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4)
마운드의 빌런-24화(24/285)
마운드의 빌런 24화
오클랜드의 점심시간.
‘크으……! 이거지!’
하성은 눈앞의 산해진미를 보며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크으-! 스테이크를 직접 구워주네. 거기에 야채들 신선한 거 보소. 와~ 저 과일 달달하겠다.’
더블A에 있을 때는 보기 힘들었던 신선도의 야채와 과일들이었다.
빈부격차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은 바로 식탁이다.
같은 돈을 주더라도 정크푸드는 푸짐하지만, 신선식품은 조금밖에 사지 못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빈곤층일수록 정크푸드를 섭취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트 운동인에게 있어 영양섭취는 훈련만큼이나 중요해. 그런데 그 기본이 되지 않으니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따라잡는 데 오래 걸리지.’
하성이 부모님의 도움을 거부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10대 후반.
가장 많은 성장을 해야 할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영양 섭취가 부족하다면 성장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에 정착하면 지원을 받지 않아도 돼. 온전한 경제의 독립을 얻게 된다.’
목표를 위해서는 데뷔전이 중요했다.
데뷔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메이저리그에 남을 건지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지 결정된다.
‘일단 먹자. 먹어야 힘을 내지!’
하성은 야채와 고기 위주로 식판을 채우며 경기를 준비했다.
* * *
한국.
하성의 부모님은 새벽에 일어나 있었다.
아버지는 컴퓨터를 만지고 계셨고 어머니는 그 뒤에서 침침한 눈을 비비면서 물으셨다.
“볼 수 있는 곳 찾았어요?”
“아무래도 국내 사이트는 볼 수 있는 곳이 없는 거 같아. 해외 쪽으로 찾아봐야 할 거 같은데?”
“아휴…… 왜 이렇게 복잡하담. 왜 TV에서는 중계를 해주지 않는 거예요?”
“시즌에 들어가기 전에 중계권을 계약해야 하는데. 오클랜드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거든. 한국인도 뛰지 않으니 굳이 계약할 이유가 없었지.”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아들 데뷔전도 못 보겠어요.”
“조금만 기다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볼 테니까.”
아버지도 마음이 급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번 다시 없을 아들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놓치게 생겼으니 말이다.
“아! 찾았다!”
한참을 검색해서 찾은 끝에 오클랜드의 경기를 라이브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았다.
유료 결제를 해야 했지만, 걸림돌은 되지 않았다.
“나온다! 나와!”
마치 사막을 걷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과 같은 기쁨이었다.
“어머, 벌써 5회네요?”
“그러게. 찾는데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 그래도 괜찮을 거야. 아들은 계투로 나올 테니까.”
대답을 하면서 아버지는 스코어를 확인했다.
“오클랜드가 4 대 0으로 지고 있네. 선발 투구 수도 90구를 넘어서 잘하면 아들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겠는걸?”
“그러게요. 주자도 없으니 한 번쯤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
그때였다.
딱-!!
스피커를 통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타구를 따라가는 게 보였다.
2루수 키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타구였다.
[가볍게 쳐서 안타를 만들어냅니다. 오늘 선발인 댈러스 브레이든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군요.] [브레이든은 본래 불펜투수였습니다. 리빌딩을 결정하면서 올 시즌부터 선발로 올렸으니 경험이 부족해 불안정할 수밖에 없죠.] [여기에서 오클랜드의 토니 감독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교체겠죠?] [교체할 것으로 보입니다. 점수가 더 벌어지면 오늘 경기를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오클랜드는 이번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야 해요.] [역시 공을 받아 듭니다. 브레이든이 내려가고 오클랜드의 다음 투수는 누가 될까요?]카메라가 불펜의 입구를 비추었다.
불펜의 입구가 열리면서 나온 선수를 본 부모님의 눈이 커졌다.
“하성이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워낙 멀어 선수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었다.
아들이 달려오고 있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을 중계진이 알려주었다.
[오클랜드가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는군요. 메이저리그에 오늘 콜업이 된 정하성을 다음 투수로 올렸습니다.]* * *
마운드에 도착한 하성에게 토니가 공을 건넸다.
“첫 등판부터 어려운 상황에서 올리게 됐군.”
“뭐, 계투가 상황에 따라서 올라오나요? 어렵든 쉽든 언제든지 올라와야죠.”
토니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겉모습은 어린애인데. 하는 말은 완전히 베테랑이군. 한국에서 오는 녀석들은 원래 이런가?’
지도자 경력이 오래되었지만, 토니는 한국인 선수와 연을 맺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저 특이하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토니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하성은 가볍게 연습구를 던지면서 몸 상태를 체크했다.
‘불펜에서도 느꼈지만,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아.’
