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2)
마운드의 빌런-22화(22/285)
마운드의 빌런 22화
‘몸쪽 패스트볼.’
포수의 사인이 나왔다.
고개를 끄덕인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촤앗-!
뒤이어 킥킹과 함께 몸을 비틀었다.
그 모습을 크리스는 유심히 살폈다.
‘킥킹의 각이 높아. 저 정도로 와일드하게 던지는 선수는 드물지.’
스트라이드와 함께 내디딘 발이 마운드에 박혔다.
콰직!!
단단하게 고정된 하체를 이용해 무릎부터 허벅지, 그리고 골반까지 부드럽게 돌아갔다.
‘하체의 회전이 좋아. 이 회전을 상체까지 끌어가면…….’
휘릭!!
크리스의 동공에 회전하는 상체를 끌고 앞으로 나오는 하성이 보였다.
‘상체까지 힘의 분산 없이 끌고 왔어. 이제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가져오면…… 응?’
이제 공을 놓아야 하는 타이밍.
그런데 거기에서 공이 한 뼘 정도 더 앞으로 올 때까지 공을 채지 않았다.
“흡!!”
조금 더 앞으로 끌고 와서 공을 던졌다.
쐐애애액-!!
그 효과는 대단했다.
타자의 배트가 절반도 채 돌기 전에.
뻐어억!!
“스트라이크!!”
공이 미트에 꽂혔다.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가져오면 홈플레이트와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만큼 타자의 체감속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어.’
하지만 무작정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가져올 순 없었다.
‘공을 앞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근육이 유연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힘이 분산되면서 구위가 떨어진다.’
하성의 공은 구위와 구속 모두 일품이었다.
‘그만큼 근육이 유연하다는 뜻이겠지. 비디오에서 봤던 것보다 더 좋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놀라움이 뒤로 물러나고 이제는 기대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정작 하성 본인은 여전히 놀라고 있었지만 말이다.
‘뭐야?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가져오는 게 왜 이렇게 편안해?’
평소 던지던 포인트보다 더 앞에서 던졌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그래도 된다고 말하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큰 변화는 아니었어. 하지만 타자가 느끼기엔 충분히 체감속도가 빨라졌다.’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가져오면 생기는 효과였다.
이런 효과를 알고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근육의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편안하게 공을 던졌다.
밸런스가 무너지지도 않았다.
전달되던 힘도 손끝에 그대로 모였다.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역시 그거밖에 없겠지?’
요가.
스트레칭의 효과는 대단하다.
근육을 이완시키고 평소보다 더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건 일시적 현상이다.
꾸준히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근육은 다시 뻣뻣해질 것이다.
‘제대로 된 동작을 알려줬어. 녀석에게 뭔가 보답을 해줘야겠는데.’
오늘 등판은 매우 중요했다.
그런 순간에 도움을 받았으니 무언가 보답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일단 이 고민은 제쳐두고.’
“플레이볼!!”
지금은 확실히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때였다.
정신을 집중시킨 하성이 피칭을 이어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 * *
2이닝 무실점 퍼펙트.
볼넷과 피안타가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 완전무결의 피칭이었다.
‘최고 구속은 98마일. 던진 구종은 패스트볼과 커터 두 가지인가?’
보고서에 적힌 대로였다.
하지만 보고서에 적히지 않았던 것들도 알 수 있었다.
‘타자들을 상대하는 데 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구속을 속이면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었어. 완급조절을 할 수 있는 노련함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이 정도는 데이터에도 나온다.
하지만 2회 마지막 타자를 상대할 때 나온 공들은 달랐다.
‘포수의 리드에도 자신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고개를 젓는다. 어린 투수, 그것도 동양권에서 온 투수들에게는 보기 힘든 담대함이지.’
크리스는 마이너리그에서 많은 동양인 유망주들을 봤다.
그들을 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왜 저렇게 야구를 하지?)
그들은 마치 기계처럼 공을 던졌다.
포수가 요구하면 거부를 하지 않았다.
벤치에서 시키면 그대로 따랐다.
마치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
문제는 메이저리그는 그런 선수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단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선수에게 자유를 준다. 선수 스스로 생각하고 발전해야 해.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게 부족했었지.’
하지만 하성은 달랐다.
‘마치 노련한 베테랑이 마운드에 있는 거 같았어. 어떤 순간에도 긴장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공을 뿌렸다.’
이러한 모습은 보고서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다.
‘저기 오는군.’
구단에서 오래 시간을 비울 수 없는 크리스였다.
그렇기에 하성을 만나자는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그를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를 아는 척하려는 순간.
“크리스 단장님이시죠?”
“어? 날 압니까?”
“자기가 속한 메이저리그 구단의 단장 얼굴을 모를 리 없잖아요?”
“모르는 선수들도 많은데. 이거 참…… 반갑습니다. 크리스입니다.”
크리스가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성이 그 손을 맞잡으며 대화를 주도했다.
“웬일로 직접 더블A 구단까지 오신 겁니까?”
“근처에 잠시 일정이 있어 들렀습니다. 우리의 유망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러셨군요. 뭐, 다들 햄 한 장 들어간 빵 먹으면서 잘 지내고 있죠.”
설마 이런 말을 꺼낼 줄이야.
크리스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여기에서 더 치고 들어온다면 할 말이 없어지는 부분이 더블A의 식단이었다.
그만큼 더블A의 식단은 엉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도 지출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특히 애슬레틱스와 같은 스몰마켓은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하성은 여기에서 그 부분을 더 언급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런데 오늘 오셨으면 제 피칭을 보셨겠네요?”
사실 하성이 식단 이야기를 꺼낸 건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마이너리그의 식단이 저런 꼴인 건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난 더블A를 곧 떠날 텐데 뭐. 메이저리그 식당이 잘되어 있으면 만사 오케이지.’
