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29)
마운드의 빌런-229화(229/285)
마운드의 빌런 229화
데릭 지터에 이어 정하성까지.
두 선수가 일으키는 시너지는 대단했다.
[레드삭스 배터리에게 선택의 순간이 왔네요.] [데릭 지터를 상대하느냐, 아니면 정하성을 상대하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데릭 지터는 최근 페이스가 좋고 정하성 선수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선택해도 쉽지 않은 승부가 되겠군요.] [예. 여기에서 웨이크필드가 노릴 수 있는 최고의 카드는 더블플레이입니다.]만약 웨이크필드가 더블플레이를 만들어버리면 이닝은 그대로 종료된다.
[더블플레이로 위기를 넘긴다면 정하성 선수는 주자 없는 상황에 다시 타석에 들어서게 됩니다.] [어제 레드삭스의 전략으로 봐서는 주자가 없을 때 정하성 선수와 굳이 승부를 펼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레드삭스는 명백하게 정하성 선수를 피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매우 훌륭하게 정하성 선수를 봉쇄시켰죠.]데릭 지터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건 본인도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내가 출루를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정하성이란 선수의 파괴력이 달라진다.’
데릭 지터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다.
거기에 본인의 능력도 뛰어나다.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지금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한 방을 날리는 게 아니라. 기회를 살려서 하성이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서게 만들어줘야 해.’
원아웃에 주자는 1, 2루의 상황.
3루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어떤 타격을 해야 할지 데릭 지터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1, 2루 방향으로 때리면 더블플레이가 나오기 용이하다.’
데릭 지터의 시선이 3루 방향으로 향했다.
‘유킬리스 녀석의 수비를 생각해 보면 3루 방향으로 타구를 보내야 해.’
케빈 유킬리스.
보스턴 레드삭스의 3루수다.
타격 능력에 비해 수비능력은 떨어지는 선수였다.
특히 1루에서 3루로 포지션이 변경되면서부터는 수비능력이 이전보다 더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유킬리스를 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클볼을 상대로 강하게 치려고 할 필요는 없다.’
판단을 내린 데릭 지터가 타격자세를 취했다.
[주자 1, 2루의 상황에서 양키스의 캡틴, 데릭 지터가 웨이크필드를 상대합니다.] [앞선 타석에서는 모두 범타로 물러났던 데릭 지터 선수, 과연 주자가 있는 이번 타석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하성은 대기 타석에서 웨이크필드의 피칭을 보고 있었다.
‘주자가 있을 때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은 이전처럼 무빙이 심하게 요동치지 않는다.’
호르헤 포사다와 마찬가지로 하성 역시 웨이크필드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클볼이란 강점은 사라지지 않아. 여기에서 최대한 많은 무빙을 봐야 해.’
처음 상대하는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이윤 간단했다.
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성이 아무리 재능이 넘친다 하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공을 공략하는 건 쉽지 않았다.
퍽!!
“스트라이크!”
[초구 너클볼이 춤추듯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옵니다!] [분명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보더라인에 살짝 걸쳤습니다.]춤추는 변화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너클볼의 변화는 매우 심했다.
‘공의 변화를 예측하는 건 무의미한 수준이다.’
하성은 대기 타석에서 웨이크필드의 공을 보면서 공략법을 찾고 있었다.
‘너클볼을 버리고 아예 다른 공만 노리는 건 어떨까?’
웨이크필드는 너클볼만이 아니라 투심이나 포심, 그리고 슬라이더까지 던졌다.
공 하나하나의 완성도도 나쁘지 않아서 너클볼과 섞어서 던지면 타자들이 골치 아플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나한테 던진 공의 절반이 너클볼이 아니었지. 다른 공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너클볼만 노릴 수 없다.’
웨이크필드는 경력이 쌓인 선수다.
당연하게도 타자가 노리는 걸 읽어내는 통찰력도 좋았다.
