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1)
마운드의 빌런-21화(21/285)
마운드의 빌런 21화
더블A.
마이너리그이기에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야구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더블A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리그라고 말이다.
그 이유는 유망주들이 여기에서 갈림길에 서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 메이저리그 전문기자였던 토마스 셰튼은 이런 말을 남겼다.
[더블A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선수가 있다면 사인부터 받아라. 그를 곧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게 될 테니까.]실제로 더블A에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킨 선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더블A는 메이저리그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레벨이라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한 선수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94마일의 빠른 공이 몸쪽을 파고들었다.
절묘한 제구가 섞인 공에 타자는 꿈쩍도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구심의 콜에 고개를 저으며 배터박스에서 물러났다.
그러면서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바라봤다.
‘저런 어린 녀석이 이런 공을 던지다니…….’
마운드에는 10대 후반의 동양인 소년이 서 있었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더욱 어리게 보인다.
하지만 그와 상대한 타자의 감상은 달랐다.
‘어떻게 저런 볼 배합에 맞춰 공을 던질 수 있는 거지?’
몸쪽과 바깥쪽.
공들이 정확한 코스를 찔렀다.
볼이라 생각한 공이 절묘하게 코스를 찌르면서 구심의 손을 올라가게 만들었다.
타자를 미치게 만드는 볼 배합과 제구력이었다.
‘가볍게 원아웃.’
동양인 투수, 하성은 가볍게 아웃 카운트를 올렸다.
‘오늘로써 네 번째 경기.’
더블A로 승격하고 하성은 네 번째 등판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동안 기록은 7과 2/3이닝 평균자책점 제로였다.
피안타는 단 1개, 그나마 단타로 장타율과 피홈런은 현재까지 제로였다.
특히 탈삼진이 대단했다.
23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18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이 정도 기록은 더블A에서도 무척이나 희귀한 기록이었다.
‘피안타만 맞지 않았어도 퍼펙트인데 말이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다음 타자를 노려봤다.
‘어쨌든 슬슬 내 가치를 더 높여야 해. 그래야 후반기로 접어든 메이저리그에서도 날 주시하겠지.’
메이저리그 확장 로스터가 실시되는 날.
유망주들이 대거 메이저리그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하성은 그때를 노리고 있었다.
‘다른 구단이라면 계단식 승격을 시킬 테지만, 오클랜드라면 다르다. 파격적인 선택을 내리는 크리스 단장의 성향이라면…….’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재개됐다.
사인을 교환한 하성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분명 바로 승격도 가능하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건 오직 하나였다.
“흡!!”
쐐애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 * *
더블A 구단의 시설은 대부분 빈약하다.
첨단훈련은 기대할 수 없고 대부분 과거에 사용했던 훈련 방식이 이어져 내려왔다.
‘머신의 상태도 이렇게 나쁘다니.’
더블A 구단에 올라와서 가장 놀랐던 건 머신이다.
관리가 제법 잘 되어 있지만, 너무 구형이었다.
프리 웨이트 구역에도 장비가 제법 되었지만, 그것을 관리해 주고 트레이닝을 해주는 코치의 숫자가 부족했다.
즉, 선수들이 직접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뭐, 크게 상관없지.’
회귀 전부터 쌓아온 지식들이 하성에겐 있었다.
특히 웨이트 트레이닝은 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병행했다.
팔 부상으로 인해 근육이 부족해지면 떨리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야 했다.
“후욱! 후욱!!”
그래서 하성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지식이 웬만한 전문가 수준에 달해 있었다.
본인 역시 큰 관심이 있는 분야였기에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
공부와 스스로 체득한 것이 합쳐져 현재의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야구선수에게 과도한 근육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시대야.’
야구는 다른 스포츠 종목과 달리 스케줄이 무척이나 길다.
1년의 절반 이상을 야구를 병행해야 하기에 과도한 근육은 오히려 불필요하다 말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바로 지구력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직접적인 에너지를 쓰는 건 지방이다.
그렇기에 근육량이 늘어나면 에너지가 부족해서 장거리 레이스에 힘들다는 주장이었다.
‘헛소리지.’
미래에는 이러한 주장들이 힘을 잃게 된다.
적당한 지방은 필요하지만, 과도하게 많은 지방은 독이 된다.
무엇보다 근육량이 많다 해서 에너지를 내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인체는 무척이나 신비해.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대체해서 그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지방이 부족하면 근육을 태워서 에너지를 충당하지.’
무엇보다 근육량이 늘어나면 더 많은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메커니즘이 얼마나 잘 되어 있냐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근육을 늘리면서 동시에 유연성 역시 길러야 해.’
유연성이야말로 야구선수에게 있어 가장 필요했다.
히팅과 피칭 메커니즘은 인체의 모든 힘을 끌어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체의 모든 곳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게 바로 유연성이다.
‘유연성이야말로 인체 전부를 이어주는 톱니바퀴와 같지. 근육만 늘어나면 특정 가동범위만 좋아지기에 피칭에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어.’
하성이 택한 것은 요가였다.
원래라면 필라테스를 할까 싶었지만, 전문 기구가 필요했기에 당장은 무리였다.
‘이 시대의 필라테스는 기구를 사는데 너무 많은 돈이 소모돼. 그리고 유연성만 놓고 보면 오히려 요가가 좋으니까.’
필라테스를 고집했던 건 코어 근육의 발달 때문이었다.
코어 근육은 몸의 중심에 위치한 근육이었다.
흔히 복근과 착각하기도 하는데, 코어는 그보다 더 광범위하게 위치해 있었다.
이것이 발달하면 몸의 균형이 잘 잡히게 된다. 무엇보다 안전성이 높아지면서 피칭에도 큰 도움을 준다.
