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85)
마운드의 빌런-185화(185/285)
마운드의 빌런 185화
연간 40억.
이 금액이 어떤 의미인지 하성은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10년 뒤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보이그룹이 연간 받는 모델료가 50억 정도였지.’
무려 10년이나 일찍 그 금액을 제시한 것이다.
“모델의 조건에는 경쟁업체에 포함되는 곳들의 광고에 출연이 제한되고 촬영한 홍보물은 글로벌적으로 이용이 될 예정입니다.”
이용진의 말은 한마디로 독점 계약이란 소리였다.
그렇기에 금액이 컸다.
아무리 오성전자가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금액을 선뜻 제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 역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결정이었다.
‘운동선수는 언제든지 기량이 하락할 수 있다. 부상의 위험도 있고 다른 일로 인기가 떨어질 수 있다.’
범죄에 연루되거나 이미지가 너무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조항이 계약서에 들어간다.
하지만 선수의 기량 하락으로 인한 계약 해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즉, 업체에서도 리스크를 안고 계약을 진행한다는 소리였다.
‘5년의 계약이면 총액 200억에 달하는 엄청난 계약이군.’
자신의 연봉과 비슷한 금액을 제시한 오성전자의 결단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용진의 결단력인가.’
미래 오성그룹을 이끄는 사람이 될 이용진이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에이전트와 긍정적으로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성은 즉답을 피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기울었다.
그들과 함께하기로 말이다.
* * *
이사벨은 자신에게 전달된 계약서를 체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녀의 동료 로버트가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고마워. 별건 아니고 고객 중 한 명이 갑자기 계약서를 전달해 왔어.”
“계약서? 이상한 계약이라도 가져왔나 보지?”
“이상한 게 아니라. 1,800만 달러짜리 계약이야.”
“풉!”
이야기를 듣던 로버트가 마시던 커피를 내뿜었다.
“처…… 천팔백만 달러?”
“응. 5년 계약에 연간으로 따지면 400만 달러 수준이지만, 이걸 혼자 가져왔어.”
“호…… 혼자? 그게 말이 돼?”
“눈앞에 계약서가 있으니 말이 된다고 해야겠지?”
“허……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뛴 선수인가 봐? 그런 계약을 혼자서 가져올 정도의 인맥이라니.”
“이제 3년 됐어.”
“3년? 3년짜리 신인이 그런 걸……. 설마, 정하성이야?”
“맞아.”
로버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 선수는 정말 예측 불가능이네. 선수로서도 어나더레벨인데. 스스로 이런 계약까지 따오고 말이야.”
“그러게.”
“그런데 왜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있는 거야?”
“이 정도 계약을 따 오는 선수에게 에이전트가 필요한가 싶어서 회의감이 드네.”
“바보 같은 소리 하네. 회의감이 아니라 오히려 옆에서 더 서포트를 해줘야지.”
“그런가?”
“그래. 계약을 따온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 외의 것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도 우리 에이전트가 있어야지.”
로버트의 조언에 이사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혼자서도 잘하는 선수이기에 잠깐이나마 자신의 존재가 필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로버트의 말대로 선수가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다.
우연찮게 계약을 따 온다고 하더라도 그 외의 일들은 모두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이었다.
거기에 다른 기업들과 컨택하는 것 역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주눅들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일에 자신감이 넘치던 네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신기하네. 도대체 어떤 물건을 물어 왔길래 그런 거야?”
“한국의 오성전자.”
“응? 오성전자? 설마 안드로메다 폰을 내놓은 거기 말하는 거야?”
“맞아. 거기에서 글로벌 모델 계약을 제시했어.”
“그걸 선수 혼자가 따 왔다고?”
“응.”
로버트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순간이나마 네 마음이 이해됐다.”
로버트의 대답에 조금 더 안심이 된 이사벨이었다.
* * *
오성전자가 보내온 계약서는 합리적이었다.
이용진이 하성의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계약서에는 이상한 독소조항은 물론 수정해야 할 부분이 거의 없었다.
“당장 이대로 계약서에 사인해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이용진 이사님이 신경을 써주셨나 보군요.”
“확실히 이 정도로 클린한 계약서가 왔다는 건, 그쪽에서도 정하성 선수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는 소리겠네요.”
“그럼 바로 계약을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네. 전혀 문제 될 게 없어요. 바로 진행해도 충분합니다.”
이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 계약은 정하성 선수가 가져온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수수료는 5퍼센트만 공제하도록 할게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윗선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온 것이라 문제없어요.”
이사벨은 하성이란 사람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큰 트러블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을 내리면 그때부터는 단칼에 잘라내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이라면 옆에 두려고 하지.’
이런 사람일수록 평소에 점수를 따주는 게 중요했다.
그렇기에 이번 일도 미리 나서서 윗선에 보고를 올렸다.
