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06)
마운드의 빌런-206화(206/285)
마운드의 빌런 206화
메이저리거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특출난 건 당연했다.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이들이 모인 장소였으니 말이다.
그런 곳의 선수들을 상대로 얕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과대평가하지도 않았다.
‘내가 더 위다.’
하성은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자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감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은 그에게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상대를 인정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인정을 넘어 과대평가를 하게 되면 내 안에서 괴물을 만들게 된다.’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다.
KBO에서 활약할 당시 타구단에 메이저리거 출신 용병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하성은 유독 그에게 약했던 경험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는 그렇게 뛰어난 타자가 아니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100개의 홈런을 때려낸 것은 훌륭한 성적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는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KBO로 온 것이었다.
과대평가할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전직 메이저리거라는 이유로 자신은 그를 과대평가했고 결국 상대 전적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기량을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고 과대평가할 이유도 없다. 필요한 건 냉정한 판단력이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지금 자신의 기량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런 자신에게 사기가 높아진 상대가 위협이 되진 않았다.
‘더 집중해라.’
오히려 그에게 전의를 불태우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경기 후반.
아무리 체력이 좋은 하성이라 하더라도 초반보다는 체력이 떨어진다.
체력이 떨어진다는 건 집중력이 감소한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적이 사기를 높이면서 자연스레 하성에게 긴장감을 선사했다.
그것은 그의 집중력을 다시 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놈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의 긴장감이 고조됐다.
‘하나…… 하나…….’
사인을 교환한 하성이 스트라이드와 함께 발을 내디뎠다.
콰직!
높아진 집중력에 따라 힘의 이동을 느낄 수 있었다.
발바닥부터 시작된 힘은 그의 하체를 타고 올라왔다.
그 순간 허리를 회전시켜 상체로 힘이 이동할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때 발생된 회전력은 힘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힘을 손끝에 집중시켜 있는 힘껏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바티스타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몸쪽 패스트볼!’
바티스타의 대응도 빨랐다.
오픈 스탠스를 취하며 팔을 몸쪽으로 붙였다.
그리고 있는 힘껏 배럴을 돌리며 스윙의 궤적을 간결하게 만들었다.
후웅!
간결하지만 파워가 제대로 실린 스윙이었다.
‘걸렸어!’
호세 바티스타 본인조차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스윙.
이번에야말로 녀석의 공을 때려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뻐어억-!!
배트가 돌기 전에 공이 미트에 박혔다.
후웅-!!
뒤이어 배트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무슨……!’
바티스타는 경악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스윙이었다.
스피드와 파워.
모든 것이 실려 있는 한 방임을 자부했다.
‘그런데도 놓쳤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전광판으로 향했다.
(103mph)
그곳에는 방금 전 공의 구속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
‘103마일…….’
공식적으로 하성이 던지는 공의 최고 구속이었다.
‘8회에 최고 구속의 공을 던진다고?’
투수는 공을 던질수록 체력이 떨어진다.
체력이 떨어진다는 건 자연스레 구속 역시 하락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8회에 최고 구속을 던지다니?
‘저 녀석은 도대체 뭐지?’
설마 8회까지 체력을 보존하고 있었다는 건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들을 상대로 체력을 보존하면서 던질 수 있을까?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 하더라도 그건 힘든 일이었다.
‘할러데이도 예전에 말했다. 체력을 보존하고 던지는 건 가능하지만, 경기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선수 중 한 명인 로이 할러데이.
그는 블루제이스의 자랑이자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비록 지금은 다른 팀으로 이적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했던 말을 전면에서 부정하는 투수라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녀석은 사람이 아닌 건가? 아니면 우리를 능가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건가?’
한 번 마음에 생긴 과대평가는 점점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배트를 돌려야 해.’
부풀어진 이미지에 맞춰 대응법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그건 패착으로 이어졌다.
‘스윙을 빠르게 할 생각이겠지.’
바티스타가 다시 타석에 서는 모습을 보며 하성은 여러 정보를 얻었다.
‘배트를 짧게 쥐고 타석의 뒤에 섰다.’
단순한 변화다.
하지만 하성이 얻어낸 정보는 적지 않았다.
‘103마일이라는 공을 보고 주눅이 들었다.’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다.
103마일.
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이다.
그걸 보고 주눅이 들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과대평가하면 좋지 않았다.
‘내가 103마일까지 던질 수 있지만, 정확도는 떨어진다. 데이터로도 그건 설명이 되지.’
하성의 평균 구속은 100마일을 오간다.
하지만 최고 구속은 자주 던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컨트롤에서 미스가 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데이터적으로 봤을 때 약 62퍼센트의 확률로 최고 구속의 컨트롤은 실패한다.
그래서 최고 구속으로 던질 때는 존의 가운데를 노리는 편이다.
워낙 구속이 빠르고 위력이 있어 가운데로 몰리더라도 정확히 맞을 확률은 적기 때문이다.
‘방금 전에 몸쪽에 꽂힌 것도 우연에 불과하지. 다시 던지라고 한다면 실패할 거야.’
