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27)
마운드의 빌런-227화(227/285)
마운드의 빌런 227화
호르헤 포사다.
명백하게 퇴물이 된 포수다.
하지만 하성과의 호흡은 나쁘지 않았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1회 세 명의 타자를 깔끔하게 돌려세우는 정하성 선수!] [3개의 아웃 카운트 중 탈삼진 두 개를 잡아내면서 좋은 스타트를 보여줍니다!]하성의 피칭은 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원래 메이저리그 전 구장에서 고른 피칭을 해온 그였다.
심지어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쿠어스 필드에서조차 성적이 좋았던 그였다.
양키 스타디움이 타자 친화적인 구장 중 하나라고는 하나, 큰 연관이 없었다.
하성이 잘 던지는 건 어쩌면 예상 내의 일일 수 있었다.
하지만 호르헤 포사다는 달랐다.
“포사다가 오랜만에 마스크를 썼는데도 나쁘지 않은데?”
“그러게 말이야.”
“하성과의 호흡도 좋지 않아?”
관중들이 보기에도 호르헤 포사다와 하성의 조합은 좋았다.
포사다 역시 그걸 느끼고 있었는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면서 하성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아주 좋은 공이었어. 처음 잡아보지만, 네가 왜 메이저리그 최고인지 알겠더군.”
“고마워.”
“1회에 던진 공을 봤을 때 앞으로도 패스트볼 위주로 리드를 하면 될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나도 같은 생각이야. 손에 긁히는 느낌을 봤을 때 슬라이더도 나쁘지 않아.”
“역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럼 2회에도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위주로 리드를 할게.”
“오케이.”
포사다와 대화를 나누면서 하성은 분명하게 느꼈다.
‘나이가 들면서 포수나 타자로서의 능력은 떨어졌지만, 투수를 안심시키는 능력은 올라갔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뭐,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예외가 있다는 걸 알지만, 포사다는 그 예외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편하게 던질 수 있겠어.’
양키스에서의 첫 번째 투구가 느낌이 좋았다.
* * *
1회 말.
양키스의 공격은 삼자범퇴로 마무리됐다.
2연패를 한 직후라 그런지 타자들은 컨디션을 찾지 못한 느낌이었다.
[2회 초, 정하성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1회와 같은 완벽한 피칭을 이어가길 바랍니다.]하성이 마운드에 오르자 1회보다 더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정! 정! 정!!”
“정하성 널 믿는다!!”
“1회처럼만 던져!!”
양키스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등에 업고 하성이 상체를 숙였다.
‘아웃 로우.’
포사다가 코스를 정하고.
‘포심으로 가자고.’
구종이 결정되자 하성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을 교환하고 정하성 선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킥킹과 함께 몸을 회전시킨 하성이 그대로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하성의 손을 떠난 공이 포사다의 미트에 정확히 꽂혔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구속은 100마일! 광속구로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나가는 정하성 선수!] [1회와 마찬가지로 좋은 피칭을 선보여주고 있습니다.]공을 포구하면서 포사다는 감탄했다.
‘미트를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제구력이다. 그런데도 구속은 100마일을 가볍게 던지다니.’
구속과 제구력은 반비례한다.
구속이 오르면 제구력은 나빠지고 제구력이 좋아지면 구속이 떨어진다.
이 두 개가 같이 좋아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이런 구속에도 제구력이 좋다는 건 아직 전력투구가 아니라는 소리겠지.’
100마일.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꿈의 구속이라 불린다.
그만큼 소수의 선수에게만 허락된 속도였다.
그 100마일을 던지면서도 전력이 아니라니?
믿기 어려웠지만, 직접 받아보니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이런 녀석이니 메이저리그를 씹어먹고 있는 거겠지.’
고작 3년 차에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포사다였다.
‘이런 녀석을 리드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지. 이번에는 이걸로 가볼까? 인 로우 슬라이더.’
포사다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스트라이드와 함께 뿌린 공이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쐐애애액-!
‘어?’
타자는 공의 궤적을 확인하고 눈을 부릅떴다.
‘너무 가까워!’
몸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깝게 붙어 왔다.
‘맞는다!’
공의 궤적은 바뀌지 않았고 누가 보더라도 몸에 맞을 게 분명했다.
타자는 빠르게 몸을 비틀며 공을 피하는 걸 선택했다.
그 순간.
휘릭!!
공의 궤적이 급격하게 변하며 타자의 몸에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퍽!!
“스트라이크!!”
타자는 공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는데, 구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한 상황.
타자는 황당한 얼굴로 미트를 바라봤다.
“이게 들어갔다고?”
“완벽하게 들어왔지. 너무 겁이 많아진 거 아니야?”
“하-! 네가 타석에 서 있었어도 그런 말이 나올까?”
타자의 말에 포사다는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나도 피하려고 했겠지. 누가 보더라도 공의 궤적이 완벽하게 몸으로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의 변화를 줄 수 있는 브레이킹 볼이라니?
‘오늘 정말 사고 한번 치겠군.’
하성의 공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투수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 * *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정하성 선수 2회 세 번째 타자도 삼진으로 처리하며 탈삼진을 4개까지 늘립니다!] [1이닝에 평균 2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레드삭스 타선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마운드에서 언터처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정하성 선수! 이번에는 타석에서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더그아웃에 돌아온 하성은 헬멧과 배트를 챙겨 다시 빠져나왔다.