이동 거리가 제법 됐기에 피곤할 수도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젊은 육체는 그런 피로 따위는 단숨에 회복시켰다.
‘역시 젊은 게 최고라니까.’
젊은 시절의 육체에 감탄하며 하성은 연습 투구를 끝냈다.
그런 하성에게 토니 감독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점수를 더 내주고 싶지 않아. 여기에서 틀어막아야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저도 데뷔전부터 실점하고 싶진 않습니다.”
“든든하군. 잘 부탁하네.”
툭!
토니가 하성의 등을 두드려 격려해 주곤 마운드를 내려갔다.
하성은 공이 내야를 도는 사이, 마운드를 밟으며 감회에 젖었다.
‘크으-! 드디어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게 되다니.’
불현듯 회귀 전의 삶이 떠올랐다.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국내를 택했다.
국내 최고의 투수가 되고 포스팅을 신청할 자격을 얻었을 때.
이제 더 큰 무대를 밟기 위해 메이저리그로 가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무대라 생각했던 한국시리즈에서 전력을 다했다.
자신을 사랑해 준 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기에 고통을 참고 던졌다.
덕분에 메이저리그 무대는 밟지 못했다.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무척이나 특별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팍!
팍!
하성은 다리에 힘을 주어 마운드의 흙을 골라냈다.
‘감회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야. 제대로 멘탈을 잡고 던지지 않으면 잡아 먹힌다.’
이내 몸을 돌린 하성이 로진을 손에 묻혔다.
평소 자신의 루틴대로였다.
‘정신 차려라, 정하성. 이게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정신을 다잡고 피처 플레이트를 밟았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재개됐다.
하성이 상체를 숙이자 포수인 트레버가 사인을 보냈다.
‘첫 등판부터 너무 빡센 상황에 올린 거 아니야? 우리 루키가 너무 불쌍한데?’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자 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클랜드의 루키, 정에게는 어려운 데뷔전이 되겠군요. 원래 루키에게는 적응도 할 겸,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등판시키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경우엔 그렇습니다. 하지만 구단에서 기대를 하는 투수는 다소 어려운 상황에 등판시키기도 합니다.] [정하성이 그런 선수다, 이 말씀이시군요?] [지금까진 그렇게 보입니다. 오늘 피칭을 보면 더 명확해지겠죠.]중계진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하성이 다리를 빼면서 1루로 공을 뿌렸다.
[1루에 견제!!]퍽!
“세이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가 됩니다. 아~ 좋은 견제였어요.] [매우 깔끔했습니다. 견제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정확하게 견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들어가는 코스도 좋았죠?] [예. 1루수가 그대로 미트를 내리면 되는 위치에 공을 던져주면서 빠르게 태그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었어요.]다시 공을 받은 하성은 침착하게 자신의 루틴을 밟았다.
대부분 첫 경험에서 당황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본인의 스타일을 잊어버리고 허둥지둥하기 일쑤였다.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고 메이저리그에 올라와도 그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성은 그런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없으니 중계진들에게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로진을 손에 묻히고 다시 피처 플레이트를 밟은 하성은 투구 폼에 들어가기 전, 1루 주자를 째려보는 걸 잊지 않았다.
‘어디 한번 뛰려고 해봐. 아주 그냥 죽는 거야.’
첫 번째 견제가 워낙 훌륭했기에 주자는 리드폭을 넓히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성은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경력 있는 신입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그 경력을 본인만 안다는 게 문제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단 하나.
콰직!
[정하성 선수, 좋은 슬라이드 스텝!]오직 저기 보이는 포수의 미트에 공을 꽂아 넣는 것밖에 없었다.
“흐읍!!”
후웅-!!
기합 소리와 함께 있는 힘껏 팔을 돌렸다.
그리고 정확한 릴리스포인트에서 공을 챘다.
쐐애애애액-!!
트레버가 원한 코스는 바깥쪽 낮은 코스.
공은 그것보다 조금 더 가운데로 들어왔다.
실투라고 보긴 어렵지만, 타자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걸렸……!’
먹이를 포착한 타자가 그것을 낚아채기 위해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촤앗-!
그의 발이 단단하게 고정되고 골반이 돌아가려는 순간.
뻐어억-!!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해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뒤이어 구심의 사인이 터져 나왔다.
[초구 스트라이크! 97마일의 빠른 공에 타자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공이 조금 가운데로 몰렸지만, 구속도 빠르고 구위도 좋아 타자가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무엇보다 릴리스포인트를 앞까지 끌어오는 게 인상적이군요.] [상당히 앞에서 공을 던졌죠?] [예. 자세한 건 데이터를 봐야 하지만, 타자가 느낀 체감속도는 99마일 혹은 그 이상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해설은 정확했다.
