이닝 연속 무실점 경기를 이어나가게 됐어.’
하성은 아직까지 실점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자책점은 물론이거니와 비자책점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피안타도 적었다.
‘4경기에서 허용한 피안타는 고작 3개에 불과해. 볼넷도 없고 이닝당 투구 수도 12개로 매우 적은 편이야.’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건 하성의 피칭스타일이었다.
투수마다 피칭에 따른 스타일은 다르다.
누군가는 유인구를 던지면서 타자를 유인하는 선수가 있다.
정교한 제구력을 앞세운 선수들이 이런 유형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하성은 반대였다.
‘본인의 장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
데이터를 계속 분석해 나가고 있을 때였다.
딸랑-!
불길한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으하하! 어제 그놈들 얼굴 봤어? 쫄아가지고 얼굴이 사색이 되더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완전 똥 씹은 표정이더라고. 특히 네가 멱살 잡았을 때는 아주 가관이었어.”
두 남자가 시끄럽게 떠들며 들어왔다.
그들은 화려한 화장을 한 여성들을 옆에 끼고 있었는데, 척 보더라도 보통내기들은 아니었다.
‘술 냄새가 진동하는군.’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술 냄새에 백준기가 인상을 구겼다.
“뭐야? 이 노란 원숭이는.”
그때 그를 발견한 노란 머리 사내가 인상을 구기며 백준기에게 다가왔다.
‘노란 원숭이? 설마 나한테 한 말인가?’
미국에 자주 오기에 인종차별은 자주 경험했다.
하지만 대부분 간접적으로 하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놈처럼 이렇게 대놓고 하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야, 원숭이. 불만 있냐? 뭐 그리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어?”
경험상 이런 놈들과 엮이면 곤란하다.
그것을 아는 백준기가 뒤로 주춤 물러서려는 그때였다.
“바튼! 내 가게에서 소란피울 생각 하지 말라고 했지?!”
주방에서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쳇! 아저씨가 이 시간에 가게에 왜 있어?”
“미친개가 자주 드나드는데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쓰나? 그나저나 이게 무슨 냄새야? 너 이 새끼! 오늘 경기에 나가면서 아침까지 술 퍼마신 거냐?!”
‘경기?’
경기라는 말에 백준기가 눈을 빛냈다.
그제야 이 레이시스트가 입고 있는 저지가 눈에 들어왔다.
‘미션스의 선수였군.’
백준기는 그의 얼굴을 기억에 담았다.
* * *
백준기가 한바탕 소란에 휘말려 있을 때.
록하운즈의 원정버스가 미션스의 홈구장에 도착했다.
수뇌진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사이, 선수단은 원정 라커룸에 짐을 풀었다.
‘샌안토니오는 처음이군.’
미국의 땅덩어리는 넓다.
그러다 보니 1년간 지냈다 하더라도 가본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번에도 관광은 어렵겠지만.’
놀러 온 것이 아닌 경기를 위해 왔기에 자유시간은 적었다.
근처는 둘러볼 수 있어도 도시를 즐기는 건 무리였다.
무엇보다 하성이 그런 성격도 아니었고 말이다.
‘관광할 시간에 훈련이나 해야지.’
전생에서도 그는 훈련광이었다.
멀쩡한 몸을 얻게 된 현생에서도 그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훈련할 생각에 싱글벙글 웃으며 옷을 갈아입고 라커룸을 나섰다.
그리고 훈련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백준기가 오는 걸 발견했다.
“어? 백 기자님. 벌써 오셨어요?”
“버스보다는 비행기가 빠르니까. 덕분에 일찍 도착했지.”
“크으! 역시 미국을 돌아다니려면 비행기가 최고죠. 부럽습니다. 저는 낡은 버스를 타면서 고생고생하면서 왔는데 말이죠.”
“그렇게 힘들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야겠군.”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썩 좋지 않으시네요?”
