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81)
마운드의 빌런-181화(181/285)
마운드의 빌런 181화
구단주는 말 그대로 구단의 주인이다.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사람을 의미하며 이들은 대부분 구단의 운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선수들의 계약 역시 단장이나 사장이 관리하며 구단주는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의 경우가 있었다.
“구단주가 직접 움직이는 경우는 네임밸류가 높은 선수들을 계약할 때예요.”
이사벨의 설명에 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벨은 그런 하성에게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알렉스 로드리고가 장기 계약을 맺을 때 구단주가 직접 움직였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예요.”
“그 녀석은 어딜 가든 빠지지 않는군요.”
“비록 지금은 나락에 떨어졌지만, 한때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계약을 성사한 선수니까요.”
“그 역사 하나씩 깨면서 올라가야겠군요.”
“네. 정하성 선수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이사벨이 확신에 가까운 대답을 했다.
평소 그녀의 성격이라면 나오기 힘든 대답이었다.
그만큼 확신한다는 소리였다.
하성이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뒤엎을 정도의 선수가 될 거라는 걸 말이다.
“어쨌든 구단주가 나섰다는 건 그를 만나는 게 낫다는 이야기군요.”
“아무래도 위치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가 나섰다는 건 어슬레틱스에서도 위원회로 가고 싶지 않다는 소리예요. 그럼 새로운 제안이 있을 겁니다.”
“그걸 듣고 결정하면 되겠군요.”
“정답이에요. 위원회로 간다면 승률이 높긴 하지만 백퍼센트는 아니에요.”
“패배할 수도 있다는 소린가요?”
“제로는 아니에요. 충분할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제로가 아닌 확률에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조정위원회는 선수와 구단의 의견차를 좁혀주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조정위원회로 간다는 건 구단과 선수 둘 중 하나의 금액으로 결정된다는 거예요. 조정이 되는 게 아니구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서 타협점을 찾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맞아요. 분명 우리가 이길 확률이 높지만, 질 확률이 제로가 아닌 싸움을 굳이 끝까지 해나갈 필요는 없어요. 물론 충분할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리지만요.”
냉정한 이사벨의 말이 하성은 마음에 들었다.
“그럼 구단주 쪽과 약속을 잡아보도록 하죠.”
“네. 그건 제 쪽에서 처리하도록 할게요.”
연봉 협상의 마지막 분수령이 될 수 있는 구단주와의 만남이 결정됐다.
* * *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구단주 루이스 울프는 오클랜드에서 평판이 상당히 나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슬레틱스의 구단주가 된 이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계획이 바로 연고지 이전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연고지의 관계는 무척이나 밀접했다.
연고지의 시민들은 구단에 많은 애정을 쏟았고 그만큼 막대한 돈을 오랜 시간 지불했다.
구단들은 그들이 낸 비용으로 운영을 하며 선수들을 사와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러한 순환 구조로 이루어진 구단과 연고지의 관계에서 연고지를 이전하려 한 구단의 행동은 배신과 같았다.
그렇기에 하성이 오클랜드에 막 입성한 초기에는 경기장에 빈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그때는 응원 소리를 듣기가 힘들었지.’
지금이야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1/10의 관객석만이 찰 뿐이었다.
‘중요한 건 그런 일을 추진할 정도로 구단주가 나름 행동력이 있다는 거겠지. 사업 수완은 좋지 않은 거 같지만.’
하성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며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루이스 울프를 아는 사람들은 그는 일을 추진하는 능력은 좋지만, 수완 자체는 썩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어쨌건 구단주가 됐다는 건 그만큼 막대한 부가 있기에 가능할 테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그의 스타일이 어떤지였다.
그리고 그건 짧은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군.”
“처음 뵙겠습니다. 정하성입니다.”
“루이스라고 부르게.”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네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오늘 자리에는 루이스 울프와 크리스 단장, 그리고 정하성과 이사벨까지.
이렇게 네 사람이 모이게 됐다.
자리에 앉아 간단히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 시즌 활약 잘 봤네. 정말 대단한 업적을 남겼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성적을 올릴 테니,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하! 듣기는 했지만, 배짱 한번 대단한 친구군. 자네가 올 시즌 올린 성적이 어떤지 알고 있나?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시즌이었어.”
루이스 울프의 말은 사실이었다.
라이브볼 시대에 하성보다 뛰어난 성적을 올린 투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모든 전문가가 현대 야구에서 이러한 성적을 올린 건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하성은 그런 성적을 또 올리겠다고 장담했다.
엄청난 자신감이 담긴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내재된 뜻이 있었다.
‘이번 시즌만큼 할 수 있으니 자신이 요구한 연봉을 달라는 소리겠지.’
루이스 울프는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사업가이기에 많은 사람들과 미팅을 했었다.
그렇기에 대화 속에서 상대가 원하는 진위를 파악하는 능력이 제법 뛰어났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에는 능구렁이가 살고 있군.’
