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35)
마운드의 빌런-235화(235/285)
마운드의 빌런 235화
무사 만루.
그리고 타석에는 하성이 들어섰다.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AT&T 파크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젠장……. 하필 이럴 때 하성이라니.”
“저놈을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아무리 린스컴이라 하더라도 지금 하성을 막는 건 무리가 아닐까?”
“당연히 교체하겠지.”
에이스가 마운드를 지키고 있다.
아무리 투구 수가 많다고는 하나 에이스의 위용이란 게 있었다.
팬들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선수가 바로 린스컴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의 등장에 자이언츠 팬들이 절망하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거 같습니다.] [올 시즌 만루 상황에서 정하성 선수는 3번의 만루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엄청난 성적을 남기고 있는 하성이었다.
거기에 만루 상황에서 그는 괴물이란 말이 어울리는 선수였다.
자이언츠 팬들이 절망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건 자이언츠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이언츠의 감독, 브루스 보치가 마운드를 방문합니다. 린스컴 선수를 교체하지 않을까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투구 수가 이미 90개에 달한 상태이고 제구력이 흔들리는 상황이니 교체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다른 투수라면 보치의 판단은 빨랐을 거다.
이미 투수 교체를 지시하고 새로운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을 테지만, 린스컴은 특별했다.
‘이 녀석은 우리의 에이스다. 비록 상대가 강하다고는 하나 의사를 존중해야 해.’
만약 린스컴이 거절한다면 감독이라 하더라도 그를 내릴 순 없다.
그것이 에이스에 대한 예우였다.
하지만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 린스컴에게 하성을 막을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맞붙는다면 팀에게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어.’
가장 난감한 상황이었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팀의 성적보다 개인의 성적이 우선시 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잘 이야기해서 그를 강판시키는 게 보치의 임무가 되었다.
‘문제는 린스컴의 자존심상 지금 상황을 납득하고 내려갈 수 있냐는 건데…….’
린스컴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그걸 알고 있는 보치 감독은 그를 설득할 생각에 머리부터 아파왔다.
그리고 그의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라는 겁니까?!”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대량실점이라도 한다면 오늘 경기를 아예 넘겨줄 수밖에 없다네.”
“꼭 제가 맞을 거라는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그런 뜻은 아니야. 단지 자네의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걸 감안해 주면 좋겠네.”
최대한 정중하게 이야기하는 보치를 보며 린스컴은 한숨을 내쉬었다.
감독인 그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충분한 배려였다.
문제는 자신의 자존심이 마운드를 내려가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가 저질러 놓은 일입니다. 제 손에서 처리하고 싶습니다.”
“음…….”
에이스의 간청이었다.
보치 감독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지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린스컴이 하성에게 한 방 얻어맞는다면 과연 온전하게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린스컴이 하성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걱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얻어맞는다면 린스컴의 멘탈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린다면 그는 더욱 멘탈이 흔들릴 수 있다.’
차라리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게 좋을 때도 있었다.
보치는 지금을 그런 순간으로 봤다.
‘비록 무너져 내린다 하더라도 그건 그가 극복해야 할 일이지.’
린스컴도 애가 아니었다.
프로 선수였고 팀을 이끄는 에이스였기에 보치는 그를 믿기로 했다.
“알겠네. 그럼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자네는 자이언츠의 에이스야. 자부심을 가지고 던지게.”
“알고 있습니다.”
린스컴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들은 보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아~ 보치 감독, 린스컴을 그대로 마운드에 두고 내려갑니다!] [에이스를 믿기로 한 거 같네요.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무사만루의 상황에서 정하성 선수가 얼마나 무서운 선수인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요.]걱정하는 건 해설진만이 아니었다.
“린스컴을 믿어도 되는 거야?”
“투구 수도 많아서 체력이 빠졌을 텐데. 여기에서는 그를 내리는 게 좋을 텐데.”
“상대는 정하성이라고! 어떻게 믿고 맡기겠다는 거야?”
“젠장! 보치가 노망이라도 온 건가?!”
팬들조차 에이스인 린스컴을 믿지 못했다.
그만큼 현재 하성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압도적 그 자체였다.
누가 보더라도 불리한 상황.
그리고 그건 린스컴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날 믿어준 감독을 배신할 순 없다.’
린스컴의 집중력이 올라갔다.
* * *
타석에 들어선 하성은 느낄 수 있었다.
‘공기가 바뀌었다.’
마운드 위에 서 있는 린스컴의 모습에서 망설임이 사라졌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불안해하던 모습은 없어지고 무척이나 차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에이스는 단순히 뛰어난 투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투수를 에이스라고 말하지.’
과거 팀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이기에 잘 알 수 있었다.
린스컴이 얼마나 자이언츠라는 팀에 애정이 깊은지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후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하성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 *
[린스컴과 포지 사인을 교환하고 1구 던집니다!]무사만루의 위기다.
초구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홈스틸을 노릴 녀석은 없다.’
만루의 상황이기에 홈스틸이 나올 가능성은 적었다.