백준기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숨기려고 한 듯했지만, 하성은 전생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
저 정도의 변화를 캐치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티가 났나?”
“조금요.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사실은…….”
백준기가 바튼과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성은 그 남자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미션스의 매드독.”
“알고 있었나?”
“동료에게 들었어요. 그런데 그놈이 기자님에게 노란 원숭이라 그랬다고요?”
“이거 참, 낯뜨겁군. 설마 아직도 그렇게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어.”
백준기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이 매드독처럼 대놓고 하는 일은 줄어든다.
단지 드러내지 않고 영리하게 할 뿐이다.
‘으흠, 노란 원숭이라.’
그리고 하성은 그런 놈들을 싫어했다.
‘뭐, 나한테 한 것도 아닌데. 나설 필요는 없겠지.’
젊은 시절이라면 나섰을 거다.
감히 같은 한국인을 건들다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다.
‘괜히 소란스럽게 만들 필요 있겠어? 나만 건들지 않으면 돼.’
자신만 건들지 않으면 상관없다.
자신만 말이다.
* * *
아아…… 왜인지 이렇게 될 거 같더라.
“캬악-!”
걸쭉한 가래침을 모아.
“퉤!”
앞에 뱉는 미친개를 바라보며 하성은 인상을 구겼다.
“X발! 오늘따라 원숭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이 보여? 주변 동물원에서 탈출이라도 한 거야?”
하하…… 동물원이라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이런 원시적인 놈과 싸울 이유가 있나?
“이 동네는 들개가 많나 보군.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걸 보니까 말이야.”
분명 이유는 없었지만, 건드린 이상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가볍게 받아쳐 줬을 뿐이다.
한데 놈의 반응이 예상보다 찰지게 나왔다.
“뭐라고?! 이 원숭이 새끼가!!”
“웁쓰! 사람 말을 알아듣는 개X끼였나 보군.”
“그래도 이 새끼가!!”
바튼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저놈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던 찰나.
“야, 이 새끼야! 우리 동료에게 뭐 하는 짓이야?!”
잭이 등장했다.
그 뒤로 록하운즈의 선수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아무리 미친개라도 쪽수에서 밀리니 쫄리나 보다.
“이 개자식들…… 오늘 경기에서 두고 보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악당의 대사를 날리고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두고 보자는 새끼들이 무서웠던 적은 없더라.’
그러다 하성이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런데 왜 얼굴이 낯이 익지?’
* * *
백준기는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오자마자 레이시스트에게 봉변을 당해서 그런지 피곤하네.’
몸은 괜찮았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본업을 위해 준비를 끝내고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던 그의 눈에 익숙한 사내가 들어왔다.
‘응?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캐주얼한 복장을 한 백인 남성.
40대 중반 정도의 나이, 젠틀한 이미지를 풍기는 그를 본 백준기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파드리스의 스카우트 팀장이잖아?’
메이저리그 구단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스카우트 팀장인 로버트였다.
‘차기 단장으로 유력한 로버트 팀장, 그가 왜 더블A 경기를 보기 위해 온 거지?’
마이너리그 구단은 메이저리그 구단에 종속된 개념이다.
마이너리그팀에서는 선수들에 대한 보고서를 주기마다 메이저리그에 보고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만 찾을 수 있는 장점과 단점들이 있으니까 그것을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인스트럭터들이 마이너리그에 배치되어 있는 거지.’
타격과 투수 인스트럭터는 물론 선수의 육성을 체크하는 인스트럭터도 배치되어 있다.
그렇기에 팀장이 직접 와서 경기를 볼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로버트는 구단에서도 단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더블A 경기를 직관하러 오는 일은 자주 없었다.
백준기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한편, 로버트 팀장은 자신의 곁에 앉은 인스트럭터 테베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바튼의 성장은 잘 올라오고 있는 거 같은데. 자네가 보기에 어떤가?”