딱!!
“파울!!”
[너클볼을 노린 듯, 배트를 돌렸지만, 이번에는 투심이 들어오면서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었습니다.] [웨이크필드 선수, 역시 노련합니다. 데릭 지터가 노리는 걸 정확히 알고 있어요.] [볼카운트가 원볼 투스트라이크가 되면서 데릭 지터가 몰리기 시작합니다.]볼카운트가 몰린 지터가 타석에서 벗어났다.
누가 보더라도 그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성의 생각은 달랐다.
‘타구가 일정하게 3루 쪽을 향해 날아갔다. 방금 파울이 된 타구도 3루 쪽 관중석에 떨어졌어. 일부러 그쪽을 향해 날리는 거 같은데.’
데릭 지터의 의도는 바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역시 뛰어난 녀석이야.’
데릭 지터의 의도를 파악한 하성은 기대를 가진 채, 그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봤다.
[웨이크필드, 승부를 내기 위해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웨이크필드의 와인드업과 함께 4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어지러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너클볼!’
궤적을 확인한 데릭 지터의 배트가 돌아갔다.
일말의 망설임이 없는 스윙이었다.
‘이건 때렸다.’
그 스윙을 본 하성은 알 수 있었다.
지터의 배트가 공을 낚아챌 것임을 말이다.
휘릭!!
그때 공의 궤적이 급격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걸 예상했다는 듯이 지터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어 스윙의 궤적을 바꾸었다.
‘주자가 나가면서 궤적이 일정해졌어.’
주자가 있다는 건 투수가 신경 써야 할 게 늘어난다는 소리다.
자연스레 제구력이나 구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실투와 비슷한 공을 던지기도 한다.
그건 경력의 유무와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지금 웨이크필드가 던진 너클볼은 분명 이전보다 날카로이 떨어졌다.
데릭 지터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딱-!!
배트가 공을 때리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너클볼이 한 번 더 변화를 일으키며 정타를 만들진 못했다.
‘그냥 밀어!’
하성이 속으로 외쳤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지터는 굳이 배트를 당기지 않고 결대로 밀어 때렸다.
퍽!!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원바운드된 타구는 3루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때렸습니다! 빗맞은 타구! 3루 라인을 탔습니다!]3루 라인 위를 지난 타구를 본 유킬리스가 뒤로 물러나며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
퍽!!
타구가 3루 베이스를 때리고 유격수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미 자리를 잡은 유킬리스가 대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유격수가 급히 백업을 들어왔지만, 이미 주자들은 베이스에 도착한 뒤였다.
[안타입니다! 내야 안타를 만들어내는 데릭 지터!] [운이 좋았습니다! 빗맞은 타구가 3루 베이스를 때리면서 굴절이 일어났어요!] [천운이 만들어낸 안타입니다!] [그렇습니다. 레드삭스 입장에선 유킬리스의 수비가 다소 아쉽게 느껴질 겁니다. 분명 대시해서 잡아낼 수 있는 타구였는데, 굳이 뒤로 물러나서 자리를 잡은 게 실수였습니다.]사실 유킬리스의 선택이 실수라고 보긴 어려웠다.
베이스 뒤쪽에서 자리를 잡는 건 안정적으로 처리하려고 한 선택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수비를 하다 보면 언제든지 실수는 나온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1사 주자 만루의 찬스를 잡은 뉴욕 양키스! 그리고 타석에는 양키스의 4번 타자, 정하성 선수가 들어섭니다!]그 실수로 인해 하필이면 만루가 됐다.
거기에 다음 타자가 하성이라는 게 최악의 결과였다.
* * *
타석에 선 하성은 가볍게 배트를 돌리며 마운드를 바라봤다.
‘다들 바빠졌네.’
마운드 위에는 웨이크필드를 포함해 포수인 제로드와 감독인 테리 프랑코나까지 올라와 있었다.