무엇보다 타석에는 팀에서 가장 잘 때리는 하성이 들어와 있었다.
무리해서 홈스틸을 노릴 가능성은 제로가 근접했다.
그걸 알고 있기에 린스컴은 다리를 차올렸다.
파앗-!!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린스컴 특유의 와일드한 와인드업이 나왔다.
[팀 린스컴, 와인드업!!]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린스컴!]몸을 비튼 린스컴이 전력을 다해 힘을 축적시켰다.
그리고 일순간 회전을 풀면서 힘을 방출시켰다.
휘릭-!!
“흐읍!!”
그의 몸이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는지 바람이 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힘의 축적을 일순간에 풀어내면서 뿌린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몸쪽!’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확인한 하성이 발을 내디뎠다.
오픈 스탠드와 함께 팔꿈치를 몸에 붙이며 하체와 골반을 돌려 배럴에 회전을 더했다.
후웅-!!
배트가 돌아가면서 묵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배트의 궤적과 공의 궤적이 일치하는 순간.
쐐애애액-!!
공이 가속했다.
뻐어어억-!!
공이 먼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가고.
후웅-!!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구심의 손이 올라감과 동시에 하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이 빨라졌다.’
이전보다 공의 구속이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이건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린스컴의 엄청난 강속구! 위기의 순간에 오늘 경기 최고 구속인 98마일을 기록합니다!] [구속도 구속이지만, 코스도 매우 좋았습니다. 타자의 몸쪽을 정확히 찌르는 아주 난해한 코스였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가진 전력을 뽑아내는 느낌입니다.]분명 린스컴의 공은 이전보다 좋아졌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너도 에이스라는 거지.’
에이스이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후우……!”
깊은 호흡을 내뱉으며 다시 타석에 선 하성은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여기가 승부처다. 체력을 아낄 이유는 없어.’
고도의 집중력 상태는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
아무래도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체력 소모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건 하성의 괴물 같은 체력으로도 부담됐다.
하지만 승부처에서는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고서라도 사용해야 했다.
“플레이볼!”
하성이 준비를 끝내자 구심의 외침이 들려왔다.
린스컴은 1구와 마찬가지로 몸을 비틀어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바깥쪽 낮은 코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성의 발이 인코스로 파고들며 허리를 회전시켰다.
그 순간이었다.
휘릭!!
공의 궤적이 변했다.
그걸 확인한 하성은 곧장 손목을 비틀어 나가던 배트를 그대로 멈췄다.
퍽!
“볼!”
[배트 나가다 멈췄습니다! 린스컴의 유인구를 잘 간파하고 배트를 멈춘 정하성 선수!]원볼 원스트라이크.
두 선수의 밀고 당기는 싸움은 계속됐다.
딱-!!
“파울!!”
[3구 파울입니다! 99마일의 빠른 공에 배트가 밀리면서 타구가 3루 쪽 관중석에 떨어집니다!]린스컴은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여기가 자신이 던져야 되는 마지막 장소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린스컴을 상대로 하성도 전력을 다했다.
퍽!
“볼!!”
[떨어지는 포크볼에 배트 나가지 않습니다! 투볼 투스트라이크!!] [두 선수의 공방이 매우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두 선수는 이제 승부를 볼 때라는 걸 알고 있었다.
‘3구를 포크볼로 던진 건 이걸 던지기 위해서지.’
린스컴이 포지와 사인을 교환했다.
‘네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뿌려. 패스트볼이다.’
‘오케이.’
포지의 사인을 받은 린스컴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크볼을 던짐으로써 하성에게 그 공이 눈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이 상태에서 전력을 다한 패스트볼을 던진다면 체감속도는 그보다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즉, 5구를 위해 4구를 일부러 버렸다는 소리였다.
“후우…….”
린스컴은 깊은 호흡을 뱉으며 모든 정신을 집중시켰다.
‘날 믿어준 감독과 동료들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의 공을 던져야 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부담감이 린스컴의 잠재력을 끌어올렸다.
‘간다.’
눈을 빛낸 린스컴이 다리를 차올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하성은 생각했다.
‘일부러 버리는 공을 던졌다면…….’
그는 이미 린스컴과 포지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이번에는 네가 던질 수 있는 전력의 패스트볼을 선택하겠지.’
하성이 두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전생에 이미 많은 경험을 쌓았던 투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지금 상황에서 투수가 어떤 생각으로 공을 던질지 잘 알고 있었다.
“흐읍-!!”
[5구 뿌렸습니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
투수가 어떤 생각으로 공을 던지는지 알고 있다는 건 엄청난 이득이 되어 돌아왔다.
콰직!!
하성의 발이 단단하게 지면에 고정되고.
휘릭!!
하체를 시작으로 허리, 그리고 상체가 차례대로 돌았다.
후웅-!!
마지막으로 배트가 돌아가면서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그대로 강타했다.
따악-!!
맞는 순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이건……!!] [넘어갔습니다!!]타구가 넘어갔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