“만족스럽습니다. 원래 포텐셜을 가진 녀석이었는데. 최근에는 파워도 붙으면서 장타력이 월등히 좋아졌습니다.”
인스트럭터가 바튼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바튼은 유망주 중 한 명이었다.
제대로 성장만 해준다면 앞으로 파드리스의 내야를 지켜줄 것이다.
‘카드로 쓰기에도 적절한 녀석이지.’
한국과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의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네임드급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이런 트레이드에서 빗겨 가지 못했다.
이런 선수들이 트레이드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유망주였다.
그렇기에 잠재력이 충만한 유망주가 많을수록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성격 말입니까?”
“예. 보고서에도 몇 번 올렸지만, 바튼의 성격이 좋지 못합니다. 인성교육을 진행했지만, 따라오는 게 느립니다.”
“그건 문제군요.”
메이저리그는 실력우선주의다.
그렇다고 해서 선수의 인성을 아예 무시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마이너리그에선 선수들의 인성교육도 교육과정에 들어 있었다.
“흠, 많이 심각한가?”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자주 하는 게 문제입니다.”
“레이시스트라…….”
이건 좀 심각해질 수 있다.
“경기에서 그런 모습만 안 보인다면 다행이지.”
“다행히 아직까지 경기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안 돼.”
메이저리그는 온갖 인종이 모여 경기를 한다.
그런 곳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한다?
커다란 트러블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경기장으로 선수들이 들어섰다.
“시작되는군.”
* * *
원정팀인 록하운즈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록하운즈 타자들이 타석에 서서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하성은 벤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 감독은 무슨 생각이야? 나를 선발로 내보내고.’
록하운즈의 선발투수는 하성이었다.
지금까지 계투로만 나갔던 하성을 선발로 내보낸 건 다소 의외의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선수를 테스트하려는 목적이 크다지만, 갑자기 선발이라니.’
마이너리그는 성적이 아닌 육성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여러 방면으로 선수를 테스트한다.
매일매일 성장하는 유망주들이 어떤 포지션에 가장 잘 어울리는지 보기 위해서 말이다.
계투로 뛰던 하성을 갑자기 선발로 올린 이유다.
‘선발로 올려보내기는 하지만, 길어야 3~4이닝이겠지.’
테스트가 목적이니만큼 길게 던지게 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하성은 오늘은 투구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2이닝까지는 잘 던지고 3이닝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하겠지?’
사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성은 자신의 한계치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현재 내 구위로 메이저리그에서 통하려면 2이닝이 한계다.’
미래의 기억으로 몸을 만들기 시작한 건 고작해야 1년이다.
그동안 몸은 좋아졌고 체력도 붙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괴물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의 타자들을 상대하려면 전력투구를 이어가야 한다.
현재 체력으로는 그러한 전력투구를 2이닝까지밖에 이어갈 수 없었다.
‘체력과 힘을 더 기를 때까지는 일단 계투로 자리를 잡아야 해.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야 돈을…….’
그때였다.
딱-!!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상념을 깨고 그라운드를 바라보자 1루로 전력 질주하는 잭이 보였다.
‘빠지나?’
타구는 삼유간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코스였다.
그때 삼루수가 몸을 날렸다.
퍽!
공은 삼루수의 글러브에 잡혔다.
나이스 플레이였다.
이후 플레이도 깔끔했다.
빠르게 일어나 그대로 1루를 향해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높다.’
송구가 조금 높게 들어갔다.
1루를 지키는 바튼이 잡기에도 애매한 높이였다.
그때 바튼이 땅을 박차고 점프했다.
퍽!
그리고 공을 낚아챘다.
‘재수 없는 새끼, 저걸 잡…….’
하성의 눈이 커졌다.
커진 그의 동공에 슬라이딩하는 잭과 그를 노리고 무릎을 굽힌 바튼이 보였다.
“위험……!”
외치려고 했지만 늦었다.
퍽!
녀석의 무릎이 잭의 등을 그대로 찍어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