루이스는 하성의 본모습을 단번에 파악했다.
물론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비즈니스 세계에는 이런 타입의 인간은 얼마든지 많으니 말이다.
“자네가 좋은 성적을 올려준다면 구단 입장에서도 당연히 좋은 일이지.”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그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할까? 자네가 요구한 연봉이 2천만 달러라고 들었네.”
“예, 맞습니다.”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방금 전에 루이스 씨가 말했듯이 저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거기에 맞는 연봉을 원합니다.”
“그 연봉이 2천만 달러라는 거군.”
“예.”
하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따위는 없었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루이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구단은 그렇게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는 팀이 아니라네. 선수의 페이롤은 정해져 있어. 자네가 많이 받는다면 다른 선수들이 적게 받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네.”
루이스는 아시아인들과도 많은 거래를 했다.
그중에는 한국인들도 있었기에 그들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인은 정이란 것에 약하지. 자신의 일에 타인이 영향을 받는다면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들이야. 하물며 같은 팀에서 활약하는 팀메이트가 영향을 받는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겠지.’
루이스의 말은 모두 계산된 것들이었다.
하성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의 연봉을 깎아 계약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응?”
“제 연봉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째서 다른 선수들이 영향을 받는단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나는 사실이 그렇다는 걸 말해주는 거지.”
“사실이든 아니든 그 부분은 제가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저는 제 가치에 맞는 연봉을 원합니다. 그 금액이 2천만 달러고요.”
하성의 목소리는 더욱 단호해졌다.
그런 하성의 태도에 이사벨 역시 놀란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정하성 선수가 냉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어?’
놀라는 이사벨 만큼이나 루이스의 얼굴도 찌푸려졌다.
“협상을 할 마음이 전혀 없나 보군.”
“그건 루이스 씨의 제안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는 제 연봉을 협상하러 온 것이지 다른 선수의 상황을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즉, 자네의 연봉만 중요하다는 건가?”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저는 제 연봉이 1순위입니다.”
하성이 돌직구를 던졌다.
몸쪽 깊숙이 박힌 공에 루이스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크리스 단장이 중재에 나섰다.
“자, 자,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죠.”
크리스 단장의 말에 하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입니다. 그런 제 몸값을 제대로 책정해 주지 않는다면 저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위원회를 가자는 건가?”
“메이저리그 사이영상 2년 연속 수상에 세이브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거기에 올해는 MVP와 사이영상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월드시리즈 MVP까지 독점했습니다.”
하성이 쏟아놓은 그의 업적들은 정말 엄청난 것들이었다.
그리고 하성은 멈추지 않고 더욱 루이스를 압박했다.
“저도 린스컴처럼 사이영 상패를 들고 찾아와야겠습니까? 원한다면 MVP를 수상하면서 받은 것들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루이스는 아무런 반론도 펼치지 못했다.
“연봉은 선수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2천만 달러. 혹은 거기에 준하는 조건을 제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한 번의 기회를 더 드리겠습니다. 오늘처럼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만남은 거절하도록 하죠.”
“이상한 이야기라고?”
“협상의 자리에서 저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선수를 팔아 저를 흔들려고 한 거 말입니다.”
“으음…….”
정곡을 찔린 루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기대하겠습니다.”
하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사벨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에게 에이전트가 필요할까?’
에이전트인 자신이 인사를 제외한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할 정도로 하성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것도 노련한 사업가인 루이스를 상대로 말이다.
‘협상의 기술이란 건 별거 없었어. 그저 뒤를 보지 않고 사실만으로 상대를 압도해 버렸어.’
그것은 엄청난 자신감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에이전트인 자신은 절대 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없다.
선수를 대변하긴 하지만 선수 본인은 아니기에 혹여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 말은 삼가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건 이번 자리를 통해 루이스가 엄청난 압박을 받을 거란 건 확실했다.
‘그는 결국 새로운 제안을 할 수밖에 없게 됐어. 그것도 자신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내놓아야 해.’
하성이 말한 단 한 번의 기회.
그걸 놓치기 싫어서라도 어슬레틱스에서는 최고의 조건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성에 찰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스몰마켓인 어슬레틱스가 내놓을 수 있는 조건은 한계가 있었으니 말이다.
* * *
메이저리그와 연관된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스토브리그는 뜨겁게 진행되고 있었다.
각 선수들은 신규 계약을 맺으며 스토브리그에 대한 관심을 높여갔다.
그러는 와중에 터진 하나의 기사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메이저리그 익명의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정하성 선수에게 3년 4천만 달러의 계약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3년 4천만 달러.
1년으로 따지면 1,3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또 하나의 기사가 보도됐다.
[정하성 선수 오클랜드의 제안을 거절!] [정하성과 오클랜드! 결국 협상결렬! 조정위원회로 간다!] [정하성은 구단에 2천만 달러의 연봉을 요구!]결국 공은 조정위원회로 넘어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