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3)
마운드의 빌런-23화(23/285)
마운드의 빌런 23화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정하성 선수!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한 말씀만 해주시죠!”
“트리플A를 통과하고 메이저리그로 콜업이 됐는데. 심정이 어떠십니까?”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엄청난 숫자의 한국 기자들이었다.
‘빠르네.’
미국에 파견 나온 기자들 모두가 모인 것 같았다.
거기에 미국 기자들 역시 뒤엉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인터뷰는 구장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오클랜드 직원이 상황을 정리해주었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가 좋긴 하네. 구단 직원이 에스코트도 해주고.’
사실 모든 선수에게 이렇게 직원이 붙지 않는다.
기자들이 공항부터 몰리는 일은 잘 없으니 말이다.
그만큼 하성의 승격은 미국 내에서도 파격적인 뉴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차에 타자 직원이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큰 제약은 없었다.
교과서적인 안내문이라고나 할까?
하성은 대충 읽어보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오클랜드는 처음이네. 하긴, 미국에 고작 1년 있으면서 어딜 많이 다녔겠어.’
코치 연수로 왔었지만,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연수를 했던 게 아니다.
그렇기에 선수단과 동행하며 미국 전역을 다니는 건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이제는 미국 전역을 다닐 것이다.
그것도 멋들어진 전용기를 타면서 말이다.
* * *
구장에 도착하자 하성은 곧장 단장인 크리스와 대면했다.
“생각보다 일찍 다시 만나게 됐군.”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자네의 능력이지. 오늘부터 애슬레틱스의 일원으로서 잘 부탁하네.”
인사와 함께 단장이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메이저리그 계약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모두 화려하지 않다.
1년 차의 선수에게는 권리라는 게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연봉 조정 같은 것도 연차가 쌓여야 하기에 구단이 주는 최저연봉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최저연봉이라 해도 40만 달러에 달하지만…….’
한화로는 4억이 넘는 돈이었다.
‘지금 KBO 최고연봉자가 7억이 좀 넘었지?’
물론 이걸 전부 받지는 않는다.
하성이 뛰게 될 9월의 일수를 계산해서 연봉이 지급된다.
그렇기에 실제 하성이 받게 될 연봉은 1억이 채 되지 못한다.
하지만 하성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년부터는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시즌을 시작하면 된다.’
하성은 계약서에 사인하고 크리스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 * *
계약이 완료되고 하성은 크리스와 함께 감독실로 이동했다.
감독실에는 중후한 매력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토니. 오늘 새로 올라온 선수가 있어서 소개시켜 주려고 데려왔네.”
“아, 이 친구가 전에 이야기했던 더블A의 한국인 친구로군. 반갑네. 토니라고 부르게.”
“정하성입니다.”
악수를 나눈 뒤, 라커룸으로 이동했다.
라커룸에는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역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피지컬이 하나같이 대단하네.’
더블A 선수들의 피지컬도 나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선수들에 비하면 일반인 수준에 불과했다.
‘역시 커.’
라커룸에 들어서서 그들의 몸을 보고 있으니 그저 크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와 더블A의 차이가 심한 이유는 식단이 가장 크다.
수입에 격차가 크기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자신에게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다.
반면 더블A 선수들은 먹고사는 것에도 급급하기에 식단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계약금을 받거나 집이 부유해 지원받을 수 있는 선수들은 조금은 여유로웠지만 말이다.
‘내 근육이 이렇게 부족해 보이는 건 처음이군. 저들에 비하면 나도 아직 일반인 수준이야.’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때 크리스가 박수를 쳐 선수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짝-!
“자, 다들 새로운 동료를 소개하지. 이쪽은 더블A에서 올라온 정하성. 보직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투수다.”
투수라는 말에 반응하는 몇몇 선수들이 보였다.
라커룸에 어지럽게 선수들이 모여 있는 거 같아도 나름 그룹이 나뉘어 있었다.
‘그나저나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진짜 포커를 치는 놈들도 있네.’
한국에서야 포커가 도박으로 인식되지만, 미국은 스포츠의 일종이었다.
라커룸에서 그걸 즐긴다고 해서 딱히 흠이 되지는 않았다.
“오~ 신입이네.”
“잘 부탁해.”
“반갑다고.”
선수들이 하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팀의 성적이 좋은 편이라서 그런지 라커룸의 분위기도 괜찮았다.
‘이 시기 오클랜드는 선발진이 모두 트레이드되면서 마운드의 주인이 없는 상태지.’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오클랜드.
하지만 그때의 영광을 누렸던 선발투수들은 모두 트레이드됐다.
구단의 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라커룸은 신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덕분에 나도 올라올 수 있었던 거고.’
오클랜드를 택했던 이유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때 한 여자 직원이 다가왔다.
“단장님,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몇 명이나 되지?”
“30명은 됩니다.”
“그 정도나?”
“한국에서 많은 기자들이 왔어요. 그리고 일본에서도 기자가 왔고요.”
크리스는 하성을 힐끔 바라봤다.
‘내 생각보다 화제성을 겸비하고 있군. 마케팅에 이용하면 나쁘지 않겠어.’
메이저리그 구단은 회사와 같다.
수익을 내야 운영하고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수익을 낼까?
바로 스타 선수를 키워내는 것이다.
스타 선수를 키워내면 관중이 경기장을 찾게 되고 그것을 본 기업들이 스폰서로 붙는다.
구단 입장에서는 화제성을 가진 선수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라운드에서 진행하도록 하지. 그리고 유니폼은 준비됐나?”