그때 포사다가 그를 불러세웠다.
“헤이, 하성. 아무리 급해도 장갑은 잊으면 안 되지.”
휙!
“아, 고마워.”
포사다가 던져준 장갑을 받아든 하성은 고마움을 표시하고 더그아웃을 나섰다.
포사다의 그런 행동에 못마땅한 선수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걸 티 낼 수는 없었다.
위상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포사다는 뉴욕 양키스 최고 고참 중 한 명이었다.
그에게 불만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건 그와 비슷한 경력의 선수들에게도 간접적으로 대항하는 것과 같았다.
‘포사다는 하성이 마음에 들었나 보군.’
조 지라디 감독은 그러한 분위기를 읽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베테랑이 먼저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행보를 걸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하성이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면……?’
현재 클럽하우스의 분위기가 단번에 바뀔 수 있다.
그만한 카리스마가 하성에게는 있었다.
‘타석에서도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래야겠어.’
마운드에서는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하성이다.
그런 하성이 타석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단번에 클럽하우스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
조 지라디는 그걸 바라고 있었다.
“후우…….”
타석에 선 하성은 심호흡을 뱉으며 투수를 바라봤다.
‘레드삭스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이 나왔어.’
오늘 레드삭스의 선발투수는 팀 웨이크필드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희귀한 너클볼러로서 현재까지 196승을 올린 대단한 투수다.
‘너클볼을 상대하는 건 처음인데.’
하성이 웨이크필드를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경험에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희귀한 너클볼러 팀 웨이크필드를 상대하기 위해 타석에 선 정하성 선수, 과연 이 대결은 어떻게 될까요?] [이건 정말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정하성 선수가 빼어난 타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너클볼을 상대한 적은 없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메이저리그에는 현재 두 명의 너클볼러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대하는 팀 웨이크필드와 R.A 디키 정도죠.]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그러다 보니 너클볼이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익숙하지 않은 공을 때려내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너클볼은 마구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한 공이다.
던지는 투수조차 어디로 공이 갈지 모르는 공이기에 실전에서 사용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웨이크필드는 그러한 너클볼을 던지면서 200승을 코앞에 둔 투수다.
‘거기다 1회에 던진 걸 봐서는 확실히 제구가 되고 있다.’
1회를 삼자범퇴로 마감한 것을 봤을 때 확실히 컨디션이 좋았다.
‘그렇다고 우는소리를 할 순 없지.’
이미 타석에 섰다.
말인즉슨 전장에 나섰다는 소리다.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처음 상대해본다고 우는소리를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하성은 처음부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공이 느려지면 너클볼이라 해도 때려낼 수 있을 거야.’
고도의 집중력 상태에 돌입한 하성의 눈에 웨이크필드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다.
[사인을 교환한 웨이크필드, 와인드업과 함께 1구 던집니다!!]웨이크필드가 1구를 뿌렸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은 어지러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초구부터 너클볼이었다.
‘가장 자신 있는 공으로 나와의 승부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거지?’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한 하성의 눈에 너클볼 특유의 어지러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이 보였다.
‘느리다. 거기에 궤적이 끊임없이 바뀌어.’
너클볼을 상대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그 궤적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촤앗-!!
하성이 스트라이드를 내디디며 하체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골반을 회전시켜 회전력을 가했다.
하지만 배트는 나가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공의 변화를 확인했다.
‘너클볼은 끝까지 변화한다. 스윙을 마지막 순간까지 참아야 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체가 회전을 시작하면 관성에 의해 상체도 회전을 시작해야 한다.
그걸 억지로 잡고 있는다는 건 몸에 부담이 가는 일이었다.
웬만한 선수라면 근육이 비명을 지를 것이다.
‘내 몸을 믿어라!’
하지만 하성은 자신의 육체를 믿었다.
유연성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근육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근육은 하성의 스윙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하성은 마지막 순간까지 참았다가 회전을 시작했다.
후웅-!!
엄청난 힘이 담긴 배트가 바람을 가르며 돌아갔다.
‘맞았다!’
공과 배트의 궤적이 일치하는 걸 확인한 하성은 확신했다.
자신의 배트가 공을 날려버릴 것임을 말이다.
그때였다.
휘릭!
‘어?!’
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공의 궤적이 한 번 더 변했다.
그것도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말이다.
‘젠장!’
하성이 이를 악물고 배트의 궤적을 바꾸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미 반쯤 돌아간 배트의 궤적을 바꾸는 건 하성이라 해도 무리였다.
결국.
후웅-!!
공이 배트의 아래로 떨어지며 그대로 포수의 미트에 들어갔다.
퍽!
“스윙! 스트라이크!!”
[헛스윙! 정하성 선수 초구를 노렸지만, 헛스윙하며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에 완벽하게 당했습니다!!]너무 큰 스윙이었기에 자세까지 무너진 하성이 혀를 차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게 너클볼…….’
자신의 예상보다 더 변화가 심했다.
‘쉽게 공략할 수 없는 공이군.’
21세기 마지막 마구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처음 상대해 본 너클볼은 단어 그대로 마구나 다를 바 없었다.
“재밌군.”
하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오랜만에 그의 승부욕이 불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