수수료를 감액하는 건 에이전시 입장에서 부담되는 일이었다.
단순히 당장 받는 돈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일이 외부로 흘러나갈 경우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일어날 수 있었다.
거기에 하성이 이번만이 아니라 다음에도 비슷한 케이스의 일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때도 수수료를 감액해 준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하는 건 정하성 선수의 마음을 사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지.’
이사벨은 물론 J.J에이전시 내부에서도 하성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더 커질 선수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와 정하성 선수의 계약에는 강제성이란 게 없어.’
계약금이라도 줬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제약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하성은 이미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선수였기에 위약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사람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우리가 확실히 자기의 편이라는 걸 인식시켜야 해.’
그렇기에 이사벨은 먼저 머리를 숙이는 걸 택했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성은 미소와 함께 이사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무언가 대답을 듣진 않았지만, 그의 환심을 샀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 * *
해멀스는 차 안에서 하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아리따운 외모의 금발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정말 내가 정하성을 꼬시면 만 달러를 주는 거야?”
“그래. 대신 같이 뒹굴 때 시계의 이 방향이 정확히 침대로 향하게끔 해야 해.”
“이 시계가 뭔데?”
“소형카메라.”
“뭐? 그걸 찍으라고? 나까지 나오는데, 그걸 어디에 쓰려고?”
“네 얼굴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를 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니, 네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만약 네 얼굴이 나온다면 날 경찰에 신고하면 될 거 아니야. 그리고 만 달러를 내가 거저 주겠어? 너도 빚 갚으려면 이 돈이 필요하잖아.”
해멀스가 가방에 들어 있던 만 달러를 보여주었다.
백 달러짜리 지폐가 묶음으로 있는 걸 본 여인의 눈이 흔들렸다.
“후우…… 정말 내 얼굴은 모자이크해야 해.”
“그래. 그러니까 잘 유혹해서 오늘 안에 밤일까지 끝내버려.”
“흥! 그놈이 게이가 아니라면 나한테 바로 넘어올 거야.”
여인은 자신의 몸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웬만한 남자들은 유혹에 넘어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하성도 마찬가지일 거고 말이다.
“왔다.”
그때 멀리서 오는 스포츠카를 발견한 해멀스가 말했다.
그녀는 호텔로 들어가는 차를 맹수의 눈빛으로 바라보다 차에서 내려 호텔로 향했다.
* * *
미팅을 끝내고 돌아온 하성은 홀로 스카이라운지의 바에 앉아 있었다.
‘가끔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도 좋군.’
위스키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거웠다.
사람이 바쁘기만 하면 너무 지친다.
그러다 보면 신경질적이게 되고 스트레스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기에 하성은 스스로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다.
‘휴식이라고 해서 대단할 건 없지. 그저 좋은 술을 마시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휴식이야.’
쉬는 방법을 알아도 쉽게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돈이나 시간의 문제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충분히 쉴 수 있었고 금전적인 부분에도 여유가 생겼다.
지금 자신이 마시는 위스키 한 잔의 가격만 하더라도 백 불이 넘었다.
한화로는 12만 원.
술 한 병이 아닌 한 잔의 가격임을 감안했을 때, 매우 높은 가격이었다.
‘뭐, 이제는 이런 거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벌 수 있는 수준이 됐으니까.’
병째로 가져다가 마셔도 충분할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당장 은퇴하더라도 노후가 걱정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 방해꾼이 찾아왔다.
하성은 고개를 들어 말을 걸어온 이를 바라봤다.
그는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였다.
백인이었는데,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역시 정하성 선수였군요.”
자신을 아는 듯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 하성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남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오클랜드의 시장을 맡고 있는 잭 샤프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상대는 오클랜드의 시장이었다.
예상치 못한 거물의 등장에 하성도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허허! 이렇게 오클랜드의 영웅인 정하성 선수를 만나게 되어 반갑군요.”
“저도 시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사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성은 샤프 시장이 건네는 종이에 사인을 해주었다.
그러자 샤프 시장은 직원을 불러 하성에게 위스키 한 병을 선물했다.
“평소 제가 즐겨 마시는 술입니다. 별거 아니지만, 이렇게 만났으니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꼭 받아주십시오.”
“잘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혹시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면 편의를 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성은 명함을 받고 지갑에 넣었다.
설마 시장과 인연이 닿을 줄이야.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인 하성은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한 분야의 톱클래스에 오른다는 건 이런 의미였다.
하성은 새삼스레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깨달으며 선물로 받은 술을 잔에 따라 기울였다.
“맛있네.”
선물로 받은 위스키의 맛은 이전에 마시던 것보다 더 맛있었다.
그 맛을 즐기면서 야경을 보고 있을 때였다.
“어머, 정하성 선수시죠?”
이번에는 육감적인 외모의 여성이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