“네. 가져올까요?”
“그래. 기자들에게 사진도 잘 찍어주라고 말해둬.”
“알겠습니다.”
하성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않는 척하면서도 모두 듣고 있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양반이네.’
자신에 대한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고 화제성을 모으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뭐, 무대에 올려준다는데. 나야 나쁠 건 없지.’
앞으로는 스타성이 중요한 시대가 된다.
‘어디 한번 신명 나게 놀아볼까.’
하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 *
대부분의 사람이 기자들 앞에 서면 긴장하게 된다.
다들 카메라를 들고 자신만 바라보고 있으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휘유…… 많이 모인 거 봐라.’
하성은 자신의 앞에 모인 기자들을 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 정도 기자들이 모이는 건 오랜만이다.
아마 한국에서 난리를 쳤을 때도 이 정도로 모이진 않았을 거다.
‘한국시리즈에서 역전당했을 때나 이렇게 모였을까?’
그만큼 자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찰칵!
찰칵!
오클랜드의 유니폼을 잡고 크리스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마 내일이면 스포츠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것이다.
유니폼을 입은 사진까지 찍은 뒤에야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한국, 일본, 미국까지. 골고루 왔네.’
야구가 인기 있는 세 개의 나라가 모두 모였다.
그들 중 미국 기자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마이너리그 데뷔 이후 약 6개월 만에 메이저리그에 콜업이 됐습니다. 그 이유가 뭐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하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실력이죠. 메이저리그는 실력우선주의 아니었습니까? 제가 메이저리그에 올 수 있는 실력이 됐으니 구단에서도 콜업을 했겠죠.”
어찌 보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대답을 할 줄이야.
머쓱해진 기자가 자리에 앉았다.
이후 몇몇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평범한 질문들이었다.
“이렇게 빨리 콜업 될 줄 알았습니까?”
하지만 대답은 평범하지 않았다.
“예.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다고요?”
“애슬레틱스 관계자가 제 투구를 보는 시기가 중요했지, 제 투구를 봤다면 당연히 콜업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감.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자만으로 들릴 수도 있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하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중의 판단만 받으면 되지.’
중요한 건 기자의 생각이 아니라 대중의 생각이었다.
만약 이런 분위기를 싫어한다면 그때 가면 바꿀 생각이었다.
‘아직까지는 오 대 오였으니 바꿀 필요는 없을 거 같고.’
하성은 자신의 인터뷰 스타일에 대한 반응을 알고 있었다.
한국의 기사를 몇 차례 체크했으니 말이다.
썩 나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문제였지만.
일단 지금 스타일을 유지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타자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딱히 없습니다. 상대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까칠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명의 기자가 인상을 구겼다.
‘어린놈의 새끼가 기자들을 아주 졸로 보네.’
스포츠백제에서 파견 나온 한국인 기자 이용철이었다.
그는 하성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아는 놈들은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지.’
사실 처음부터 봐줄 생각도 없었다.
‘감히 우리 집안 식구를 건드려?’
이용철은 매형을 떠올렸다.
그의 매형은 아마추어야구협회에서 사무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불어닥친 비리 사건으로 인해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이용은 그 일의 트리거가 된 하성에게 그리 감정이 좋지 않았다.
“스포츠백제의 이용철 기자입니다.”
하성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정하성 군은 작년 한국에서 여러 문제들을 일으켰습니다. 3년 동안 함께 야구를 한 동료들을…….”
어떻게든 흠집을 잡아내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있을 때.
하성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멈추게 만들었다.
“저기, 이용철 기자님?”
“예?”
“왜 저한테 정하성 군이라고 하시는 거죠? 전 엄연히 프로 선수인데요. 다음부터는 호칭을 좀 제대로 불러주세요. 제가 이용철 기자님에게 이용철 씨나 아저씨라고 부르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하성의 말에 이용철의 얼굴이 뻘게졌다.
하지만 하성의 대답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제가 메이저리그에 콜업이 된 걸 취재하기 위해서 오신 거 아닙니까? 왜 느닷없이 1년 전 일을 끄집어내시죠?”
“과…… 과거의 일을 궁금해할 대중을 위해……!”
“대중은 메이저리그 콜업에 대해 더 궁금해할 텐데요? 무엇보다 저 훈련 시간 빼서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는데 그런 쓸데없는 질문에 대답할 시간 없습니다. 아, 그리고 다음부터는 영어로 질문해 주세요.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하성은 일부러 마지막 말을 영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미국인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오버스러운 양반들은 엄지까지 내미는 것을 보니 멘트가 마음에 든 거 같았다.
하성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앉아 있는 이용철을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1년 전 사건을 끄집어내서 날 요리해 보겠다고? 어림도 없지.’
하성이 다음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이.
크리스는 혹시 몰라 동행했던 한국어를 하는 직원에게 방금 전 내용을 전달받았다.
‘한국에서 무슨 사고가 있었나? 어찌 됐든 고국의 기자에게 저런 식으로 나가다니. 재밌는 친구로군.’
자신의 예상대로 화제성은 충분했다.
‘마이크웍만큼 실력도 겸비하고 있으면 좋겠군.’
그것을 확인할 시간은 이제 멀지 않았다.
인터뷰가 모두 끝난 뒤.
크리스는 감독인 토니와 따로 만나 이야기를 전달했다.
“오늘 경기에서 루키의 실력을 확인해 봤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크리스의 질문에 토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황이 되면 계투로 올려서 테스트를 해보죠.”
“고맙네.”
하성의 등판이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