어쨌건 그걸로 충분했다.
바티스타의 상상력이 다른 부분을 채워주었고 자신을 더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역시 아직 경험이 부족해.’
포텐셜은 충분하다.
그걸 증명도 하면서 메이저리그 최고연봉자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을 상대하기엔 경험이 부족했다.
‘좋은 먹잇감이야.’
기세가 오른 블루제이스의 사기를 꺾어낼 좋은 타이밍이었다.
* * *
[초구 103마일로 기선제압에 성공한 정하성 선수, 2구 던집니다.]쐐애애액-!
후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배트 허무하게 허공을 가릅니다.] [빠른 공을 기대하고 배트를 돌렸지만, 정하성 선수 영리하게 스플리터로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어냈어요!]두 번째 공은 스플리터였다.
구속은 87마일.
103마일이었던 초구에 비하면 한없이 느린 공이었다.
[체감 속도까지 생각하면 바티스타 선수에게는 공이 멈춰 있는 걸로 보였을 거 같네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이 정도로 구속 차가 나는 공을 던질 수 있다니. 정하성 선수는 이런 중요한 순간에도 냉정하네요.]냉정함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했다.
투수는 어떤 순간에도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공을 던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하성은 완벽했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높게 떠오른 타구! 유격수가 처리하겠다는 신호를 보냅니다!]퍽!
“아웃!!”
[까다로운 타자인 호세 바티스타를 공 3개로 돌려세우는 정하성!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5개입니다!]완승이었다.
사기가 오른 호세 바티스타라고는 하지만, 그보다 하성의 냉철함이 더욱 뛰어났다.
‘레벨이 다르다…….’
그 냉철함은 바티스타에게 절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바티스타의 절망감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전이되었다.
불이 붙기 시작했던 전의는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하성의 전의에 압도당해 제대로 된 승부를 내지 못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8회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하성은 그 아웃 카운트마저도 가볍게 사냥했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2루수 정면!]빗맞은 공이 2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가볍게 공을 낚아채 그대로 1루로 뿌렸다.
퍽!
“아웃!!”
[아웃입니다! 세 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이닝을 마감하는 정하성 선수!!]그가 잡아낸 아웃 카운트는 모두 24개.
8회가 그렇게 끝났다.
* * *
벤치에 도착한 하성이 숨을 골랐다.
그의 곁으로 동료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불문율이다.
이미 한 번 경험을 했기에 동료들은 더욱 조심했다.
‘녀석의 집중력을 깨지 않게 조심해야 해.’
동료들의 배려 덕분에 하성은 편하게 쉴 수 있었다.
하성 역시 그런 동료들의 배려를 알기에 더욱 집중력을 유지한 채 9회를 기다렸다.
* * *
운명의 9회가 찾아왔다.
[블루제이스가 정하성 선수의 대기록을 막기 위해 첫 타자부터 대타 카드를 꺼냅니다.] [베테랑인 로건을 타석에 세우는군요. 분명 파워는 부족하지만, 경험이 많고 컨택 능력이 뛰어난 타자입니다.]빌 로건.
올해 35세로 유망주들에 비해 파워가 약하다.
하지만 연륜이 있어 충분히 불의의 일격을 날려줄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빌 로건을 패스트볼 3개로 돌려세우는 정하성 선수!!] [아주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빌 로건은 경험이 많지만, 나이가 들면서 반사신경이 느려졌습니다. 그걸 정확히 공략했습니다!]하성의 냉정함이 한 수 위였다.
그는 베테랑을 공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역시 베테랑인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2개!!]하성의 블루제이스 사냥은 계속되었다.
딱-!!
[타구 높게 떠오릅니다!]때로는 빠른 공으로.
때로는 변화구로 타자를 요리해 가며 다양하게 타자들을 공략해 나갔다.
퍽!
“아웃!”
[중견수 안전하게 타구를 잡아내며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올립니다!]퍼펙트게임까지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이제는 모든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대기록 달성을 바라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했던 기록의 달성까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가 남았습니다!] [보는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떨리네요.]보는 이들의 심박 수가 높아질 정도로 떨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성은 이런 순간에도 냉정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건 투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흡-!!”
쐐애애액!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99마일의 패스트볼이 몸쪽으로 붙습니다!] [정말 엄청난 강심장입니다. 이런 순간에 몸쪽 공을 저리 쉽게 던진다뇨?] [만약 여기에서 힛 더 바이 피치볼이 나오더라도 기록은 깨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순간에는 몸쪽 공을 더 던지지 못하는데. 정하성 선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첫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하성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흡!!”
쐐애애액-!
후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바깥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에 타자의 배트가 헛돕니다!]이번에는 변화구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그렇게 유리한 고지를 잡아낸 하성은 마지막 힘을 끌어올렸다.
‘이번에 끝낸다.’
그는 뒤를 보지 않았다.
이번에 끝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힘을 손끝에 집중시켰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뻐어어억-!!
굉장한 소리와 함께 미트에 공이 꽂히는 순간.
“스트라이크! 아웃!!”
역사가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