[투수코치가 아닌 감독인 테리 프랑코나까지 마운드를 방문한 상황, 그만큼 지금 상황이 레드삭스에게는 위기란 거겠죠?] [그렇습니다. 사실상 1점 승부나 다를 바 없는 오늘 경기에서 양키스는 최고의 찬스를 잡았어요. 반면에 레드삭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셈이죠.] [여기서 웨이크필드를 내리는 선택을 할까요?]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만, 지금까지 무실점 피칭을 한 웨이크필드를 믿을 거 같습니다.]해설위원의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감독은 웨이크필드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홀로 마운드에 남은 웨이크필드를 보며 하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캐처박스로 돌아오던 포수 프랑코나가 그 미소를 봤는지 하성에게 물었다.
“뭐가 재밌다고 웃어?”
“앞으로 일어날 일이 재밌을 거 같아서 말이야.”
“앞으로 일어날 일?”
“내가 홈런을 때리고 그라운드를 돌면 이 양키 스타디움이 들썩이겠지.”
“하! 홈런이라니. 너무 꿈이 큰 거 아니야?”
“그건 곧 알게 되겠지. 오늘 내 목표는 날 싫어하는 저기 있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거거든.”
하성이 배트로 우익수 뒤의 외야 관중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토미와 그 무리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하성이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할 때 야유를 심하게 했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올드팬인 걸 알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앙금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네가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 해도 웨이크필드의 오늘 컨디션은 최고야. 네가 한 번에 공략할 정도로 만만한 투수가 아니라고.”
프랑코나가 마스크를 쓰고 자리에 앉았다.
하성도 타석에서 자리를 잡으며 웨이크필드를 노려봤다.
‘만만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 하지만 말이야.’
구심의 플레이볼 사인과 함께 경기가 재개됐다.
‘내가 더 대단한 놈이거든.’
하성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 * *
하성과 프랑코나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전 세계로 중계됐다.
그 장면을 두고 해설진은 다양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정하성 선수가 배트로 한곳을 가리키네요.] [마치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을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하하! 설마 그건 아니겠죠.] [아마 프랑코나와 이야기하면서 가리킨 거겠죠.]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궁금합니다.]“플레이볼!”
[경기 재개됩니다.] [1사 만루의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정하성 선수를 웨이크필드가 상대합니다!]팀 웨이크필드가 사인을 교환하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모든 베이스에 주자가 들어찬 상황.
그들의 도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됐기에 그는 마음껏 와인드업을 했다.
[초구 던집니다!]주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이 심하게 요동쳤다.
마치 날갯짓을 하는 나비처럼 종잡을 수 없는 무브먼트를 보여주면서 날아오는 너클볼.
그 순간 하성이 발을 내디뎠다.
콰직!!
스파이크가 필드의 흙을 뚫으며 그대로 박혔다.
단단하게 다리를 고정시킨 하성은 곧장 하체를 회전시켰다.
휘릭!!
하체에서부터 시작된 회전력이 골반을 지났다.
동시에 그의 동공은 어지럽게 움직이는 공의 무브먼트를 모두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
그리고 공의 무브먼트가 마지막으로 멈추는 순간.
하성의 상체가 토네이도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회전했다.
후웅-!!
일순간 돌풍이 일어날 정도로 빠르게 회전한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려던 공을 그대로 때렸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하성은 알 수 있었다.
‘넘어갔다.’
휘릭!!
손에 느껴지는 감각과 함께 배트를 던진 하성이 고개를 들어 타구를 바라봤다.
‘어?’
타구는 우익수 방향으로 날아갔다.
바로 하성이 배트로 가리켰던 방향으로 말이다.
“얼레?”
타구는 그대로 펜스를 넘어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너…… 넘어갔습니다!! 그랜드슬램을 터뜨리는 정하성 선수!!] [이…… 이건 예고 홈런이에요!!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을 재현해 낸 정하성 선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