타자는 자신의 예상보다 빨리 들어온 공을 그대로 놓칠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초구를 보여준 루키 정하성, 과연 2구는 어떤 공을 던질까요?]사인을 교환한 하성이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이번에는 견제구가 없었다.
그럼에도 첫 번째 견제구가 뇌리에 남아 있는 주자는 달리지 못했다.
“흡!!”
쐐애애액-!!
뻐어억!!
“볼!!”
높게 던진 공이 반 개쯤 빠지면서 구심이 볼을 선언했다.
[2구 역시 포심 패스트볼입니다. 구속은 98마일이 나왔군요. 대단한 구속입니다.] [공 반 개 정도 빠지긴 했지만, 구위는 무시무시하군요.] [이쯤에서 변화구를 던질 만도 한데, 과연 3구는 어떤 공을 던질까요?]하성은 빠른 템포로 3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액-!!
이번에는 몸쪽으로 붙어오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타구가 라인을 벗어나네요.]“파울!!”
[투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이번에도 97마일의 패스트볼을 택한 루키 정하성! 3구 연속 패스트볼이네요.] [패스트볼이 상당히 좋군요.]3구 연속 패스트볼을 던진 하성에게 칭찬이 쏟아졌다.
그만큼 훌륭한 공이었단 소리다.
[연달아 패스트볼을 보여줬으니, 이쯤에서 브레이킹볼을 던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건 시애틀의 벤치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도루를 시도할 수 있겠군요.] [예. 그러니 여기에서 주자의 리드폭을 줄이는 견제구를…….]해설위원은 견제구를 던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하성은 견제구가 아닌 투구를 택했다.
타닥-!!
그리고 동시에 1루 주자가 2루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성은 개의치 않고 공을 던졌다.
“흡!!”
쐐애애액-!
[4구 던졌습니다!!]그의 손을 떠난 공이 존보다 다소 높은 위치로 날아갔다.
존보다 살짝 높은 위치로 날아오는 공은 타자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군침 흐르는 코스에 타자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후웅-!!
어설프게 들어온 공을 낚아채기 위해 타자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두 궤적이 하나가 되려는 순간.
공의 궤적이 살짝 변화했다.
정확히는 떨어지던 궤적이 예상보다 떨어지지 않으면서 배트의 궤적과 어긋났다.
딱!!
아주 살짝이지만, 어긋난 궤적에 의해 배트는 공의 아래를 때렸고 타구는 하늘 높이 떠올랐다.
“마이!!”
“돌아가!!”
2루수가 자신이 잡을 수 있다는 사인을 보내고 3루 수비코치가 돌아가라고 외쳤다.
그제야 타구를 확인한 주자가 다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퍽!!
거의 동시에 2루수가 공을 잡았고 그대로 1루로 뿌렸다.
퍽!!
“아웃!!”
귀루하려던 주자가 절반도 가지 못했을 때 1루심이 냉정하게 아웃 콜을 내렸다.
[순식간에 두 개의 아웃 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눈높이로 들어오는 공에 타자가 뒤늦게 반응하면서 제대로 공을 때려내지 못했네요. 거기에 정하성 선수의 공이 예상보다 구위가 좋아 배트의 궤적에서 벗어났어요.] [정말 훌륭한 공이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오클랜드가 이런 상황에 루키를 올린 이유를 알 수 있었던 1구였습니다.]분위기는 단번에 반전됐다.
세 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흐름을 타기 시작한 하성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97마일의 빠른 공이 미트에 꽂힙니다!!]거침없이 공을 던지는 하성을 크리스는 펜스 너머에서 보고 있었다.
‘뛰어난 마이크웍과 스타성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군.’
뻐억!!
“스트라이크!! 투!!”
[이번에도 98마일의 패스트볼!! 타자 꿈쩍도 못 하네요!]‘새로운 오클랜드의 스타가 되기에 충분하겠어.’
투스트라이크를 잡은 하성이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기 위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깔끔하게…….’
콰직!!
스트라이드와 함께 마운드를 밟은 그가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잡는다!!’
쐐애애액-!!
공이 하성의 손에서 떠나자 타자가 배트를 돌렸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이 담긴 스윙이었다.
날카로운 스윙에 공이 닿으려는 순간.
휘릭!!
공의 궤적이 변하면서 배트의 헤드 부위를 강타했다.
빠각!!
동시에 배트가 반으로 쪼개지며 타구는 하성에게 돌아갔다.
[배트 부러지면서 투수 앞 땅볼! 정하성 선수, 가볍게 잡아 1루로 토스!!]퍽!
“아웃!!”
[세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갑니다!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번째 등판을 공 7개로 마무리하는 정하성 선수!! 괴물 루키의 등장입니다!!]