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36)
마운드의 빌런-236화(236/285)
마운드의 빌런 236화
타구가 담장을 넘어갔다.
자이언츠 팬들이 절망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젠장! 린스컴을 내려야 한다니까.”
“도대체 쟤를 뭘 믿고 계속 올린 거야?”
“결국 그랜드슬램이라니…….”
만루홈런이 나왔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자이언츠가 오늘 경기를 잡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린스컴의 기용은 실패였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의견은 아니었다.
“린스컴이 결국 홈런을 맞긴 했지만, 그의 공은 나쁘지 않았어.”
“맞아. 마지막 공도 100마일이었잖아?”
“지금 불펜의 누가 올라오더라도 린스컴보다 더 좋은 공을 던지진 못했을 거야.”
“저런 공을 때려낸 하성이 대단한 거지. 린스컴이 잘못 던진 건 아니야.”
린스컴의 마지막 공은 100마일이란 구속을 찍었다.
2008년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처럼 뿌려댄 강속구는 자이언츠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현재는 90마일 초중반의 공을 뿌리는 선수로 전락했다.
하지만 원래의 그는 100마일의 공을 펑펑 뿌려대는 강속구 투수라는 걸 모르는 팬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하성과의 승부에서 보여준 모습은 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번 린스컴 선수와 정하성 선수의 대결은 잘 던지고 잘 때렸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린스컴 선수가 던진 공들은 모두 90마일 후반을 기록하면서 그의 전성기를 연상케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던진 100마일의 강속구는 과거로 회귀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모든 해설진이 린스컴의 투구를 칭찬했다.
그만큼 완벽한 공이었다.
[하지만 그런 린스컴 선수조차 정하성 선수의 배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환상적인 스윙이었습니다. 100마일의 공을 정확히 노리고 배트를 돌려 그대로 담장을 넘겼어요.] [엄청난 파워가 느껴지는 스윙이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졌지만 잘 싸웠다. 그 말이 딱 어울리는 대결이었습니다.]제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내 패배다.’
린스컴 역시 패배를 온전히 인정했다.
‘내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녀석이 그걸 잘 때려냈어.’
근래에 들어 자신이 던졌던 최고의 공이었다.
그걸 깔끔하게 얻어 맞았기에 더더욱 미련이 남지 않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겠다.’
단지 다음을 다짐하며 그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하성과 린스컴의 두 번째 대결 역시 하성의 완벽한 승리로 돌아갔다.
* * *
하성이 그랜드슬램을 터뜨리자 대중의 관심은 다음 스텝으로 향했다.
-이제 안타 하나만 때리면 히트 포 더 사이클 아니야?
-그러게.
-벌써 3루타 2루타 홈런까지 때렸으니 거의 달성이네.
-안타 정도는 쉽게 해결하겠지.
-문제는 벌써 경기 후반이라는 거임.
-ㅇㅈ. 기회 한 번밖에 없을 듯.
-히트 포 더 사이클.
사이클링 히트라고도 불리는 이 기록은 타자가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기록 중 하나였다.
안타를 포함해 2루타, 3루타 그리고 홈런까지 기록해야 하기에 매우 어려웠다.
투타 겸업으로는 아직까지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가 없기에 하성이 성공한다면 최초의 달성자가 되는 셈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정하성 선수가 한 번 정도 타석에 더 들어서겠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한다면 그는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첫 번째 투타 겸업 선수가 되겠죠.] [정말 떨리는 일입니다.] [예. 한국인으로서는 역대 두 번째의 기록이 될 것이고 사이영상을 받은 선수로는 첫 번째가 될 겁니다.]해설진의 기대는 계속됐다.
[사이클링 히트에서 가장 어려운 건 역시 3루타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펀치력을 가진 선수들은 대부분 장타로 2루타와 홈런까지는 쉽게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3루타는 주력은 물론이거니와 상황도 잘 나와줘야 하기에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정하성 선수는 첫 번째 타석에서 3루타를 기록한 덕분에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죠.]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9회에 타석에 들어설 텐데. 그때 안타를 기록하길 바랍니다.]이러한 기록에 도전 중인 건 뉴욕 양키스 선수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양키스 선수단은 하성의 곁에 가지 않았다.
마치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를 기록 중인 투수에게 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러한 불문율은 없었다.
그럼에도 양키스 선수단은 하성의 위대한 기록에 방해되지 않게 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양키스 선수단이 하성을 인정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저 녀석이 우리 팀에 오고나서 보여준 모습들은 엄청나.’
‘로드리고와 마찰이 있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녀석이 잘못한 건 없지.’
‘결국 로드리고가 스스로 족쇄를 찬 거나 다름없어.’
‘앞으로 함께할 녀석을 방해할 이유는 없지.’
‘사이클링 히트라니…… 정말 대단해.’