“후우…… 후우…….”
하성은 트레이닝 센터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헤이! 정, 뭐 하는 거야?”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그런 거 할 시간이 있으면 훈련이나 하라고.”
“바벨이라도 한 번 더 드는 게 어때?”
지나가는 동료선수들은 하성의 훈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당연했다.
이 시기의 요가는 여자가 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다.
미국에서는 남자들이 하기도 했지만, 여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은 언제나 비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지.’
지금 자신의 훈련은 이 시대의 상식과는 어긋나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만 지나도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훈련이 결국은 정답이란 걸 말이다.
그때였다.
“어? 정, 너도 요가를 하는 거야?”
한 선수가 다가와 운을 뗐다.
그를 본 하성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이름이 아놀드 맞지?”
“오~ 잘 기억하네? 짧은 시간인데도 팀메이트 이름을 다 외웠나 봐?”
아니다.
아직 모르는 이름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눈앞의 이 흑인 남자를 모를 리 없었다.
5년 뒤에는 전미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62홈런을 기록한 남자니까.’
2013년.
아놀드 제임슨은 데뷔 2년 차에 포텐셜이 폭발한다.
타율 0.317, 홈런 62개를 기록하면서 단번에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가 된다.
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화제가 된다.
가난한 가정에서 7남매의 3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메이저리거라는 꿈을 놓지 않고 야구를 해왔다.
이런 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였다.
그런 그가 더 유명해지게 된 것은 2015년이었다.
‘메이저리그의 라이징스타가 갱단에 의해 피살당하다.’
당시의 헤드라인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어린 시절 주거환경은 좋지 않았다.
할렘가에 집이 있었고 친구들도 갱에 들어갔다.
그런 환경에서도 성장한 아놀드지만, 문제는 그때의 주변인들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다.
‘재능이 아까운 선수였지. 그대로 성장했다면 메이저리그의 전설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뭘 그리 생각해?”
“응? 아니야. 그런데 너도 요가 하려고?”
“응. 우리 이웃집에 인도에서 온 아저씨가 살고 있었거든. 그 아저씨한테 배워서 매일 하고 있어. 그동안에는 나만 해서 집에서만 했거든.”
아놀드가 주위를 살피다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는 할 분위기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네가 며칠 전부터 요가를 하니 나도 그냥 여기에서 하려고. 동지가 생겼는데, 굳이 집에서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
더블A의 월급은 거기서 거기였다.
아놀드는 그것도 대부분 집에 보낼 테니 숙소가 좋을 리 없었다.
그 좁은 집에서 할 바에는 트레이닝 센터에서 하는 게 더 좋을 게 분명했다.
“그럼 넌 어릴 때부터 요가를 한 거야?”
“응. 요가는 심신안정에 좋거든. 무엇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가장 좋은 운동인 거 같아.”
“그런 효과가 있긴 하지.”
요가는 원래 운동이 목적이 아니라 명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작들이었다.
그렇기에 심신안정에는 가장 탁월한 효과를 자랑했다.
하성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요가 동작을 이어나갔다.
“참, 너 동작이 조금 잘못됐어.”
“응?”
그때 아놀드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자세를 취하며 하성의 동작을 교정해 주었다.
“여기에서 팔을 돌릴 때는 목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줘야 근육이 제대로 이완이 되거든. 한번 해봐.”
“이렇게?”
“그렇지. 어때? 어깨와 팔까지 근육이 이완되는 게 느껴지지?”
“오…… 그러네.”
확실히 근육에 자극이 더 잘 오는 게 느껴졌다.
“요가에 대해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내가 아는 거면 알려주도록 할게.”
아놀드의 말에 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록하운즈의 홈구장인 모멘텀 뱅크 볼파크에 한 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것은 크리스였다.
그는 캐주얼한 복장에 선글라스를 쓴 채, 볼파크로 향했다.
직접 티켓을 끊고 볼파크에 입장한 그는 홀로 자리를 잡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하성의 실력은 이미 더블A 수준을 벗어났어. 데이터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가 볼파크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정하성을 직접 보기 위함이었다.
‘누적된 데이터가 적을 때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최선이지.’
세이버메트릭스를 신뢰하는 크리스였지만, 데이터가 충분히 누적되지 않았을 때는 여전히 눈으로 확인하는 걸 좋아했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의 시선이 마운드로 향했다.
마운드에는 오늘 경기 선발로 등판한 하성이 올라와 있었다.
연습 투구를 끝낸 그는 마운드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 경기장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저 사람은……?’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크리스가 있었다.
두 사람은 직접 대면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성은 그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머니볼의 크리스 웨인.’
머니볼은 할리우드에서 만든 야구영화들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했다.
당연히 하성도 그것을 봤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단장이 누군지 궁금해서 직접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애슬레틱스의 단장이 왜 더블A 경기를 직접 보러 온 거지? 거기에 주위에 수행원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단장은 시간 여유가 많은 자리가 아니다.
특히 시즌 중에는 자리를 뜨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 크리스가 직접 더블A 경기를 보기 위해 왔다.
수행원도 없이?
그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직접 봐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선수가 이곳에 있다는 거지?’
내야수가 던져준 공을 받은 하성이 로진을 손에 묻혔다.
‘그리고 그건 나일 테고 말이야.’
한 번의 삶을 살았던 하성이기에 바로 크리스의 목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날 보기 위해 온 것이라면 메이저리그 승격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겠지.’
굴러들어 온 호박이다.
이 호박을 손에 넣는다면 자신은 한 발자국 더 빨리 꿈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여줘야겠지.’
자신이 가진 가치를 말이다.
“플레이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