주도권을 잡았으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아, 물론 봤습니다.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단장님이 오신 줄 알았으면 인상에 더 남도록 노력했을 텐데. 아쉽네요.”
“보여주지 않은 게 있다는 건가요?”
“제가 오늘 던진 구종이 뭐뭐였는지 아세요?”
“포심과 커터. 두 가지 아닙니까?”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크리스가 가볍게 답했다.
하지만 하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정확히는 세 가지였습니다.”
“세 가지요?”
크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커터로 착각하실 수도 있는데.”
하성은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구단의 단장이 경기를 직관했다.
이런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까지의 길이 생각보다 빨리 열릴 수 있었다.
그런 기회를 그냥 놓칠 정도로 하성은 멍청하지 않았다.
“고속 슬라이더를 던졌습니다.”
* * *
크리스는 하성과의 만남 이후 록하운즈 구단 수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구단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쉬지도 않고 바로 자료를 찾았다.
“이게 전부야?”
“예. 더블A 구단에서 보낸 정하성 선수에 대한 영상들입니다. 그리고 전에 이야기하셨던 로버트 팀장의 행적 말입니다.”
“뭐 좀 알아냈나?”
“최근에 텍사스에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더블A 구단인 미션스의 경기를 직관했었다고 하더군요.”
“미션스? 파드리스의 더블A 구단 말이지?”
“예. 그런데 그날 상대했던 팀이 저희 산하에 있는 록하운즈였습니다.”
크리스의 뇌리에 스치는 한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혹시 그날 경기에 정하성도 출전했나?”
“아, 예. 데이터를 확인해 보니 그랬더군요.”
“영상은?”
“록하운즈에 문의를 해봤는데. 당일의 영상이 없다고 합니다.”
“젠장!”
“그런데 한국의 한 기자가 찍은 영상이 있어서 확보했습니다.”
“그래? 잘했어.”
부하직원이 건넨 자료를 받은 크리스는 바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미션스와의 경기였다.
“미친놈.”
영상을 틀자 나온 것은 잭을 고의로 가격하는 바튼의 모습이었다.
“이러니 로버트가 바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겠지.”
만약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구단도 징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꽤 오랫동안 인성교육에 공을 들였을 텐데도 이 정도라니. 이 녀석이 트레이드카드로 쓰이면 무조건 패스해야겠군.”
이걸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였다.
영상은 벤치클리어링으로 넘어갔다.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한바탕 일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은 1회 말 하성의 손에서 터졌다.
“이런…….”
바튼의 머리로 정확히 날아간 공.
피하지 않았다면 헤드샷이 나왔을 거다.
‘이 녀석도 성격이 장난 아닌데?’
록하운즈에서 만났을 때도 보통 성격이 아니란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경기 영상을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더 놀라운 건 다음 장면이었다.
“허…… 달려오는 바튼을 상대로 물러서질 않는다고? 정말 장난 아니군.”
이 정도 배짱을 가진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흔히 볼 수 없다.
“마운드에 서려면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크리스도 선수 출신의 단장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하성이 한 행동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동료가 당했으니 그에 맞는 복수를 해주겠다 이건가? 마음에 드는군.”
영상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투스트라이크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하성이 결정구를 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패스트볼처럼 날아가다 뱀처럼 휘어 바튼의 몸쪽으로 붙었다.
‘이건…….’
크리스는 깜짝 놀라 영상을 돌렸다.
하성이 다시 공을 던졌고 이번에도 몸쪽으로 휘어 들어갔다.
‘싱커…….’
보고서에 나오지 않았던 공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퍽!!]“아우!”
중심부위에 공을 맞는 바튼을 보며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 * *
‘구단에 가서 찾아봤겠지?’
숙소에 도착한 하성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지금쯤 자신의 영상을 찾아보고 있을 크리스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고속 슬라이더에 싱커까지 확인하면 나에 대한 가치는 더 상승하겠지.’
크리스를 만난 자리에서 싱커를 언급하지 않았던 건 한 가지 이유다.
‘너무 다 보여주는 것도 매력이 떨어지는 법이지. 고속 슬라이더만으로도 매력적인 상품인데. 거기에 싱커까지 던질 수 있는 걸 알게 되면 더 궁금해지겠지.’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자신을 메이저리그로 부를 것이다.
과연 이 녀석이 또 어떤 카드를 쥐고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 예상보다 더 뛰어난 단장이었어.’
크리스가 직접 더블A 구단을 직관하러 온 것은 예상 밖이었다.
기껏해야 데이터를 모아 확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확장 로스터가 작용하면 날 부르겠지.’
더블A까지 직관해서 선수를 확인하는 단장이다.
관례를 생각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생각보다 일찍 떠나게 됐으니…….’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어가게 되면 더블A로 올 일은 없다.
기껏해야 트리플A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아놀드에게 줄 웨이트 스케줄을 짜볼까.”
아놀드가 알려준 요가 동작은 하성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렇기에 하성은 그에게 부족한 걸 줄 생각이었다.
바로 자신이 아는 최신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이었다.
미래의 아놀드는 지금과 달리 근육질 몸이 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조금 더 일찍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수 있겠지. 뭐, 그것도 녀석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빚을 졌기에 갚는 것뿐이다.
하성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스케줄을 작성했다.
* * *
9월 1일.
포스트시즌을 앞둔 마지막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각 구단들은 40인까지 늘어난 로스터를 이용해 팀의 유망주들을 대거 메이저리그로 콜업했다.
그와 동시에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에서도 화제가 되는 선수가 있었다.
[정하성 마이너리그 데뷔 5개월 만에 메이저리그로 콜업됐다!!]그 주인공은 바로 정하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