양키스 선수단이 그동안 하성에게 반감을 가졌던 건 알렉스 로드리고의 그림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자를 지워버릴 정도로 하성의 활약이 뛰어나자 점점 선수단의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은 하성이 보여주는 모습은 압도적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9회 초, 양키스의 공격으로 이닝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기 타석에는 정하성 선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하성의 등장에 AT&T 파크를 찾은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워졌다.
그들 역시 역사상 최초의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정하성 저 녀석은 적이지만 정말 대단해.”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사이클링 히트까지 코앞까지 다가왔지?”
“그래도 나는 우리 팀을 상대로 달성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긴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도 한데 말이지.”
자이언츠 팬들의 마음은 심란했다.
직접 목격하고 싶지만, 자신들이 애정하는 팬이 그 희생양이 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상반된 마음을 가진 채 그들은 하성이 들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첫 번째 탈삼진을 올리는 자이언츠의 4번째 투수 제임슨!] [훌륭한 패스트볼이었습니다. 볼끝이 살아 있어서 타자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삼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자이언츠는 어느덧 네 번째 투수가 올라왔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그동안 등판하지 못했던 투수들을 차례로 테스트하고 있었다.
이런 선택을 내린 건 팀의 후반기를 위해서다.
‘투수들의 상태를 정확히 점검할 필요도 있었다. 오늘 이런 경기가 나온 건 아쉽지만, 차라리 잘됐다고 봐야 해.’
보치 감독은 진하게 밀려오는 아쉬움을 애써 달래며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승패는 정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오늘 경기에서 다른 방향으로 얻는 게 있어야 했다.
그걸 알기에 보치 감독은 다수의 투수를 투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그런 보치의 결정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지금 관심이 몰리고 있는 곳은 바로 타석에 들어서는 하성이었다.
[정하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메이저리그 투타 겸업 첫해에 역대급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정하성 선수, 만약 이번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한다면 역사상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투타 겸업 선수가 됩니다.]사이클링 히트라는 대업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하성은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안타 정도야 문제가 아니지.’
타석에 들어선 그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투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는 하나 긴장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장 큰 걱정은 저 녀석이 나를 거르는 선택을 하는 건데.’
대기록의 제물이 되고 싶은 팀은 없었다.
그건 자이언츠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에서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하성을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선택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초구를 보면 알겠지.’
타석에 선 하성이 자세를 취했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투수가 사인을 교환하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투수 초구 던집니다!]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코스는 바깥쪽 낮은 코스.
일단 공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하성은 그것을 그냥 흘려보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구속 94마일의 빠른 패스트볼이 그대로 미트에 꽂힙니다!] [상대가 정하성이지만, 제임슨 투수의 투구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초구를 지켜보고 하성은 알 수 있었다.
‘날 피할 생각은 없다는 거군.’
피할 생각이었다면 초구부터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액션을 취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액션이 없었다는 건 상대하겠다는 소리로 해석할 수 있었다.
‘나야 땡큐지.’
보치 감독이 어떤 의도로 자신을 상대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여러 가지 의도가 담겨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에게 나쁠 게 전혀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피할 생각이 없다면…….’
하성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기록을 달성한다.’
그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올랐다.
* * *
딱-!!
“파울!!”
[2구 파울입니다! 제임슨의 위력적인 슬라이더에 투스트라이크로 몰리는 정하성 선수!] [제임슨이 신인이지만, 확실히 공의 구위나 배짱이 매우 좋습니다.] [정하성 선수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그렇습니다.]투스트라이크로 몰렸지만, 하성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리며 3구를 기다렸다.
그런 하성을 보며 제임슨은 생각했다.
‘네가 아무리 대단한 선수라지만, 나 역시 메이저리거다. 여기에서 널 돌려세우겠어!’
하성을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운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걸 성공한 메이저리거 투수는 몇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욕심이 났다.
제임슨은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흡-!!”
그리고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뿌렸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하성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콰직!
하성의 발이 오픈스탠스를 밟으며 그대로 하체가 회전했다.
후웅-!!
뒤이어 허리와 상체가 돌아가면서 배트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회전을 시작했다.
매섭게 돌아간 배트는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배트에 강타당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우익수의 키를 넘길 정도로 커다란 타구에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이건 최소 2루타다.
-기록 달성 실패네.
-2루타면 실패임?
-ㅇㅇ
사이클링 히트는 안타를 포함한 모든 타격 기록을 달성해야 한다.
지금 하성에게 필요한 건 안타이지 또 하나의 2루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성이 2루 베이스를 밟는 순간 기록달성에 실패한다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아~ 정하성 선수, 1루 베이스에서 멈췄습니다!!]하성이 1루 베이스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타구를 잡은 우익수가 다급히 2루로 공을 뿌렸다.
누가 보더라도 기록을 위해 일부러 걸음을 멈춘 하성이었다.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정하성 선수!!]기록을 달성하는 순간.
AT&T 파크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